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기억 속에 있는 신데렐라는 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궁금했어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날 밤의 공주는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사랑이란 뭔가 생각했어요. 남과 다른 눈을 가지고 자신을 볼 수 있음, 그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마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사랑을 믿기로, 마법을 믿기로, 용기를 내기로 했어요.

내 동료 피디 중에 좀 특이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대만에서 자랐고 영어를 쓰는 인터내셔널스쿨에 다녔는데 중국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합니다. 그는 오로지 한국어만 할 줄 알아요.

눈에 밟힌다는 말은 말이야. 뭔가가 눈에 발자국처럼 꽉 새겨진다는 말이야.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런데 눈에 밟히는 게 많은 사람은 눈동자도 많아져. 눈에 밟히는 것이 늘어날수록 눈동자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법칙이 우주에 있기 때문이야.

공작새는 눈에 밟히는 게 많았던 새였기 때문이야. 그래서 공작새가 날개를 한 번 펼치면 그렇게 아름다운 거야. 공작새가 평생 본 세상이 다 드러나니까.

파브르에겐 꿈이 하나 있었어요. 그는 어느 날 한숨을 쉬면서 말했어요. "아, 천 겹 파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다른 눈으로 세상을 한 번 보는 것, 그건 이루기 아주아주 어려운 꿈인 거지요.

우린 우리라는 감옥을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우린 나 자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하늘이 아무리 깊고 광활해도 우리는 우리한테 허용된 하늘밖에 못 볼지도 몰라요.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슬퍼져요. 할 수 있는 한 얼굴을 하늘로 들고 그냥 걷고 싶어져요.

우리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상상하기는 그렇게나 어려운 겁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 그렇게나 어려운 것입니다.

"너는 지금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니?" 우리는 가끔 회사 앞 커피 가게에서 마주칩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속으로 말을 겁니다. 몇 년째요.

때마침 그 시절에 청춘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다 겪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씁쓸하게 끝나갔고, 아버지는 정리해고 위험에 시달렸고, 그 와중에 좀 살아보겠다고 목돈을 투자했다 실패했고, 집안 분위기는 날마다 어두워지고.

그렇지만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마음잡고 열심히 살려고 해도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몰랐단 것입니다. 천문학은 공부를 해도 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제 뒤를 기분 나쁘게 따라다니다가 불쑥불쑥 찾아왔습니다.

군대 갈 때 목표 세 가지를 세웠습니다. 책 100권을 읽는다. 군대 후배들을 때리지 않는다.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 제대하고 나올 때 결국 그 꿈 세 가지를 다 이루고 나왔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무슨 일을 할까, 즉 직업에 대해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찬찬히 느린 동작으로 돌아봤습니다. 그렇게 돌아보면서 서서히 저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채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강했습니다. 연민과 동정은 제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었습니다. 특히 가난이나 아니면 환경 때문에 원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강했습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 애들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애들인데, 제 눈엔 그 아이들의 슬픔이 보입니다. 눈에 보이면 그 다음엔 눈에 밟힙니다. 눈에 보이면 친구가 됩니다. 항상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겁니다.

저는 IMF를 대학교 1학년 때 겪었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겪은 아이들에겐 그것이 트라우마였습니다. 그들은 자칫 잘못하면 미래가 없음을 경험했습니다.

지방대 학생들일수록 ‘내 탓이야’가 심합니다.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 되는 거야. 내가 지방대 온 탓에 취업이 안 되는 거야. 지방대 왔으면 그걸 만회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탓이야. 차별을 뛰어넘게 능력을 길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약자들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질 싸움은 일단 피해야 합니다. 그건 우리 안에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있기 때문입니다.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때문에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을 못 보고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취업하는 데도 돈이 또 따로 드는 거죠.

노조에도 빠져있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또 우리 눈에 보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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