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이성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오래전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라는 책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적이 있다.

국문학 박사를 전공하는 한 후배는 많은 국문학 학위 준비자들이 1910년대와 1920년대 신문을 읽고 있으며 그 중의 자료를 뽑아 소설로 만들어내는 작가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글쎄, 나만 그런 것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2차대전의 그 격동하던 세월은 중절모를 쓴 신사가 양복을 입고 담배를  피워물던 상하이의 한 클럽에서 위스키를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가던 그 세월이 그만 어줍잖은 낭만의 세월로 상상이 되곤 하는 것이다.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세월은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한다.

그런 세월들이 궁금해서 예전에 민예총이라는 단체에서 하는 문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고, 그 때 당시 소개받았던 책들은 그런 재미들을 더 해주는 책들이었다. 그 때는 무슨 무슨 담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들을 처음 듣게 되었고 우리의 역사책속에 쏙 빠져버린 근대의 문화사가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은지, 2000년도즈음에 그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때 들었던 강의가 생각나 빌려온 책인데, 책을 빌려오고 나서 저자의 이름을 보니 낯이 익다. 책 날개를 펼쳐서 확인한 저자의 사진을 보니, 어라, 그 때 당시 강의를 들었던 민예총 문화사 수업의 강사 이성욱씨가 맞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먼저 읽기로 한 책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시작하며 추천사를 읽고 있는데, "고인은"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급한 마음에 부리나케 추천사를 다 읽고 나니, 저자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책 날개를 자세히 읽지 않았던 나, 책 날개를 다시 들춰 저자의 약력을 살핀다. 2002년 11월 급성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내가 이성욱씨에게 수업을 들었던 것은 2000년도 여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2001년도에 중국으로 갔다. 그에게 수업을 들었을 때 같이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은 10명 남짓이었다. 인사동에 위치한 민예총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간혹 수강생들과 그와 함께 낙원상가 뒤쪽 허름한 맥주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기도 했고, 인사동 골목 안에 있던 피아노가 있는 수필이라는 곳도 그가 추천해주어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는 청바지에 폴로스타일 셔츠를 입고 뿔테안경을 썼으며 늘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좋은 얼굴을 하고 술자리에서는 늘 쑥쓰러워했으나, 강의시간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고, 우리중 아무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지 않았다는 것에 개탄했다.

그는 지식권력층의 중심에 서 있는 두 학자를 자주 비판했으며, 그 학자를 스승으로 모셨던 수강생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곤 했다. 이후 내가 중국으로 간 후, 그가 일본에 유학차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살아있는 글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었다. 

 그랬던 그가, 2002년도에 급성간암으로 선고 3개월만에, 정말 드라마처럼 세상을 떴다고 한다. 이 책은, 고인이 남긴 글들을 모아서 묶어낸, 책들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그를 기룬 추억들과 그 추억들이 갖는 문화사적 의의,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근대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글은 그의 수업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사담을 펼쳐놓는 듯 하나 그 속에 숨어있는 모든 메타포들을 충실하게 해석할 줄 알고, 그래서 즐겁고 재미있고 친근하며 가치가 있다. 묘하게도,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모두 추억을 더듬는, 즐거운 글들이다. 그가 생전에 슬퍼하고 분노했던 것들은 이 책에 실려있지는 않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기억, 그리고 근대의 이야기까지, 문화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 쇼쇼쇼와 김추자, 선데이 서울등에 대하여.

혹은 문화사가 뭔지 잘 몰라도,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를 즐겁게 봤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저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젊은 나이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책 몇 권이 책 날개 뒤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제목을 한자씩 한자씩 곱씹어보았다. 

 고 이성욱 선생, 저 세상에서도 책 많이 읽고 즐거우시길.

 

2006. 12. 3.

 

故 이성욱이 남기고 간 책들

비평의 길 / 이성욱 문학평론집 / 문학동네

20세기 문화이미지 / 이성욱 문화평론집 / 문화과학사

한국 근대문학과 도시문화 / 이성욱 근대문화 연구서 / 문화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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