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을 두드리다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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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가슴 한 켠 허전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예전엔 사랑을 하면 그외 모든 관심사는 ZERO에 가까웠는데 요즘은 사랑의 한 켠에 쓸쓸함이 자리한다. 서른이 넘은 결혼 7년차의 여자의 가슴을 수다나 가족과의 일상으로 채우기엔 부족함이 많다. 오히려 기계적인 수다나 반복적인 일상은 빈 가슴을 더욱 비게 만들 뿐 외로움과 쓸쓸함, 허전함을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 같다.

 

빈집을 두드릴 때마다 공허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흘러나와 내 가슴을 두드린다. 그 가슴도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 중

 

장은진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매우 독특하다. 전기를 먹는 여자([그녀의 집은 누구인가])도 있고, 만나는 사람에게 번호를 부여하며 편지를 쓰며 떠도는 남자([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도 있다. [빈집을 두드리다]에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나름 독특하다. 남의 집에서 혼자 개를 돌보는 일을 하는 여자, 잠을 자기 위해 수면실을 찾는 남자, 티슈를 뿌리는 남자, 책을 찢고 연락처를 남기는 남자 등등 어떤 벽癖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곱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나처럼 외롭다. 딱 나처럼. 내가 '그녀'처럼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짐을 보관하거나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처럼 함께 보는 책을 찢어놓을만큼 과감한 성격도 아니지만 소설 속 '그녀'와 '그' 들의 마음이 꼭 나 같다.

 

그들이 나 같다고 느끼는 데에는 그들의 어떤 벽이 실제로 나의 행동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꿈이나 잠으로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것(<나는 나를 가둔다>)이나 티슈는 아니지만 SNS를 날리는 의도가 다분히 외로움과 답답함 한 자락을 보여주려는 것(<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게 귀찮아서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외롭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 태도(<나무인형>)는 소설 속 주인공들과 내가 매우 흡사하다.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반항 혹은 일탈로 보이는 책을 찢는 행위(<페이지들>)나 어디든 찾아가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정쩡한 거리감에 대한 혼란으로 관계를 맺는 행위(<찾아가는 도서관>)는 어쩐지 내가 꿈에서라도 한 번쯤 했을 것만 같은 행동들이다. 그만큼 그들은 모두 나를 닮아 허전하다. 텅빈 가슴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쁜 이웃>의 그녀 역시 우리 사회에서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게는 영웅과 같다. 어쩜, 저렇게 행동할 수가 있담!  

 

마음 속 깊이 외로우면서 독특한 벽을 지닌 일곱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이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결같이 착하다. 순하다. 어쩌면 이 인물들이 모두 작가 속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미칠 때쯤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닮은 그 인물들을 말이다. 나 역시 이 인물들을 사랑하게 되고, 이 소설을 쓴 작가마저 사랑하게 된다. 또 자연스레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내가 사는 삶이 안쓰럽기도하고 애틋하기도 해진다. 그리 착하고 순한 사람이 아닌데 스스로를 착하고 순한 사람대하듯 애처롭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 안아주면 좋겠는데.....소설 속 인물들이 책에 안겼듯이 나도 그저 책에 안기는 것이다.

 

책에 안기면서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지, 나를 외롭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물을 때 쯤이면 사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잠으로 도피하고자 하고 삶을 꿈에 의지하는지, 누군가의 빈집을 두드려서라도 나의 빈 가슴을 채우고 싶어하는 이 마음은 도대체 외로움인지 답답함인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그래서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인물들을 통해 묻고 들여다본다. 그것만으로도 사실은 나로선 큰 용기를 낸 것이고, 그 용기만으로도 사실 치유가 된다. 물론 얼마나 오래갈 지는 늘 어정쩡하고 비겁한 나는 잘 모른다. 

 

작가의 세 번 째 작품을 읽었기에 모든 작품을 읽은 사람처럼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빈집을 두드리다]는 내게 장은진이라는 작가의 색깔을 더 깊게 만들어준 책이다. 일곱 편 모두가 다른 인물,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그것이 장은진이라는 사람의 색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매일 매일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모습이 결국은 나의 색깔이듯이 말이다. 오늘은 어떤 색깔로 살게 될까, 장은진 소설가의 다음 색깔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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