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망원경의 그 엄지손톱만 한 작은 렌즈로 몇억 광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에 놀라고, 지구가 그리고 우리 지구인이 우주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에 놀라며 겸손해지고,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도 신의 존재와 창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대체 누가 이걸 다 여기 우주에다 올려놨을까 감탄합니다.

그가 그렇게 별을 보러 다니면서 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었어요. 자신을 남에게 맞추는 일, 그는 그것만은 결코 하지 않았어요. 그가 요새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원하면 일단 시작하라!’ 그게 그의 신조였어요. 그가 얼마나 막무가내였느냐 하면, 대학 때 그는 회기동에 살았어요. 밤에 방에 자려고 누워있다가 무심코 시계를 한 번 봐요. 그때 머릿속에 청량리역 막차 시간이 임박했단 생각이 스치고, 그러고 나면 그는 뛰어나가고 말아요. 막차가 떠나기 전에 별을 보러 서울을 떠나 어디론가 가기

겨울 산의 느낌은 묘했습니다. 날씨가 맑은 날은 견딜 만했지만 흐린 날에는 산은 온통 무채색이 돼버립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람?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라고 묻게 되면, 일단 그 생각이 들면 끝입니다.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그 질문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이람?’ 이 질문은 아직 나 자신이 그 짓을 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단 뜻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산골에 살았기 때문에 그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소나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눈이 쌓이는 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바람이 따뜻한 곳에서 추운 곳으로 부는지 아니면 반대인지 그 방향을 보고 그날 내리는 눈의 속성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천문인마을의 주인이 두 마리 까마귀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고라니의 발자국과 말똥가리의 날갯소리도 알게 되었고, 추운 겨울날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 떨어져있는 집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우편배달부의 수고도 알게 되었어요. 인가에서는 멀리 떨어져있지만 자연과는 붙어있는 옛길의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고, 겨울 강의 얼음이 갈라지고 물이 솟아오를 때 얼마나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천문인마을 옆 주천강이 얼어붙은 것을 봤을 때, 그러니까 물줄기며 물살 그대로 얼어붙은 겨울 강을 봤을 때, 그는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아! 내가 여태 왜 이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그 뒤로 그는 겨울 강 트레킹을 가곤 합니다. 얇은 얼음을 밟으면 물에 빠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는 마른 나무를 골라서 불을 붙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어요.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얇아도 절대 깨지지 않는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두꺼워도 금세 깨진다.’ "여기서 얼음이란 말은 사랑으로도 바꿀 수 있고 신뢰로도 우정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어요.

"저기 보이는 저 능선이 어디로 연결되는가, 저 밑에 어떤 마을을 품고 있을까 헤아려보는 것이 저는 좋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오를 산봉우리만 보고 생각하면서 등산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3차원이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깊이였습니다. 눈으로 볼 때 우리는 3차원의 깊이 속에 별과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작은 빛이 실은 몇천억 개의 수많은 별들이 모여있는 것이란 것도 잊지 말고 살아달라고 말합니다.

‘이 우주엔 도저히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다 볼 수 없지만, 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며 사는 것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는 것은 숭고한 것이다.’

그는 망원경의 그 엄지손톱만 한 작은 렌즈로 몇억 광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에 놀라고, 지구가 그리고 우리 지구인이 우주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에 놀라며 겸손해지고,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도 신의 존재와 창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대체 누가 이걸 다 여기 우주에다 올려놨을까 감탄합니다.

별빛을 보는 것은 시간을 되돌려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빛은 벌써 오래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 아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그 조상들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별빛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으나 잃었던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했을 때 즐거운 것, 그걸로 굳이 뭘 이루려고 하지 않는 것, 그 세계에 들어가 끝없이 헤집고 다니고 싶게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나는 스물다섯 살부터 태어난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전까지의 삶은 삶으로 치고 싶지 않다는 거죠.

내가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전혀 모르고 살았던 시간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하겠기에 우린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별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을 하나로 보지 않고 둘의 묶음으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납니다. 어둠 속에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히 그날 밤하늘에 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구간 안의 불빛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이렇게 두 가지 빛—내부의 불빛과 외부의 별빛—이 만나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블로흐의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황량한 땅 밑에 구리 같은 소중한 것이 어마어마하게 묻혀있다는 것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들은 별 옆에 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사막에서 별은 별 뒤에 있습니다. 모든 별은 자기 뒤에 또 다른 별을, 또 다른 별을, 또 다른 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한이었습니다. 그것은 까마득한 깊이였습니다. 모든 별은 자기 앞에 별을, 또 다른 별을, 또 다른 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거나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 가장 아름다운 사람, 가장 힘이 센 사람, 가장 솜씨가 좋은 사람,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은 가장 존경을 받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불평등과 악덕으로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

이러한 최초의 선호로부터 한편으로는 허영심과 경멸이 다른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선망이 유래했는데, 그 새로운 누룩곰팡이에 의한 발효는 마침내 행복과 순수에 치명적인 화합물을 발생시켰다.
— 『인간 불평등 기원론』, 루소.

불평등한 재능으로 서로서로를 판단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오로지 우리가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만 자신이 존재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서 우린 서서히 자기 존중감을 잃게 됩니다. 자신을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루소는 남의 판단으로만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내는 사람을 경멸했습니다.

그러자 만나고 싶은 사람, 할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지구에 있는 꿈의 주소지에서 꿈 같은 이야기들을 한도 끝도 없이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원시적 재능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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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기억 속에 있는 신데렐라는 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궁금했어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날 밤의 공주는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사랑이란 뭔가 생각했어요. 남과 다른 눈을 가지고 자신을 볼 수 있음, 그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마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사랑을 믿기로, 마법을 믿기로, 용기를 내기로 했어요.

내 동료 피디 중에 좀 특이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대만에서 자랐고 영어를 쓰는 인터내셔널스쿨에 다녔는데 중국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합니다. 그는 오로지 한국어만 할 줄 알아요.

눈에 밟힌다는 말은 말이야. 뭔가가 눈에 발자국처럼 꽉 새겨진다는 말이야.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런데 눈에 밟히는 게 많은 사람은 눈동자도 많아져. 눈에 밟히는 것이 늘어날수록 눈동자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법칙이 우주에 있기 때문이야.

공작새는 눈에 밟히는 게 많았던 새였기 때문이야. 그래서 공작새가 날개를 한 번 펼치면 그렇게 아름다운 거야. 공작새가 평생 본 세상이 다 드러나니까.

파브르에겐 꿈이 하나 있었어요. 그는 어느 날 한숨을 쉬면서 말했어요. "아, 천 겹 파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다른 눈으로 세상을 한 번 보는 것, 그건 이루기 아주아주 어려운 꿈인 거지요.

우린 우리라는 감옥을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우린 나 자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하늘이 아무리 깊고 광활해도 우리는 우리한테 허용된 하늘밖에 못 볼지도 몰라요.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슬퍼져요. 할 수 있는 한 얼굴을 하늘로 들고 그냥 걷고 싶어져요.

우리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상상하기는 그렇게나 어려운 겁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 그렇게나 어려운 것입니다.

"너는 지금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니?" 우리는 가끔 회사 앞 커피 가게에서 마주칩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속으로 말을 겁니다. 몇 년째요.

때마침 그 시절에 청춘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다 겪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씁쓸하게 끝나갔고, 아버지는 정리해고 위험에 시달렸고, 그 와중에 좀 살아보겠다고 목돈을 투자했다 실패했고, 집안 분위기는 날마다 어두워지고.

그렇지만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마음잡고 열심히 살려고 해도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몰랐단 것입니다. 천문학은 공부를 해도 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제 뒤를 기분 나쁘게 따라다니다가 불쑥불쑥 찾아왔습니다.

군대 갈 때 목표 세 가지를 세웠습니다. 책 100권을 읽는다. 군대 후배들을 때리지 않는다.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 제대하고 나올 때 결국 그 꿈 세 가지를 다 이루고 나왔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무슨 일을 할까, 즉 직업에 대해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찬찬히 느린 동작으로 돌아봤습니다. 그렇게 돌아보면서 서서히 저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채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강했습니다. 연민과 동정은 제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었습니다. 특히 가난이나 아니면 환경 때문에 원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강했습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 애들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애들인데, 제 눈엔 그 아이들의 슬픔이 보입니다. 눈에 보이면 그 다음엔 눈에 밟힙니다. 눈에 보이면 친구가 됩니다. 항상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겁니다.

저는 IMF를 대학교 1학년 때 겪었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겪은 아이들에겐 그것이 트라우마였습니다. 그들은 자칫 잘못하면 미래가 없음을 경험했습니다.

지방대 학생들일수록 ‘내 탓이야’가 심합니다.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 되는 거야. 내가 지방대 온 탓에 취업이 안 되는 거야. 지방대 왔으면 그걸 만회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탓이야. 차별을 뛰어넘게 능력을 길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약자들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질 싸움은 일단 피해야 합니다. 그건 우리 안에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있기 때문입니다.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때문에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을 못 보고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취업하는 데도 돈이 또 따로 드는 거죠.

노조에도 빠져있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또 우리 눈에 보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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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고 난 뒤 포시는 잔인하게 살해당해버립니다. 밀렵꾼들의 소행일 거란 추측만 남았습니다. 저는 책을 다 읽은 후에 서문을 한 번 읽어봤습니다. 그러고 나서 할리문 열대우림에서 멸종 위기의 긴팔원숭이를 연구한다는, 삼십 년쯤 후에 대작을 지을지도 모르는, 결국 긴팔원숭이와 운명을 함께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김산하 연구원에 대해 잠시 묵념을 했습니다. 그가 살해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안개 속의 긴팔원숭이와 연구원’ 같은 제목의 책은 나오지 말아야 할 텐데.

그전에 그의 이름을 몇 번 들었지만 한 번도 『안개 속의 고릴라』에 나오는 그 김산하랑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그런데 신기하게 보는 순간 단박에 "아!" 알아봤습니다. 나는 그의 멀쩡한 사지를 보니까 반가웠습니다. 만져볼 뻔했습니다. 다음이 그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서 토요일 12시쯤 학교 끝나고 집에 느릿느릿 걸어올 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있고 문방구의 먼지 낀 창 너머로 장난감들의 알록달록한 빛깔들이 눈에 들어오고 생각이라곤 ‘오늘은 뭘 하고 놀까?’ ‘집에 가면 엄마가 뭘 맛있는 걸 해놓았을까?’ 그런 것뿐인, 그때의 여유와 에너지가 좋았습니다.

아, 내가 걷는 걸 좋아하는구나. 걷는 게 나에겐 치유구나. 좀 더 넓혀서 말하자면 나는 오감을 다 사용해야 하는구나. 사실 책을 읽을 때조차 가끔 하늘을 봐야 합니다.

젊은 세대라면 90~99퍼센트 정도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습니다. 어쩌다 책을 읽는 사람이 한둘 끼어있는데 그것도 대개 자기계발서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만이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그 무료한 모습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것은 일종의 포르노를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스마트폰의 동작은 서랍 열고 닫기 같은 겁니다. 방 안에 앉아있다가 괜히 일어나서 한 번 옷장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요. 이런 인조적인 인터페이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저는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MP3로 음악을 듣는 것도 그만뒀습니다. 음악에게 미안합니다. 음악을 평가 절하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인조적 인터페이스들만 보는 것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 혹은 자기 세계만 들여다보는 형국입니다.

다른 나라에 다녀오면 우리가 얼마나 자기 세계에 콱 박혀있는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자기 것에 사로잡혀있지 않거나 자기 것을 갖고 있지 않아야 딴 걸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책이 좋았고 도서관이 좋았습니다. 도서관에 있는 게 좋아서 고3 때 학자가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책이 아니라 책의 향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킁킁 동물처럼 향기를 맡으면서도 고매하게 다뤄야 하는 어떤 것, 그것이 제겐 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마니아가 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한다면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에는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사랑 말고는 다른 말로 표현을 못합니다. 경쟁도 없습니다.

저에겐 항상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계획을 인조적으로 만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나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이 되기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미래완료형 때문에 희생을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까치를 연구할 때는 둥지까지 크레인을 타고 올라갑니다. 하루는 엄마 까치가 외출하고 난 둥지 안을 쓱 들여다보는데 둥지 분위기가 너무나 가정적이었습니다.

그 둥지를 보는데 뇌세포 어딘가에 수십 년간 깊숙이 파묻혀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려서 스리랑카 해변을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달렸는데 그때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제임스 라스트 악단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이 흘러나오던 바로 그때가 떠오른 것입니다. 까치 둥지의 가정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비비원숭이 무리가 있는데 한 마리는 따로 놉니다. 한 마리는 무리를 따라가지 않기로 합니다. 그럼 우리 생물학자들은 따로 노는 한 마리는 보지 않기로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따로 노는 한 놈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겁니다. ‘쟤는 왜 그럴까?’ 그래서 기존의 데이터 중심의 정량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에 투신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영장류의 특징은 호기심과 지루해함의 반복입니다. 처음엔 강력하게 호기심을 느꼈어도 그것이 해소되면 이내 지루해합니다.

자기의 평범한 하루, 그 하루의 행적이 과학자들의 심각하고 진지한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긴팔원숭이는 모르겠지요.

들어가고 나오고 또 채워지고 비워지고 정체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이디어의 원천인 셈이고, 이 흐름이 표현의 의지를 키우고 생명력이 됩니다.

자바 긴팔원숭이는 시적인 동물입니다. 나무 위 생활에 매우 잘 적응했습니다. 긴팔원숭이가 나무 위에서 점프-스윙-착지하는 동작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힘을 잘 분배해서 나무 위에서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그만한 무용이 없는 듯합니다. 넘실대는 열대우림의 나뭇잎 위에서 함께 넘실대는 아름다운 그놈에 대한 연구가 없어서, 학자들끼리 서로 그놈을 연구해야만 한다고 지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긴팔원숭이는 서너 마리가 그룹을 이루어 사는데 암수 성체가 있는 핵가족입니다. 긴팔원숭이는 큰 나무가 있는 곳에 삽니다. 그런데 저지대가 점점 개발이 되면서 서식지를 잃고 고지대로 올라갑니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더 넒은 영역을 필요로 합니다. 자기 서식지를 갖지 못한 채 유랑하는 긴팔원숭이는 그렇게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긴팔원숭이는 성인이 되면 독립합니다. 하루는 그렇게 독립을 앞둔 긴팔원숭이가 저희 연구원을 바로 앞에 와서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고 갔습니다.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듯이요. 그러더니 정말 그다음 날부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생은 미래완료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 게 뭐야?" 하고 맥주 한 병 마시고 쉬고 나면 그만이었습니다.

나무 꼭대기엔 긴팔원숭이가 있고 그 위엔 독수리가 날고 있는 그 풍부함. 그 많은 사건들의 집합체인 자연을 보면서 과학을 통해 역사에도 기여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하나의 생물이 갖는 의미는 서식지에 대한 한 가지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랑이만 해도 인도네시아 호랑이가 다르고 시베리아 호랑이가 다릅니다. 하나의 생명은 그 서식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의 생명은 그 서식지가 낳은 걸작입니다.

긴팔원숭이 수도 점점 줄어 이제 4천 마리가량 남았습니다. 동물 한 종이 멸종한다는 것은 모나리자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매일매일 태워 없애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표현인, 하나의 걸작인 위대한 생명체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제겐 제 자신을 키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에게 과제를 부여하는 겁니다. 어떤 과제냐면 하나의 동물을 관찰하듯 자기를 관찰한다는 겁니다. 우리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다른 생명체가 그러하듯 우리 인간에게도 자기한테 맞는 해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해법을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의 원래 관심사에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원래 관심사란 것마저 불투명하게 되어버렸다면 어린 시절의 자기로 되돌아가 보는 겁니다.

저는 자신을 키우려는 자는 동물의 장점과 인간의 장점을 다 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의 장점은 자신을 삶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는 겁니다. 동물은 자기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구아나가 바닥에 누워 햇볕을 쬐는 것을 보십시오. 저는 이것을 보고 동물 세계에도 럭셔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동물들도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향유합니다. 동물들에게도 자기 삶을 즐기는 시간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자기 세계를 향유함에 있어 당당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당당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장점은 작가적 시점을 가질 수 있단 겁니다. 즉 삶에서 좀 물러서서, 좀 떨어져서 마치 하늘에서 자신을 보듯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를 살펴보면 저의 서식지는 자연과 도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그 안에 여유로움이 있으면 됩니다.

이론만큼이나 실천이 중요했습니다. 제인 구달에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학계를 박차고 나와 환경운동을 합니다. 그녀는 제 눈에 이 세상을 조금은 다른 곳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일단 저는 절대로 음식을 남기지 않습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아무리 층수가 높아도 적어도 내려올 때는 타지 않습니다.

저에겐 삶의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왜 디테일이냐고요? 그건 간단합니다. 우리는 결국 디테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머어마하게 중요한 정책 결정권자도 아니고, 우리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삶의 디테일뿐입니다.

사람들이 동물들이 근처에 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뭘까요? 제인 구달은 마이크를 잡고 바로 이런 것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은 인공적인 미학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모든 서식지는 오로지 거기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곳에서처럼 살 수는 없는 것들을 품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서식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장소만이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아닙니다. 아예 인간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간의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쉴 만한 곳, 살아갈 곳이 되는 거죠. 자신의 친구나 애인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이 하나의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밀고 나가려면,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했었다는 것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자신감 그 이상입니다. 자기를 뛰어넘게 합니다. 세계가 바뀌는 겁니다.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이것이 한 인간에게 갖는 의미는 엄청납니다.

한국에서 사랑은 몸값 계산처럼 돼버렸습니다. ‘몸값 떨어지기 전에 빨리 결혼해야지.’ 같은 것 말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오염시키는 겁니다.

사랑은 요철 맞추기 같은 겁니다. 얼마나 꽉 들어맞느냐의 문제입니다.

‘사소하지만 영원한 의미를 지닌 방식으로 서로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이 도시의 서식지, 마이크로 하비타트입니다.

‘오늘은 내가 낼게.’ 하고 나갑니다. 그럼 밥을 얻어먹은 사람은 뒷사람 것을 내줍니다. ‘나는 아까 다른 분이 내줬으니 내가 네 걸 낼게.’ 이러면서요. 저는 그렇게 앞사람이 뒷사람 밥값을 내주는 것이 연달아 일곱 차례까지 이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인생 별거 아닙니다. 밥상에서 자기 자리를 조금 좁혀서 같이 앉는 겁니다. ‘너도 같이 먹자.’ 그러는 겁니다. ‘한번 드셔보실래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가 정말 ‘나’로 읽혔습니다. 나를 거쳐 가는 자가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나를 거쳐 가는 자가 모든 희망을 버리게 된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지옥인 것입니다. 내가 타인의 지옥인 것입니다.

서식지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뿌리째 옮겨간다는 말입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것을 ‘이주의 열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가고 싶어 한다는 거죠. 그는 옮겨가는 것을 기준으로 욕망과 사랑을 구분했습니다. 욕망은 상대방이 내게로 오길 바라죠. 그러나 사랑은 다릅니다.

반대로 사랑에 있어 모든 것은 움직임 자체이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 대상에게 가서 그 안에 존재하려 한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타인을 향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탄다.
? 『사랑에 관한 연구』, 오르테가 이 가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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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원한 학생이기에 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동력인지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시절의 제가 바빴다기보다는 부지런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백 년씩 배우기만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의 촛불이 한 권의 책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꺼져버리지 않도록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면서 살면서, 살면서 배우면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 알게 된 것을 나눠 갖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눠 갖는 것이 ‘힐링’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서로의 지혜를 나눠 갖는 순간 발생합니다.

변영주 감독이 출사표란 단어를 썼는데 출사표는 사실상 어떤 판단을 내렸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녀가 출사표란 단어를 써서 좋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 꼭 필요한 자신만의 전투, 피하지 말아야 할 전투, 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읽고 들으면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때 우리는 자기에 대한 고백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할 때는 비밀을 털어놓는 것과 똑같이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이 도시에선 한 번 올라탄 화차에서 내리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탐욕 때문이든 시스템 때문이든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겪어내야 하는 것은 한 개인의 몸입니다.

불합리와 사회악이 최후에 남겨놓는 것은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법도 아니고,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한 개인의 완전히 까발려진 벌거벗은 몸일 뿐입니다.

이것은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실제로 내가 아닌 것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마음속에 더 많은 사람의 관점들을 현재화시킬수록, 그리고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까를 더 잘 상상할수록, 나의 대표적 사유의 능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나의 최종적 결정, 즉 나의 의견은 더욱 타당하게 될 것이다.
? 『칸트 정치철학 강의』, 한나 아렌트.

단테는 일찍이 사랑을 고백할 때 ‘천상을 바라보던 내 눈을 그녀의 두 눈에 고정시켰다’고 했지요. 이렇게 우리의 이상과 사랑은 현실에서 한 구체적인 몸으로 만납니다. 이상은 먼 것 같아도 또 그렇게까지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닌 겁니다.

우린 사실 나 자신을 아는 문제조차도, 괜찮은 인간으로 사는 것조차도 남의 손을 빌려야만 합니다. 남의 힘을 빌려야만 합니다. 저는 그런 의존성이 부끄럽기는커녕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은 아주 커다랗습니다. 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힘이 세다거나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훨씬 더 의지가 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독 속에서 아주 커다란 타인과 아주 커다란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결국은 나 자신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혼돈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언어에 그렇게 아주 기초적인 결속성을 표현할 단어들이 많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랑이나 생명 정도겠지요. 과학자들은 결국 명사가 아니라 동사만이 그런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살아간다. 사랑한다. 느낀다.’ 결국 움직임, 행동이 중요하다는 말일까요?

만화가는 창공에 빛나는, 그러나 내 손이 닿을 수는 없는 머나먼 별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때부터 제 진로는 확고부동했습니다.

공중목욕탕에서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때밀이 형에게 누구에게도 옮지 않는 병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질 않는데다가 제가 생각해도 괜히 내 몸이 사람들에게 미안한 겁니다.

중학교 때 「브이」라는 텔레비전 시리즈가 있었는데 거긴 파충류가 나옵니다. 제 별명도 브이였습니다. 제 친구들 눈에 제가 파충류와 별반 다를 게 없이 보였던 거죠. 그 피부병이 제게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납니다. 목까지 올라오는 티셔츠만 입었고 지금도 목을 움츠리며 걷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자신감이 있을 리가 없겠죠. 자신감뿐 아니라 존재감도 없었습니다. 키도 작아서 번호는 늘 8번 안쪽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웃으며 살아갈 동력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버지한테는 학원 간다고 말하고 광주 시내를 한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충장로가 먼데도 거기까지 계속 걸었고 양동시장에도 갔습니다.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난 고아가 아니었을까? 난 조금 더 비참했어야 해. 이런 정도의 시련으론 부족해. 이렇게 살 바엔 더 비참한 게 나아.’ 속에선 뜨거운 것들이 쉭쉭 올라왔습니다.

저는 술만 마시면 걸핏하면 남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비참할수록, 만족할 수 없을수록 속으로 수도 없이 다짐하는 겁니다.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진짜 나는 지지 않을 거야. 나는 순수 미술 공부도 오래했다. 나는 더 잘 그릴 거야.’ 왜 그렇게 끝없는 주문이 필요했던 걸까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것마저 무너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게 있는 단 하나의 재능은 그전이나 그때나 그림 그리는 것 하나뿐이었던 겁니다.

학원들에서 나온 잡지 같은 것을 보면서 내가 분명히 잘 그린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나처럼 그리는 사람은 분명히 흔하지는 않다. 지금 열심히 하면 다 나에게 쌓인다.’ 나는 또 다짐을 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잘 자라고 싶었습니다. 잘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눈에 불을 켜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화실 퇴근을 9시로 친다면 그 뒤 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잘랐습니다. 배경 연습, 습작 연습, 터치 연습, 잘 때까지 책 읽기. 저는 그것을 정말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시작하고 한 일주일은 힘들었는데, 한 달 지나고 두 달 지나고 제가 그려놓은 것들이 쌓이니까 방에 들어오면 정말로 묵직했습니다.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실은 저는 모든 걸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빚을 지고 있어도 누구에게라도 밥 한 끼 사줄 수 있었습니다. 월급날에는 술도 한턱 크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에 있어서는 그 무엇에도 양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차근차근 그러나 집요하게 데뷔 준비를 했습니다.

제 그림을 본 어떤 독자도 에너지를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심장이 따끔따끔 아팠습니다. 내 얄팍한 수를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챌 거야! 나는 온 세상에 대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어. 사라져버릴까?

혹시 누군가는 눈치챘을 수도 있었을까요? 주목받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해도 저도 주목 한 번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가운데 자리에 앉는 게 당황스러워도 나도 그 자리에 한 번 앉아보고 싶었습니다.

존재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존재감을 얻기 위해 언제까지고 시시덕거리며 비위나 맞춰주고 있을 수만은 없단 걸요. 나도 내 말을 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상대방이 편안해하는구나. 내가 자존감을 갖고 있어야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진짜 기뻐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야후의 주인공은 원래 테러리스트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저는 제 주인공한테 ‘네가 뭔데 테러를 해?’라고 물었지요. 그래서 실제 테러가 아니라 해프닝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바꿨습니다. 그때 속으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잖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잖아.’라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제가 보호하고 지킬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인 장모는 제가 떠돌이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서울에 홀로 와서 어떻게 살았나?" 저를 촌놈, 대학도 나오지 못한 놈이라고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그 존중이 제 맘을 돌려놓았을까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내가 깊이 의지해도 좋을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만화는 그런 제가 혼자서만 갖는 유일한 확신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수치스러워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인간일지 몰라.’라는 유일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만화를 그리면서 저는 점점 더 깊은 내적인 기쁨이란 것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매번 빈털터리로 시작합니다. 저에겐 저 자신을 학대하느라 여유 없이 살아온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아직도 만화 말고 다른 일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수준에 대한 공포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이니 본격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제겐 기쁜 만남이 많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미술학원에 유학시켜준 머나먼 고모부, 허영만 선생님보다 더 위대한 자극을 줬던 죽음의 배틀 친구, 그리고 심지어 노숙할 때 "이봐요. 여기서 자면 죽어요!"라고 저를 흔들어 깨우고 포장마차에 데려가 먹을 것을 사줬던 이름 모를 사람. 그리고 나의 아내. 장인 장모.

저를 학대하기만 했던 시절이지 타인을 위한 배려나 존중에 대해선 생각도 못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만화로 생각해보면 어떤 컷이든 그 그림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와 가치와 함께 갑니다. 저는 만화로 이젠 뭔가에 기여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은 제가 잘 아는 마이너의 세계와 관련된 일일 겁니다.

저는 거울을 앞에 두고 ‘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평생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합니다. 이제 그 뉘앙스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몸으로 태어나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뭔가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기의 길을 찾아낸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그걸로 뭘 하지?’라는 질문이 없는 겁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밖에 설명 못합니다. 게다가 누구랑 비교해서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마치 거미에게 "어떻게 거미줄을 잘 짜게 되었어?" 라고 묻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차라리 나도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게 확실히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정말 재능이라곤 달리기 하나뿐이지만 그마저 국가 대표급은 아니었기에, 예술가가 되는 게 아니라 삶을 예술로 만드는 문제에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 아무리 유일하고 필연적으로 보이는 일일지라도 끝없이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린 보통 확신이 있어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움직임은 확신이 아니라 질문에서 나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지?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이 몸으로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 이것이 자유의 질문입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는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나를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에겐 마음도 있고 심장도 있습니다. 그 질문을 던질 때 그것들이 다 움직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모습으로 태어난 것, 그 이유를 찾는 데 우리는 늘 결정적으로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지금 우리 자신의 삶에 우리가 아주 약간의 원인 제공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보다 힘센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하는 한도 안에서만 우리는 유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는 매일매일 묶여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시지프스이면서 동시에 반항하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가 어떤 필연성을 우리 삶에 부여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어떤 행동인가를 할 때뿐일 겁니다.

우리는 대체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합니다. 내가 원래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행동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데 행동 때문에 신념이 만들어진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만약 우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참아내기만 한다면 우린 우리 삶의 (진정한) 원인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관하는 대신 어떤 행동을 할 때만은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세계는…… 우리가 자신을 알기 위하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 거울이다. 요컨대 나는 세계가 나의 교과서가 되기를 바란다.
?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박홍규.

내가 당신 마음에 들고 당신에게 중요해진 건 내가 당신에겐 일종의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내 내면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요. 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어서 서로 답을 주고받고 서로 조응하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 같은 기인들은 괴팍하고 쉽게 마술에 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읽어낼 수도 없고 세상 어느 것 하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런 기인이 느닷없이 그를 정말로 응시하는 얼굴을, 그에게 어떤 대답을 줄 것 같고 어떤 친밀함을 풍기는 그런 얼굴을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게니우스는 어떤 사람이 태어난 순간 그의 수호자가 되는 신(수호천사)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아감벤의 말에 따르면 게니우스는 우리의 기원인데,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게니우스랑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즉 인간은 자아이자 자아가 아닌 것과 늘 함께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 게니우스를 느낍니다. 바로 감동할 때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왜 감동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때 ‘게니우스를 불안이나 기쁨, 안심이나 동요로 경험’합니다. 감동하는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특성을 내려놓고, 상황과 처지도 내려놓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되어봤다가 다시 한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되었다가 다시 누군가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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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소죽 끓이는 가게 앞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지요. 올라오는 김 때문인지 새벽 미명 때문인지 피곤 때문인지 흐릿해진 눈으로도 나는 아버지를 금세 알아봅니다.

소몰이꾼 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꾸준함이었습니다.

낮에는 돈이 오가는 걸 봅니다. 온갖 악다구니와 싸움박질과 욕설도 봅니다. 그러다 해가 지면 새벽까지 끊임없이 걷습니다. 다들 묵묵히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긴 호흡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시간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맘에도 낮에 내가 봤던 것이 뭔가 짧다는 걸 느낍니다. 낮과 밤이 빛과 어둠의 의미를 떠나 또 다른 의미로 정반대의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달밤에 새하얀 눈에 시장의 모습들이 반사되어 빙빙 돌아갈 때 그런 낮의 시간이 부질없고 누추해지고 덧없어지는 것입니다. 난 점점 한쪽은 싫어지고 한쪽은 좋아졌습니다.

난 시장의 시간과 오솔길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규칙과 자연의 규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규칙은 다른 개체에게 큰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뭐든지 허용되는 것 같았어요.

훗날 어른이 된 뒤에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저는 어렴풋이 알았던 겁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마치 시장의 일만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마치 시장의 일만 있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지만 사실 자연의 일도 있단 걸 말입니다.

난 숲을 걸으면서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종에 다 해당되는 규칙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생명체는 예외 없이 한 번 나면 한 번 죽는다거나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는 사실 같은 것 말입니다. 나는 그걸 거스를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가 공부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공부가 하고 싶었을 겁니다. 소 몰고 밤새 걸으면서도 단어를 외웠고 소 등 위에서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내 가는 길에 반딧불이가 어지럽게 날아다녔을까요? 하얀 눈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을까요? 나는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소년의 등판 위로 그런 빛이 어른거리고 있었죠.

빛과 소금이 되어라. 누구나 원하고 서로 하려고 하는 것은 피해라. 너도 나도 원하는 일에는 반드시 사소하게라도 이득이 있는 것이다. 그걸 피해라. 그 뒤로 나는 줄곧 내가 아니어도 남들이 모두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피해왔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 불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는 뼈 한 조각을 보면서 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걸 느껴야 합니다. 낙엽 하나가 떨어져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무 큰 것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조건 즉 인간의 규칙과 내가 따라야 할 자연의 규칙들 사이의 소통, 이것이 내겐 진정한 마음속 소통입니다. 저 시베리아 우데게족 최고의 신은 엔두리입니다. 엔두리는 바로 화합(harmony)의 신이죠. 내게 화합은 이런 모습입니다.

비트 한 채를 마련하면서 나는 올바른 길은 절대로 즉흥적으로 찾아지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사그락사그락 눈을 밟으며 너구리 가족이 지나가는 것, 저녁 식사는 했느냐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앙탈도 부리고 속삭이기도 하는 부엉이가 달빛에 젖은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것도 다 느낍니다.

바닥에 떨어진 눈송이가 다시 날아오르면 건들바람이 부는 겁니다. 작은 나무에 쌓인 눈송이가 날아가면 들바람이 부는 겁니다. 큰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눈이 수평으로 날리면 센바람이 부는 겁니다. 바닥에서 눈가루가 온통 날아오르면 큰바람이 부는 겁니다. 바다까지 용오름이 오르면 큰센바람이 부는 겁니다.

호랑이에게 공격당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바로 혼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아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또 어쩔 수 없이 더불어서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란 종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을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고 싶은 욕망과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이냐고 절규하고 싶은 순간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어쩔 땐 녹차 통에 적혀있는 상품 정보 글자를 읽고 또 읽습니다. 그때 글을 잘 썼느냐 못 썼느냐가 아니라 읽을 게 있다는 것, 그것만이 좋단 생각이 듭니다.

나는 산에서 고독하듯이 도시에서도 고독할 것이란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참지 못하고 도시에 전화를 겁니다.

산에서의 고독은 인간이 보고 싶어 생기고 도시에서의 고독은 거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어 생깁니다.

도시에서 중요했던 것들이 산에서는 사소해지고 도시에서 사소했던 것들이 산에선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잠복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겨우 알 수 있는 걸 미리 알게 해줍니다. 삶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퍼뜩 깨닫고 돌아가서 살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비트는 호랑이를 보는 곳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비트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다리는 겁니다.

호랑이만이 나를 초라하게 했던 겁니다. 호랑이는 항상 우리를 먼저 봅니다.

하쟈인은 나에게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자신의 의사를 따라 얌전히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 초라해져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난 그 초라함이 좋았습니다. 난 겸손해져버렸습니다. 어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 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죽음 직전의 경험 때문에 그는 살아있음의 취약함, 삶의 일시적인 속성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끌어안았던 것 같습니다.

노련한 어미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자식들을 볼 때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나는 그 밤에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꼈던 것 같습니다.

호랑이는 개체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자연의 법칙을 따릅니다. 호랑이는 욕구를 참을 줄 압니다.

자연은 투쟁하지만 정도를 넘어서진 않습니다. 인간만이 그 정도를 넘어섭니다. 호랑이도 자기 가족들까지만 돌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끝없이 연을 만들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 하고 자자손손 영원히 끝없이 뭔가를 누리려고 합니다.

우린 오솔길을 걷듯이, 마치 호랑이가 그런 것처럼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노동하고 먹고삽니다. 그러나 자아 속의 소통이 없다면 노동만 하고 살게 되고 맙니다. 자아 속의 소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마치 왼발을 든 채 정지 상태로 5분을 참는 것과 같습니다. 요가나 명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고 구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긴 흐름 속의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입니다.

콘텐츠는 항상 과정 중에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호랑이에 관한 기념비적 자연 다큐를 만들어온 박수용 감독입니다. 저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듣고 잊지 못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그가 가진 유일한 인생, 그의 일상이 우리 고민의 중요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좋습니다. 일상 따로 지혜 따로 꿈 따로가 아니라서 좋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했던가요?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도 잘 설명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더 큰 것을 필요로 했었던가요? 그는 오솔길의 끝에 사소한 것은 잊힌다고 했지만 그 오솔길의 끝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멀리 달려가야만 할까요? 거기에 이르기나 할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굴욕과 오해, 불편함과 쓸쓸함에 떨어야 할까요?

우리에게도 늘 어떤 식으로든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낮의 길과 밤의 길. 세상이 살라고 하는 길과 내가 살고 싶은 길. 우리 마음도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혼자이고 싶은 것과 함께이고 싶은 것. 용감해지고 싶은 것과 편안해지고 싶은 것. 싸우고 싶은 것과 고요해지고 싶은 것. 인정받고 싶은 것과 초연해지고 싶은 것. 뜨겁고 싶은 것과 서늘하게 마음을 비우고 싶은 것. 속하고 싶음과 벗어나고 싶음. 떳떳하고 싶음과 포기하고 싶음. 자부심과 자기 비하. 살고 싶음과 죽고 싶음.

누구에게나 영원히 기억하는 순간들은 있지 않을까요? 단지 우리는 그것을 종종 부정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시간을, 경험을 잃어버리는 방식입니다.

체호프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넘어지는 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이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형제나 가까운 지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현실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버텨야 할지 모를 때 비참해집니다. 텅 빈 미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미래 때문에 비참해집니다. 지금은 누군가 버틴다는 것이 우리를 버티게 합니다. 버티는 약자들이 우리를 버티게 합니다.

그런데 한 발을 든 정지 상태로 5분을 참는 호랑이의 모습이야말로 저에게 천재란 단어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까뮈의 한마디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천재란 스스로의 절도를 창조해내는 반항이다.

자기에게 가장 좋은 일을 자기 스스로의 판단력으로 찾아내려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자신의 한계에도 장점에도 고통에도 행운에도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한계는 한탄하고 장점은 과장하는 그런 태도 말고요. 한계도 장점도 길을 내딛는 하나의 원료로 쓰는 거지요. 어차피 한계와 결핍과 고통에서 모든 중요한 것들이 다 나옵니다.

뭔가를 끝까지 추구하면서 찾아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자신이 뭔가를 극복했다는 것을요.

가면에도 선악이 있습니다. 아마 인간은 인류가 문화란 걸 알게 된 이후로 가면을 썼을 것입니다. 진심을 가리기 위해서도 쓰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씁니다.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도 쓰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씁니다. 그런데 가끔씩 맨살을 통째로 무방비 상태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저 사람이 제대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도 하고 감탄도 합니다.

그녀가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온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그녀를 가져다 내 인생의 땔감으로 쓰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내겐 ‘내가 제일 불쌍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제일 크게 고통을 겪었단 생각이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불쌍하니까 나는 이렇게 행동해도 돼. 그 고통을 겪은 나는 막 나가도 돼. 좀 망가져도 돼. 어떤 곳에 가도 내가 위로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이해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있었단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위로받고 싶어 하는 거, 그게 아주 독입니다. 그건 끔찍하고 비겁한 일입니다.

그 지독한 자기 연민이 무너져내린 것입니다. ‘나는 어떤 경우든, 누구에게든 위로를 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무너진 겁니다. 한 친구가 저를 배신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제 앞에서 자신이 왜 그런 인간이 되었는지, 알고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 쭉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저건 나다!’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내가 가장 불쌍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불쌍한 것이다. 서로의 불쌍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 위로받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로 했습니다.

듣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싫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을 더 잘 알게 되나요?"란 질문이 가능함을. 그리고 그 질문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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