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
서효인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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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져서가 아니다. 

그저, 야구가 져서 그런다. (147쪽)

 

 

 우리에겐 늘 핑곗거리가 필요하다. 그 핑곗거리가 있는 삶이야말로 내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그 핑곗거리는 부모인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도 그래왔던 것 같다. 지금은?그렇다. 작가의 말처럼 의문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야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쯤은 프롤로그만 읽어도 알 수 있다. 대놓고 야구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는 걸 뭐. 그는 시인이다. 다양한 야구 용어들을 정서적 의미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용어들 말이다.

 

1) 벤치 클리어링

 - 당신과 나의 동해 바다 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 의식

2) 파울

-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3) 본헤드

- 너무나 인간적인 그.

  격려와 욕설의 회오리 속에 있는 사람

4) 번트

- 공을 달래야 한다. 자신을 숙여야 한다. 주자를 살려야 한다. 파울라인을 살펴야 한다. 주위를 배려해야 한다. 조용하면서 굳건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5) 사인

 - 결과론을 향해 치닫는 과정의 치밀함.

     치밀함이 만들어내는 몸의 부호.

 

선수가 아닌 사람이 살아온 생 동안 꾸준히 야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다니 서효인 시인은 그래도 뭔가 짜여진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내게도 배구를 사랑했던 시절이 꽤나 길었고 관련된 주책맞은 에피소드들도 몇 있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이 책에서처럼 뭔가 내 삶과 생각을 짜 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서효인이 아니기 때문인지, 시인이 아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라도 핑곗거리를 대고 싶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흥미로운 책이었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나는 야구의 규칙을 알고 있지만 - 대체로 스포츠를 하지는 못해도 규칙은 빨리 이해한다. - 흥미로워하는 스포츠는 아니다. 기다리는 시간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보니 코딱지만한 선수들에 비해 너무 큰 존재감인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흥미롭고 아름답다. 어쩌면 그이 시보다도 더 시 같은 글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꼽은 가장

1) 가장 시적인 내용 -시범 경기의 아버지들

2) 가장 시적인 구성 -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파울)

3) 가장 시적인 용어 - 본헤드

4) 가장 현실적이기에 가장 지루하고 찌질한 - 드래프트 되는 청춘들

5) 가장 이해가 안되는 - 268쪽 맨 아래 문장의 <니, >는 뭐니? 사투린가?

6) 가장 큰 허전함 - 205쪽의 '모범답안'이라는 글자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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