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집 가까운 시립 도서관에 갔다. 아이와 적당히 시간을 때우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아들의 친구 가족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아이를 친구 엄마에게 잠시 맡기고 책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매번 아이를 데리고 2층 자료실에 가면 여유는 커녕 나가자는 재촉을 대놓고 들어야 하는 터에 빈 손으로 나온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참 달콤했다.

 

나는 주로 '새로 들어온 책'코너에 오래 머문다. 집 가까운 시립 도서관은 '새로 들어온 책' 책장이 무척 넓다. 책들이 꽤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점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다. 내 코스는 인문 쪽에서 자연과학을 거쳐 문학, 역사 및 여행의 책장에 꽂힌 순서대로 훑고 그 과정을 세 번 정도 하게 된다. 세번째에 가서야 눈에 띄는 사랑하는 책들이 꼭 있다. 아마 세번째 되어야 책들이 나를 받아주는 모양이다. '나 여기 있어, 그러니 날 데려가.'라고 자신을 허락해주는 모양이다.

 

 

금요일, 나를 불렀던 책은 김승희 시인의 <희망이 외롭다>와 한국 작가 9인이 쓴 <헬로, 미스터 디킨스>였다. 그중 시집을 얼른 먼저 읽었는데 살짝 내 취향은 아니어서 '미안'. <헬로, 미스터 디킨스>는 잊었던 사랑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표지에 쓰인 김경욱, 김중혁을 비롯한 9명의 작가들이 찰스 디킨스를 테마로 한 권의 책을 엮다니, 잊었었던 설렘이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결국, 아직도 표지만 쓰다듬을 뿐 읽지를 못했다. 이게 문제다. 너무 설레는 책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에 너무 오래 걸려 결국 읽지 못하곤 한다. 조금씩 고쳐가고 있는데 잘 안된다.

 

 

 

 

일요일. 아는 분이 아이들과 키즈카페를 가자고 하셨다. 만남의 장소는 그 집과 가까운 시립 도서관이다. 이곳은 시설이 단연 좋고, 지은지 얼마 안되어 책상태가 좋지만 일단 책이 적다. 그리고 우리 마을 시립 도서관보다 '새로 들어온 책'의 책장이 턱없이 적다. 일일이 장르별로 뒤져야 하는 이를테면 목적형 대여에 가깝다.  그 몇 안되는 공간에서도 턱하니 나를 부르는 아이가 있으니 김성대의 <사막 식당>. 시인인 아는 언니가 강추하고 예전 우결에서 조정치가 낭독했을 때 좋았던 시집이라 반가운 마음에 빌리고 아동실에서 슬쩍 읽어보니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키즈카페에서 놀다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아 다시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으로 고고씽!

 

 

 

 

그곳에서 바로 나의 로, 맹가리 오빠의 책 <유럽의 교육>을 만났다. 역시 세번째 훑는 과정에서 '나, 여기 있어! 로맹 가리야, 네가 사랑하는.'이라며 손짓하는 살짝 찌그러진 상태로. 로맹 가리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책이 나올 때에도 책 좀 읽으시는 분들에겐 관심을 받았지만 일반 백성에게까지 유명해진 것은 국제도서전에서 대통령이 골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서점에는 그 타이틀로 묶여져 소개되곤 했는데 그것이 과연 책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 생각엔 이게 핀란드 선진 교육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골랐을 것 같다는 추측이 되는데 말이다. 이 책도 사실 굉장히 읽고 싶었었는데 매력 만점 맹가리 오빠이지만 <자기 앞의 생>와 <흰 개>를 읽는 느낌이 너무나 달랐기에 '내가 과연 그를 즐겨 읽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터라 이 책으로 한 번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설렘에 비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책에 빠졌다. 책을 다 읽을 무렵 아이가 아파 속도가 느려졌지만 아이 곁에서 밤을 새며 읽었을 정도로 책을 읽는 동안 야네크의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아! 나는 로맹 가리를 즐겨 읽을 수 있겠어!'라는 확신도 생기고 말이다.

 

일 주일동안 세 번 두 군데의 도서관에 다녀왔지만 '나를 부르는 손짓을 하는 책'을 만나는 데에는 우리 마을 도서관이 좋고, 그 책들을 읽기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는 남의 마을 도서관이 좋았다. 마을 버스를 타고 가면 30분이 걸리는 두 도서관을 모두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 둘의 장점을 서로 벤치마킹이라도 하길 바라지만 그건 뭐 내 욕심일 뿐이다.나를 향해 손짓하는 책들이 있는 넓은 책장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고 넓은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으러 가는 마을 버스에서의 30분도 나쁘지 않다. 이만하면 도서관 환경 참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 싶고, 적어도 내 마음 헛헛할 때 받아줄 곳 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실제로 부부싸움하면 간다^^) 아이가 빨리 수족구가 나아서 함께 또 나들이 가고 싶다. 아파 엄마가 잘해줘 그런가 애교만 늘어서, 이젠 엄마가 해달라는 것도 다 해줄거라는데 책 고르는 3회 반복의 시간을 기다려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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