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아들 넷을 둔 행복한 가정이라고 우리를 얼마나 축하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다들 어디 있느냐? 몹시 외롭고 상심이 크다. 이 집에는 유령들이 살고 있단다. 너희 살던 방에 들어가노라면 밀려드는 상실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네 밝은 모습이 그립고, 걸신 들려 냉장고며 식료품실을 습격하던 일, 너의 피아노 연주, 방 안에서 역기 연습한다고 발가벗고 설치던 일, 그놈의 노턴 타고 오밤중에 불쑥불쑥 나타나던 일, 전부 다 그립다. 이런 일들, 그리고 너의 활달한 성격을 말해주는 수많은 사건이 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최종 결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것이어야 하고말고!

이 질환은 어떤 약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의존할 문제가 아니라, 즐겁고 의미 있는 인생(지원 프로그램과 공동체,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또 타인에게 존중받는 환경)을 누리게 하는 총체적 접근법이 필요한 문제다. 형의 상태는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사람들은 주름살이 안 생겨요. 그 매끈한 얼굴들 사이에 있노라니 쾨슬러의 고뇌와 지성의 고랑이 깊이 새겨진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얼굴은 거의 천박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죠!

나는 스물일곱이었고 그는 서른쯤 됐는데 그렇게 큰 나이 차가 아닌데도 자기 확신이 강한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재능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 어쩌면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그는 책 두 권을 냈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고…. 끊임없이 그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시는 <온 더 무브On the Move>였다.

나는 낮과 밤에 각각 다른 자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낮이면 흰 가운 입은 친절한 올리버 박사님으로 살다가 일몰이 오면 모터사이클용 가죽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익명의 존재가 되어 늑대처럼 병원을 빠져나가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타말파이어스 산의 굽잇길을 타고 올라가 달빛 내리는 길로 스틴슨비치나 보데가 만까지 달렸다. 이 이중생활에는 내 중간 이름, 울프Wolf가 아주 유용했다. 톰과 바이크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는 울프, 동료 의사들에게는 올리버였으니 말이다. 1961년 10월 톰은 새로 출간한 시집 《나의 슬픈 지휘관들My Sad Captains》에 이런 헌사를 담아서 내게 한 부 주었다. "늑대 소년에게(우화적 해석은 필요치 않음!), 행운을 빌며, 존경을 담아, 톰으로부터."

"맥. 우리 사내들이야 다 맥이지만(Mac은 흔히 이름 모르는 남자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옮긴이) 나야말로 진짜배기 맥이란 말이지! 이 팔뚝을 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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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사가 되다니, 이것을 결국 해내다니. 나는 흥분됐고 또 놀라웠다(내가 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가끔 영원히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끝도 없이 맴도는 꿈을 꾼다).

비약해서 예단하는 일이 없었다.?

크레머는 더 주의 깊게 관찰하며 직관을 신뢰할 것을 가르쳤고, 질리어트는 어떤 현상을 보건 반드시 그 기반이 되는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생각할 것을 가르쳤다.

당시 내 기억력은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는 수준이어서 순식간에 그 내용을 흡수했다.

이 만남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얼마나 또 만나고 싶은지는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쨍한 일요일 아침의 라이딩을 사랑했으며, 내 모터사이클은 놔두고 버드의 뒷자리에 앉아 가는 것은 더더욱 좋았다. 그렇게 꼭 붙어 달릴 때면 우리가 무슨 짐승 가죽이 된 기분이었다.

한 발 한 발 올라갈수록 생명체는 사라지고 풍경은 잿빛 일색이 된다. 그리고 지의류와 이끼류가 다시금 만물의 영장이 된다.

길을 잃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이정표를 세우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의 지식은 그야말로 방대하여 어쩌면 모르는 것이 없는 듯도 했다. 그는 법과 사회 현상을 논했고, 정치와 경제, 경영학과 광고, 의학과 심리학, 나아가 수학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물리적 환경, 사회적 환경, 그리고 인간)의 모든 측면을 그토록 심오하게 천착한 사람을 나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동기에 대해서는 조롱 섞인 통찰을 들이댔는데, 이런 균형감각 덕분에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자기만 잘하면 올라가는 거야. 엉터리라면 바로 낙오할 거고.

난 여행할 때는 반드시 가는 곳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읽고 생각한다네. 그 바탕에서,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사회적 틀을 통해 그곳 사람들을 바라보는 거지.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빌려주지. 내킬 때 갚으면 돼."
이때 교수님은 나와 만난 지 겨우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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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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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터지는 이야기를 절반 넘게 읽다 보면 어느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결국엔 통쾌하고 대단한 결론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책이었다니! 읽던 책 그만 읽고 이 책 먼저 읽으라고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자자 어서 이 책을 읽어 보세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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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02-23 0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던 책 내려놓고 이 책 읽어야 하는 겁니꽈?!

라로 2022-02-23 17:59   좋아요 0 | URL
뉘예~~!! 당장 읽으시길 욕심내봅미닷!!! 내 친구니깐~~~!!^^;;

청공 2022-02-23 0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도 인상깊게 읽었군요. 대단한 결론! 기대가 갑니다~
요책 오늘 도착예정요^^주문이 많은지 예약도서로 떠서 배송이 지연되었어요.

라로 2022-02-23 18:01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너무 통쾌한 결론(?)에 지금도 흥분이 됩니다!!!
우주의 에너지는 책에서도 느껴진다 아님미꽈!!^^;; 주문이 쇄도 해야 마땅하다고,,, 쿨럭;;;

책읽는나무 2022-02-23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책 입소문이 자자해서 저도 다음 달 이 책 주문 1 위입니다. 읽은 사람들은 모두 다 라로님과 같은 반응이라 정말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라로 2022-02-23 18:02   좋아요 1 | URL
아~~~!! 이 책 생각하니까 다시 막 떨려요!!! 책을 잡고 읽고 있는 제 손이 떨리던 (그런데 행드폰으로 읽었으니까 핸드폰을 들고 있는 제 손이,, 폰 떨어트릴뻔요,,ㅎㅎㅎㅎ) 것이 느껴져요!! 다음 달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그때 읽으실 책나무님을 부러워하겠어요!!

레삭매냐 2022-02-23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닥파닥~ 월척이오!

여기도 낚였습니다요.

라로 2022-02-23 18:03   좋아요 1 | URL
우앗!!! 제가 매냐님을 낚다니,,, 월척도 이런 월척이,,, 대박입니다, 영광입니다!!!! 하트 뿅뿅

2022-02-23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2-02-23 18:04   좋아요 0 | URL
땡투 고마와요!!! 처음엔 좀 화딱지나고 잘 안 읽히고 뭘 말하고 싶은 건데??? 싶은데 좀 참고 읽으면,,, 우와,,,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아요.^^;;;
 

인디애나는 수전에게 서부의 황무지처럼 느껴졌다. 발전도 뒤처진 데다 가족들과도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고, 심지어 위험한 곳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전은 데이비드를 사랑했고, 그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을 사랑했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 하는 생각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하려는 일, 그러니까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질서를 만들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이 시련 전체에서 얻은 교훈은 딱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게 뭐였을까? 겸손을 유지하라는 것? 이를테면 북미의 모든 담수어를 발견하겠다는 목표보다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었을까? 그는 "당장 출판하라는 것"이라고 썼다.18 아, 더 세게 밀어붙이라는 말이었구나.

수전의 죽음은 질서를 찾으려는 그들의 가치 있는 사명 중에 맞이한 불행한 피해였다고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유전은 그가 세상을 비춰보는 렌즈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동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넌지시 암시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

성스러운 생명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칸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정신이 ‘어떤 인간들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형 루퍼스를 따라 공공연히 자신을 노예제 폐지론자로 밝혀왔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는 그런 생각이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거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편애라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38

그들은 이름 짓는 창의력도 점점 발달했다. 못생긴 물고기의 이름은 적들의 이름을 따서 짓고, 예쁜 물고기의 이름은 친구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놀림당하기 쉬운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것이 정신 나간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겸손을 유지하라는 것, 우리가 믿는 것들, 우리 삶 속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늘 신중해야 한다는 걸 되새겨보게 해주는 사례인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의자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무들도. 나뭇잎들도. 그리고 사랑도!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그토록 능숙하게 사람들의 마음과 일자리와 각종 상을 얻어냈던 친절한 남자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어두운 면에 대한 고백일까? 그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이든 당신이 매일 하는 일, 무엇이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 그것이 아무 의미 없다고 암시하는 모든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중요한 것이기를 희망하면서 당신이 매일같이 의지를 모아 시도하는 모든 일들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그 일에서 당신이 이뤄낸 모든 진척이 당신의 발치에서 뭉개지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혼돈이 지배한다는 것, 나에게는 이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는 없어 보였다.

엔트로피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며, 그 어떤 인간도 결코 엔트로피를 멈출 수 없다는 메시지에?

어쩌면 그건 선에 대한 믿음을, 별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가슴속에는 존재하는 따뜻함에 대한 믿음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신뢰 비슷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놓아주어야 했다. 그 생물을 내던져버렸다. 변기에? 쓰레기통에? 나는 그 블랙홀의 테두리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다. 그리고 또 일어났다. 백 번, 천 번, 천 마리의 물고기가 사라졌다.18 기억이 떠오르지 않은 천 번의 사소한 실패.

혼돈의 그 작은 덩굴손 하나가 데이비드의 가차 없는 끈기 덕분에 다시 질서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믿음, 말과 행동을 초월하는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 그 믿음이 의심이라는 나방에게 갉아먹힌 믿음이라 해도.

모든 컵이 처음에는 따뜻했고 희망으로 가득했다.

나는 시카고가 좋았다. 시카고의 추위가, 시카고의 익명성이. 나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나는 폴짝 뛰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둥이가 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우주적 정의가 실행되는 대상이 아니라, 고향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 생긴 공백을, 내가 품은 희망의 빛이 나를 더 따뜻이 데워줄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차가워지기만 하는 그 공백을 말이다.

내게 이 이야기는 복수의 헛됨에 대한 명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리학에서 가장 빼도 박도 못할 법칙인 질량보존의 법칙―질량은 결코 창조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다―을 가장 잔인하게 묘사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그가 쓴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우주의 차가운 법칙을 피해갈 수 없는 폐쇄공포증적 세계를 그린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에도 정말로 마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냉정하고 가혹한 법칙들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얻어낸 생존만 있을 뿐.

"진실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굳이 믿으려고 하는 것"3은 사회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하나의 신념으로까지 발전했다.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6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라고 그는 썼다. "자연에 참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의 법칙은 바꿀 수 없으며… 그 법칙을 거스르는 자는 공기로 된 방망이를 휘두르는 셈이다."7

알코올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몸이 차가울 때도 따뜻하게 느끼도록 하고, 아무 근거 없이 기분 좋아지게 하며, 인격 수양의 핵심을 차지하는 제한과 자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에 대한 낙관적인 관점은 자기 발전에 대한 저주라는 것이다. 자신을 정체시키고 자기 발달을 저해하고 도덕적으로 미숙하게 만드는 길이자 멍청이가 되는 지름길이다.

《절망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작고 검은 책이다. 그 책에서 데이비드는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 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9

"행복은 행하고, 돕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정복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데서 온다."12 내 생각에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그가 말하려는 요점 같다. 여정을 즐기고 작은 것들을 음미하라고 말이다. 복숭아의 "감미로운" 맛,13 열대어의 "호화로운" 색깔,14 "전사가 느끼는 준엄한 기쁨"15을 느끼게 해주는 운동 후 쇄도하는 쾌감 등.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인용한 뒤, 분발을 요구하는 ‘카르페 디엠’의 구호를 외치며 독자들을 배웅한다. "그 어디에도 바로 여기, 지금, 오늘만큼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푸르고 햇빛이 밝고 그늘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은 없다."16

데이비드는 나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절망의 철학》의 최종 결론은 절망이 선택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의 허망함을 곱씹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몹쓸 짓인 이유는, 진화가 선물한 그 소중한 전기를, 너무나 많은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써야 할 그 신성한 이온들을 실존적 탐구라는 하수구로 흘려보냄으로써 글자 그대로 "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죽은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19

나는 익숙한 수치심이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가 엄청 차가운 호수에 풍덩 뛰어들었다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만면에 띠고 큰 숨을 내쉬며 수면으로 치솟는 모습을 볼 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나는 왜 아버지처럼 저렇게 살 수 없는 걸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뭘까? 그 답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마음에 나는 계속 책을 읽으며, 위생과 유머, 외교, 평화주의에 관한 그의 비판문과 시, 강의 노트, 알코올과 립스틱과 전쟁에 관한 논쟁을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오후 나는 발견했다. 공포에 대한 해독제, 희망에 대한 처방을 말이다.
그것은 그가 ‘진화의 철학’이라 이름 붙인 강의 요강의 제일 밑에 묻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날 하루의 강의를 내가 풀고자 했던 그 난제, 바로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바쳤다. "이러한 인생관은 염세주의로 이어지는가?"20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마술 같은 주문을 걸었다. 혼돈이 주는 냉기를 떨쳐버리는 한 가지 방법을 말이다. 특별한 활자체로 된 여덟 개의 단어.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경악했다. 이거였다. 내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바로 그 비법. 오늘날까지도 아버지 책상 위 액자 속에 담겨 있는 바로 그 단어들. 다윈이 외친 투쟁의 권유. 내 아버지와는 다르게?반항적이고,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사람으로?보였던 데이비드지만,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나는 내가 희망을 품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는 것. 레드와인이든 맥주든 위스키든 상관없었다.

나는 모든 활동에 알코올음료를 꼭 하나씩 끼워 넣었고, 거기에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끼워 넣었다.아무 근거 없이 흡족함을 느끼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우리는 관념과 단어의 분열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자신이 쓴 단어들이 다른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하고철퍼덕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생각들을 머릿속에 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그리고 자기를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닌 위험한 힘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왜 그러는지에 관한 집착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몰아대는 건 뭘까?"
그때 그 친구가 한 말은 "흠"이 다여서 나는 맥이 좀 빠졌지만, 다음 날 오후 이메일을 통해 좀 더 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이야기 말이야.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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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때 이른 죽음 이후 오래도록 이어진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라고 데이비드는 썼다. "밤마다 나는 사실이 아니기를, 형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기를 꿈꿨다."23

《수집: 다루기 어려운 열정Collecting:An Unruly Passion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28

1970년대에는 비행 청소년 혹은 불량 청소년 혹은 문제아(명칭은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들을 모아 교육하는 학교가 되었다. 어느 해병대 출신 뱃사람이 격리와 육체노동, 축산, 배 건조, 공동체 생활, 학교 공부가 "다수의 잠재적 살인자들을 자동차 도둑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학교를 세운 것이다.6

그러나 아가시는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은 피부 아래 감춰져 있다고 믿었다.

외피란 주의를 분산시키는 위험한 것, 분류학자들을 속여 사실은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는 생물들(예를 들어 고슴도치와 호저는 겉보기에는 아주 비슷하지만, 내부를 보면 완전히 다르다) 사이에서 유사성을 보게 하는 술책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가시는 신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내부야말로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이야말로 신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33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들뜨고 심장은 달음질쳤으리라.

거의 항상 실 보푸라기가 묻어 있는 털이 복슬복슬한 친근한 배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하얀 점이 백조인지 부표인지 아니면 더 흥미로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계속 응시하다가,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어쩌면 그 습지의 광활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습지의 끝은 바다고, 바다의 끝은… 나로서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었는데?나는 돛단배가 기울어지다 넘어가는 어떤 가장자리를 머릿속에 그렸다?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우리 모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버지는 쌍안경 뒤에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그때 내 얼굴이 어떻게 보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잿빛이었을까? 그건 마치 이 세상을 덮고 있던, 깃털을 넣어 만든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과연 네가 토양 속에서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목재를 갉아 먹어 분해의 속도를 높이는 일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 면에서 지구에게 넌 개미 한 마리보다덜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이 모든 건 뭐 하러 해? 학교엔 왜 가? 뭐 하러 종이에 풀로 마카로니를 붙이는 건데?"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이제소매와는 끝이라고 선언했다. 소매 때문에 시험관을 넘어뜨린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곧바로 가위를 들고 옷장으로 달려갔고, 이후 몇 년 동안 ‘학계의 해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출근했다.
아버지는 말썽꾼인 우리 집 개를 숭배하고, 정해진 조리법대로 조리하기를 거부하며, 개구리 다리라든가 전기가오리 내장 같은 실험 뒤 버려지는 실험 대상을 맛보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생쥐 간에서 확실히 선을 그었다. 아버지가 기름기 밴 종이봉투 속 내용물을 튀기려고 주방에 들어가자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와 내가 할머니가 계시는 양로원에 도착해서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휠체어를 탄 노부인이 우리 앞길을 막아선 적이 있다. "속도 좀 줄이세요!" 아버지는 이렇게 고함을 치고는 마치 그분이 자기를 치기라도 했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아 찡그린 얼굴로 몸을 뒤틀어댔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겁을 줘서 그 가련한 노인이 말 그대로 죽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되고 창피해서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부인의 반짝이는 눈빛과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를 보고서 나는 그분이 농담을 잘 받아들이는 분이라는 것을, 상대방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들에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나는 더 용감한 여자아이, 더 견고한 영혼을 지닌 여자아이라면 그런 말도 웃으며 받아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문제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게 없었다. 그게 뭐였든 간에 말이다. 튼튼한 뼈대처럼 강한 기개를 찾으려 더듬거렸을 때 내 손에 잡히는 건 모래뿐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둘 모두에게 지친 것 같았다. 우리가 왜 기운을 내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 지구라는 바윗덩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인생의 좋은 점들을 알아차리고 즐기지 않는지 답답해했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라며 꾸짖었다. 획을 둥글게 굴린 갈색 캘리그래피로 쓴 이 글은 니스를 바른 나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온 글귀다. 그것은 다윈의 달콤하지만 의미 없는 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신이라는 꽃봉오리를 제거한 것에 대한 사과의 말, 장엄함이 존재한다는, 충분히 열심히 들여다본다면 찾게 될 거라는 약속의 말과도 같았다. 하지만 때로 그 말은 비난처럼 느껴졌다. 네가 그 장엄함을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어느 늦은 밤, 그에게서 800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해변에서, 달빛과 적포도주와 모닥불 냄새에 취해 있던 나는, 그날 내내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통통 튀는 금발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수영을 한 터라 그녀의 몸은 젖어 있었다. 소녀의 몸에는 수백 개의 소름이 돋아 있었고, 나는 그 소름들을 내 혀로 눌러 가라앉혀주고 싶었다. 내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입술을 목에 대자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별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소녀의 몸에서 나는 김이 내 몸에서 나는 김이 되었다. 곱슬머리 남자에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말했을 때 그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신성한 무언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내 안 깊은 어딘가에서―결국 거기 있었던 굳센 정신력이었을까? 아니면 망상에 빠진 뇌의 한 귀퉁이인가?―나는 다른 계획을 생각해냈다. 만약 내가 충분히 열심히, 충분히 오래 뉘우친다면 그 곱슬머리 남자도 마침내 내가 얼마나 미안해하는지 알아주고 나를 다시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는 나의 무기, 그러니까 펜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쓰고 또 쓰고, 기다리고, 기대했다.

나는 무엇이든 끈질기게 지속하는 일에 대한 그의 정당화가 내 아버지가 심어준 세계관에도 들어맞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가능성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다윈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종으로 여겨온 생물들에게서 너무 많은 다양성을 목격했고, 그 결과 종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확실한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지워졌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불임성은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6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8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9

또한 부인이 반드시 굴욕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어쩌면, 혹시 어쩌면,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 삶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

데이비드에게 멍게는 명백한 경고이자 게으름에 대한 교훈담이고, 말 그대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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