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너무 짧은 잠옷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 자신의 손목이 보였다. 과거의 우람한 팔뚝이 아니라 아이처럼 뼈가 앙상한 손목이었다. 집에 돌아온 후 느껴 온 외로움과 두려움과 환멸감의 정체가 마리로르의 설명으로 이제 밝혀진 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남자들은 미묘한 뉘앙스 같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요즘은 아름답고 독창적인 물건들이 유행하지 않는 것 같아."
앙리 크레송은 잠에서 깨면서부터 기분이 저조했다. 가라앉은 기분은 그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그녀는 바를 청소하고 스툴 두 개를 다른 곳으로 치워 버렸다. 마치 사람이 앉도록 만들어진 그 나무 의자들이 원하지 않는 목격자가 될까 봐 두렵다는 듯이.
뭘 원할지 알 수 없었다. 남자들은 변덕스러운 종족이었다. 때로는 취향이 점점 더 괴상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은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따분하게 들렸다.
"한 침대를 쓰는 것을 거부한다."라는 말은 그녀의 직업상 가장 끔찍한 말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머리가 나빠서도 안 되고 신경이 너무 예민한 여자도 곤란하오."
그녀의 펜 끝에서 여자들의 이름이 봄에 나무에서 덜 영근 사과가 떨어지듯이 떨어져 내렸다.
뤼도빅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침묵뿐이었다.
예쁜 얼굴을 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육체적으로는 우아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저속하기 짝이 없는 여자, 그 고르고노스13)를 반드시 때려눕혀야 했다.
발자크의 인물들은 종종 감상적이었고 좀 비겁해 보였다. 희생자와 후레자식과 야심가와 운 좋은 얼간이들로 이루어진 내적 재난의 세계, 포기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필립에게는 돈이 없었고, 앙리가 보기에 가난은 대상포진이나 소아마비 같은 끔찍하고 딱한 질병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고 평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가 터득한 진리 중 하나였다. 누구에게든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위해서는 육체를, 여자들을 위해서는 마음을 돌보는 셈이었다.
실비아 아멜은 언제나 냉정한 표정과 차분한 태도 그리고 친절한 웃음을 내세웠는데, 그 웃음은 대개는 부자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끝장을 내거나 매수할 필요가 있을 때면 가난한 이들에게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순수함은 꾸며 낸 것이거나 정신적 나약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뤼도빅은 뒷좌석에서 짐 사이에 불편하게 끼어 앉은 채 앞에 앉은 파니의 우아하고 평온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옆얼굴과 목의 곡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운 건 아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퍼서였어.
"하지만…… 남자들은 잘 울지 않습니다." 앙리가 아이처럼 방어적인 어조로 말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듣기 좋은 말만 하려 드는데 그 두 사람은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이 별난 부르주아들의 성격에는 정상을 벗어나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시대와 도덕을 초월한 것으로 그녀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부르주아에 관한 일이었다.
이 저택과 청년 사이에는 부조화와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괴물 같은 인물들이 서로 대치하는 모리아크의 소설보다 상황이 더 나쁜지도 몰랐다.
방문은 크레송가의 새 신랑 신부에게 맞추어 최근 새로 칠한 듯했다. 그들의 아이가, 아이의 아이가 결혼하면 그때마다 다시 새로 칠해질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방문을 두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무기력한 모습에 짜증이 난 앙리가 팔을 들어 문을 한 차례 주먹으로 쾅 쳤다.
칼처럼 베일 것 같은 침묵이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달라진 나날들이 펼쳐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시간, 곧 그와 당신의 관계가 사라진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당신을 삶에 연결해 주는 것은 다른 어떤 존재, 다른 어떤 사건, 다른 어떤 행복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생겨나 삶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엘뤼아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속하겠다는 힘겨운 욕망’뿐이다.
그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당신 자신에 대한 애도로, 기억에, 심지어 행복한 나날에 대한 기억에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 당신 자신에 대한 이 음울하고 지속적인 혐오는 무슨 고통을 만들어내는 기계처럼 당신으로 하여금 밤마다 이불 속에서 짐승처럼 신음하게 만들고, 낮이면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참게 만든다. 당신은 저항하고 싸운다. 그러다 보면 울적함이 무슨 눈가림이나 당연함처럼 당신을 도와준다. 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는데, 그런 사람을 막연하게 존중하는 분위기 덕분에 존중을 받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의 슬픔과 당신의 거절에 충분히 관심을 갖는다면, 당신의 거절을 지나치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상처 입은 가슴에도 피가 뛰고 있음을 안다면, 그 모든 것이 다시 아름다운 가을날 오후 테라스로 통하는 열린 창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뭇잎이 당신의 뺨에 와 닿을 때 과거가 따귀를 후려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가 갑자기 부인할 수 없게 되어 버린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 행복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마리로르는 어머니보다 5센티미터 정도 작았는데 마리로르로서는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가족 관계 같은 정형화된 관계 속에 반드시 인간성이나 진실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도 아시잖아요. 병의 경과를 예측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삼 년을 보내고 나면 어떤 진단이 내려진다 해도 확실한 게 아니라는 걸요……."
‘누구보다 엄마한테는 할 수 없겠지.’ 파니가 주저도 서글픔도 없이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에 자기 딸을, 딸에 대한 모성애를 포기하지 않았던가.
파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온정이 거세된,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인 마리로르의 얼음장 같은 마음을 놀라워했고, 마리로르는 어머니의 선의와 감수성과 따듯한 마음과 좋은 품성을 놀라워했다.
저녁 공기와 함께 어머니의 향수 냄새가 훅 끼치면서, 그 냄새가 감돌던 우울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냄새를 맡으면 언제나 방치되어 자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울적한 느낌이 남곤 했다
‘의상실에서 일하면서 성모 마리아처럼 사는 우리 엄마는 이제 어떻게 될까? 미래도 없고, 인간관계도 없는데!’
‘이제 저 애는 어떻게 살려는 걸까? 저 나이에는 용감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데.’
성공과 돈을 좇느라 귀중한 젊음의 시간을 잃고 있는 마리로르에 대해 그녀는 한순간 책임감을 느꼈다.
파니와 뤼도빅이 함께 정원이나 거실을 거니는 것이 그에게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전혀 현실적인 근거가 없었음에도 욕망이 그런 느낌을 들게 했고, 질투가 그것을 부채질했다.
앙리 크레송은 거칠고 소유욕이 강하고 여러 면에서 무자비한 사내로, 첫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결핍감과 슬픔 이외에는 스스로의 감정을 참고 견딘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돌연 질투에 휩싸였는데, 그것을 내색할 수도 드러내 말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자신들이 괴물이라는 것을 털어놓지 못하는, 괴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시안들뿐이었다.
사실 다른 이들을 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사랑을 의무로 느끼고 순수를 권리로 여기는 사람들은 삶 속에서 막연히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이곳에서는 일가 전체가 고의적으로 소통 불능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그것이 그녀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각자 자기 재산과 권위를 틀어쥔 채 상대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이곳에는 그런 불통의 기운이 떠돌고 있었고, 불어오는 초원의 바람이 이따금 그것을 흩어 놓을 뿐이었다.
그는 자기 말이 예의에 맞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교계 신사처럼 웃음을 곁들였는데, 그 웃음 때문에 오히려 저속해 보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저속성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감추고자 할 때에만 드러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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