카미유 클로델 - 거침없는 호흡으로 삶과 예술을 이야기한 카미유의 육필 편지
카미유 클로델 지음, 김이선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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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은밀한 것이다. 주고 받는 사람 그 외에는 열람이 제한되는 은밀한 두 사람만의 것, 그것이 편지이다. 그런 편지가 이렇게 공개되다니 카미유 클로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예민한 그녀라면, 아마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으리라. 은밀하기에 또한 적나라하기도 하다. 이 편지를 읽고 분실된 편지로 분류된 수많은 발신자들은 편지를 태워 자신들의 적나라함을 미연에 방지해준 카미유 클로델에게 어쩌면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 점에 대해선 카미유 클로델에게 사과한다. 당신의 허락없이 당신의 편지를 읽은 나는 어쩌면 당신의 허락없이 당신의 조각품을 가져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과 달리 당신의 편지를 읽은 나 혹은 우리는 카미유 당신을 이해한다고, 아주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먼 시간 전에 아마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까미유 끌로델>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로댕의 정부가 아닌 카미유 클로델을 재조명해야한다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영화를 봤던 것도 같고 못봤던 것도 같지만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이자벨 아자니처럼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어쩌면 내 속으로는 그녀를 위대한 조각가가 아니라 로댕의 정부 쪽으로 치부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표지 속의 카미유는 물론 아름답지만 이자벨 아자니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랄까, 덕분에 그녀를 백지의 상태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평범하고 긴 드레스를 입고 조각상에 매달린 그녀의 모습은 인형같은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열정적인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얼굴과 몸매가 매혹적인 정부가 아니라 정과 기질이 나는 조각가의 모습이 그녀의 수 백 통 편지 속에 들어있었다.

 

 

그녀의 편지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1. 그녀는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었다.  2. 그녀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자부심이 대단했다.  3. 로댕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4. 그녀는 가난했다. 5. 30년간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6. 그녀는 의지가 강하다.  7. 그녀의 편지는 매우 정상적이었고, 그녀의 정신은 매우 불안정했다.'이다. 이를 정리하면 천부적 소질을 가진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연인이자 제자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지만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센 사람이라 로댕의 그늘에 숨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순순하지 못한 그녀는 로댕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로댕의 지지를 받지 못한 후에는 가난할 수 밖에 없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음모로 인해 감금되었고 그 이후 비교적 정신이 또렷해보이나 매우 불안정한(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 아, 불쌍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지만 불쌍하다고만 여기기엔 그녀는 너무나 강인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30년 간을 살아낸 것, 나는 그점이 무척 놀라웠다. 그 끔찍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황을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견뎌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보다는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 사람이었으니 이런 나의 감정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토록 많은 편지를 재잘재잘 많이도 남긴 그녀가, 그 편지 속에서조차 가식이 없이 직하고 당당했던 그녀가 실제 삶에서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편지의 상당부분을 실이라고 믿는다. 물론 정신병원 감금 이후 지나치게 감정적인 망상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편지 속에 스며든 카미유 클로델의 에는 생명력에서부터 무기력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마치 한 인간이 모든 힘을 짜내어 무언가를 이루고 소진하여 쓰러지는 과정이 들어있는 듯 하다. 다만 그녀에게는 생전엔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없었겠지만 책 속에 편지와 함께 삽입된 작품 사진을 보자니 그녀가 무언가를 이루기는 이루어 낸 듯 싶다. 여성 조각가로서 실제 사람보다 큰 군상을 조각해내는 것부터 움직임이 유연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자면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조각가인지, 당시 여성으로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아마 세상은 그녀의 위대함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녀의 위대함을 은폐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댕이 미친 듯이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열정의 예술가, 로댕의 보호를 벗어나 그의 악의에 갇힌 불운의 예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 앞에서 로댕을 눈물 흘리게 했던 천재 예술가 미유 클로델. 은밀한 편지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에 대해 그녀는 지금 역시 허락하지 않을 테지만 그 고단한 삶이 편지로나마 이렇게 그녀를 품어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로댕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역시 가엾다. 이 편지가 공개되고 나서 그의 명예는 실추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민과 복잡한 심사는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로댕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고, 지금 개봉 중인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도 꼭 보고 싶다. 이자벨 아자니 보다는 줄리엣 비노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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