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과거 - media, memory, history -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김경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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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문서적을 많이 펴내는 휴머니스트의 책이다.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 영국에서 태어난 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일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고 호주에서 현재 교수로 재직중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변경, 통제의 최근 역사에 관한 공동연구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아주 접근하기 쉬운 몇 가지 매체들을 통해 과거를 보고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역사를 재현하거나 역사를 이해하거나 역사를 배우는 매체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거창하게 말해서 역사가 되겠고, 소박하게 말해서는 그저 지나간 과거가 되겠다. 개인의 사적인 앨범사진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를 그 범주에 넣는다면, 거시사적으로나 미시사적으로나 모든 것은 과거이고 모든 것은 또한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가 구별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들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교육보다는 역사소설, 사진, 영화, 만화, 그리고 인터넷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는 역사소설에서 비롯된 드라마가 또 하나의 대단한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듯 하다. 소설보다는 이제 드라마가 더욱 더 친근한 매체가 되어가고 있고 한 국가의 여론을 조성하고 뒤흔드는데는 드라마만큼 강력한 것도 없는 듯 하다. 아무튼 이 책은 드라마는 소설과 영화의 경계사이에 놓고 20세기의 매체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저자의 말대로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라는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가장 친근한 문제, 즉 자기 나라나 이웃나라, 그리고 힘이 센 나라들, 최근 몇 세기 동안 일어났던 제일 극적인 사건같은 역사에 집중하기 마련이니까. 그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대중적 방법으로 역사들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로 인한 오독과 오해가 어떻게 발생하고 대중이 흡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라는 나라, 특별히 2차 대전의 가해자로 알려진 일본이라는 국가내에서의 여러가지 특수한 상황들을 예로 들었는데, 우리에겐 교과서 왜곡이라고 알려진 일본의 보수우익들의 교과서문제, 종군 위안부 문제, 2차대전을 바라본 만화의 견해등 한국사와 뗄수 없는 소재들을 많이 언급하고 있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는, 재일교포 학자가 쓴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저자가 아시아-태평양 역사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라 하니 그도 그럴만 하겠지만. 

 매체라는 것이 표현할 수 있는 역사와 기록의 한계, 그리고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어떤 것이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노력인가에 대해서 아주 겸허하게 결론내리고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란 우리 안에 있는 과거,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과거의 존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되며, 우리가 과거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알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데 과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라는 것이다. 

 요즘 붐이 일고 있는 사극열풍, 중국의 동북공정을 부정하려는 민심을 등에 업고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현재 실태(연개소문, 주몽, 대조영)와 이승연의 위안부 화보촬영으로 위안부를 알게 되었다던 우리의 학생들이나, 이제 우리에겐 화려하고 낭만적인 사랑이 가득한 조선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들 (스캔들, 음란서생, 다모, 황진이, 대장금등)로 역사를 헛갈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절절히 필요한 책이 아닌가. 

 아름답게 꾸며 역사에 친근감이 드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대다수의 대중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하지도 않는 귀차니즘에 빠진 세태에서, 조금이라도 깨어있으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책 보내주신 이대희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06.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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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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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주목받는 중국작가 샨샤.

그러나 이 책도 역시 불어판이 번역되어 나온터라, 도서관에는 프랑스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샨샤는 1972년 베이징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에 천재적 소질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1990년에 프랑스 국비 장학생으로 파리에 유학, 1997년 프랑스어를 공부한 지 7년만에 프랑스어로 천안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 간혹 언어에 관해 이렇게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나라에 한 명정도 있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선 안정효씨가 그렇다고 생각함)

 이 책은 한 만주족 소녀와 일본장교와의 영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막판에 이르러 두 사람이 사랑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렇게 주인공들도 착각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 다른 환경이라면 사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텐데, 상황과 조건이 그렇게 되어서 어쩌다보니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고 결국 그 사랑을 믿게 되었다고, 최면에 걸린 듯한 그런 상황들 말이다. 간혹, 그런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2차대전이 진행되던 시기,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 그 일본군의 장교와 만주족 소녀가 서로 무명씨의 관계로 한 광장에서 만나 바둑을 둔다. 일요일마다.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상해에선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홍구공원 (현 루쉰공원)이 그러하다. 돌로 된 테이블들이 수십개 있고 그 테이블 위엔 장기판이나 바둑판들이 펼쳐져 있다. 우리의 검은 고무신 정도에 해당되는 검은 단화를 신은 노인들이 보온병을 들고 나와 하루종일 낯선 사람과 대국을 펼치다 이야기를 나누다 얼후를 연주하다 돌아간다. 그런 낯선 자들과의 교류가 낯설지 않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한 소녀는 전쟁을 겪으며 여자로 성장해가고 한 청년은 전쟁을 겪으며 자기 자신의 영혼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전쟁은 결국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배경과 대국이라고 표현되는 작은 전쟁의 상징, 바둑, 그리고 일본과 중국이라는 남녀의 상징, 작가의 명쾌하고 똑똑한 발상과 배치가 새삼 돋보이는 소설이긴 하나, 그리 공을 들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젊은 작가의 소설은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젊은 가수의 목소리도, 젊은 작가의 시도, 젊은 화가의 그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객기와 풋기가 어디선가 모르게 배어나와 결국 그 치부가 드러나고 독자로서 결국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기 때문인데, 샨사의 바둑두는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로 만들면,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해주면 재미난 영화가 될 것 같긴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이상해 선생이 번역했던 다른 중국의 불어판 소설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이 자꾸 떠올라 아쉽고 또 아쉽고 아쉬웠다. 

 대부분 중국현대문학은 가볍고 편안한 어조를 띤다. 중국문학의 특징이랄 수도 있다. 무겁고 지루한 것들은 중국문학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통속문학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대중에게 가까운 것이 善이 되는 짧지 않는 혁명의 풍습때문인지, 가오싱젠의 소설 따위는 절대 인기를 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현대문학에서는 얼마나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메타포를 잘 사용하느냐, 그러니까 바둑기사가 돌을 잘 쓰느냐 하는 것처럼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작품을 구성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에 따르면 이 소설은 중국 현대 문학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을 수 있겠으나, 나는 아쉬웠다.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냐고 하고 싶었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가오싱젠의 피가 뚝뚝 떨어지던 그 절절한 글들이 그리웠다. 뭔가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하겠다. 

 2006. 12. 9. 

 ※ 여기서 한 번쯤 이런 문제를 생각해봐야겠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 작가가 썼는데 불어로 되어 있다면, 그건 불문학인가 중문학인가. 문학에도 크로스오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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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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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추천받았다.

금지된 서적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 역시 같은 주제를 가졌다고.

그래 그럴만도 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내가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를 읽으면서 내내 떠올렸던 것이 중국이라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 독후감에서도 밝혔듯이, 중국이라는 나라도 금서와 금지된 서양문화, 폐쇄된 사회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뚱의 부인인 강청을 비롯한 4인방이 주도가 되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극도 좌파적 오류를 범했던 문화대혁명. 그 기간중에 공산당과 붉은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은 반동으로 치부된다. 믿을 수 없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그 시절, 중국은 신호체계를 거꾸로 사용해, 붉은 등에 길을 건너고 푸른 등에 멈추는, 붉은 것만이 살아남았다는 시대이기도 했다. 서양의 것들은 모두 부르조아의 유산으로 낙인찍혔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속에서도 이런 파란만장한 문물들의 이야기는 남아있다. 대약진 운동에서 이어졌던 문화대혁명속에 수많은 지식인들은 숙청당했고, 숙청당하지 않았으되 피해갈 방법이 있던 자들은 망명을 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살했다. 수많은 책들이 불태워졌으며 지식인들은 작품을 발표할 수 없었고 모택동의 어록이 담긴 붉은 책들이 정수로 꼽혔다. 그로 인해 찬란했던 중국문화는 다시 한 번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와 역사는 정체되었다. 

 이 책은 그 시절에 하방운동으로 시골에 내려간 두 청년의 금지된 책 훔치기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묘사된 중국의 금지된 정도는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에 비할바가 아니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금지된 책들이 들은 보물상자와도 같은 가방을 훔치게 된다. 그리고 그 가방속에서 발자크와 로맹롤랑등의 서양소설들을 하나씩 꺼내어 훔친 사탕처럼 살살 녹여서 몸속에 고이 고이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기까지 한다. 이들은 그 책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흡수하고 소화하고 배설까지 한 것이다. 

 두 청년의 이런 모험담에 바느질 하던 소녀가 있었다. 그들이 배설한 책으로 인해 그녀가 변화하고 결국 두 청년이 의도하지 않았던 바대로 소녀의 미래가 바뀌어버린다. 

이 책은, 문학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풍자와 해학을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절을 다시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우스개소리처럼 남의 이야기처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우리를 가르치던 한 노선생은, 문화 혁명 시절당시 군인이 학교를 점령하고 매일 아침 군사 훈련을 받았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였고 내가 세를 얻어살던 집주인은 하방정책으로 하남에서 27년 젊은 시절을 홀라당 바치고 세월이 몇 번을 바뀐 후에 96년도에 상하이로 돌아왔던 부부였다. 그들은, 그 때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저, 고생스러웠다고, 힘들었다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식인들은 괴로웠다. 팔다리를 잘리고 입을 틀어막힌 채 항아리속에 담겨진 것처럼, 사람마다 원하는 것은 다른데 그들은 통일되어야만 했다. 

 문학이 사람을 바꾸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반론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문학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기도 한다. 나 역시, 내 남편과 처음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의 공통주제가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였다. 남편은 그 책을 읽고 중국유학을 결심했다고 했고 나는 그 책의 책날개 표지에 내 독후감이 한 구절 들어갔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지금도 내가 책꽂이의 가장 위쪽에 소중하게 간직하는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처럼, 이 책은 발자크로 인해 인생을 바꿔버린 한 소녀와 그 시절을 묵묵히 견디어낸 두 청년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정확히 책에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그도 아마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문학과 자유를 찾아 망명을 하였던 것은 아닌지, 이 책은 불어로 쓰여졌고 불어판을 번역한 것인지라, 도서관 중국문학 코너에서 찾을 수 없고 프랑스문학 서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문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문학이 우리를 어느정도 길러주었는가.

문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닌 것이 아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스며들고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6. 12. 3. 

 

   
 

문화대혁명 [文化大革命]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을 일으키고,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한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를 내렸다.

 

 하방운동 [下放運動]

중국에서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실시한 운동. 
 중국이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주의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들을 개조하며 국가기구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고급 군간부들을 사병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생활하게 하는 간부정책으로 1957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하방’된 중앙 및 성급(省級) 지방간부는 300만 명에 달하였으며, 여기에 학생들과 군간부들을 합치면 1,000만 명에 달하였다.

문화대혁명 때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다시 재개되었다. 특히 도시의 중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변방지방에 정착시켜 도시의 인구과잉과 취업난을 완화시키는 편법으로서도 사용되어 각지의 하방청년들의 반발이 극심해져 사회문제로까지 야기되었다. 1991년 현재도 10만 명의 대학생들이 광산 ·공장 ·농장으로 파견되는 등 이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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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이성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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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라는 책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적이 있다.

국문학 박사를 전공하는 한 후배는 많은 국문학 학위 준비자들이 1910년대와 1920년대 신문을 읽고 있으며 그 중의 자료를 뽑아 소설로 만들어내는 작가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글쎄, 나만 그런 것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2차대전의 그 격동하던 세월은 중절모를 쓴 신사가 양복을 입고 담배를  피워물던 상하이의 한 클럽에서 위스키를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가던 그 세월이 그만 어줍잖은 낭만의 세월로 상상이 되곤 하는 것이다.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세월은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한다.

그런 세월들이 궁금해서 예전에 민예총이라는 단체에서 하는 문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고, 그 때 당시 소개받았던 책들은 그런 재미들을 더 해주는 책들이었다. 그 때는 무슨 무슨 담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들을 처음 듣게 되었고 우리의 역사책속에 쏙 빠져버린 근대의 문화사가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은지, 2000년도즈음에 그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때 들었던 강의가 생각나 빌려온 책인데, 책을 빌려오고 나서 저자의 이름을 보니 낯이 익다. 책 날개를 펼쳐서 확인한 저자의 사진을 보니, 어라, 그 때 당시 강의를 들었던 민예총 문화사 수업의 강사 이성욱씨가 맞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먼저 읽기로 한 책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시작하며 추천사를 읽고 있는데, "고인은"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급한 마음에 부리나케 추천사를 다 읽고 나니, 저자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책 날개를 자세히 읽지 않았던 나, 책 날개를 다시 들춰 저자의 약력을 살핀다. 2002년 11월 급성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내가 이성욱씨에게 수업을 들었던 것은 2000년도 여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2001년도에 중국으로 갔다. 그에게 수업을 들었을 때 같이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은 10명 남짓이었다. 인사동에 위치한 민예총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간혹 수강생들과 그와 함께 낙원상가 뒤쪽 허름한 맥주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기도 했고, 인사동 골목 안에 있던 피아노가 있는 수필이라는 곳도 그가 추천해주어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는 청바지에 폴로스타일 셔츠를 입고 뿔테안경을 썼으며 늘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좋은 얼굴을 하고 술자리에서는 늘 쑥쓰러워했으나, 강의시간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고, 우리중 아무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지 않았다는 것에 개탄했다.

그는 지식권력층의 중심에 서 있는 두 학자를 자주 비판했으며, 그 학자를 스승으로 모셨던 수강생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곤 했다. 이후 내가 중국으로 간 후, 그가 일본에 유학차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살아있는 글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었다. 

 그랬던 그가, 2002년도에 급성간암으로 선고 3개월만에, 정말 드라마처럼 세상을 떴다고 한다. 이 책은, 고인이 남긴 글들을 모아서 묶어낸, 책들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그를 기룬 추억들과 그 추억들이 갖는 문화사적 의의,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근대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글은 그의 수업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사담을 펼쳐놓는 듯 하나 그 속에 숨어있는 모든 메타포들을 충실하게 해석할 줄 알고, 그래서 즐겁고 재미있고 친근하며 가치가 있다. 묘하게도,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모두 추억을 더듬는, 즐거운 글들이다. 그가 생전에 슬퍼하고 분노했던 것들은 이 책에 실려있지는 않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기억, 그리고 근대의 이야기까지, 문화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 쇼쇼쇼와 김추자, 선데이 서울등에 대하여.

혹은 문화사가 뭔지 잘 몰라도,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를 즐겁게 봤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저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젊은 나이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책 몇 권이 책 날개 뒤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제목을 한자씩 한자씩 곱씹어보았다. 

 고 이성욱 선생, 저 세상에서도 책 많이 읽고 즐거우시길.

 

2006. 12. 3.

 

故 이성욱이 남기고 간 책들

비평의 길 / 이성욱 문학평론집 / 문학동네

20세기 문화이미지 / 이성욱 문화평론집 / 문화과학사

한국 근대문학과 도시문화 / 이성욱 근대문화 연구서 / 문화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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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 합본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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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고 있는 페이퍼 작가의 소개로 EBS 오디오북을 알게 되었다.

EBS 오디오북과 라디오 소설은 한 권의 책, 혹은 단편소설을 몇 회에 걸쳐 나누어 읽어주는데, 오디오 북은 전 권이 아니고 일부를 발췌해 읽어준다. 소설가들이 진행을 하기도 하고 간혹 문학평론을 추가로 넣어주기도 한다.

이런 다시듣기 프로그램중에 한 달 정액 얼마, 짜리를 구입하면 나는 다 들어볼란다 하는 말도 안되는 욕심을 부리며 페이지 맨 앞으로 들어가 다시 듣기를 클릭하는데, 오디오 북 앞부분에 바로 이 책이 있었다.

신영복의 더불어숲.

그걸 들을 때가 마침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감동을 받고 있던 때였어서 더불어숲을 꼭 빌려다 읽어야겠다 했었다. 그러나 더불어숲은 인기있는 책이라 갈 때마다 더불어 숲이 꽂힌 816번줄엔 신영복 선생의 책이 단 한 권도 꽂혀있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나름대로 기다려 운 좋게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을 빌리게 되었다.

더불어 숲은 신영복 선생이 출소 이후 떠난 세계여행에 대한 기행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띄우는 엽서의 형태로, 2년동안 써온 것이다. 그리고 책의 군데 군데에는 마우스를 이용해 컴퓨터로 그린듯한 그림들이 섞여있다. 원래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가 2003년에 한 권으로 통합 출간되었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의 여행이야기는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터키, 인도, 네팔, 베트남, 일본, 중국, 러시아, 아우슈비츠(폴란드), 베를린, 런던, 파리, 로마, 이집트, 남아공, 브라질, 페루, 멕시코, 미국, 스웨덴,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실크로드, 등 국가 전반의 이미지보다는 한 국가의 한 두개정도의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장소에서 썼어야만 하는 정말 친필 엽서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의 글들이 모여있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후에 다시 읽어보면 도저히 수정을 할 수 없다. 수정을 했다가 행여 그 때의 감동과 심정이 모두 엉그러질까봐, 그리고 그 때의 감정이 또렷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쓴 글들은 그 자리에서 써야 제 맛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읽어지지만 그만큼 생생한 감동이 있다.

 

얼마전 기행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페이퍼를 통해 밝혔는데, 신영복 선생의 고매한 인격이 가득담긴 이 책에선, 아 - 내가 거기에 갔어도 이렇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군데 군데 신영복 선생을 중심으로 포커스를 맞춘 사진들도 작위적이지 않아 좋고, 누구나 그렇듯 여행지에서 약간 감정이 복받치는 듯한 과장된 이야기들도 좋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다. 다 읽고 난 다음에 표지를 덮고 살살 손을 문질러 쓰다듬게 되는 책.

더불어 숲이 그런 책이다.

 

여러군데를 다니면서 찬찬히 이해하고, 그 어디를 가도 낮은 곳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 그들과 동화되려고 억지 부리지 않고 이해하려고 과장하지 않으며 뭔가 대단한 것을 깨쳤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 그런 겸손한 여행기. 정말 아름다운 글들이 있다.

 

신영복 선생의 모든 글들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글은 역시, 인격이 우선인 것 같다.

 

200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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