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잘 우는 아이였다. 요샛말로 찌질해서 잘 우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말다툼을 해도 뭐가 서러운지 무서운지 눈물부터 주륵주륵 흘렸더랬다. 그럼 상대는 제풀에 꺽여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고, 억울한 듯 자기가 울린 게 아니라는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고, 도리어 더 화를 내기도 했다. 의도한 적은 없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건데 말싸움하면서 울지 않기 위해 벽과 싸우는 연습을 할 정도로 나는 울음부터 터뜨리는 내가 싫었었다.
뉴스의 사건을 보고도 울었고, 배구 경기를 보면서도 울었으니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는 안우는 날이 없었다. 크게 울 일이 아니어도 슬펐고, 울 수 있는 장면이면 휴지 한 통을 옆에 끼고 마음껏 울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여동생은 늘 나를 비웃었다. "저거 촬영한 거야. 진짜 아니야 가짜야!" 가스나, 어찌나 현실적인지.
엉엉 울지는 않았다. 소리없이 우는 편이었다. 대학 때에는 내 모습 중 우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던 친구가 있었을 정도이니 아마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잘 우는 편이었나보다. 그런데 울면 많이 아프다. 눈이 퉁퉁 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온 몸의 진을 다 빼는 듯 하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울 상황을 피했다. 극장에서도 펑펑 울던 나이지만 주먹을 꽉 쥐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고(물론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남편과 다툴 땐 얼음장처럼 스스로를 차갑게 만들었다. 동정심이 생길 땐 머릿 속으로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설득했는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울음이 줄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는가보다. 예전보다 횟수는 현격히 줄었는데 울음이 너무 깊다. 눈물이 몇 시간이고 내내 흐른다. 왜 그럴까? 나이가 들었으면 그러지 않을만도 한데. 생각해 보건대 어릴 땐 울면서 말도 같이 했던 것 같다. 속상한 것을 눈물과 말로 함께 쏟아낸 것 같다. 엄마가 있었고, 동생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연인이 있었다. 나이가 들었고 여전히 내겐 엄마가 있고, 동생도 있고, 친구도 있고, 남편도 있다. 그런데 눈물이 날 땐 그들을 피해 혼자만의 공간으로 도망간다. 그 속에서 소리죽여 운다. 내 울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그러다 아이에게 가장 먼저 들키곤 해서 마음이 두 배로 아프다.
그런데 눈물을 오래 흘리다보면 눈물을 흘리는 시간동안은 몹시 고통스러운데 다 흘린 후에는 후련하다. 다 그렇다더라. 치유의 힘이 느껴진다. 문득 힐링에 관한 책들과 방송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본다.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힘들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답답할 땐 눈물을 흘리면 그게 가장 좋은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눈물도 아무나 아무때나 흘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슬픔을 찾아서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찾아낸 슬픔의 소스 그 이상으로 펑펑 울어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오늘도 많이 울고 많이 아팠다. 울고 나면 요샌 뼈마디도 아프다. 헛헛한 마음이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후련은 하다. 말로 뱉어내지 못할 땐 울음으로라도 토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배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울자, 힐링에 관한 다른 것을 찾아 헤매지 말고.
<읽으면서 펑펑 울고 그 울음이 고마웠던 책과 영화 몇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