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듦의 새로운 태도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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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라는 소개글이 아니었다면 너무 기가 죽었을 것 같다. 얼마나 박식한지 읽으면서 입이 안 다물어진다. 중간에 사랑에 대한 부분은 번역이 문제인지 작가가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좀 헷갈리지만, 어느 한 주제로 책을 낸다면 이 정도 레퍼런스는 보여줘야지! 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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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2-21 1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너무 좋죠! 저도 소장하고 있어요. 그렇고 그런 책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알차고 외워두고 싶은 경구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요.

라로 2022-02-21 13:16   좋아요 1 | URL
너무 좋아요!!! 관심 있던 책인데 블랑카님의 리뷰 보고 선뜻 질렀죠!! 감사해요, 늘 좋은 책 먼저 읽으시고 소개해 주셔서요!!^^ 저 넘 좋아서 영문판 주문했어요,,, 그리고 불어 1도 모르지만 불어판도 주문할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첨이에요, 불어책 사고 싶은 것이!!!^^;;;;

mini74 2022-02-21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별 다섯개, 나이듦에 다한 이야기란 소개가 나오네요. 블랑카님 댓글에 라로님 영문판 주문까지 ㅎㅎ 뭐죠 이 책 ㅎㅎ 궁금해요. ~

라로 2022-02-21 14:03   좋아요 1 | URL
이 책,,, 넘 좋아요!! 미니님 다양한 책 읽으시니 이 책도 좋아하실 것 같아효~~~.^^

psyche 2022-02-21 14: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이제 안 사! 했는데 이거 영어책이라도 사야할 거 같네요.

라로 2022-02-21 14:55   좋아요 0 | URL
이 책 지금까지 넘 좋아요,,, 올랜도 좋지만 소설이라서 그런데 이 책은 막 와닿아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남은 인생을 정말 잘 살고 싶고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등등
 

소심한 사람들은 아주 가벼운 병증에서도 재앙의 조짐을 본다. 그들은 응급실로 달려간다. 창백한 안색, 빈맥, 기립성 실신, 과호흡, 급격한 복부 통증이 그런 조짐이다.

진짜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 몸을 보살펴주는 이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건강의 지속, 단조롭고 한결같은 건강 상태를 참기 힘들 것이다. 육체의 손상 정도가 미묘한 경쟁심을 낳을 수도 있다. 자기가 걸린 병은 잔뜩 띄우고 다른 사람이 겪은 시련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의학은 인공지능, 면역요법 쪽으로 더욱더 발전할 것이다.

질병의 유일한 의미는 투병에 있다. 설령 그 병이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이 되더라도 말이다.

20세에 생을 혐오하는 태도는 오냐오냐 키운 아이의 사치와 비슷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낙담케 하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라"라고 하지 않았는가.5

최악을 상상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절망에 허를 찔리기 싫으면 어떤 절망이 닥칠지 예상하는 데 골몰하면 된다.

"너에게 닥치는 일이 네 뜻대로 닥치기를 바라지 말라. 만사가 일어나야 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자는 행복할 것이다."7(에픽테토스) 시련으로 점철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종의 푸닥거리이기도 하다.

불행한 일이 닥치면 우리는 그저 정신없고 황망할 뿐이다.

과학과 의학이 사망의 문턱을 저만치 밀어놓았기에 다들 죽기엔 너무 이르다고 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죽음은 분한 일이 되었다.

오늘날 정말로 무서운 것은 신체와 정신의 기능을 하나하나 잃으면서도 남의 도움을 받아 병원 침상에서 생존하는 삶이다.

헤겔은 이 섭리를 "아이의 탄생은 부모의 죽음이다"라는 인상적인 표현으로 요약했다.

생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생은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요, 번성하는 자손들을 통해서 영속되기를 원한다. 신앙이 있는 이들에게도 내세는 일차적으로 자손이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불멸을 누린다. 실제로 경험한 우정, 사랑, 열정, 참여, 선행이 다 그러하다.

보쉬에는 "우리 안에는 결코 죽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을 "어떤 성스러운 빛", 해방으로 열린 문이라고 표현했다.16

나이가 들면서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세상이 쓸쓸해진다. 살아남은 자는 텅 빈 세상에서 시대착오적인 존재일 뿐이다.

사랑하는 동안, 창조하는 동안 우리는 불멸이다. 생이 언젠가 우리를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다음 세대에게 희열을 넘겨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충분히 생을 사랑해야만 한다.

위로라는 분야에서 가장 섬세한 배려는 상대가 스스로 날개를 펼 수 있을 때까지 그냥 곁을 지키면서 넉넉한 애정으로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다.

우리가 기성세대를 바라본 경멸 반 연민 반의 그 눈빛으로 다음 세대가 우리를 바라볼 날이 언젠가 온다. 이것이 인생의 뼈아픈 교훈, 마침내 돌아온 부메랑이다. 우리는 우리가 옛날에 멸시했던 바로 그들이 되었다.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면 세대들을 우정, 관심, 대화로 한없이 엮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다른 세대들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교류할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으레 생각하듯 의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다. 오래 살려면 새로운 의무를 질 각오부터 해야 한다.

어느 나이에나 구원은 일, 참여, 공부에 있다.

생은 늘 약속이라는 구조를 띤다. 무엇에 대한 약속인가? 약속의 대상은 특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존재를 긍정하고 무조건 찬동하는 사람으로 끝까지 남아야 한다.

동물, 풍경, 예술작품, 음악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경탄할 만한 기회를 찾도록 하자.

세상이 추해지지 않도록 숭고한 것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매혹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환상을 잃는 이유는 그것이 원래부터 굳이 품고 갈 가치가 없던 환상이기 때문이다

생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지다는 것.

우리는 형제, 친구, 동지, 가족이라는 타자들 속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체념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갈 때만 자유롭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독할 수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었다.

매일 아침, 받은 바에 감사하면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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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책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신비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놀랍도록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렌즈 삼아,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인데도 자연의 원리로,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졌던 광범위한 이원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틀을 바탕으로 저자는 명상과 회고록을 오가며 내밀한 개인적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의 아버지, 그리고 그가 저자에게 가르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방법에 바치는 비가悲歌이자, 자신의 마음을 따라 세상을 항해하며 택한 위험한 우회에 대한 결산, 그리고 그 항해에서 예기치 못하게 도달한 항구에 바치는 사랑의 편지."
?마리아 포포바Maria Popova, 〈브레인 피킹스Brain Pickings〉(2020년 가장 좋았던 책)

과학자인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내게 ‘열역학 제2법칙’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가당치 않게 커다란 믿음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이렇게 생각하는 게 죄악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쓴 논문과 책들이 있는 링크도 보였다. 어류 수집 안내서, 한국과 사모아(남태평양의 섬나라), 파나마의 어류에 관한 분류학 연구, 심지어 절망과 음주와 유머와 진실에 관한 에세이도 있었다. 그는 또 어린이책도 썼고, 풍자와 시도 썼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서 안내를 받고 싶어 하는 길 잃은 저널리스트에게는 《한 남자의 나날들The Days of a Man》이라는 절판된 회고록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좋았다.

나는 큰 주전자 가득 커피를 만들어 1권을 무릎에 올리고 소파에 앉았다. 이로써 혼돈에 항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파헤칠 모든 채비가 끝났다.

별들이 혼란스럽게 흩어져 있는 밤하늘은 그에게 질서를 부여하고 알아내야 할 대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밤하늘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데는 5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양털 깎는 일, 솔을 깨끗이 유지하는 일, 그리고 그의 주특기였던 해진 천을 꿰매 깔개를 만드는 일(이때 그의 굽힘근 힘줄은 이미 바늘 놀리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등 온갖 잡다한 일거리를 데이비드에게 맡겨 쉴 틈을 주지 않았다.3 그래도 데이비드는 일하는 틈틈이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루퍼스는 데이비드에게 말을 안정시키려면 긴 목을 어떻게 쓰다듬어주어야 하는지, 가장 먹음직스러운 블루베리를 찾을 수 있는 덤불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었다. 루퍼스가 수수께끼 같은 풍경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것을 보면서 데이비드는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누가 알겠는가. 아마도 훌다와 남편 히람이 독실한 청교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절대 큰 소리로 웃는 법이 없었고, 매일 아침 태양보다 먼저 밭에 나가는 자신들의 순교자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겼다.7

외딴 곳에 살고 있는 조슈아 엘런우드라는 가난한 농부였는데, 그는 그 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식물의 학명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췄다는 이유로 그 노인은 이웃들에게 "꿈도 야망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사람"15 취급을 받았다.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 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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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02-21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책 많이 읽으시네요! 이 책 <밀리의 서재>에 있어서 찜은 했는데 읽을 책은 줄 서 있고 저는 책을 안 읽고...ㅜㅜ

라로 2022-02-21 14:57   좋아요 0 | URL
이번 2월에 좀 읽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도 같아요,, 특정한 어떤 수업 정말 싫어서,,,^^;;; 이책 아직까지는 그저그래요,,, 처음에 잘 안 읽히는 책 있잖아요? 그런 느낌???
아니 근데 프님이 책을 안 읽으신다니요!!!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보다 더 안 믿기는 말이에요,,, 프님 책 아주 많이 읽으세요!!
 

삶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지력이 쇠하지만 예술가들은 여기서 잃은 바를 저기서 얻는다는 법칙 말이다. 그들은 느릿한 젊음을 따라가면서 무덤 앞에 이를 때까지 더욱 강해지고 쾌활해지고 과감해진다."14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유한 쇄신의 원천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지혜가 깊어지는데도 자발성이나 삶을 즐기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신체가 배신하지 않는 한은 자기를 쇄신하는 그 자질 덕분에 불멸을 누린다."16

생애 말년에 에밀 아자르로 다시 태어난 작가 로맹 가리가 떠오른다. 그는 한편으로는 비극적일 정도로 진지한 작가이고, 한편으로는 익살스럽고 웃기는 작가이다. 그는 작품세계를 완벽하게 구분하여 6년간 아홉 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이 사기극의 비밀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 가라앉기를 두려워한 작가가 되살아난 예로는 완벽하다.17

우리는 나이를 먹되 마음이 늙지 않게 지키고, 세상을 향한 욕구, 기쁨, 다음 세대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해야 한다.

50세, 60세, 70세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 30세, 40세 때와 똑같다. 삶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달고 저주를 퍼붓는 자에게 매섭게 군다.

어느 나이에나 삶은 열의와 피로의 싸움이다. 인생사는 그저 부조리하고도 멋진 선물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와서
누구인지 모를 자로서 살며
언제인지 모를 때 죽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는데도
나 이토록 즐거우니 놀랍지 않은가.
?마르티누스 폰 비버라흐(16세기 독일의 성직자)

우리는 출생 이후의 경험을 통하여 그 집단에 속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수록 생물학적 또래 집단과 한 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동시대라는 덫에 그네들과 함께 갇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과 취향은 서로 다른 쪽을 향한다. 우연히 출생 시기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자라야 한다고 산부인과에서부터 한 반으로 묶어놓은 것 같지 않은가.

부모는 모두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식에게 닮음을 전달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싫어했던 아버지, 우스꽝스럽거나 가증스러워 보였던 어머니를 결국 닮게 된다. 그들의 괴벽이 우리에게 옮아오고 그들의 고약한 말버릇, 자주 쓰는 표현이 우리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도 우리에게 새겨진다. 우리 얼굴을 침범해서는 그들의 이목구비를 겹쳐놓는다. 우리가 원하고 말고는 상관없다. 아니, 우리가 그 유증을 거부할수록 더 뚜렷하게 남는다. 모든 아이는 부모를 상징적으로 지우면서 성장한다. 자식은 부모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아예 잊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나름대로 괴로워하면서 자신의 신경증 혹은 환상을 자식에게 전달할 것이고, 자식은 그것들을 부정할 것이다.

우리는 친해지고 싶은데 그들은 거리를 둔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 자리에 돌려놓는다.

세상은 처음 보듯 바라보고 처음 사는 듯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듯 보고 마지막으로 사는 듯 살아야 한다. 일단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생을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는 재화처럼 여기고 지금 당장 누려야 한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섬광 같은 순간, 시간의 지속으로부터 훔쳐낸 순간이다

몽테뉴는 플라톤을 따라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사라져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그 불길한 일을 강박적으로 떠올린다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어디 있을까. 평생 죽음을 연습하여 어느 날 갑자기 큰 낫을 든 죽음의 신이 찾아와도 놀라지 않거나 그리스도인들이 바니타스화vanitas(죽음의 필연성과 인생의 허무함을 상기시키는 상징을 활용하는 회화 장르?옮긴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골을 마주하고 묵상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쾌락의 조건 중 하나는 무한히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은 돌아오고 확장되기를 원한다.

뭔가를 외워서 달달 읊다 보면 깨달음이 번득 일어날 때가 있다. 자기의 창조와 재창조는 언제나 모방한 형식과 새로운 형식 사이의 투쟁에서 나온다. 그러다 결국 자동성에 굴복하면 하던 행동만 하고 변화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토 나오게’ 자주 인용되는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뿐더러 지나가지도 않았다"는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은 으레 일종의 비극으로, 즉 예전에 있었던 일의 무게가 계속해서 우리를 옭아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문장을 좀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동굴학자가 동굴을 둘러보면서 깊이 파묻혀 있는 옛 시대를 깨우듯 우리가 살아온 삶의 추억을 미래로 변화시키라는 부름처럼 말이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과거의 열망들을 완전히 묻어버릴 수 있을까. "내 안에는 충족되지 못한 위대한 출발들이 있다"고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는 말했다.

과거는 한낱 벌레 끓는 시체가 아니다.
과거는 "보고서가 잔뜩 든 커다란 서랍장"이자
우리를 위협하는 "시든 장미로 꽉 찬 안방"이다.
하지만 신기한 물건이 가득 든 궤짝처럼
잠깐은 마법이 통한다.

우리는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간다. 현재라는 안개 속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늘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또렷하지는 않아도 뒤늦게 떠오른 기억의 명암에 비추었을 때만 알 것 같은 의미가 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늙음의 비극이란 한 인생의 총합이 되는 것, 숫자 하나 바뀌지 않는 최종 합산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6 총합 자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체는 움직이는 모자이크화처럼 늘 헤쳤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재구성된다. 이미 경험한 내용은 지리멸렬할 수 있지만 청소년기부터 불쑥불쑥 떠오르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라는 물음은 일종의 쾌락건망증 덕분에 사라진다.

밥을 먹으러 갈 때는 늘 배가 고프고 뭔가가 먹고 싶은 존재일 뿐, 과거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긴 세월 축적한 지식만큼 감탄스러우면서도 기대가 안 되는 것은 없다. 용어 하나 숫자 하나까지 세심하게 꿰고 있는 박학 탓에 전체적인 전망을 놓친다면 부질없는 짓이다.

몸은 늙되 마음은 늙지 말라. 세상과 쾌락에 대한 감각을 지키고 걱정 많은 속내와 혐오라는 이중의 함정을 피하라.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는 "인생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도 연습 중일 테고, 서툴게 한 음 한 음 연주해낼 것이다. 몸이 불편한 자, 병든 자, 다친 자, 아픈 자, 어리석은 늙은이에게 위대한 미래가 있을진저. 유년은 노년의 주책맞은 노망이 아니라, 다시 한번 최초의 순간에 흠뻑 빠지고 싶은 자들의 보완책이 될 것이다. 때때로 젊은 사람이 겉늙은 것처럼 유년의 특징이 70대 노인의 얼굴에 새겨질 수도 있다. 어리석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으므로.

말리의 만딩고 부족의 일파인 밤바라족에게는 늙은이들이 다시 일곱 살이 되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10 나이는 이제 하나의 표식일 뿐, 나이만으로 생활양식을 추론해낼 수 없다. 행복하게 나이를 먹는 비결은 자기에게 부여된 나이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점진적 쇠약은 점진적 해방과 함께 가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라도 현자이자 미치광이일 수 있고 이성과 장난기, 신중함과 무모함을 겸비할 수 있다.
노년이 청춘에게 부러워하는 것은 단지 활력, 아름다움, 위험을 무릅쓰는 패기, 인지적 유연성만이 아니다. 매일 아침 쌩쌩하게 새로 태어나는 삶의 자세다. 배우고 발견할 것도 많고 한 번은 해봐야 하는 일, 느껴봐야 할 감정이 많은 청춘이 부럽다. 이 본능적 욕구를, 설령 순진해 빠진 사람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 흐르는 세월의 크나큰 가르침은 이것이니, 늘 초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를 피해갔거나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을 향해 마침내 마음을 여는 것처럼.

인생은 작은 글씨로 쓰는 아주 긴 편지다.

인생의 내리막길은 오르막길처럼 가야 한다.

언젠가는 손주를 보고 기뻐하고, 빅토르 위고처럼 ‘할아버지로 사는 기술’, ‘어린이에게 복종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리라.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따뜻한 조언을 베푸는 수호자로서 혈통 속에 위치하며, 후손들의 얼굴에서 점점이 나타나는 닮음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이때는 어린아이들이 주는 이로움을 모두 즐기면서도 거기에 예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보면서 삶의 미숙한 첫걸음을 다시 배우고, 50년 전과 교과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보면서 즐거워하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좋은 성적을 받아오고 우리는 못했던 것을 해내며 집안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을 기특해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손주 세대는 자식 세대와 달리 우리를 허구한 날 판단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비난을 퍼붓지 않는다. 손주들은 잠깐 떼쓰는 것조차 귀엽고, 손주 입에서는 아무리 어리석은 말이 나와도 황홀하기 그지없다.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해지더라도 갈등은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가변적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라도 이 역할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할아버지 할머니로만 살라는 법은 없다. 노년은 베이비시터 역할을 하거나 그리운 추억을 하나하나 곱씹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함께 투쟁하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이 든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보완적인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은 아름답고, 불행처럼 반박의 여지가 없다.

50세가 넘은 여성들에게 뭐가 남지? 비탄에 젖은 19세기의 과부들, 과거의 올드미스들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지만 안쓰럽기로는 뒤지지 않는 고독이 남는다. 이 고독은 1960년대 성 풍속 혁명 이후에 등장한 것이다. 성 해방은 쾌락의 평등을 약속했지만 실상은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차고 넘치는 관능이 모두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직도 제2의 성 대다수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행 아니면 처절한 사막밖에 없다.

연애라는 영역에서 재산이나 지위는 누구나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이유가 된다.

사랑은 ‘시장’이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린다. 이 장사를 하다 보면 저마다 외모, 사회적 지위, 재력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잘나가는 사람은 구혼자를 떼로 몰고 다니지만 안 풀리는 사람은 거절만 쌓여간다. 그들은 실연의 단골손님, 태어날 때부터 병풍 신세다.

남성 혹은 여성의 매혹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가혹한 법칙을 따른다. 자유연애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결코 대놓고 말하지 않는 이런저런 암묵적 금지가 있다.

위대한 17세기의 대모로 유명한 팔츠 공작부인은 여성에게 몇 살쯤 욕망이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난 80세밖에 안 됐는데." 그냥 농담이라 하기에는 생각해볼 만한 진실이 숨어 있다.

시몬 베유,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를 생각해보자. 위대한 사람들에 대한 찬탄은 역경에 맞서는 그들의 역량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독창성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생을 살았기 때문에 본보기로 남았다.

창작의 영역에는 놀라운 본보기가 더 많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영화감독은 90대에도 왕성하게 작업하며 클리셰를 박살 내고 있다. 에드가 모랭은 98세에 새 책을 냈고,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는 100세를 넘겨서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천재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80세를 넘었고,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죽을 때까지 일했다. 또 다른 피아니스트 마르시알 솔랄은 90세에도 연주회 무대에 섰다. 그들은 단지 존재만으로 허다한 말을 무색하게 하며 우리에게 노년도 썩 괜찮겠다는 생각을 불어넣는다. 노년이라는 먼 대륙의 밀사인 그들은 그곳에서 생은 맥없이 늘어지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전히 생은 가능하고 예측 불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은 겁에 질린 반항자 무리에게 길을 열어주는 인생의 선발대다.

나이 든 사람 곁에서는 안심이 되고, 비교가 두렵지 않으며, 위안을 얻고, 정신적으로 넉넉해지고, 상대의 전문적 식견에 흠뻑 빠지거나 명석하고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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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2-02-20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작은 글씨로 쓰는 아주 긴 편지다.˝
˝인생의 내리막길은 오르막길처럼 가야 한다.˝
짧지만 아주 좋습니다~ b

라로 2022-02-21 10:18   좋아요 1 | URL
이 책 중간에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번역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건지 모르지만 그것에도 불구하고
좋은 글이 너무 많아요!! 기회가 되시면 영문판으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blueyonder 2022-02-21 12:44   좋아요 1 | URL
<A Brief Eternity: The Philosophy of Longevity>가 영문판인 모양지요?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라로 2022-02-21 13:1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도 영문판으로 다시 읽고 싶어서 주문했어요,,, Can‘t wait!!!^^;;;

레삭매냐 2022-02-21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die 를 의미하는 건가요?

식겁하게 되네요 크하 ~

라로 2022-02-21 12:0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도 그랬어요. 그런 내용인 줄 모르고 골랐거든요.
번역가가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을 했네요.^^;;
영문판은 직역을 한 것 같고요.
영문판 주문했는데 얼렁 왔으면 좋겠어요.>.<

라로 2022-02-21 12:10   좋아요 0 | URL
아 참! 매냐님~~ 하버드 스퀘어 시작하셨어요???
 

이 책은 변화한 삶의 조건에 발맞추어 현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나이 드는 법을 전한다.

옛날에는 이 세대나 저 세대나 어르신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어르신이 애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세대 착오는 희극적이면서도 징후적이다. 몸에 딱 붙는 정장으로 멋을 낸 젊은이와 반바지 차림으로 쏘다니는 관자놀이가 희끗희끗한 늙은 개구쟁이. 시대가 거꾸로 됐다.

"노인들이 흙에서 나와 생을 역순으로 살다가" 신생아의 상태로 돌아갔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을 생의 끝, 오랜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시작은 끝이었고, 끝은 시작이었다.

공통의 조건으로 한데 묶이고 그대로 휘둘리는 신세는 서글프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내가 꼭 그 나이인 것은 아니다. 서류상의 내 나이와 스스로 느끼는 내 나이 사이의 간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시대에는 이 간극이 너무 크다. 그래서 2018년에 69세의 어떤 네덜란드인은 서류상의 나이를 고쳐주지 않는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자기가 느끼는 나이는 49세인데 공식적인 나이 때문에 일과 연애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사고방식이 변해가는 양상을 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여러 번 살 권리를 요구한다. 나이 먹는다고 철이 드는 것도 아니요, 나이 때문에 사람이 무너지지도 않기 때문에 자기 나이로 보이고 말고가 없다. 나이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 조건은 여기저기 금이 갔고, 우리는 정체성과 세대가 유동적인 시대에 진입했다. 우리는 이제 너무 큰 수가 되어버린 자신의 나이에 기죽지 않고 커서를 마음대로 옮기고 싶다.

심리적 나이가 생물학적·사회적 나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용맹하다. 자연은 우리의 스승이지만 과거와 달리 우리의 길잡이까지 되지는 못하고 있다. 무심한 자연이 우리를 성장시키기보다 무너뜨리는 때에 우리는 자연의 엄명에 저항하면서 전진한다.

우리는 50세 이후, 젊지 않지만 늙지도 않은, 아직은 욕구가 들끓는 이 중간 시기를 살펴볼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가, 치열하게 살고 싶은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방향을 꺾을 것인가? 재혼 혹은 재취업을 하면 어떨까? 존재의 피로와 황혼의 우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나큰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까? 회한이나 싫증을 느끼고도 여전히 인생을 잘 흘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인생의 계절에서 가을에 새봄을 꿈꾸고 겨울을 최대한 늦게 맞이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바친다.

1945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이 변했을까? 기본적으로, 인생이 길어졌다. 기 드 모파상의 비유를 인용하자면 인생은 기차처럼 홱 지나가는 것이었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인생이 무거운 권태와 쫓기는 듯한 속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 너무 짧아진 동시에 너무 길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생은 죽죽 늘어져 끝나지 않을 것 같다가 꿈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간의 수명은, 적어도 부자 나라들에서는 20~30년이나 늘어났다. 모든 사람은 성별과 사회 계급에 따라 운명으로부터 일종의 휴가증을 받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18세부터 자기네가 100세까지는 살리라 예상한다. 이리하여 학업, 직업 이력, 가족, 사랑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인생은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다. 빈둥대거나 방황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다시 걸어가면 되는 머나먼 여정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20세에 결혼해서 애를 낳을 필요도 없고, 학업을 빨리 마치려고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직업을 여러 개 가질 수도 있으며, 결혼도 여러 번 할 수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최후 시한을 아예 무시하진 못하겠지만 이리저리 돌아갈 여지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점도 있다. 망설임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아 정신을 차릴 수 없으니 곤란하기도 하다.

50세가 되면 인생이 정말로 짧아지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시간이 정신적 완성 혹은 자기 실현이라는 끝을 향해 가는 운동이었기에 방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두 시기 사이에 전에 없던 괄호가 펼쳐진다. 이 괄호가 도대체 뭐냐고? 인생을 여닫이문처럼 열어놓는 유예 기간이다.

원숙기와 노년기 사이에 새로운 인구층이 나타났다. 라틴어를 따서 ‘시니어senior’라고 부를 수 있는,2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나머지 인구보다 가진 것이 많은 세대다. 이 시기에는 애들도 다 키웠겠다, 부부의 의무를 마감하고 이혼이나 재혼을 택하는 사람이 특히 많다. 이러한 변화가 서양 사회에만 퍼진 것은 아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도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인데 이러한 상태의 물질적 조건들은 미처 충분히 사유되지 못하고 있다.3

2050년에는 지구에 어린아이보다 노인이 두 배 더 많을 것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노인이 아니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만 진짜 노인일 것이다. 그래서 세대 구분을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그래서 남아 있는 나날 동안 후회되는 부분을 바로잡거나 잘한 부분을 오래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카운트다운의 이점이다. 흐르는 매 순간에 욕심을 내게 된다.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은 17세기보다 결코 덜 비극적이지 않으며 매일매일의 덧없음을 상쇄해주지 않는다.

어떤 미래는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전자의 미래는 수동적이지만 후자의 미래는 의식적 활동이다. 내일은 춥거나 비가 올 수도 있지만 내일 날씨에 상관없이 나는 작정한 대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오래오래 그냥 살아 있기만 할 수도 있지만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하는 의미로 실존할 수도 있으려나?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언제나 미래에 기투企投하는 실존자를 구분한다.7

빅토르 위고는 좀 더 간단하게,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정말로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사는 것"이라고 했다.8

싱그러운 공기, 맛있는 음식,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잠보다는 그저 이 마법 같은 저녁을 오래오래 누리고만 싶다.

평균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출생 시기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억과 기준을 간직한 채 지구상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인생은 추리소설과 정반대로 진행된다. 결말도 알고, 범인도 알지만, 범인을 저지할 마음은 없다. 심지어 범인이 들통나지 않게 하려고 우리가 재주를 부린다. 범인이 코빼기라도 드러낼 것 같으면 우리는 애원한다. 제발 숨어 있어요, 아직은 몇 년 더 있다가 당신을 찾아야 한다고요.

50세가 넘으면 태평할 수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가 되려던 모습이 되어 있고, 계속 그렇게 살든 자기를 재창조하든 선택은 자유다.11

전례 없는 청춘, ‘오춘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꺾이는 나이가 되면 삶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계속 살던 대로 살든가, 슬슬 무너지든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플라톤은 사랑(에로스)이 빈곤의 여신과 풍요의 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시간도 그런 것 같다. 무르익어가는 시간 동안 비옥한 기다림이 꽃을 피우지만 고갈과 마모도 시간의 산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고 하루하루 선택지가 줄어드니 분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은 늘 영원한 도입부요, 점진적 전개 따위는 끝까지 없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의 문 앞에 떠밀려 있는 상태로만 시간 속에 정주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되 고정 거주지는 없는 노숙자들이다.

오래 사는 만큼 병도 오래 앓는다. 건강한 상태에서의 생존 기간은 그렇게까지 늘지 않았다.14

우리는 두 가지 사고방식을 교차시키고자 한다. 각 연령대에 맞는 운명이 있다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숙명에 맞서 한계를 밀어내고 인간을 개선하려는 사고방식을.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몸은 우리에게 말한다. 미래는 아직도 가능해, 내가 따라준다는 조건에서 말이지. 너희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의학에서는 사람이 45세가 넘으면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발사를 늦추느냐 방아쇠를 당기느냐는 그 사람에게 달렸다.

고장 났지만 가까스로 수리해서 다음 사고가 날 때까지 몰고 다니는 근사한 구형 세단 같다. 어느 순간 이 병 저 병 전전하며 건강에 대한 환상이 부서지는 때가 온다. 치료는 점점 느려지고 회복은 점점 오래 걸린다. 그래도 이때는 어느 한 가지 중병으로 고생하기보다는 자잘하게 골고루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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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02-19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끌리네요!

라로 2022-02-21 10:18   좋아요 1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중간에 좀 이상한 부분 빼고요.
너무 좋아서 영어로 번역된 책 샀어요. 영어 번역이 원문 번역과 좀 더 가까운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