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다
정우성 지음 / 알마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저자가 육아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육아에 있어서 육아 전문가는 누구인가?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육아 전문가라는 말을 붙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에 너무 요란스럽게 관심을 표현하는 건 아닌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육아 서적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아, 나 잘 하고 있구나!" 이런 것. 나름 교육전문가이고,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별다른 것을 느낄 것은 없었다. 그냥 이대로 하자, 라는 것 외에는. 이 책도 그런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와 나는 육아에 관한 한 가치관이 많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주변에서 보아도 육아서적을 읽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요란스럽지 않게, 행복하게, 즐겁게. 그 사람들은 육아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말을 듣든 옆집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든 다 잘 키운다. 요란스럽지 않게, 행복하게, 즐겁게. 정작 옆에서 보았을 때 아이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준다던가, 윽박지른다던가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여 절대로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빠들이 잘 안 변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다문화가정의 아버지로서 작가는 참 좋은 아빠다. '나는 아빠다'라고 외칠 만 하다.

 

  나는 아이를 키울 때 '아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을 기본 틀로 생각하고 있다.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싶어하면 같이 가서 책도 빌리고, 문방구에 가서 스티커를 가리키면 스티커를 함께 고른다. 물론, 마트에서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하면 사주지 않는다. "엄마는 아직 이걸 다룰 줄 몰라. 나중에 엄마가 더 배워서 잘 다루게 되면 사줄게"라고 얘기한다. 속마음은 "이거 얼마 안 쓸 건데 너무 비싸"라고 얘기하지만 말이다. 결국, 아이는 요즘 우주 대신 꽃으로 관심을 돌렸다. 저자의 말처럼 아이들의 관심은 휘발성이다.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는 아이가 납득할 수 있게 둘러대는 것도 저자와 나는 비슷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낸 적이 없고, 선생님이 방문한 적도 없으니 체계적인 공부가 된 적이 없지만 아이는 글도 빨리 떼고 말도 참 잘한다. 아이가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면 나도 갖이 즐겁게 자동차를 관찰했고, 아이가 국기를 알고자 하면 국기를 함께 수 백장 그렸다. 아이가 우주를 좋아하면, 마침 잘 되었구나 싶어 나도 나의 취약한 지식을 보충하고 함께 알아갔고, 아이가 꽃을 좋아하니 나도 꽃과 같이 예쁜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나 저나 얜 왜 내가 잘 모르는 것만 좋아하는지 ㅠㅠ) 난 그게 어릴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치지 않는 듯 가르치고, 배우는 줄 모르게 배우는 것. 학습이 아니더라도 모든 육아로 인해 발생하는 긍정적인 가르침은 이래야 하는 것 같다. 너무 체계적인 것은 서로 지친다. 웃자, 웃으며 키우자!

 

돌 지난 후부터 작년까지는 친정엄마가 육아를 해 주었기 때문에 육아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다. 낮 시간을 일하고 오니 아이와 잘 놀아주게 되고 그러니 아이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물론, 힘들 때도 있었고 짜증도 부렸다. 그런 감정 배설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저자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부부싸움도 이해해주는 속깊은 아들이라는 것을 책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아마 낮 시간의 신체적 자유로움 때문에 육아 스트레스가 적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아이는 집에서 키워야 한다는 것에 더 큰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점이 저자와 가장 큰 차이점 같다. 물론 개개인마다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방법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어린 아이를 집에 엄마가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종일반을 보내는 엄마가 주변에 적지 않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말이다.

 

엄마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경제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당사자의 몫이다. (180쪽)

 

이 말에 공감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함께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에는 잠시 맡기고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저자도 종일반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가 아이와 보내는 그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 때부터 육아는 전쟁이고, 아이는 짐이 된다. 지금 만약 그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아무리 함께 산다해도 양쪽 모두에게 너무 불행하다. 고래교육연구소의 김규항 씨의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라는 말과, 아빠 정우성의 "지금 행복한 부모가 늙어서도 행복합니다."(168-169쪽)라는 말을 새겨봐야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들에게 고맙고, 아들은 나에게 고맙(겠지...ㅋㅋ)다고 생각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옆집 친한 엄마와 이야기하는 듯 하다. 딴지 일보에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연재로 읽었으면 만나는 기쁨이 더 쏠쏠했을 것 같다. 지금은 마치 간만에 만나서 폭풍 수다를 떤 느낌이라고 할까? 책을 읽고 난 느낌 중에 가장 큰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폭풍 수다. 지금의 육아서적들의 지침들은 너무 지나치게 무겁다. 다 아는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정리만 했다. 그런 책은 딱 1권만 읽자 그냥. 그리고는 옆집 이웃들과 친해져서 쏠쏠하게 수다를 떨자. 그게 제일 좋다. 문제는 수다를 떨 대상이 여의치 않다는 것인데 그럴 땐 이 책을 좀 천천히 읽자. 난 너무 폭풍 수다를 떨었다만, 좀 아쉽다. 벌써 우리의 수다가 끝이 난 것이니까! 아빠, 우리 한 번 만나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책에 나온 이야기 중에 내가 가장 취약한 점이 발견되어 일단 그 점을 내가 보완해 봐야겠다. 내가 환상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우울한 거구나, 싶다. 아이에겐 환상을 마구마구 심어주고 싶은데 나 자신이 잘 안되니 그 점이 참 어렵지 싶다. 일단 어젯밤에 도깨비 이야기는 잠깐 해 주었는데 나는 어색했지만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나중에 아빠 정우성의 '환상적인 이야기'만 따로 듣고 싶다. 

 

우리 부모들이 이 책의 아빠처럼 자신의 육아에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다. 내 자식 이만큼도 못 기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아마 아빠 정우성도 '이렇게 해라.'라는 마음 보다는 '우리 잘 하잖아요?'라고 말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 정우성은 환상적 이야기의 노하우가 있고, 엄마인 나는 원하는 걸 척척 생색 팍팍 내며 뚝딱 해 내는 노하우가 있는 것이니까. 나는 나의 육아 방식으로, 당신은 당신의 육아 방식으로 잘 키웁시다. 요란스럽지 않게, 행복하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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