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이웃이 내가 썼던 글이 너무 적나라하다며 도저히 못 읽겠다(?)는 식의 댓글을 달았을 때 나는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면에는 내가 계속 이런 글을 쓰면 즐찾이 떨어져 나가겠다는 걱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꿈을 꾸었고, 알라딘 북플에 올라오는 '지난 오늘'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간호일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건 누굴 위한 글이 아니라 내 기록이다. 즐찾이 다 떠나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늘 두려워하지? 왜 늘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하지? 누가 불만을 재기하면 금새 쪼그라든다. 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하여, 내가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하고 있는 이 '간호'라는 일에 대한 글을 이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늘처럼 누군가 죽은 날.


나는 그 환자의 죽음이 왜 슬픈지 모르겠는데 왜 너무 슬프고, 엄마와 그 환자는 비슷한 점이라고는 1도 없는데 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지. 


나의 dayshift 사수였던 J가 그 환자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을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정확히 저녁 7시 30분부터) 그녀가 죽을 것이란 것을 알고 그녀가 죽을 것이란 사실이 자명하기 때문에 혈압과 산소 호흡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의사들을 귀찮게 하고 (계속 전화해서) 모니터를 지켜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원래 어제부터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독립된 간호사로서 홀로 일을 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M과 일하면서 작은 실수를 한 것이 여전히 문제가 되어 오리엔테이션이 2주 더 연장이 되었다. 아무튼, 그 일은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잘 된 일인데, 왜냐하면 내가 지금 독립을 하기에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섣불리 독립을 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힘겹게 딴 내 라이센스와 이별을 해야 하니까.


어쨌든 어제부터 (밤에 일을 하니까 시간을 말하기 애매하다) 내 사수였던 K는 흔히 말하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나는 그녀처럼 철두철미한 사수를 만난 적이 없다. M도 K와 비교하면 세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K를 존경(?)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녀는 쉬운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어제도 긴장을 했었다. K가 그랬다. 원래 코비드가 아니라면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맡을 경우 환자와 간호사는 1대1의 비율인데 코로나 때문에 1대1 비율이 엉망이 되었다고. 그래서 L 아줌마가 죽어가는 와중에 나는 F라는 아저씨를 함께 돌봐야 했다.


내 사수 k는 우리가 일하는 동안 L 아줌마가 죽으면 안 된다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약을 최대한 의사에게 처방하도록 해서 결국 아침에 오는 간호사 J에게 인계를 하고 내가 인계 했다는 노트를 작성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L 아줌마가 죽었다. 그녀의 죽음을 계속 지켜봤는데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은 그 누구도 지켜보지 못했다. 나는 그 당시 인계 노트를 작성하는 중이었고, J는 L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하는 F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의 상태를 보고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제 L을 돌본 것이 이틀 째였다. 첫날 그녀를 만났을 때 경악을 했었다. 말 조련사의 조수라는 직책의 그녀는 63세인데 6개월 전까지 평생 병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더구나 그녀가 집안에 쓰러져 있는 것을 이웃이 발견해서 911에 신고해 응급 구조대가 그녀의 집에 가서 그녀를 우리 병원 ER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리고 ER에서 ICU로 온 것이다.


그녀를 구조한 EMT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10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있었다고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인 2월 14일 밤을 잊기 힘든데, 그녀의 온 몸은 멍이 들어 있었고, 오픈 운드라고 온 몸에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몸에는 xeroform으로 거의 뒤덥혀 있었고 손끝과 발은 피가 통하지 않아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ER에 도착했을 때 그녀에 대해 증언한 친구 F의 말을 읽어보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 얘긴 나중에.


내가 그녀를 돌 본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그녀의 피부가 썩어가고 있는 것 말고는 겉으로 봤을 때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어제 낮에 MRI를 찍고, CT를 찍은 결과를 읽어보니 그녀는 다발적 중풍이 와서 오래 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J가 나에게 인계하면서 한 말은 "죽어가고 있어". 그게 ""였다.


우리가 일하는 동안 죽은 환자를 처리하고 싶지 않았던 내 사수 K는 결국 그녀가 원하던 대로 인계를 하고 10분 정도가 지나서 그녀의 죽음은 더 이상 우리가 떠맡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12시간 동안 L이 죽기 직전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나는 힘들었다. 일 끝나고 집으로 안 가고 술을 사서 사무실로 와서 이렇게 취중 간호일지를 쓰고 있는 이유다.


다시 자세하게(?)라고 장담을 할 수 없지만, L의 죽음에 대해서 가까운 시일 안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게 될 것 같다. 


죽고 사는 일은 무엇인가?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고, 여전히 그 해답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면,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좀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은 느낌. 그러니 스스로에게 자주 'I LOVE YOU!"라고 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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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린다의 죽음 1
    from 라로의 서랍 2021-02-17 13:08 
    오늘 아침에 썼던 L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사연을 이야기 해야겠다. 지난 주부터 겼었던(?) 일들이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L을 '린다'라고 부르자. 2월 10일 나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나머지 2명도 일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 병원의 중환자실은 'ㅁ'자 형 구도로 되어 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문이 (아무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뱃지로 들어가야 한다) 열리면 양쪽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ㅁ'자 형 구도의 가운데는 간호 본부가 있다.
 
 
2021-02-17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1-02-17 02:49   좋아요 5 | URL
간호일지 다시 쓰시는 것 정말 잘하셨어요. 다른 사람보다 라로님 자신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요. 쓰면서 많이 치유가 되잖아요. 생각도 정리되고요.
저의 모토가 있는데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에요. 모든 사람이 다 나에게 동의하고 나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 한 걸로 내가 할 일은 다 한 거라고 생각해요.
라로님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집에 가서 푹 주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7 07:05   좋아요 4 | URL
거기서 직접 겪고 보시던 라로님만 쓸 수 있는 글이라 정말 좋아요. 한 사람이라도 불편한 글 안 쓰는 일은 불가능한 걸요. 열심히 도와도 사라지는 사람들 지켜주시느라 종일 고생하셨구요. 슬프고 힘들 때는 더더욱 계속 써주세요.

미미 2021-02-17 07:16   좋아요 4 | URL
아니 누가..불편하면 안읽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말이죠. 이런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서 매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고 생각해요. 죽는거,아픈거 누구도 예외는 아닌데...라로님토닥토닥♡ 저를 위해서도 토닥토닥~♡ 마지막말 좋아요!!

잘잘라 2021-02-17 11:15   좋아요 4 | URL
간호일지 다시 써주셔서 진심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겪은 것은 아버지 뿐이지만, 그조차 똑바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장례식장에도 수없이 다니지만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라 죽음 자체는 이미 피상적인 것이 됩니다.(그러려고 장례식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라로님이 써주시는 간호일지를 읽으며 저는 구체적으로 저의 죽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저에게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라로님이 써주신 글 덕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침에, 아침밥 포기하고 쓰는 댓글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적나라하게 쓰는 일이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 썼습니다. 혹시, 어떤 이유로든 다시 간호일지를 공개하지 않기로 하신다고 해도, 라로님이 계시는 여기를 계속 다닐 것이라는 점도 함께요.

기억의집 2021-02-17 08:35   좋아요 4 | URL
라로님 누군가는 데이비드의 책 대신 라로님의 간호일기책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L의 상태는 며칠 만에 저렇게 심각할 수 있나요? 조련사의 조수면 활동도 많아서 몸기능이 동년배들 보다 좋았을 것 같은데.. 중풍으로 의식 잃은 휴 오래동안 발견이 안 된건가요?
고양이 열마리는 안락사 당할려나, 걱정스럽네요...

2021-02-17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2-17 10:38   좋아요 3 | URL
잘잘라님 말씀에 동감하며 저도 라로님이 어떤 이유로든 간호일지를 공개 하지 않으셔도 라로님곁에 있을겁니다. 전부터 주욱 있었지만 (눈팅만 쭈욱 )인간의 생명을 곁에 지켜주고 간호하는 분의 하루 하루 일과를 남기는건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를 향한 애정과 간절한 희망 살리고 싶다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라로님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셔도 글로 문장으로 남기세요. 누군가에게 라로님의 글은 희망이고 살아가는 의지 라는걸!

행복한책읽기 2021-02-17 12:00   좋아요 3 | URL
아아. 라로님. 큰 결단 내려줘 고마워요. 이 일지를 다시 읽을 수 있어 정말 좋고 오늘 읽으면서 생로병사의 평범성과 위대성을 다시 각인합니다. 저는 라로님 일지가 오늘을 이야기해주고 있어, 그 어떤 의학서보다 와 닿습니다. 저는 거기 없지만 라로님 손끝에서 살아난 글들로 마치 가까이서 때론 눈시울 적시며 때론 눈 흘기며 라로님이 지키는 병상을 같이 지키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이런 글 읽을 수 있는 나는 행운아 라 생각하며 읽습니다.
그런 행운 또 주셔 고마워요. 이 오전에 라로님 덕에 나를 더욱 사랑하고 싶어졌습니다.^^

2021-02-1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02-17 15:30   좋아요 3 | URL
일일이 댓글 달지 못한 점 이해해 주세요.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제 ♥♥♥♥♥♥♥♥♥♥를 받아주세요!!

비연 2021-02-17 17:02   좋아요 2 | URL
응원합니다~ 라로님의 간호일지, 소중하게 읽을게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라, 정말 나중에 모아서 책으로 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