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호호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윤가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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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재밌게 시작했는데 비장(?)하게 마무리 되는 느낌이 들었다. 후기에 썼던 작가가 더 하고 싶었는데 하지 않은 얘기들도 올려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너무 짧은 느낌의 글이었지만, 작가의 진심이 잘 느껴졌다. 그런데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예전 일을 자세히 기억하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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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8 18: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어려서 ㅎㅎㅎ 예전엔 작가분들 다 무지 큰어른 같았는데 요즘은 저보다 어린 작가들을 많이 보게 돼요 전 이 분 콩나물이란 영화 넘 재미있게 봤어요. ~

라로 2022-02-18 18:54   좋아요 1 | URL
미니님이 그렇게 느끼시니 저는 오죽 할까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어릴 때 기억을 잘 못하는데 이분은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어릴 적 얘기를 아주 많이 해요 사실,, 그런데 어릴 적 얘기 전 좀 별로라,,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당신의 어린 시절과 나의 어린 시절의 차이도 느껴지고요. ^^;

기억의집 2022-02-18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작가들이 어리죠. 지난 번에 그림책 인형만들기에서 대장토끼와 부하토끼 그림책 소개할때 만들기쌤이 본인이 85학번인데.. 그림책 작가가 85년생이라 … 하시면서 약간 이제 나이를 먹긴 먹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ㅎㅎ 호호호 지금 읽는 책 끝나면 읽을 건데.. 저 요즘 미국 미스터리책만 주구장창 읽는데 미국은 도대체 마약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마약 총 이 두 소재 빼면 할말이 없나봐요.

라로 2022-02-21 10:21   좋아요 0 | URL
작가들이 마이 어리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 자식들 또래 작가들도 있공,,, 병원에 가도 의사도 어리고,,, 하아~~
호호호 부담스럽지 않고 깔끔해서 좋았어요.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이미 읽으셨겠지만.^^
마약이 많이 심각하지만, 한편으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 같고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될테니
좋은 소재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기억의집 2022-02-21 23:37   좋아요 0 | URL
그럼 책처럼 마약이 아주 만연한 것은 아니죠!! 저 요즘 미국 미스터리물만 읽는데 책 모두 마약이 안 빠져요!!!

라로 2022-02-23 18:13   좋아요 0 | URL
사실 마약이 아주 재밌는 주제에요,,, 저희도 학교에서 마약에 대해 배웠는데
신기해서 미스터리에 빠질 수 없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요.ㅎㅎㅎ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무해하고 귀여운 말실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사람마다 웃음 버튼이 모두 다른 곳에 달려 있다던데 나는 특히 이런 ‘잘못 튀어나온 말’의 사례만 들으면 유달리 정신 줄을 놓고 웃는다.

고전적인 일화로,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친구 엄마가 콘플레이크를 꺼내놓고 "포클레인 먹어라"라고 했다든가, 택시 타고 "전설의 고향 가주세요" 했는데 기사님이 어떻게 알고 예술의전당 앞에 잘 내려주셨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산달’을 ‘만기일’로, ‘인큐베이터’를 ‘컨테이너’로 바꿔 말한 예시들은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나의 웃음 버튼이다.

최근 들었던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누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남동생에게 엄마가 "요즘 너희 누나 엄청 바빠. 회사 일도 많고, 판교까지 텔레파시도 배우러 다니잖아" 했다는 일화다(어머님, 필라테스요). 저 이야기를 들은 날 종일 배가 찢어지게 웃으며 99퍼센트의 확률로 ‘키친타월’을 ‘치킨타월’이라 부르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대체로 공백이 잘 채워지지 않고, 의심이 많아 알고 있는 것도 잘 말하지 못하는 나로선 그런 유연한 사고와 대범한 실행이 늘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새롭게 익힌 어려운 말을 열심히 잘못 외워놓고 그저 으쓱해할 어린이들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때가 왔을 때 조마조마해하며 결정타를 날린 뒤 의기양양 뿌듯해할 모습도 눈에 선했다.

여담이지만, 제발 너무 재밌는 책의 표지엔 꼭 ‘폭소 주의’ 같은 경고문을 실어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의 허세는 정말 대담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때론 틀린 표현이 있어도 잡아내기 어렵고, 대놓고 웃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확실히 어린이들은 새말을 익히는 과정에서 필히 겪을 수밖에 없는 실수나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두려울지언정 과감히 시도해보고 틀리면 수정해나갈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새로운 말들을 익히고, 끝내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용감한 마음을 닮고, 배우고 싶어졌다.

잘 몰라도 용감하게 도전해보는 마음. 틀리면 다시 배우고 익히려는 단단한 마음. 실수를 실험으로, 실패를 실현으로 바꾸는 용감무쌍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늘 꽃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싫어했다든가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별 관심이 없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의 대부분 동안 나는 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살아왔다. 내가 자라나느라 바쁘고 정신없어서. 나를 피워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차고 버거워서. 물론 내 삶을 살아내느라 보지 못한 것이 어디 꽃 하나뿐일까 싶긴 하지만.

이를테면, 늘 거리가 있던 친구 한 명과 우연히 학교 화단에 핀 사루비아꽃을 같이 따 먹으며 가까워진 일이라든가, 배낭여행 중 같은 방을 쓰게 된 다른 나라 친구가 어제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오늘은 맛있는 점심을 먹어서 같은 이유로 매일 꽃을 사와 고단한 창가를 밝혔던 일 같은.

나는 한참 우울하다가도 생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없다. 얼마나 즐겁고 들뜨는지 때론 친구들에게 먼저 나서서 축하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정작 축하받아 마땅한 일엔 고개도 못 들 정도로 민망해하는 내가 생일날만큼은 한껏 비대해진 자아로 기쁨을 만끽한다. 나도 참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고요하고 오붓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럴 때도 돈과 시간과 마음을 듬뿍 쏟아 오직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챙기고 애써봤자 결국 나 혼자 남는 걸. 난 영원히 이렇게 살아가겠지. 대체 난 왜 태어났을까……. 참았던 서러움이 복받쳐 가슴이 꽉 막혀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애초에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그렇듯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그랬어야 마땅한 소중한 생일날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좋은 기분을 다른 누군가가 선사해주기만을 기다린 걸까.

내가 어떤 선물을 가장 좋아하고, 어떤 하루를 보내야 가장 기쁜지 제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왜 정작 내가 나를 모른 척하고 손 놓고 전전긍긍하기만 했을까. 내 생일을 진심으로 정성껏 축하했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는데.

더는 다른 누군가의 축하를 기다리지 말자고.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나를 가장 많이 축하해주자고. 내가 내 생일의 진짜 주인이 되자고.

생각해보면 생일은 정말 대단한 날이다.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내고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굉장한 행운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대 사건이다.

어떤 인간도 단순하지 않았고, 어떤 관계도 간단하지 않았다. 늘 뭔가가 더 있었다. 애정 뒤엔 희생이, 희생 뒤엔 배신이, 배신 뒤엔 복수가, 복수 뒤엔 전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쟁 뒤엔……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허공에의 외침만 남았다. 아, 인생 대체 뭘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보통의 사람들도 알고 보면 모두 굉장히 특수하고 개별적인 존재들이었다(다들 어느 정도는 지랄 맞은 구석이 있었다). 또 너무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듯 보이는 일상의 문제들도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딜레마를 끌어안고 있었다(모두 보이는 것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S는 늘 세심하고 살뜰하게 주변을 챙기지만 진심이 아니거나 불필요한 말은 절대 하지 않는 정확한 친구였다.

난 이 모든 과정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애초에 풀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

한 발 떨어져 나를 천천히 살펴보니 조금 짠하긴 했다.

문득 궁금했다. 오랜 세월 내게서 외면당한 그 마음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또 어딘가를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숨통을 끊어놓아도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나는 숨 쉬는 법을 잊기 전에 노래 부르는 법을 먼저 잊어버린 거였다. 노래를 잊었는데 어떻게 제대로 숨을 쉬며 살 수 있었겠는가. 그런 삶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피할 수 없는 즐거움. 조건 없는 행복. 그것이 내게는 노래였다.

정말이지 노래방은 혼자 가야 제맛이었다. 우선 좋아하는 노래는 수십 번이고 다시 부르고, 질리는 노래는 언제든 눈치 안 보고 꺼버릴 수 있었다. 또 듣고 싶지 않은 노래는 감내하며 들을 필요가 없어 너무 좋았다.

도대체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어 참담하고 막막했을 때, 내가 나를 제일 모르겠고 못 믿겠어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 외롭고 황량한 마음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야 했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저 세상에 노래가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게 내겐 훨씬 중요한 일이다. 때론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빵집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근심 걱정은 일순 잠잠해지고 다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버터 향이 충만한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풍겨오면, 종일 빳빳하게 굳어 있던 목덜미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갖가지 모양의 빵들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고단한 일상에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것들이 제각각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고소하고 달콤할지, 또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촉촉하고 바삭거릴지 상상하다 보면, 시끄럽고 복잡했던 속이 어느새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현실의 시간과 영화 속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영화를 다 만들고 공개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모든 여름은 전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한글을 그들의 만화로 배운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만화를 본다고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만화를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만화가 내 삶을 활짝 열어주었다.

어쩌면 만화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놀이이자 안식처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내게 없는 것이라도 감히 원하고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선한 마음으로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정말 원하고 꿈꾸던 자리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문방구는 부모나 선생처럼 우리를 돌보고 보살필 의무가 없는 어른과 처음으로 관계를 맺어보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 관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내 쪽에서 먼저 그만둘 수 있는 놀라운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함부로 그만두면 정말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수도 있으니 늘 신중을 기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문방구를 통해 진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중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방구를 단골로 삼을지 결정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아담문방구 아저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아이에게도 늘 친절하고 다정하게 응답하는 좋은 어른이었다.

그녀는 문방구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의 모든 결정을 너무도 쉽고 편하게 내렸다. 거기엔 어떤 고민도,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나는 왜 저렇게 못 하는 거지. 이유는 하나였다. 돈.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살 돈이 있었고, 나는 딱 스티커 한 장 살 돈밖에 없었다.

그때도 아저씨는 주저하며 눈치만 보던 나를 아주 반갑고 편안하게 맞아주셨다. 지나간 일은 이제 그만 잊으라는 듯. 앞으로 남은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는 듯. 이후 나는 아무리 화가 나고 절박해져도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 일은,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속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편, 마음 깊이 안심하기도 했다. 어떤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나를 예전처럼 믿어주고 늘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이 내게도 있었으니깐.

아저씨를 다시 만나면 십수 년 전 그때 정말 죄송했다고,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진짜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나는 좋아하는 걸 말할 때도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는 좋아하지 않을까 봐. 무엇이 좋다고 말하면 나를 그런 것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길까 봐. 지금은 좋아하지만 나중에 마음이 완전히 바뀔까 봐. 별별 창의적인 걱정을 다 하느라 다소 뾰족하거나 거친 것들은 뒤에 숨기고, 뭉툭하거나 부드러운 것부터 소개할 때가 많다.

물론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거짓말하진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의리와 예의는 확실히 지킨다.

역시. 좋아하는 마음은 변해도 진심을 다했던 덕질은 늘 뭔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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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내가 뭐라고.

"보통 사람들은 각자의 호불호好不好라는 게 있잖아? 그런데 너는 호호호好好好가 있는 것 같아."

"너는 웬만하면 다 진심으로 좋아하잖아.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어떤 건 그냥 좋아하고, 다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걸 좋아하다가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좋아했던 기억과 감정을
더는 잊지 않기 위해
자꾸 나만의 리스트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좋아하는 경험은 늘 귀하고 특별한 거니까.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매번 주장 토랜스(커스틴 던스트 분)의 거침없는 밝음과 지치지 않는 쾌활함에 완전히 반해버렸고, 어떤 방해물이든 다 씹어 먹을 듯한 미시(엘리자 더쉬쿠 분)의 당당함과 자신만만함에 끝 모르고 빠져들었으며, 늘 우아하고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는 아이시스(개브리엘 유니언 분)의 여유와 카리스마에 기꺼이 압도당했다.

너무나도 멋진 그녀들을 진심으로 닮고 싶었다.

서로 치열하게 부딪히고 깨지는 와중에도 절대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소녀들.

그렇게 더 용감하고 강력해져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만드는 소녀들. 그런 무시무시한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어찌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나란 사람은 이런 멋진 영화를 무려 10여 년이나 모른 척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좀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더 많이 응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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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올랜도 열린책들 세계문학 25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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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올랜도! 올랜도! 아~ 이 책을 읽는 동안 일상생활을 안 하고 이 책만 읽고 싶었다. 무릉도원에 있으면서 이 책을 읽는 상상을 하며 천천히. 현실은 그와 반대였지만,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그 수많은 마술 같은 순간들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울프는 누구며 어떻게 이런 책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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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2-02-16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읽고 싶네요!!

라로 2022-02-16 20:08   좋아요 1 | URL
저는 너무 좋았어요!! 읽고 리뷰 써주세요~~.^^ (막 조른다,;;;;;)

새파랑 2022-02-16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울프의 두번째 책으로 올랜도를 읽고, 그 다음에 등대로랑 델러웨이 부인을 읽었는데, 등대로랑 델러웨이 부인은 정말 좋고 올랜도는 어려웠는데 라로님은 반대시군요 ㅋ 제가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좋을까요? ^^

라로 2022-02-16 20:08   좋아요 3 | URL
저랑 반대로 읽으셨군요!!^^ 저는 댈러웨이 부인 먼저 읽고 그 다음이 등대로,, 그리고 올랜도를 읽어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다르니까요.. 제게 울프는 딱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의 작가 이미지였는데 완전 반전이잖아요!!! 얼마나 응큼하고 재밌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마술같고,,, 정말 작가의 이미지와 달라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너 그런 사람 아닌 줄 알았거든요?? 뭐 그러면서 읽는 거요.^^;;
저는 다시 읽고 싶은 책이에요, 가능하다면 자주..^^;;

mini74 2022-02-16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대때 읽다 포기했던 책ㅠㅠ 라로님 글 읽으니 어디선가 찾아내서 기필코 읽고싶은 맘이 생깁니다 ㅎㅎ 죽은 책도 살려내시는 진정 북플계의 간호사님이십니다 ~~ㅎㅎ

라로 2022-02-16 22:15   좋아요 2 | URL
20대의 저는 이 책을 들어본 적도 없으니 미니님이 존경스러워요!! 저는 무지 그 자체였거든요. 기필코 찾아서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미니님처럼 예술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한편으로 예술적이거든요, 제 생각에.^^
책의 간호사,,, 오홋 좋은걸요!!!!

psyche 2022-02-18 0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저는 등대로도 델러웨어 부인도 올랜도도 하나도 안 읽었습니다. ㅜㅜ 무척 부끄럽네요.

라로 2022-02-18 15:42   좋아요 0 | URL
부끄럽긴요,, 저도 올 처음 읽기 시작했는데요,, 근데 올랜도 전 너무 재밌어요,,, 다른 책은 좋았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파도 빨리 읽고 싶은데,,, 제 영어 실력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올랜도는 기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걸어갔는데 아마 화장실에 갔을 것이다.

성이 달라짐으로써 미래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정체성이 바뀌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올랜도는 서른 살까지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어 이후 여자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대에는 자신이 텅 빈 커피 잔과 담배 없는 파이프를 앞에 놓고 마시며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해야 했던 것을 기억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빵 한 조각을 두툼하게 자른 뒤에 러스텀의 파이프가 비록 소똥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한 모금 피워 보겠다고 청했다.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집시들에게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가장 가까운 의미를 가진 표현이 그것이다.)

그녀는 산에 올랐고, 골짜기를 배회했고, 시냇가에 앉았다. 그녀는 언덕을 성벽에, 비둘기 가슴에, 암소 옆구리에 비유했다. 그녀는 꽃을 에나멜에 비유했고, 풀밭을 닳아서 얇아진 터키산 양탄자에 비유했다. 나무들은 시든 할망구였고, 양은 회색 바위였다. 모든 사물이 실은 뭔가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산꼭대기에서 작은 호수를 찾아냈고, 거기에 숨겨져 있을 듯한 지혜를 찾아내기 위해 몸을 던질 뻔했다. 산꼭대기에서 저 멀리 마르마라 바다 너머의 그리스 평원을 바라보면서(그녀의 시력은 놀라웠다) 분명 파르테논 신전일 것이라 짐작되는 희고 기다란 줄 한두 개가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를 알아보았을 때, 그녀의 동공과 더불어 그녀의 영혼도 확장되었다. 그녀는 자연의 신도들이 모두 그렇듯이 산의 장엄함을 공유하고 초원의 평온함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붉은 히아신스와 자주색 붓꽃에 마음이 동해서 자연의 선함과 아름다움에 황홀해하며 소리쳤다. 다시 눈을 들어 날아오르는 독수리가 보이면 그것이 느낄 환희를 상상하며 자기도 그런 환희를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별과 봉우리, 횃불이 제각기 자기에게만 신호를 보내 준 듯이 인사를 보냈다. 마침내 집시들의 천막에 들어와 깔개에 드러누워서 그녀는 다시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음직스러워! 먹음직스러워!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이처럼 불완전해서 〈아름다워〉라고 말하고 싶을 때 〈먹음직스러워〉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고 역으로도 마찬가지라 해도, 사람들이 어떤 경험이든 혼자 간직하기보다 조롱과 오해를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젊은 집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믿는 것을 그녀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현명하고 경험 많은 인물이었지만 그 사실은 충분히 격분할 만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지냈던 올랜도는 이런 견해 차이가 드러나자 혼란스러웠다. 자연이 아름다운 대상인지 아니면 잔인한 대상인지 그녀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자연 그 자체에 내재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에게 존재하는지 자문했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면서 실체의 본질에 관한 물음을 던졌고, 거기서 진실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갔으며, 그것은 결국 사랑과 우정, 시에 대한 물음으로 (고향의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나날들처럼) 이어졌다. 이런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하다 보니, 자기 생각을 단 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형편이라서 펜과 잉크에 대한 갈망이 전에 없이 강렬해졌다.

그녀는 (글로 쓰인 단어는 공유된다는, 글 쓰는 사람들의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소리쳤다

방은 한 칸만 있어도 충분하며 한 칸도 없는 편이 더 나은데, 365개의 침실을 짓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이 공작인 것이다.

인간의 가슴에서 가장 강력한 열정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믿는 대로 믿게 만들려는 욕망이다. 자신이 더없이 고귀하게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이 저급하게 평가한다는 자각만큼 그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 버리고 그의 마음을 분노로 채우는 것도 없다.

한쪽 사람들과 다른 쪽 사람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고 어느 교구가 다른 교구의 몰락을 열망하게 만드는 것은 진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려는 욕망이다.

올랜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집시들을 떠나 다시 대사가 되는 것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잉크도, 종이도 없고, 탤벗 가문에 대한 존경심이나 수많은 침실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했다.

그때는 그녀가 쫓아갔고, 지금은 그녀가 달아났다. 어느 쪽이 더 큰 희열을 느낄까? 남자가 혹은 여자가? 어쩌면 똑같지 않을까? 아니, (선장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거절하며) 거절하는 것이, 그리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그를 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저항하고 순응하는 것, 순응하고 저항하는 것보다 더 절묘한 즐거움은 없으니까.〉

천성적으로 솔직했고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것은 무엇이든 혐오했기에 그녀는 거짓말을 따분하게 여겼다. 거짓으로 말하는 것은 에둘러 빙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청년이었던 시절에 여자들은 순종적이고 순결하며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이 기억났다. 〈이제 나는 그런 욕망에 대해 내 몸으로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녀는 생각했다. 〈여자들이 (내가 여자로서 짧은 기간에 경험한 것으로 판단하자면) 순종적이거나 순결하고,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천성이 아니니까. 여자들은 삶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런 매력을 더없이 따분한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어. 머리치장만 봐도 그래.〉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오전에 한 시간은 걸릴 거야. 거울을 들여다보는 데 또 한 시간이 걸리고. 코르셋을 하고 끈을 졸라매고. 몸을 씻고 분을 바르고, 실크 옷을 벗고 레이스를 입고, 레이스를 벗고 실크 드레스를 입고.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순결해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짜증이 나서 그녀는 발을 휙 쳐들었는데, 종아리가 몇 센티미터쯤 드러났다.

〈다른 성과 비교하면 우리는 무식하고 가난해.〉 그녀는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문장을 이어 가며 생각했다. 〈그들은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알파벳도 알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어. (이렇게 시작하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지난밤에 그녀를 여성 쪽으로 밀어낸 무슨 일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결국 일말의 만족감을 느끼면서 남자로서보다 여자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들은 돛대에서 떨어지지.〉 여기서 그녀는 큰 소리를 내며 하품하고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제자리에 집어넣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마지막 문장 끝에 기어 들어온 한 단어, 사랑에서 멈췄다. 「사랑.」 그녀가 말했다. 그 즉시 ─ 사랑은 이렇게나 성급하므로 ─ 사랑은 인간의 형태를 띠었다. 이렇게나 사랑은 혈기 왕성하다. 다른 생각들은 기꺼이 추상적 개념으로 남아 있는 반면에 이 생각은 피와 살, 베일과 속치마, 스타킹과 조끼를 걸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여전히 여자였다.

참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그러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여자에게는 잘 어울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후 더퍼 씨가 양피지 문서를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개들이 짖어 대고, 사냥꾼들이 뿔피리를 불고, 안뜰에 어수선하게 몰려든 사슴들이 달을 보고 짖어 대는 바람에 그리 진전되지 않았다.

하인들은 돌아온 올랜도가 자신들이 예전에 알던 올랜도가 아니라는 의혹을 한순간도 품지 않았다. 혹시 인간의 마음에 어떤 의혹이 있었다 해도, 사슴과 개들의 행동을 보면 그런 의혹이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

온갖 교감 중에 신과의 교감이 가장 불가해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기도서를 읽고 담배를 피우면서 머리카락과 빵 껍질, 핏자국, 담뱃재, 이런 인간적인 쓰레기를 보고 있자니 매우 사색적인 마음이 일어나서, 비록 통상적인 신과의 교섭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 상황에 적합한 경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 신들 중에서 오로지 하나의 신이 있고, 여러 종교들 가운데 오로지 자신의 종교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더없이 교만한 가정이다.

세상의 누구 못지않은 경건한 열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죄와 자신의 정신 상태에 스며든 결함에 대해 숙고했다.

시인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도달한다.

우리는 우리의 말이 우리의 생각을 감싸는 더없이 얇은 외피가 될 때까지 말을 빚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질구레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마음이란 잡다한 것들이 모여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이지!

〈만일 이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구석이 있군.〉 올랜도는 난로망 맞은편에 앉은 대공을 쳐다보며 이제 여자의 관점에서 속으로 말했다.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않게 빈번히, 터무니없이 운다는 것을 올랜도는 남자로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자기들 앞에서 남자들이 감정을 드러낼 때 충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차차 깨달았고, 그래서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한창때의 멋진 아가씨가 되어 봐야 무슨 소용이야?〉 그녀가 자문했다. 〈매일 오전 내내 대공과 함께 청파리를 지켜봐야 한다면 말이지?〉

게임에서 속이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웃었다. 대공이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웃었다. 대공이 욕을 퍼부었다. 그녀가 웃었다. 대공이 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

소음 이후의 정적이 더욱 깊다는 사실은 아직 과학적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 고백을 들은 직후에 외로움이 더 짙어진다는 사실은 많은 여자들이 증언할 것이다.

글 쓰는 행위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자기 외모에 대한 허영심, 안전에 대한 불안감, 이런 사실은 남자 올랜도와 여자 올랜도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조금 전에 진술한 말이 전혀 진실하지 않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그녀는 여자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자기 두뇌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해졌고, 또 여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자기 외모에 대한 허영심이 조금 더 커지고 있었다. 어떤 감성은 두드러지게 커진 반면에 어떤 감성은 점점 줄었다. 그런 변화는 의상의 차이와 큰 관련이 있다고 어떤 철학자들은 말할 것이다. 의상이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단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의상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우리에 대한 세계의 관점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우리는 대접을 받을 때 보답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올랜도는 무릎을 굽혀 절했고, 그의 뜻에 순응했고, 그 선량한 남자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그러므로 옷이 우리를 입는 것이지, 우리가 옷을 입는 게 아니라는 견해를 많은 사실이 뒷받침한다.

우리는 팔이나 가슴의 모양새에 맞게 옷을 만들지만, 옷은 우리의 마음과 두뇌, 혀를 그것에 맞게 만들어 낸다.

남자는 세상이 자신이 사용하도록 만들어졌고 자신의 기호에 맞게 형성된 것처럼 세상을 똑바로 직시한다. 그에 반해 여자는 미묘한 눈으로, 심지어 의혹을 품은 눈으로 세상을 곁눈질한다. 그들이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세계관은 동일했을 것이다.

양성 간의 차이란 다행히도 매우 심원한 것이다. 의상은 그 아래 깊이 숨어 있는 것의 상징에 불과하다. 올랜도로 하여금 여자의 옷과 여자의 성을 선택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어쩌면 여기서 그녀는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지만 명백히 표현되지 않는 것을 유난히 솔직하게 ─ 솔직함은 실로 그녀의 천성이었다 ─ 표현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양성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뒤섞여 있다. 어느 인간에게서나 한 성에서 다른 성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남성이나 여성의 모습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오로지 의상밖에 없으며, 성의 밑바닥에는 위에 있는 것의 정반대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녀는 가사(家事)를 몹시 싫어했고, 여름철에는 새벽에 일어나 해가 뜨기도 전에 들판으로 나가던 것을 그들은 주목했다. 농작물에 대해 그녀만큼 잘 아는 농부는 없었다. 그녀는 누구 못지않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었고, 위험한 게임을 좋아했다. 말을 잘 탔고, 육두마차를 최고 속도로 몰아 런던 브리지를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처럼 과감하고 활동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면 한없이 여성스럽게 가슴을 졸인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그녀는 소소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곤 했다. 지리에 해박하지 못했고, 수학을 참을 수 없어 했으며,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변덕스러운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가령 남쪽으로의 여행은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올랜도가 대체로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인지는 분간하기 어렵고, 지금은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사교계란 솜씨 좋은 주부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뜨겁게 달여 내놓는 음료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딸을 가르쳤다. 어느 성의 교육에서든 몸가짐의 지식,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절하는 기술, 칼과 부채를 다루는 솜씨, 이빨 관리, 두 다리를 품위 있게 관리하는 기술, 무릎을 유연하게 구부리는 방법, 방에 들어오고 나갈 때의 예법 등등 사교계에 있었던 사람에게 즉시 떠오를 만한 수천 가지 기술이 포함되지 않으면 완벽하지 않았다.

그녀는 필요한 예절에 전문적으로 숙련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멍한 구석이 있어서 때로 어설프게 행동했다. 그녀는 드레스 옷감을 생각해야 할 때 시를 생각하곤 했고, 여자치고는 너무나 성큼성큼 걸었고, 느닷없이 행동하는 바람에 때로 찻잔을 떨어뜨렸다.

그녀에게 연인은 많았지만, 결국 그 나름대로 어떤 의미가 있는 삶은 그녀를 비켜 갔다. 「이것이?」 그녀는 물음을 던졌지만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걸까?」 그녀는 어쨌든 문장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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