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는 대문호이기 때문에 분명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소세키는 평생 동안 남의 집에서 살았으며 자녀들도 많아 돈을 융통하느라 고생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로부터 5년 후인 1911년(메이지 44년), 문부성으로부터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침 이때 소세키는 입원 중이라 집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갑자기 ‘내일 학위를 수여할 터이니 문부성으로 출두하라’란 통지가 왔던 것입니다. 아내 교코 씨가 소세키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전하자 바로 집으로 학위증서가 보내져 왔습니다. 이런 태도에 격노한 소세키는 사퇴 편지와 함께 증서를 돌려보냅니다. 문부성은 학위 사퇴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아무쪼록 받아달라고 말하지만, 소세키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세간에서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박사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학문은 소수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일부 학자적 귀족들이 학문적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선택에서 누락된 다른 것들은 완전히 방치되는 결과를 낳아 가히 혐오할 만한 폐해가 속출될 것이 나에게는 절실히 염려되어지는 바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밝은 작품이라는 이미지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지만, 실은 한바탕 웃어버리는 것만으로 끝낼 수 없는 섬뜩한 장면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소세키는 그의 저서인 『심리학원론』, 『심리학개론』을 읽고 있었으며 전자는 아마도 번역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시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심리학이란 학문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명확히 하고 싶다는, 오로지 그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를 잃고 기댈 데가 없는 처지인데 소세키 역시 유소년기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없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미 고양이를 잃고 우여곡절 끝에 구샤미 집에 숨어 들어와 살게 된 이름 없는 고양이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런 고양이를 연재 마지막에서 어쩌면 자살이라고도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죽게 해버렸던 것입니다. 비록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소세키 심정 어딘가에 죽음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시 부정할 수 없다고 느껴집니다.
게다가 고양이가 죽은 원인이 ‘익사’였다는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소세키가 깊이 생각해서 나온 착상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세키 내면에서 ‘물과 죽음’은 종종 이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세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죽은 미녀 오필리아가 조각배에 실려 흘러가는 장면을 즐겨 읽었고 그것을 자신의 소설 『풀베개』에서도 제재로 사용합니다.
어쨌든 이 작품에서는 소세키의 정신적 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 위기는 그저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작품을 쓴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소세키의 딸은 당시의 아버지가 심한 노이로제 상태였으며 자녀들조차 가까이 다가오지 않도록 했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자의식과잉,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소세키는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이른바 ‘중2병(사춘기에 흔히 겪는 심리 상태를 빗댄 용어-편집자 주)’이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구샤미가 거울을 의식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곰보 자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세키도 어린 시절 천연두에 걸렸던 탓에 얼굴에 곰보 자국이 남아 있어서 무척 신경 쓰였던 모양입니다. 고양이가 관찰한, 거울을 들여다보는 구샤미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꼬락서니만 보면 분명 미치광이임에 틀림없지만 하는 말은 진리다.
거울과 구샤미가 서로 노려보는 장면은 계속 이어지며 옆을 향하거나 얼굴의 이곳저곳을 당겨보거나 메롱을 해보거나 수염을 비틀어보거나 하며 당최 거울 앞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고 보면 곰보 자국뿐만 아니라 거울 안에 나타난 자신을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자각심이란 것은 문명의 진화에 따라 하루하루 민감해져 가기 때문에 결국에는 일거수일투족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된다. 헨리라는 사람이 스티븐슨에 대해 말하며, 그는 거울이 걸린 방으로 들어와 거울 앞을 지날 때마다 자신을 비춰보지 않으면 마음이 홀가분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잠시라도 자기를 잊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라고 평했던 것은 오늘날의 추세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사회는 어쩌면 미치광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미치광이들이 모여 맹렬히 싸우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욕을 퍼붓고 빼앗고, 그 전체가 집단적으로 세포처럼 무너졌다가 다시 솟아나고 솟아났다가 다시 무너지며 살아가는 곳을 사회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 다소 이치를 알고 분별이 있는 놈은 오히려 방해가 되니 정신병원을 만들어 가둬둔 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는 보통 시민이고 병원 밖에서 날뛰고 있는 자가 오히려 미치광이다. 미치광이도 고립되어 있으면 미치광이 취급을 받지만 단체가 되어 세력이 생기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심한 미치광이가 돈과 권력을 남용하여 대다수 경미한 미치광이들에게 난동을 부리게 하고,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내라는 말을 듣는 예가 적지 않다.
현대인의 깊숙한 내면을 살펴보면 모두 광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49년)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탕이 된 것은 단편소설『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광인 치료법The System of Doctor Tarr and Professor Fether』으로 어느 폭풍우 치던 날, 어떤 사람의 안내를 받아 한 정신병원에 도착한 주인공이 유명한 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원장을 만나 환자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는데, 마지막에 가서 사실은 원장이야말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양이의 말에 따르면"사건은 대체로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것에서 발생한다. 이를 나타내는 말은 ‘거꾸로 선다逆上(앞뒤 가리지 않고 욱한다는 뜻의 일본어-편집자 주)’이며 글자 그대로 거꾸로 올라간다는 의미다"라는 게 됩니다. 박식한 고양이는 서양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온, 인간의 체액과 성격과의 관계를 설파한 논조를 들면서 현대에서는 인간의 혈액이 거꾸로 올라가 흥분이 발생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mob가 탄생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소세키는 대문호이기 때문에 분명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소세키는 평생 동안 남의 집에서 살았으며 자녀들도 많아 돈을 융통하느라 고생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로부터 5년 후인 1911년(메이지 44년), 문부성으로부터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침 이때 소세키는 입원 중이라 집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갑자기 ‘내일 학위를 수여할 터이니 문부성으로 출두하라’란 통지가 왔던 것입니다. 아내 교코 씨가 소세키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전하자 바로 집으로 학위증서가 보내져 왔습니다. 이런 태도에 격노한 소세키는 사퇴 편지와 함께 증서를 돌려보냅니다. 문부성은 학위 사퇴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아무쪼록 받아달라고 말하지만, 소세키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세간에서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박사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학문은 소수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일부 학자적 귀족들이 학문적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선택에서 누락된 다른 것들은 완전히 방치되는 결과를 낳아 가히 혐오할 만한 폐해가 속출될 것이 나에게는 절실히 염려되어지는 바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밝은 작품이라는 이미지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지만, 실은 한바탕 웃어버리는 것만으로 끝낼 수 없는 섬뜩한 장면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소세키는 그의 저서인 『심리학원론』, 『심리학개론』을 읽고 있었으며 전자는 아마도 번역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시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심리학이란 학문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명확히 하고 싶다는, 오로지 그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를 잃고 기댈 데가 없는 처지인데 소세키 역시 유소년기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없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미 고양이를 잃고 우여곡절 끝에 구샤미 집에 숨어 들어와 살게 된 이름 없는 고양이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런 고양이를 연재 마지막에서 어쩌면 자살이라고도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죽게 해버렸던 것입니다. 비록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소세키 심정 어딘가에 죽음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시 부정할 수 없다고 느껴집니다.
게다가 고양이가 죽은 원인이 ‘익사’였다는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소세키가 깊이 생각해서 나온 착상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세키 내면에서 ‘물과 죽음’은 종종 이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세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죽은 미녀 오필리아가 조각배에 실려 흘러가는 장면을 즐겨 읽었고 그것을 자신의 소설 『풀베개』에서도 제재로 사용합니다.
어쨌든 이 작품에서는 소세키의 정신적 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 위기는 그저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작품을 쓴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소세키의 딸은 당시의 아버지가 심한 노이로제 상태였으며 자녀들조차 가까이 다가오지 않도록 했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자의식과잉,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소세키는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이른바 ‘중2병(사춘기에 흔히 겪는 심리 상태를 빗댄 용어-편집자 주)’이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구샤미가 거울을 의식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곰보 자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세키도 어린 시절 천연두에 걸렸던 탓에 얼굴에 곰보 자국이 남아 있어서 무척 신경 쓰였던 모양입니다. 고양이가 관찰한, 거울을 들여다보는 구샤미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꼬락서니만 보면 분명 미치광이임에 틀림없지만 하는 말은 진리다.
거울과 구샤미가 서로 노려보는 장면은 계속 이어지며 옆을 향하거나 얼굴의 이곳저곳을 당겨보거나 메롱을 해보거나 수염을 비틀어보거나 하며 당최 거울 앞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고 보면 곰보 자국뿐만 아니라 거울 안에 나타난 자신을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자각심이란 것은 문명의 진화에 따라 하루하루 민감해져 가기 때문에 결국에는 일거수일투족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된다. 헨리라는 사람이 스티븐슨에 대해 말하며, 그는 거울이 걸린 방으로 들어와 거울 앞을 지날 때마다 자신을 비춰보지 않으면 마음이 홀가분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잠시라도 자기를 잊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라고 평했던 것은 오늘날의 추세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사회는 어쩌면 미치광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미치광이들이 모여 맹렬히 싸우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욕을 퍼붓고 빼앗고, 그 전체가 집단적으로 세포처럼 무너졌다가 다시 솟아나고 솟아났다가 다시 무너지며 살아가는 곳을 사회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 다소 이치를 알고 분별이 있는 놈은 오히려 방해가 되니 정신병원을 만들어 가둬둔 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는 보통 시민이고 병원 밖에서 날뛰고 있는 자가 오히려 미치광이다. 미치광이도 고립되어 있으면 미치광이 취급을 받지만 단체가 되어 세력이 생기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심한 미치광이가 돈과 권력을 남용하여 대다수 경미한 미치광이들에게 난동을 부리게 하고,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내라는 말을 듣는 예가 적지 않다.
현대인의 깊숙한 내면을 살펴보면 모두 광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49년)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탕이 된 것은 단편소설『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광인 치료법The System of Doctor Tarr and Professor Fether』으로 어느 폭풍우 치던 날, 어떤 사람의 안내를 받아 한 정신병원에 도착한 주인공이 유명한 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원장을 만나 환자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는데, 마지막에 가서 사실은 원장이야말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양이의 말에 따르면"사건은 대체로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것에서 발생한다. 이를 나타내는 말은 ‘거꾸로 선다逆上(앞뒤 가리지 않고 욱한다는 뜻의 일본어-편집자 주)’이며 글자 그대로 거꾸로 올라간다는 의미다"라는 게 됩니다. 박식한 고양이는 서양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온, 인간의 체액과 성격과의 관계를 설파한 논조를 들면서 현대에서는 인간의 혈액이 거꾸로 올라가 흥분이 발생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mob가 탄생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다른 부분에서 구샤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명문으로 ‘야마토다마시!(일본 고유의 정신이란 뜻으로 제국주의 당시 강조된 관념-역자 주)라고 외치며 일본인이 폐병에 걸린 듯 기침을 한다’라는 문구를 사람들 앞에 내보입니다. 이것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대외전쟁으로 내달려 승리하는 당시의 일본에서 내셔널리즘이 고양되어가는 모습을 야유한 문구라고 생각됩니다. 러일전쟁 당시 이런 글을 태연히 썼다는 것은 소세키가 상당히 도전적이고 대담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양성을 가진 소세키는 실로 그러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단순히 유머러스한 작가도 아니며 경박한 사회비평가도 아닙니다.
소세키는 무엇보다도 이지적인 사람, 두뇌명석한 지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소세키에게는 이지나 지성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되는 신비적인 것,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꿈이나 환상이나 로망, 괴기, 혹은 인간의 운명을 움켜쥔 초인간적인 힘에 대한 강한 취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롭기만 한 소세키의 내면세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짧은 작품이지만 『꿈 열흘밤』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소세키 문학의 저변이 무한히 깊고 풍요로운 이유는, 인간이란 아무리 파헤쳐도 모든 걸 다 밝혀낼 수 없는 수수께끼의 존재라고, 소세키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연륜을 더해갈 때마다 인생이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 점점 흥미로워지면서 틀림없이 소세키에게 더더욱 깊이 빠져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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