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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라가를 읽고 나서 시작한 르클레지오의 두 번째 책이다. 소설이었기에 사건의 진행에 따라 읽기에 편했고, 그 사건들은 독자의 눈길을 붙들어놓았다. 어느 날 납치된 소녀, 그 소녀를 데리고 사는 랄라 아스마 할머니의 사랑, 그와는 상반된 그의 아들과 며느리인 아벨과 조라의 폭력에서 시작되는 라일라의 이야기, 우리는 작가가 펼쳐놓는 그 다양한 장소와 인물과 사건들로 이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흑인 소녀인 라일라는 자신의 이름이 '밤'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 외에 자신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자신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녀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고 느끼기까지 246페이지라는 긴 이야기가들어있다. 이 책이 초반에는 읽기가 편했지만 중반 무렵 굉장히 읽기가 어려웠는데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 무척 복잡했고 나쁜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었다. 그 여정들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렵고 되려 기억에서 떨쳐내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다.
아벨과 조라에게 벗어나기 위해 매춘녀들인 공주님들과 함께 지낸 일, 들라예 부부의 집에서 지낸 일, 결혼을 피해 도망친 일, 후리야와 프랑스로 떠난 일, 노노를 만나고그들을 떠나고 프로메제아의 부인에게 추행을 당한 일, 노노를 따라 자블로 거리로 온 일, 하킴과 엘 하즈 할아버지를 만난 일, 시몬과 주아외를 만난 일, 베아트리스 부부를 만나고 그들에게 마그다(조안나)를 입양하도록 도운 일, 후리야가 떠나고 주아니코와 떠난 일, 구제소에서의 생활 속에서 새라를 만났고 미국 보스턴으로 그녀를 찾아간 일, 결국 저프의 추행으로 그곳도 떠나야했고 장 빌랑을 만나고 샤베즈를 만나고 르로이를 다시 만나 니스 페스티벌에 가기 되게까지의 무척 많은 일들이 바로 그 일들이다.(물론 여기에 적지 않은 이만큼의 일들이 더)
그녀는 배경 없이 떠도는 가녀린 그리고 귀먹은 흑인 여자(절대적 약자)였으므로 그녀에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性的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그 때마다 그들에게서 도망쳐야 했다.그 과정이 많이도 반복된다는 점이 화가 났다. 떠나는 그녀의 발길을 붙드는 곳은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음악'이 있는 곳이 되었다. 특히 새라를 만나던 순간, 허름한 소녀인 라일라와 새라의 눈길이 마주치며 행복했던 그 순간 아마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 것이다. 한 쪽 귀를 잃은 그녀에게 음악은 학습이 아닌 본능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음악을 본능적으로 표현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고 막막하고 낮고 깊은 울림, 파도가 육지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 한없이 이어지는 철로 위에서 열차가 달리는 소리, 수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뇌우의 간단없는 우르릉 소리였다. 또한 그것은 모르는 사람의 한숨소리, 혹은 그 낯선 이가 웅얼거리는 소리, 밤중에 깨어나 혼자임을 절감할 때 내 동맥 속으로 피가 흐르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연주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246쪽)
그녀가 그녀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음악, 더 정확히 소리였고 그 소리를 표현하면서 그녀는 불안에서 벗어났다. 그 오랜 시간, 그 많은 사건들을 빠져나오며 그녀를 빛나게 해주는 단 한가지를 발견했을 때의 쾌감은 얼마나 짜릿했을까. 그동안 그녀를 따라다닌 고통의 그림자들조차도 고통스럽지 않지 않았을까. 그녀는 떠난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누구인지를 좀더 가까이 알기 위해서. 그녀를 이끄는 무언가에 따라 그녀가 다다른 곳은 결국 그녀가 태어나 버려지기 직전까지 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회귀. 작가는 우리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개인의 역사를 돌아가다보면 결국 답은 탄생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는 모두 같은 건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답한다. 개인의 겪어야하는 수많은 문제들, 고통들, 시련들, 아픔들을 끌어안고 우리는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것을, 우리는 왜 다른 이들에게 그토록 가혹한가 말이다. 우리는 왜 이들을 학대한 자들보다 학대당한 자들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대자들과 공유하는 삶을 피학대자들과 사는 삶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는 대체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황금물고기인 라일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운오리새끼의 백조이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보편적 존재 가치를 말하고픈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와 한국의 미숙이와 힐랄부족의 라일라까지 우리는 모두가 빛나는 황금물고기요, 아름다운 백조라고. 아울러 한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스스로 견디는 모든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