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비밀 - 쿠바로 간 홀로코스트 난민 보림문학선 11
마가리타 엥글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림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헤르타뮐러의 [숨그네]를 읽으면서였던 것 같다. 내가 너무 그들의 삶을 모른 척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하지만 내 삶에 관여하지 않는 그 문제들은 너무 쉽게 그 역사를 모르는 척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백년의 지혜]나 [유럽의 교육]을 읽으며 또다시 나는 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했고 알고 싶어졌다.

 

어른들조차도 그나마 더 유명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그저 풍문으로만 들은 정도일 뿐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원인으로 발발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종전 이후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아이가 훗날 나에게 물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부끄러웠다. 우리도 피해국의 하나였으면서 아는 거라곤 히틀러와 일본원폭이라는 아주 작은 요소 밖에 없다니.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난민이 된 홀로코스트 소년 다니엘의 쿠바 정착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떨어져 홀로 쿠바에서 살아가야했던 소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팔로마와 다비드 아저씨 덕분에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장하며 살아가는 소년 다니엘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인물은 모두 작가의 상상이다. 따라서 이 책의 형식도 작가의 창작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인물이 살았던 현실, 그 현실만은 사실이다. 쿠바, 비리가 있던 없던 간에 유럽의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준 나라, 그 나라에 가면 난민이 있었다. 그 난민의 삶을 살펴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쟁을 전쟁놀이처럼 여기는 요즘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궁금해진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했는지 마음이 아프다.

 

작가는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니엘은 희망을 품었다는 그 사실마저도 후회하곤 한다. 마지막 난민선이 상륙할 때 그 안에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안 다니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희망이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희망을 품는 것마저도 절망이 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희망을 품고 그것의 가능성을 도저히 점쳐볼 수 없던 현실이었던 것이다. 어른인 다비드 마저도 희망을 가지라고 용기를 도무지 줄 수가 없는 현실 말이다.

 

아이들이 나에게

당황스러운 질문을 또 던지는데

내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이 문제는

신의 머리로만 풀 수 있다.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다들 어떻게

미치지 않고 버티는가?

 

어쩌면 다니엘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다비드였을지도 모르겠다. 무력감을 더 심하게 느꼈을 테니 말이다. 생사를 모르지만 자랑스러운 부모님을 가진 다니엘보다 함께 살고 있지만 부끄러운 아버지를 둔 팔로마가 더 괴로웠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을 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진다. 아마 마음 아프지만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한일합방 이후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간 조선의 노예들의 이야기, 나라가 광복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한 채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던 많은 양반과 부녀자를 비롯한 조선의 백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 어른들은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알고 다시 너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더 마음 깊은 곳을 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실린 다니엘의 일기 시가 생각난다.

 

음악에 어울린다면

삶의 어떤 부분이든

노랫말이 될 수 있다.

 

바로 그 노랫말이 이 책이고, 그 노랫말은 때로는 사실적이고 때로는 정말 시적이다. 일기와 시를 합쳐놓은 형식이 책의 감동을 배가 시켜준다. 일기가 그러하듯 생활모습을 잘 드러내고 시가 그러하듯 말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한다.그 감정은 미안함과 슬픔, 아픔인 동시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직접적인 어떤 문장들이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는 독자를 향해 날카로이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 지점에서 묵직한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건 어른이건 질문 하나 던져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다비드

 

세상 사람들은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배웠다.

현명한 사람, 사악한 사람, 단순한 사람,

그리고 아직 질문할 줄

모르는 사람.

 

나는 질문이 대답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배웠다.

 

어렸을 때 그렇게 배웠다.

이제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지만

인생에는 여전히 답보다 질문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축제의 기쁨도 내겐 질문거리다.

이토록 오래 살았고

이토록 많은 것을 잃었는데도

이맘때면 꼭 찾아오는 음악적 충족감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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