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고용 상태는 두려움을 부추기고 진료실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든다. 해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직종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욱 건강검진 결과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노동자가 자기 몸이 어떤지 검사를 받고 싶은데, 이 결과로 인해 일자리가 위태로워질까 봐 회사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해야 하니… 좀 억울하다.
아프기 시작한 초기에 그들은 아프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아파서 쉬게 되면 동료들이 더 높은 강도로 일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같은 동작을 수천 번 수만 번씩 반복하다가 결국 관절이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모기는 우리 피부에 침을 꽂는데, 그 침에는 흡혈관과 타액관이 있다. 흡혈관으로 피를 빠는 동안 타액관을 통해서는 타액을 흘려 넣어 피가 굳는 것을 방지해 손쉽게 피를 빨게 된다. 타액을 흘려 넣지 않으면 피는 금방 굳어서 모기가 계속 빨 수가 없다. 이렇게 타액관을 통해 들어온 모기의 타액을 우리 면역 체계는 외부 침입 물질로 인식하고 공격해, 일종의 알레르기 면역 반응이 나타나 가렵고 붓게 된다. 그래서 모기에 물려 가려운 곳에 알레르기 반응을 억제하는 성분의 약(항히스타민, 스테로이드 등)을 바르는 것이다.
성인들의 경우 이미 수없이 모기에 물려왔기에, 모기의 타액에 대해서는 몸의 면역 체계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뭐, 전에도 겪어봤는데 별스럽게 문제되진 않더구만’ 하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알레르기 반응이 덜 나타나게 되고, 이것을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라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성인은 모기에 물려도 많이 붓지 않아야 하지만, 늘상 물리던 지역의 모기가 아닌 새로운 모기에 물렸을 때는 ‘면역 관용’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심하게 부을 수 있다. 산모기, 바다모기 무섭다는 말이 이 뜻이다.
이런 면역 관용이 모든 알레르기 질환에 생기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비염·결막염에는 면역 관용이 잘 생기지 않는다.(사실은 그래서 ‘알레르기 질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다.) 집먼지진드기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집먼지진드기에 지속적으로 노출하면 피부염과 비염이 심해질 뿐이다. 면역 관용을 일으키려면 아주 특수한 방식(항원을 피부 아래에 주사로 주입하거나 혀 밑으로 넣어주는 등)으로 알레르기 항원에 노출시켜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면역 관용에 대해서는 다른 재미있는 의견도 있다. 오스트리아 의사인 비스친거 박사는 콧구멍을 후벼 코딱지를 먹는 아이들이 면역력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내용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코털에 걸러진 여러 가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알레르기 항원을 먹어서 장을 통해 흡수하게 되면, 면역 관용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콧구멍을 팠는데(그리고 그 코딱지를 좀 먹기도 했는데), 코 파기는 지위 고하, 성별, 인종, 문화적 차이와 나이를 막론하고, 무릇 콧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하는 행위라고 한다. 심지어 인간과 유사한 유인원들도 코를 판다!
코털에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이 걸려서 붙고 코 점막의 점액질까지 더해져 생기는 코딱지는, 인간이 생존해 있는 이상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코 점막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잘 파느냐가 관건이다.(실제로는 코를 후비는 과정에서 코 점막에 무조건 상처가 생기기 때문에,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코딱지를 일부러 파 먹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나는 면역 관용이란 말에서 관용(똘레랑스)이라는 단어가 좋다. 면역 반응은 없어도 문제, 너무 심해도 문제인 셈이니, 관용이라는 용어가 주는 ‘적당함’에 마음이 끌린다. 어쨌든 해가 지날수록 모기 물린 자리는 덜 간지러워질 테고, 그렇게 조금 더 관용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성장하는 느낌에 뿌듯하기도 하다.
한 의료기관에서의 충분한 상담, 이후 우선적으로 의심되는 질환을 배제해나가면서 이루어지는 진단 과정, 필요하면 적절한 상급 병원에 의뢰가 되고, 치료 약물이 나타내는 부작용까지도 주치의와 모두 상담할 수 있는, 이런 주치의-환자 관계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가 된다.
불편한 얘기를 하는 건, 당장은 산처럼 큰 부담이지만, 그 산을 넘으면 서로를 더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장이 열린다.
결국 ‘팀 주치의’로 가야 한다고 본다. 단 한 명의 주치의는 환자에게도, 주치의에게도 부담스럽다. 서로 긴밀히 소통할 수 있고 진료기록을 공유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몇몇 의료인들이 팀을 이루어 연속적인 진료를 할 수 있어야 ‘주치의제’의 진짜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서로 믿되 적절하게 의심하고, 이전 진료기록을 충분한 근거로 삼되 문제를 처음부터 되새겨볼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런 ‘주치의들의 팀’이 필요하다.
언니의 말대로 우리 의료인들에겐 ‘VIP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VIP 신드롬은 ‘VIP 환자들의 거들먹거리는 병’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공주병이나 왕자병처럼 ‘실제로는 아닌데 자기 스스로를 VIP라고 착각하는 병’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잘해드리고 싶은데 계속 일이 꼬이는 상황’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VIP 신드롬은 무릇 접객을 기본으로 하는 모든 산업 영역에 있을 것 같은데, 의료계에서 특히 유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의료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의료인의 실수는 치명적인 의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의하여 실수를 예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한 사람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커버할 수 있도록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만 한다.(이런 의미에서 사실 모든 의료는 ‘팀플레이’일 수밖에 없다.)
전공의 시절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 ‘교수님의 어머님’, ‘대기업 회장님’ 같은 환자분들이 입원을 하시면, 병동의 전공의나 간호사들이 긴장하여 안 하던 실수도 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실수를 커버하기 위해 마련해놓은 이중 삼중의 시스템들은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손발이 꼬이는 상황이 되곤 했다. 이런 상황이 우리 의료인들이 얘기하는 VIP 신드롬이다. 더 잘해드리려고 하다 보면, 통상적으로는 문제없이 진행하던 일들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는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때부터도 ‘환자를 차별하지 말라. 경제력, 직업, 인종, 장애 유무, 성별, 종교,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하지 말라’고 배웠다.
모든 환자를 똑같이 대하고, 다만 질환의 중하고 경함에 있어서, 의료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더 필요한 환자에게 의료진의 관심이 집중되는 정도가 다를 뿐이어야 한다고 배우고 훈련받는다.
크리스틴 포래스가 지은 『무례함의 비용』이라는 책에 따르면 무례함은 전염된다고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고, 업무 효율도 떨어진다고 한다. 직접 무례한 행동을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옆에서 보기만 했을 뿐인 사람에게도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 나타난다니, 의료기관 안에서 직원과 환자 모두를 위해 정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실력이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대학병원의 아우라를 벗고 나면 원래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의사였던 것인가. 그도 아니면 동네 의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특히 부작용 호소가 많은 편인 것인가. 혹시 의료협동조합의 조합원이나 우리 조합원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불만이 많은 사람들인 것인가…. 알 수가 없었다. 자괴감에 빠지고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직원들과 함께 ‘비폭력대화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환자의 격렬한 항의와 불만이 ‘충족되지 못한 욕구에 대한 안타까운 표현’이라는 비폭력대화 지도자 선생님의 얘기는 많은 위안이 되었다.
의사는 환자의 신뢰를 필요로 한다. 감기에 항생제와 주사제를 처방하지 않아도 나를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 처방약을 먹다가 부작용이 생겨도 다시 와서 상담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 증상이 빨리 사라지지 않더라도 원인을 따져보기 위해 나의 말에 따라 기다려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소신껏 진료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환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닥터 쇼핑’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진료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환자도 의사의 신뢰를 필요로 한다. 아프다고 하면 믿어주고 공감해주는 의사,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의사, 약의 부작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되고 잘 낫지 않는다고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를 필요로 한다.
환자들이 부작용을 호소하거나 상급 병원에서는 다른 설명을 들었다고 얘기할 때, 자신을 질책하는 건가 싶어 지레 방어적이 되는 의사 말고, 자신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신뢰’하는 그런 의사 말이다. 의사-환자 사이의 피드백들이야말로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진료실에서 알레르기 비염이나 결막염, 천식,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 분들을 진료하다 보면, 해가 갈수록 증상이 심해진다고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본인과 배우자는 알레르기가 없는데 아이들은 왜 아토피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보호자들도 있고, 어렸을 때는 분명히 없었던 알레르기 비염이 왜 이제야 생기는지 의아하게 여기기도 한다.
첫 번째는 기후 변화이다.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의 개화 시기가 달라지면서 예전과는 달리 알레르기 증상이 이른 시기에 시작하여 늦은 시기까지 지속되는가 하면, 식물의 북방한계선·남방한계선이 달라짐에 따라 원래는 남부 지방에서만 서식하는 식물들이 점차 북상하면서 새로운 알레르기 항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똑같은 꽃가루라도 대기 온도가 높으면 항원성(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질)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두 번째는 세계화이다. 외래종 동식물들이 들어오면서 한국인의 유전자에 이전까지 노출된 적 없던 새로운 알레르기 항원들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집먼지진드기 검사를 해보면, 한국 토종 집먼지진드기에는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들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들어온 집먼지진드기에는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사실 나도 유럽 집먼지진드기에만 알레르기가 있다. 이런 분들에게 나는 농담으로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아토피가 없었을 체질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환경오염의 영향이다. 꽃가루, 곰팡이 등의 전통적인 알레르기 항원들이 미세먼지, 공기 중 금속 물질과 같은 대기오염 물질과 결합하여 새로운 알레르기 항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네 번째는 식품 첨가물의 영향이다. 식용색소, 유화제 등 각종 식품 첨가물들은 장 점막세포의 결합 상태를 변화시켜 음식물의 알레르기 항원성을 높이게 되고, 설사를 일으키거나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인류의 유전자가 사실 점점 알레르기에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항생제와 다른 약품들이 발명되기 시작한 후로 인류는 알레르기에 점점 약해져왔다. 심한 아토피, 천식이 발현될 만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어렸을 때 폐렴으로 사망하지 않고 많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기게 되어, 몇 세대 만에 인류 유전자 풀 내에서 알레르기 유전자의 비율이 올라간 것이다.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문제와 어찌할 수 있는 문제를 잘 나누어, 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피하고 집먼지진드기 관리를 위해 침대 청소를 자주 하거나 이불을 삶아 빠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기후 변화, 세계화, 환경오염,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나는 진료실 안에서 알레르기 질환을 통합적으로 보려고 하는 편이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으면 재채기를 많이 하게 되니, 요실금도 잘 생기고 역류성 식도염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피부 면역이 낮으니 사마귀가 잘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이렇게 사마귀가 잘 생기는 친구들에게는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를 권하는 식이다. 자궁경부암도 결국 인간유두종바이러스(사마귀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암이니까.
비단 알레르기 질환만일까. 이거 하나로만, 저거 하나로만 나타나는 질환은 잘 없다. 인류의 역사와 지금의 내 건강이,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과 내 피부가, 내 재채기와 요실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연결성 안에서 우리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려는 노력을 같이 해나가고 싶다.
환자들은 나의 인상 좋은 미소에 진료실을 찾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내 목소리가 다정해서이거나, 항생제를 조금이나마 덜 써서, 설명을 그래도 좀 더 잘해주는 것 같아서,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서 찾는 걸 수도 있다. 집이 가까워서, 의원 인테리어가 예뻐서, 친절한 직원이 마음에 들어서, 의원 아래 약국의 약사님과 친해서일 수도 있다.
물론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일의 핵심 부분은 진료니까, 중요한 최신 연구들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책과 논문들로 열심히 공부하는 등 근거 있게 진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통해서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저절로 ‘진료를 잘하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다른 인증 평가들은 더 믿기 어렵다. 수많은 평가들이 서류를 얼마나 잘 쓰느냐로 결판나곤 하는데, 현실에서는 진료나 간호에 필요하지도 않은 기상천외한 서류 작업을 하느라 정작 환자에게 집중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결말은 누구나 짐작 가능한 상황이다. 의사들만 처한 상황도 아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비슷한 호소를 한다. 각종 인증, 평가에 대비하고 서류를 작성하느라, 정작 학생들을 돌보고 학생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말이다.
‘미안’은 그야말로 환자에게 죄송한 거. 내가 아니라 다른 의사가 했다면 결과가 달랐겠지 싶은 거. ‘안 미안’은 불가항력적인 거. 누가 하더라도 이 이상의 결과는 내기 힘들었을 거야 싶은 거. 누구도 실수하지 않았고 잘못하지도 않았지만 결과가 어쩔 수 없는 거.
의사는 면허증을 가진다. 면허증은 자격증과 다르다. 자격증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증명해주는 서류이고, 면허증은 면허가 없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는 서류이다. 그게 없어도 할 수 있는 것과 그게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래서 조리사는 자격증이고 영양사는 면허증이다. 변호사는 자격증이고 의사는 면허증이다.
운전도 면허증이다. 운전자는 면허증이 없으면 운전할 수 없지만, 면허증이 있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전자가 잘못하거나 부주의해서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운전자의 실수가 없어도 다른 운전자의 잘못이나 도로 상황, 행인의 돌발 행동, 날씨 등의 문제로도 사고가 난다. 사고가 나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다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도 한다.
아직도 우리는 인간의 신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다만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의료 사고가 날 때 우리는 모두 정말 속상하다.
영어에서는 "I’m sorry"라고 하면 속상하고 안타깝다는 표현도 되고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표현도 되니까, 그 둘이 한꺼번에 되니까 미국 의사들은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I’m sorry’라고 뭉뚱그리지 말고 ‘안타까움의 표현’과 ‘제대로 된 사과’를 구별하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이 말을 하다가 문득 내가 정말 감기밖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나는 감기밖에 모른다. 그래도 의대 다닐 때에는 감기조차 몰랐는데, 이제 감기는 조금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계절의 감기와 저 계절의 감기를 알고, 이 사람의 감기와 저 사람의 감기를 알지. 감기의 첫째 날과 감기의 둘째 날도 알아. 그러고 보면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운 것 같기도 하네.
감기를 진료하려면 감기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폐렴이나 천식, 중이염이나 부비동염 같은 감기의 합병증으로 생길 수 있는 질환이 아니고 감기로 초기에 오진될 수 있는 질환도 아니며, 알레르기 비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동네에 요즘 무슨 호흡기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 감기가 이 가족과 그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3~4일 쉬면 나을 감기인데도 학교나 직장을 쉬지 못하니 약이라도 먹어야 하는 환자의 사정도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감기에는 항생제가 필요 없다지만 감기로 인해 합병증이 항상 생겨왔던 아이니까 항생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파악해야 한다. 왜 독감 예방접종을 받아도 감기에는 걸리는지, 그럼에도 왜 여러 가지 예방접종은 필요한지, 왜 대체 감기 예방접종은 개발되지 못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감기도 모르던 내가 이제 감기는 조금 알겠네 싶은 것은, 우리가 진료실에서 함께 보내왔던 지난 시간 덕분이다.
예전엔 교과서와 논문을 통해 배우는 줄 알았다.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에게 물려받는 것이 의학 지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두 환자들에게서 다시 배운 거다.
당신이 혹시 나의 진료를 마음에 들어했다면, 그것은 내가 페미니스트 주치의이기 때문입니다. 살림의 조합원들이 자주 하는 말마따나, 페미니즘만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페미니즘 없이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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