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때 이른 죽음 이후 오래도록 이어진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라고 데이비드는 썼다. "밤마다 나는 사실이 아니기를, 형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기를 꿈꿨다."23

《수집: 다루기 어려운 열정Collecting:An Unruly Passion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28

1970년대에는 비행 청소년 혹은 불량 청소년 혹은 문제아(명칭은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들을 모아 교육하는 학교가 되었다. 어느 해병대 출신 뱃사람이 격리와 육체노동, 축산, 배 건조, 공동체 생활, 학교 공부가 "다수의 잠재적 살인자들을 자동차 도둑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학교를 세운 것이다.6

그러나 아가시는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은 피부 아래 감춰져 있다고 믿었다.

외피란 주의를 분산시키는 위험한 것, 분류학자들을 속여 사실은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는 생물들(예를 들어 고슴도치와 호저는 겉보기에는 아주 비슷하지만, 내부를 보면 완전히 다르다) 사이에서 유사성을 보게 하는 술책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가시는 신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내부야말로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이야말로 신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33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들뜨고 심장은 달음질쳤으리라.

거의 항상 실 보푸라기가 묻어 있는 털이 복슬복슬한 친근한 배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하얀 점이 백조인지 부표인지 아니면 더 흥미로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계속 응시하다가,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어쩌면 그 습지의 광활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습지의 끝은 바다고, 바다의 끝은… 나로서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었는데?나는 돛단배가 기울어지다 넘어가는 어떤 가장자리를 머릿속에 그렸다?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우리 모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버지는 쌍안경 뒤에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그때 내 얼굴이 어떻게 보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잿빛이었을까? 그건 마치 이 세상을 덮고 있던, 깃털을 넣어 만든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과연 네가 토양 속에서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목재를 갉아 먹어 분해의 속도를 높이는 일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 면에서 지구에게 넌 개미 한 마리보다덜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이 모든 건 뭐 하러 해? 학교엔 왜 가? 뭐 하러 종이에 풀로 마카로니를 붙이는 건데?"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이제소매와는 끝이라고 선언했다. 소매 때문에 시험관을 넘어뜨린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곧바로 가위를 들고 옷장으로 달려갔고, 이후 몇 년 동안 ‘학계의 해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출근했다.
아버지는 말썽꾼인 우리 집 개를 숭배하고, 정해진 조리법대로 조리하기를 거부하며, 개구리 다리라든가 전기가오리 내장 같은 실험 뒤 버려지는 실험 대상을 맛보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생쥐 간에서 확실히 선을 그었다. 아버지가 기름기 밴 종이봉투 속 내용물을 튀기려고 주방에 들어가자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와 내가 할머니가 계시는 양로원에 도착해서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휠체어를 탄 노부인이 우리 앞길을 막아선 적이 있다. "속도 좀 줄이세요!" 아버지는 이렇게 고함을 치고는 마치 그분이 자기를 치기라도 했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아 찡그린 얼굴로 몸을 뒤틀어댔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겁을 줘서 그 가련한 노인이 말 그대로 죽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되고 창피해서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부인의 반짝이는 눈빛과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를 보고서 나는 그분이 농담을 잘 받아들이는 분이라는 것을, 상대방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들에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나는 더 용감한 여자아이, 더 견고한 영혼을 지닌 여자아이라면 그런 말도 웃으며 받아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문제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게 없었다. 그게 뭐였든 간에 말이다. 튼튼한 뼈대처럼 강한 기개를 찾으려 더듬거렸을 때 내 손에 잡히는 건 모래뿐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둘 모두에게 지친 것 같았다. 우리가 왜 기운을 내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 지구라는 바윗덩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인생의 좋은 점들을 알아차리고 즐기지 않는지 답답해했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라며 꾸짖었다. 획을 둥글게 굴린 갈색 캘리그래피로 쓴 이 글은 니스를 바른 나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온 글귀다. 그것은 다윈의 달콤하지만 의미 없는 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신이라는 꽃봉오리를 제거한 것에 대한 사과의 말, 장엄함이 존재한다는, 충분히 열심히 들여다본다면 찾게 될 거라는 약속의 말과도 같았다. 하지만 때로 그 말은 비난처럼 느껴졌다. 네가 그 장엄함을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어느 늦은 밤, 그에게서 800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해변에서, 달빛과 적포도주와 모닥불 냄새에 취해 있던 나는, 그날 내내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통통 튀는 금발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수영을 한 터라 그녀의 몸은 젖어 있었다. 소녀의 몸에는 수백 개의 소름이 돋아 있었고, 나는 그 소름들을 내 혀로 눌러 가라앉혀주고 싶었다. 내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입술을 목에 대자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별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소녀의 몸에서 나는 김이 내 몸에서 나는 김이 되었다. 곱슬머리 남자에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말했을 때 그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신성한 무언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내 안 깊은 어딘가에서―결국 거기 있었던 굳센 정신력이었을까? 아니면 망상에 빠진 뇌의 한 귀퉁이인가?―나는 다른 계획을 생각해냈다. 만약 내가 충분히 열심히, 충분히 오래 뉘우친다면 그 곱슬머리 남자도 마침내 내가 얼마나 미안해하는지 알아주고 나를 다시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는 나의 무기, 그러니까 펜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쓰고 또 쓰고, 기다리고, 기대했다.

나는 무엇이든 끈질기게 지속하는 일에 대한 그의 정당화가 내 아버지가 심어준 세계관에도 들어맞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가능성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다윈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종으로 여겨온 생물들에게서 너무 많은 다양성을 목격했고, 그 결과 종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확실한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지워졌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불임성은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6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8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9

또한 부인이 반드시 굴욕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어쩌면, 혹시 어쩌면,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 삶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

데이비드에게 멍게는 명백한 경고이자 게으름에 대한 교훈담이고, 말 그대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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