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앙드레 드 리쇼 지음, 이재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품절


책을 읽으며 84쪽의 한 문단이 계속 머릿 속에서 머물렀다. 전쟁으로 혼자 남겨진 여인에게 남겨진 것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절망이 아니라 여전히 뜨거운 육체적 욕망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었다. 자신의 그 욕망과 갈망을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에게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줄 대상이 나타난다. 독일군 포로 오토. 물론 그는 그녀의 조국 프랑스의 적군이다. 따라서 그녀가 만난 욕망과 갈망의 해소 대상이 오토라는 점 자체가 그녀에겐 큰 고통이 되리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지만 사랑에 빠진 그녀만은 알지 못한다. 위의 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설레임을 우리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그녀가 비록 도덕성이 요구되는 미망인이라할지라도, 그녀가 비록 적군의 남자를 사랑한다고 할 지라도 그녀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조롱할 수 있는 자격이 누가 있을까. 비록 그의 아들 조르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물며 테레즈는 오토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는가. 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그녀의 삶이 그런 식으로 결말을 맞는다는 것은 부당하다. 작가도 그런 결말을 쓰며 몹시 분개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레임과 기대감을 처음 느꼈고 과감히 자신의 사랑을 선택했던(욕망에 충실했던) 그녀에게 내려진 가혹한 대가에 잠시 멍해진다. 그녀가 정숙한 미망인으로 늙어죽을 때까지 욕망을 감추고 사는 것만이 그 시대와 사회 그리고 그의 아들이 원하는 삶이라고 할 때 그녀가 그런 삶을 유지했다면 그녀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고통이 뭔지 조차 몰랐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행복의 최대치를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했으리라. 비록 그녀의 선택에 대한 대가가 그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게 했을지라도 그녀는 그래도 행복의 최대치를 경험한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그녀의 결말은 그녀의 행복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한 작가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앙드레 드 리쇼라는 작가는 처음 알게되었지만 매우 독특하다.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독자', '소설'이라는 말을 그대로 드러낸다. 욕망을 가장 두껍게 가린 '전사한 대위의 미망인'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 욕망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한겹 한겹 풀어놓는 솜씨가 빼어나다.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하면서도 궁금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왜 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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