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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9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구는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분명. 인간이라는 종이 자신들의 삶을 편히 하겠다고 자연을 해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만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매몰의 경우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넘어 역겨움을 느끼게 하곤 한다. <젖>에 소개된 쩐 투윗네 마을 사람들처럼 그저 마을 회관에 모여 울렁이는 속을 술로 달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을 모른다. 윤씨 아저씨처럼 죄와 명복을 비는 의식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간은 비겁하다.
생태작가라 불리는 작가 이상권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조금이나마 인간이라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종을 객관화시켜 보게 된다. 구제역 당시 가축들을 생매장하고 살처분하는 것은 정당화할 명분이 희박한데도 우리는 그것을 애써 합리화하느라 스스로의 비겁함을 외면했다. 대부분은 그저 외면하며 보냈다. 하지만 그 현장에 직접 참여한 <삼겹살>에 나오는 군인들은 그것을 외면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역겨움이 드러나게 된다. 얼마나 역겨운 명령이었단 말인가.
오늘 통닭을 사와 먹으면서 문득 닭이 떠올랐다.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라던가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떠오르면서 입맛이 없어졌다. 조류 독감에 걸린 고기일까 염려되어 입맛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닭들이 가여워서 그랬던 것인데 이것은 앞으로 절대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자연계의 한 종으로서 아무런 힘도 기울이지 않고 다른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해 미안함이 떠올랐던 것이다. 유난스럽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삼겹살>의 오빠처럼 먹기 전에 고맙다고 인사 정도는 해 줘야 도리일 것 같다. 우리가 아무런 힘도 기울이지 않고 마트에서 사서 먹기엔 동물들의 삶은 매우 귀한 것이니까 말이다.
<시인과 닭님들>에 '풀과 닭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이 나오는데 소설 속 닭들과 풀은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데 왜 인간 대 자연은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많이 안타까웠다. 아무리 약해도 인간의 힘만 미치지 않는다면 험한 야생 속에서 닭도 새끼를 품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건만 인간이 끼어든 자연계는 어쩜 그리 파괴적인지 속상하다.
이상권 작가의 소설은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편해진다. 불편한 까닭은 앞서 말했듯 인간이 여전히 어쩌면 점점 더 철면피처럼 저지르고 있는 오만한 정책들 때문이며, 편해지는 까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닭을 닭님이라 부르는 시인이 그러하고, 다람쥐를 다람쥐로 길러주려는 어머니가 그러하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이라도 스스로를 시인과 어머니에 대입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 참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