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는 아마도 여러분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차분히 음미하며 읽어본 경험이 있는 분은 의외로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며 저는 그것을 인생의 큰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멋대로 소세키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소세키란 사람은 메이지(1868~1912년, 메이지천황의 통치 시기를 가리키는 연호-편집자 주) 시대가 시작되기 한 해 전인 1867년(게이오 3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메이지 29년이면 29세입니다. 연호와 연령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세키가 실로 메이지라는 시대와 함께 살아온 인물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소세키란 사람이 가진 다면성에 매료되어갔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태롭습니다. 한마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으며 때로는 모순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깊이 있는 작가란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 다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란 작품은 직접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요. 주인공이 고양이라는 독특한 설정, 일본문학 사상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설정과 더불어 소세키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영문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던 소세키 입장에서 작품 집필은 이른바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왜 소세키에게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 까닭은 이 무렵의 소세키가 심적으로 매우 침울해져서 정신적으로 거의 한계상황에까지 내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이 된 것이 30대 전반에 경험했던 영국 유학이었습니다.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가 소개되는 형식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이 없는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유명세에 비해 실제로 이 작품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꼼꼼히 읽은 사람은 의외로 적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고양이 눈을 통해 묘사된 등장인물은 언뜻 보기에 모두 지식인(인텔리)이지만 무의미한 수다에 흥겨워하는 속물적인 인간들입니다. 아는 척하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진지하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리는 사람들뿐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인 웃음거리로 삼아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 소세키는 자신 안의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이 작품은 소세키 특유의 유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이런저런 대화 내용, 혹은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고양이’가 비평하는 대목은 소세키의 박학다식함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장면입니다.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언어들의 향연을 만끽하면서 동시에 소세키의 광범위한 지식, 그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저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고 소세키의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에 머무르고 있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유쾌하고 위트로 가득 찬 문장들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소세키의 어둡고 날카로운 일면 역시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나체가 된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잘못된 일이다.

소세키는 영국 유학 중 자신과 유럽 사람들을 비교하며, 도대체 미의식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괴로워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서양인과 똑같은 옷을 걸침으로써 어떻게든 문명인 같은 얼굴을 한 채 런던을 활보하고 있다는 감각을 맛보고 있었을 겁니다. 실로 인간은, 특히 일본인은 ‘완전히 옷으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서양인은 강하니까 무리해서라도, 설령 그것이 바보스럽다 해도 흉내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겠지. 기다란 것에는 감겨라, 강한 것에는 꺽여라, 무거운 것에는 짓눌려라. 이런 명령들을 그대로 따르다니, 너무 어리석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다 똑같다면 공부할 이유가 없다. 애써 고생해도 소용이 없다. 어떻게든 ‘나는 나다, 누가 봐도 나다’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다. (중략) 그렇다면 이런 심리로부터 중대한 발견을 할 수 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는 것처럼 인간은 평등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병이란 조상과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일 수밖에 없지"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선천적으로 위장이 약한 구샤미가 "자네의 가설은 흥미롭긴 하네만, 그 유명한 칼라일도 위는 안 좋았다네"라며 밑도 끝도 없는 답변을 하는 부분입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칼라일을 그 정도로 권위 있는 인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칼라일은 ‘인간의 제도나 도덕이란 것은 유행하는 의상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의상철학』의 훌륭한 패러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패러디란 오리지널 책을 알면 보다 더 즐길 수 있게 되기 마련입니다. 조금 어려운 책이긴 하지만, 여러분들도 혹시 기회가 된다면 꼭 『의상철학』에도 도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소세키는 겁이 많고 신중하면서도 이렇듯 시대와 승부하는 대담한 일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세키는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국민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실은 교과서에는 차마 실을 수 없는 비판적인 글도 적지 않으며 ‘반국가적’인 측면 역시 현저한 작가입니다.

오가이는 유학 중 어느 독일인으로부터 "일본인들은 코털을 뽑기 때문에 더럽다"는 말을 듣게 되어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가이는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분개하며 독일에 있는 일본인들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아마도 여러분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차분히 음미하며 읽어본 경험이 있는 분은 의외로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며 저는 그것을 인생의 큰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멋대로 소세키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소세키란 사람은 메이지(1868~1912년, 메이지천황의 통치 시기를 가리키는 연호-편집자 주) 시대가 시작되기 한 해 전인 1867년(게이오 3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메이지 29년이면 29세입니다. 연호와 연령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세키가 실로 메이지라는 시대와 함께 살아온 인물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소세키란 사람이 가진 다면성에 매료되어갔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태롭습니다. 한마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으며 때로는 모순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깊이 있는 작가란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 다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란 작품은 직접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요. 주인공이 고양이라는 독특한 설정, 일본문학 사상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설정과 더불어 소세키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영문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던 소세키 입장에서 작품 집필은 이른바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왜 소세키에게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 까닭은 이 무렵의 소세키가 심적으로 매우 침울해져서 정신적으로 거의 한계상황에까지 내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이 된 것이 30대 전반에 경험했던 영국 유학이었습니다.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가 소개되는 형식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이 없는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유명세에 비해 실제로 이 작품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꼼꼼히 읽은 사람은 의외로 적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고양이 눈을 통해 묘사된 등장인물은 언뜻 보기에 모두 지식인(인텔리)이지만 무의미한 수다에 흥겨워하는 속물적인 인간들입니다. 아는 척하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진지하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리는 사람들뿐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인 웃음거리로 삼아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 소세키는 자신 안의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이 작품은 소세키 특유의 유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이런저런 대화 내용, 혹은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고양이’가 비평하는 대목은 소세키의 박학다식함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장면입니다.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언어들의 향연을 만끽하면서 동시에 소세키의 광범위한 지식, 그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저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고 소세키의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에 머무르고 있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유쾌하고 위트로 가득 찬 문장들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소세키의 어둡고 날카로운 일면 역시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나체가 된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잘못된 일이다.

소세키는 영국 유학 중 자신과 유럽 사람들을 비교하며, 도대체 미의식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괴로워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서양인과 똑같은 옷을 걸침으로써 어떻게든 문명인 같은 얼굴을 한 채 런던을 활보하고 있다는 감각을 맛보고 있었을 겁니다. 실로 인간은, 특히 일본인은 ‘완전히 옷으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서양인은 강하니까 무리해서라도, 설령 그것이 바보스럽다 해도 흉내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겠지. 기다란 것에는 감겨라, 강한 것에는 꺽여라, 무거운 것에는 짓눌려라. 이런 명령들을 그대로 따르다니, 너무 어리석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다 똑같다면 공부할 이유가 없다. 애써 고생해도 소용이 없다. 어떻게든 ‘나는 나다, 누가 봐도 나다’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다. (중략) 그렇다면 이런 심리로부터 중대한 발견을 할 수 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는 것처럼 인간은 평등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병이란 조상과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일 수밖에 없지"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선천적으로 위장이 약한 구샤미가 "자네의 가설은 흥미롭긴 하네만, 그 유명한 칼라일도 위는 안 좋았다네"라며 밑도 끝도 없는 답변을 하는 부분입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칼라일을 그 정도로 권위 있는 인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칼라일은 ‘인간의 제도나 도덕이란 것은 유행하는 의상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의상철학』의 훌륭한 패러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패러디란 오리지널 책을 알면 보다 더 즐길 수 있게 되기 마련입니다. 조금 어려운 책이긴 하지만, 여러분들도 혹시 기회가 된다면 꼭 『의상철학』에도 도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소세키는 겁이 많고 신중하면서도 이렇듯 시대와 승부하는 대담한 일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세키는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국민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실은 교과서에는 차마 실을 수 없는 비판적인 글도 적지 않으며 ‘반국가적’인 측면 역시 현저한 작가입니다.

오가이는 유학 중 어느 독일인으로부터 "일본인들은 코털을 뽑기 때문에 더럽다"는 말을 듣게 되어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가이는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분개하며 독일에 있는 일본인들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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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17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책과 비슷하게 생각되는데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을 읽었어요.
검색해 보니 <고민하는 힘>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실마리 삼아 고민하는 삶의 방법을 말하는 책이라 하네요.
그래서 제가 비슷하게 여겨졌나 봐요. 한 작가를 연구해서 쓴 책도 나름대로 유익한 책 같아요.^^

라로 2022-03-18 13:59   좋아요 0 | URL
강상중이 막스베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 것 같아요. 그러니 잘 썼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짧아요. 아쉽게도.^^;; 소세키와 자신에 대한 인연(?)을 얘기하는데 뭐 좀 어거지 같지는 했어요.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