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빨리 읽는 편도 아니고, 책을 샀다고 혹은 빌렸다고 그 자리에서 그 책을 읽는 편은 더더욱 아니어서 산 책은 거의 새 상태로 책꽂이 보관 중이고, 빌린 책은 가방 안에 있다가 독촉 문자를 받으면서부터 읽어 연체 중인 때가 많다. 앱에 뜨는 상태 '정상'이 낯설고 신기할 뿐이다. 문제는 그 연체를 아들의 대출증과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점!
미취학 아동의 경우 부모가 아동을 동반하지 않아도 아동의 카드로 책을 빌릴 수 있는데 처음엔 아동 도서에 한정된 줄 알았다가 나중에 종합자료실 이용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 이후론 대놓고 돌려막기 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은 내 카드 연체 그 다음번은 아들 카드 연체이다. 지금은 아들카드 연체 중이다.
토요일에 아들이 간만에 도서관에 가자고 했고 책을 빌리고 싶어했다. 카드가 없다는 핑계가 필요했으므로 의도적으로 아들의 카드를 안가져갔고 아들은 책을 많이 빌리고 싶어했지만 나는 준비한 대로 '네 카드'가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리곤 인심쓰듯 막 연체가 풀린 내 카드로 두 권을 빌렸다. 미안했지만 미안한 티를 내면 안되니까 당당하게 '다음부터 네 카드는 네가 챙기라'며 충고까지 했다, 고작 여섯 살한테...
그리곤 책을 반납하러 갔다. 바로 아들의 카드로 빌린 책 4권을.
-9월 11일까지 정지십니다.
라는 메시지를 아이도 놓치지 않았고, 이내 물어왔다.
- 엄마 대출 정지래..
- 어, 아빠 거야!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른다고 아들이 진실 규명을 하기 전에 얼른 11일이 왔으면 좋겠다. 아직 여섯 살은 어려서 참 좋다~~! 이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난 누구 카드로 돌려막기를 해야 하나? 카드 돌려막기를 위해서라도 아이를 하나 빨리 더 낳아야 하는 건가? 어쨌든 아이는 빌려온 두 권의 책을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아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책이다. 내가 이보나 흐므엘레프스카를 좋아하는 계기는 <마음의 집>이었고, 아들이 이수지를 좋아하는 계기는 <파도야 놀자>였다. 집에 이보나 흐므엘레프스카의 책이 여섯 권쯤 있는데 아들은 빌려온 이 책이 제일 재밌단다. 내가 봐도 아들이 제일 재밌어 할 것 같다. 상상력이 가장 아들 나이와 흥미에 맞는 것 같다. <이 작은 책을 펼쳐봐>는 그림만 이수지가 그린 것인데, 그래서인지 느낌이 기존 이수지의 그림책들과는 좀 달랐지만 점점 작아지고 점점 커지는 책의 변신에 아이는 흥미로워했다. 우연히 문화센터에서 만난 유치원에 새로 전학 온 친구와 동생에게도 읽어줬는데 정말 좋아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본 그 아이 엄마가 내 직업을 맞춰버렸다. 읽어주는 느낌이 다르다나? 직업을 못 속이나보다.
아들이 집에 와서 <네 개의 그릇>을 한 번 더 읽으며 사달라고 조른다. 요즘 소급해서 내야 할 돈이 급하게 생겨 386프로젝트(일상 속에서 386만원을 아끼는 프로젝트, 가령 지나가다 커피 사먹을까 하고 안사먹으면 그돈 아끼는 걸로!) 중이라 빌려서 오래 읽으라고 했더니 아들 왈,
- 아, 연체 시키면 되지?
-(아들아,,,너 마저...) 아니야, 네가 반납하고 아빠 이름으로 다시 빌리면 되지...
가끔 도서관 행사에서 보상으로 한 번에 10권 빌려주는 등업 제도를 하곤 하는데 난 그런 건 하나도 안 부럽고, 대출 기간 한 달로 보상해주는 게 훨씬 반갑다. 도서관 관계자 분들 고려해 주시와요. 이참에 도서관 홈피에 건의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