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단편 소설을 읽을 때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었지만 작가의 공력이 이다지도 대단할 줄은 솔직히 알지 못했다. 하나코의 이야기를 읽을 때와 힌터마이어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리고 김상호의 이야기를 읽을 때 마다마다 감탄했다.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이야기. 현재와 18세기 그리고 그 사이 1960년대, 홀로코스트 시기. 시공을 초월한 생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그득했다. 독자로서 그 시공을 오가며 생을 느끼는 순간은 정말 저릿했다.

 

겐타로의 죽음을 통해 겐타로의 삶을 거꾸로 짚어가면서 하나코가 알게 된 힌터마이어의 삶, 그 두 사람의 삶의 평행 이론을 짐작하며 읽어나가지만 시공간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소설의 구성 방식은 그런 짐작마저도 제대로 따져 할 여유를 두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빠져들게 한다. 힌터마이어의 삶인가 싶으면 겐타로의 삶이고, 아이블링거의 삶인가 싶으면 키르호프의 삶이며, 레아의 삶인가 하면 하나코의 삶인 것이 개인 대 개인의 평행이론이 아니라 덩어리로서의 평행이론이라는 것을 느낄 즈음 소설은 끝이 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미 어떤 관계를 예측해내는 능력이 발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은 추리의 형식도 띠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이 소설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속도에 철저히 졌다. 그저 소설이 진행되는 대로 맡길 뿐 생각 따위는 책을 다 읽은 후의 몫이되고 말았다. 그러자면, 바로 지금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작이 썩 쉽지는 않다. 느낌이 매우 강한데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하지를 못하겠다.

 

오르간 풀무꾼인 슈바르츠발트의 키르케는 음악가 아이블링거에 의해 요한 힌터마이어가 되었다. 그에게 아이블링거는 은인이었다.그런 그가 아이블링거를 떠났다? 하나코를 사랑한 겐타로는 자신이 조선인의 후손임을 밝혔고 둘에게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하나코를 소리없이 떠났다. 그런 겐타로가 유서로 자신이 닿고자 했던 곳이 하나코였음을 남긴 채 영원히 떠나버렸다? 힌터마이어는 왜 아이블링거를 떠났고 겐타로는 왜 하나코와 세상을 떠났어야 했는가, 그 궁금증은 책을 읽는 내내 나와 함께 했고 그 답을 알아가는 과정은 후련함 보다는 슬픔이 느껴졌다. 랩소디,였다. 베를린의 랩소디였고, 코리아의 랩소디였다. 어쩐지 아리랑이 떠올랐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책을 읽으면서 귓가에 어떤 웅장하면서도 애틋한 음악을 듣고 있는 듯 했다. 책에 나오는 음악적 용어는 커녕 랩소디라는 말의 뜻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마치 어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그런 점에서도 소설은 대단했다. 한 단편([바소 콘티누오], 현대문학 2011, 2월호)에서 작가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았을 때에 막연한 짐작을 했지만 음악 자체가 구효서라는 소설가 스스로에게 녹아들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레아가 있었다. 중요한 때엔 꼭 그녀가 있었다.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의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그녀가 있었다. 겐타로에게 하나코가 닿고자 하는 '곳'이었든 힌터마이어에게도 레아는 닿고자 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출신을 잃어버린 힌터마이어와 출신이 상기된 겐타로에게 레아와 하나코는 출신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이 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뭔가 짠하다. 결국 생이라는 것은 자신이 닿을 '곳'하나만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18세기 조선계로 추측되는 오르간 풀무꾼 출신의 음악가 요한 힌터마이어에게도 그러하고, 20세기 재일조선인으로서 북한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17년간 감옥에 갇혀야했던 겐타로에게도 그러하며, 현재 우리들 개개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공을 초월한 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어차피 생이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시공을 구별하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새삼 소설의 구성이 참 좋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의 시대/ 김상호와 하나코의 일본시절/ 김상호의 독일 시절/ 하나코와 이근호의 현재가 교차적으로 서술되는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웅장한 이야기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궁금할 즈음 다른 시공간의 인물의 이야기로 변한다 그 변주가 규칙적인 듯 즉흥적이다. 작가의 이 책 자체가 하나의 랩소디같다. '랩소디 인 구효서' 쯤으로 정리해볼까? 구효서 작가의 에너지에 매번 반하게 된다. 중견 작가이기에 탄탄하고 깊은 내공은 기대했지만 각각의 작품에서 새로운 면을 보게 되어 독자로서 즐겁다. 지금 읽고 있는 책([라디오 라디오])의 느낌이 완전히 다른 색깔이기에 중견 작가이면서도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되는 내게는 내공있는 젊은 작가로 위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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