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가 신체 조직의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들어 몇 년에 걸쳐 쌓이는 끈질긴 암살자인 데 반해 시안화물은 일시에 당신의 숨을 멎게 한다.

시안화물은 살인자들에게만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영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당해 가슴이 커지는 부작용을 겪은 뒤 시안화물을 주입한 사과를 깨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속설에 따르면 그의 자살은 좋아하는 영화 〈백설공주〉의 한 장면을 모방했다고 한다.

이는 일상의 모든 것을 독특하고도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남자의 마지막 기행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쟁중에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학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 자전거로 통근했다. 체인이 자꾸 빠져도 수리를 거부했다. 자전거를 수리점에 가져가지 않고, 체인이 감당할 수 있는 회전수를 계산하여 체인이 늘어지기 직전에 자전거에서 내려 조정했다.

물리학은 종이 위의 숫자에 지나지 않는 것, 현실의 사물을 표상하지 않는 추상, 단순한 계산 착오로 가득하지 않던가. 그의 결과에 들어 있던 특이점은 실수, 기현상, 비현실적 환각 중 하나가 분명했다.

종이호랑이, 중국의 용일 뿐이라고.

군의관들은 천포창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것은 인체가 제 세포를 인지하지 못하고 격렬히 공격하는 질병이다.

전쟁이 시작된 뒤로 마치 세상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듯 모든 것이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은 그 자신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성자, 광인, 신비가처럼 전체를 보아야만 우주의 진정한 조직 원리를 해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작은 아이조차 손가락 하나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다니 우주는 얼마나 신기하고 광학과 원근법의 법칙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그의 공격은 가장 예상치 못한 곳을 겨냥했으며 그의 기쁨은 지식의 초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하늘에 온전히 충성하지 못했다. 나의 관심은 결코 달 너머 우주에 있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사이로 누벼진 실들을,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좇았다. 그곳이야말로 과학의 새로운 빛이 비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엘제가 첫번째 청혼을 거절한 것은 자신에 대한 그의 관심이 오로지 지적인 것일까봐서였다.

혜성의 긴 꼬리가 언제나 태양의 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사실은 슈바르츠실트에게 매혹적이었다. "천국에서 추방당해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천사처럼 맹렬하게 저 꼬리가 끌어당겨지는 것은 어떤 바람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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