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 동양고전 슬기바다 14
노자 지음, 김학목 옮김 / 홍익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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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평생의 화두처럼 따라다니는 책들이 있다.

읽어야 했는데 부담되어 미뤄두었는데, 결국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는데 결국 손에 다시 들어와 읽게 되는 책들.

나에게는 제자백가나 중국의 고전들이 그런 의미가 된다.

중국에서 한어언문학이라는 중국문학을 중국학생들 사이에서 전공으로 학부생활까지 했었지만, 나에게 중국고전은 빨리 진도를 따라가야만 하는 급한 숙제들뿐이었고, 깊이 통독하기엔 시간도 능력도 너무나 모자랐다. 현대 중국어로 풀이해놓은 것중 학교에서 배우는 강독부분만 읽어도 무릎을 탁탁치곤 했지만, 아, 이걸 읽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 작품은 이미 학교진도에서 지나가 있었다. 한 학기에 중국역사의 반정도에 해당하는 문학작품들을 배우다보면, 글쎄, 나와 같이 공부하던 중국학생들 중에도 통독을 한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을 법하다. 그저 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대강의 이야기와 중심내용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우리에게 중국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논어뿐만 아니라 한비자나 좌전, 춘추정도만 읽어도 아,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 옳은 말 뿐인데, 읽어야 말텐데 읽고야 말테야 하는 욕심들은 그냥 세월속에 묻혀갈 뿐이었다. 그 때는 현대중국어로 풀이해 놓은 일부분을 따라가는 것만도 정말 벅찼으니까. 결국 지금 다시 영어영문학으로 돌아왔는데 1학기 레포트 중 하나가 동서양고전 서적을 한 권 읽고 서평을 쓰는 숙제가 주어졌고, 그 중 내가 택한 것이 노자였다. 노자의 도덕경은 사 놓은 지 거의 6년이 되어가는데 손도 대지 못했고, 논어집주나 논어금독(리저허우의 저서로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을 펴놓고 만지작거리면서 제자백가를 시작할 그 날을 기다리던 나에게 결국 평생의 화두 같은 제자백가 중의 한 권이 떨어진 셈이다.

이런 명고전들은 선뜻 시작하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공자가 아니고 고전을 읽고 논문을 쓸 것도 아니므로, 스스로 취할 부분만 취하면 그만이다. 내가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를 1독한 방법은 이러하다. 일단 중국어를 전공했으므로 노자의 본문부분은 한 번 읽어주고, (사실 한국 한자의 독음보다 중국식 독음에 더 강하다. 한국식 독음은 헛갈리는 부분이 부끄럽지만 아직 많은게 사실) 왕필의 주는 넘어간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부분만 읽어주는게지. 그러다보면 한국어로 된 번역과 해설부분중에 가슴에 팍팍 꽂히는 부분은 다시 한자부분도 같이 봐주는게다. 이렇게 하여 나는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라는 어마어마한 산을 한 번 넘었다.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고 서평을 쓸만한 것은 아니고, 노자 도덕경에 대해서 어떤 논을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제자 백가나 동서양의 고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재미가 있다. 세상의 모든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에게서 나왔다는 말도 있듯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고전에 있다. 이것들이 왜 고전이라 칭해지는지는 읽어봐야 안다. 아니 몇 천년전에 인간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니, 이렇게도 진보적일 수가 라는 생각부터, 그 때와 지금은 과학기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닥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게다. 사람 사는 꼬라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지도.

노자의 도덕경을 가장 잘 해석했다는 위진남북조의 학자 왕필의 주가 가장 보편적으로 읽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선정되었고 노자 전문가인 김학목 선생의 해설도 같이 읽을 수 있다. 한글로 풀이된 부분만 쏙쏙 뽑아읽어도 무방하며, 노자의 가장 큰 사상인, 무가 존재함으로 유가 존재한다는 것 – 즉, 쉬운 비유로 아름답다는 정의는 추한 것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라는 간단한 중심사상만 알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간혹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정도가 아닐는지. 대신 이런 고전을 읽을 때는 되도록이면 사서 밑줄을 그어가며 침을 발라가며 감탄을 해가며 한 줄 읽고 하늘보고 감동을 느껴주면서 천천히 읽어주는 것이 미덕일 것이다. 이 책의 서평을 써야하는 숙제를 하기 전에 책장에서 6년동안 먼지를 먹으며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탄 소나무 출판의 도덕경도 다시 읽어야겠다.



2007.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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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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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에서 추천글을 읽고 골랐던 책.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루이스 세뿔베다. 그의 전작 연애소설을 읽던 노인은 내가 실패한 소설이다. 나는 제목을 잘못 읽었다. 연애소설을 읽던 노인이 아니라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인 줄 알았고 그 노인이 도대체 언제 연애소설을 읽는 것인가, 언제 연애를 하는 것인가에 포인트를 맞춰 책을 읽었다. 나는 안나 가발디의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정도의 내용이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긴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내 상황도 책을 잡으면 글자만 읽고 있을 수밖에 없던 지치고 피폐한 상황이었지만. 그리하여..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막판에 환경론자인가? 라고 생각했던 것 밖에.

루이스 세뿔베다는 환경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은 환경문제를 거론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쳐나간다고 하는 것.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은 책의 뒷 부분에 친절하게 나와 있다.

“아기 갈매기야, 우리는 여지껏 우리와 같은 존재들만 받아들이며 사랑했단다.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하진 못했어.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 하지만 이젠 다른 존재를 존중하며 아낄 수 있게 되었단다. 네가 그걸 깨닫게 했어. 너는 갈매기야. 고양이가 아니야. 그러니 너는 갈매기의 운명을 따라야 해. 네가 하늘을 날게 될 때, 비로소 너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가지는 감정과 너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더욱 깊고 아름다워 질 거란다. 그것이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진정한 애정이지.”

여기 의리있는 고양이들이 있다. 약속한 것은 지키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그리고 결국 금기까지 깨고 사람과 손을 잡는다. 동물과 사람이 손을 잡아 또 하나의 동물의 살길을 열어준다는 것. 이 책은 상징이 많은 우화이다.

좋은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읽기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교훈이 많지만 작가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고양이가 갈매기에게 어떻게 나는 법을 가르칠려나 하는 게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2, 3권도 읽어봐야겠다고 책날개를 자꾸 뒤적거렸으니까.

그러면서 역시나 고양이는 멋진 동물이야. 라고 생각하며 발정이 와서 밤마다 울어제껴 요즘 미운털이 박힌 뒷베란다의 나옹을 생각했다. 그리고 베란다 문을 열고 살며시 쓸어주기도 했으니까.

우리, 얼마나 많이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을 이해하기만 해도 정말 세상은 많이 달라질텐데. 8세 미만의 아이에게도 잠자리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께. 라고 하며 읽어줘도 좋지 않을까 하는 동화였다. 그림도 있고. 이 소설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건 책을 읽는 그 누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서 생략하기로 한다.

200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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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
고혜정 지음 / 함께(바소책)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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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무슨 무슨 개론 따위의 오래된 책들을 뒤지다가 발견한 책이다.

아이를 업고 헌책방을 나들이 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 헌책방에서 메인에 딱 올라와 있더라. 헌책방 사이트에서 메인에 올라와 있는 책은 정말 정말 깨끗한 책들이다. 이런 책을 헌 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거야? 하고 되물을 정도로.

친정엄마라는 제목에, 쪽진 머리 사진. 그야말로 말초신경을 살살 긁어 놓을만한 쉬운 에세이집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친정엄마라는 이름은 그렇게 짠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휘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그래 결심했어의 TV 인생극장과 금촌댁네 사람들을 썼던 방송작가 고혜정씨의 작품이다. 2004년도 발행인데, 요즘 같으면 좋은 사진 작가와 연합하여 엄마들의 사진을 싣고 글과 함께 실어 더 비싸고 좋은 책을 만들었겠지만, 이 책은 그저 작가가 블로그를 쓰듯이 이야기 한 책이다. 블로그보다는 조금 더 다듬어졌다고나 할까. 본업이 방송작가여서 그런지, 월간으로 나오는 사보나, 얇은 책자 같은 곳이 실렸을 것 같은 에세이들이 모여있다. 작가는 순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실었다. 시댁과의 갈등과 촌로인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조용한 전쟁까지, 이걸 출판하고도 괜찮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의 친정은 전라도 정읍이고, 그 정읍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건사하신 무학의 시골어머니에게 바치는 송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딸은 시집을 가야 딸 노릇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다던데, 나 역시도 그렇다.

아직도 돈 버느라 정신 없는 나의 친정엄마, 항상 어디서나 당당하고 잘나서 한없이 퍼주는 시골노인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결혼이라는 걸 하고 나니 내가 대신 엄마가 되어 이 반찬을 해서 엄마를 줘야겠다, 엄마 생일상을 차려줘야겠다. 엄마 뭐 사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엄마가 바쁜 가운데 짬을 내 우리 집에 들르면 손주를 보느라 황홀해 하는 사이 국을 끓여 밥상을 차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내 화장품 하나 살려다가 엄마꺼 먼저 사게 되는 것이, 그래도 나는 이 나이에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 동안 끼친 염려와 엄마에게 줬던 상처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에 엄마와 고기를 먹으러 갔던 고기집에서 고기를 잘라주던 아줌마가 물었다.

손주를 안고 문가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구경시키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던 그녀가 나에게 시어머니냐고 물었고, 나는 친정엄마라고 대답했다. (희한하게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다닐 때는 친정엄마와 다니는 줄 알고 친정엄마와 다닐 때는 시어머니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조용히 고기를 잘라주며 잘하세요. 친정엄마 돌아가시면 갈 데가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박혔다. 갈 데가 있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 그저 그런 느낌을 다시 한 번 받아보고 싶어서 골랐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사위들은 장모에게 잘하라. 당신들은 마누라가 친정엄마를 생각하면서 새벽에 몰래깨서 얼마나 우는 지 상상도 못할 것이야. 당신들도 곧 장인이 된다구요. 나는 장인이 되지 않을텐데 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아버지도 못 되리라는 저주를 ~~~ 음하하하.  

 

200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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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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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전쟁

로빈베이커 지음 / 이민아 옮김 / 이학사 펴냄

불륜, 성적갈등, 침실의 각축전

Robin Baker / Sperm Wars: Infidelity, Sexual Conflict, and Other Bedroom Battles, re-issued Edition(Thunder’s Mouth Press, 2006)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도덕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불확실하지만 사회전반에 걸쳐 깊게 뿌리박혀 있고 그것을 파기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의 생식과 임신, 출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이 가장 동물적인 신체본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로빈베이커의 주장은 발칙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한 때 그랬었고 논란을 일으켰고 그의 주장의 일부를 사람들은 경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여기 정자들이 벌이는 전쟁에 대한 한 생물학자의 발칙한 주장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인간은 어디까지나 동물의 한 종이며, 그런 이유로 이성이 지배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해야 한다. 사람이 모든 일을 이성으로만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분노하거나 흥분할 것이다. 미성년자이거나 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비도덕적인 성행위에 대해서 극도의 배타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역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숨을 깊이 고르고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른다. 치기로 가득한 사춘기 소년에게는 이 책은 빨간 책보다 더 한 생생한 포르노 르포타쥬로 비춰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선 수많은 속설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 아들을 낳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이 아이가 과연 나의 자식인가를 궁금해 하는 남자들은 의처증으로 치부당한다.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강렬하게 종족번식과 강한 자손을 얻고 싶어하는지, 그 잠재적인 의식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로빈 베이커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려면 인간의 동물성, 그리고 동물의 가장 큰 삶의 목표는 종족번식, 자손을 번식함으로써 자신의 생명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처럼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세상에서 자식은 그저 귀찮은 존재, 돈만 까먹는 존재, 출산과 동시에 부실채권이나 부도수표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어쩌면 생명력을 극대화하는 것, 자손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자기가 죽은 다음에도 세상에 존재케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자는 인간이라는 종족에서 그러한 유전자를 받아들여 수정을 하고 잉태하여 임신기간을 거쳐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하고 여성의 몸에서 수태되길 기다리는 수억만 마리들의 정자들이 여성의 몸 안에서 전쟁을 치른다. 그들은 조금 더 우수한 유전자를 찾고자 하는 인간 본능에 의해 부대를 만들고 대열을 갖춰 전투에 나선다. 물론 정자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는, 1:1의 일부일처제이기 보다 불륜이나 강간, 윤간, 여러 가지 부적절한 관계인 경우가 많다. 일부일처에서 유능한 유전자를 받아들이기 글렀다고 생각하는 어떤 자궁들은 좀 더 우수한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또한 아이를 양육하는데 적절치 못한 남자를 남편으로 가진 자궁들은 아이들의 성별을 구분 지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친다. 좀 더 우수한 유전자가 수태되기 마련이고 유전학적으로 우수하지 못한 유전자는 수태되지 못하고 수정란이 여자의 몸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되기도 한다. 유전자적 결함이 있는 태아는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유산되며, 훌륭한 유전자를 가진 정자들을 그렇지 못한 정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그러한 과정에 대한 일례들이 이 책에 실려있다. 물론 이 것은 서구사회에서 조금 더 적용이 쉬울 수 있다. 불륜을 저질렀을 때 발각되기 쉬운 것은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다. 서구사회처럼 수세기에 걸쳐 인종이 섞인 경우는 자신의 아이를 구분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는 흑인이나 그 위에는 황색인종이나 백인이 있을 수 있고 어머니는 라틴계열이라도 그 조상 역시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동양사회보다 크기 때문에 책 뒤 페이지에 실린 아주 자극적인 사실 “ 부부 관계에서 태어나는 자녀의 10%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다”라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우수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생물학적 그 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많은 정자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예들을 들고 그 예가 밝혀주는 정자전쟁의 전모를 낱낱이 까발린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여자와 남자라고 표시하기 보다 인간이라는 종의 암컷과 수컷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읽기 부드러웠을 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했다. 온갖 싸이코들이 출몰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시청률 상위를 고수하고 있는 부부클리닉처럼 이 책은 무지하게 재미있고 자극적이다. 그리고 독자를 압도하는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다.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속설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강간당한 여자가 수태할 가능성이 높다 라거나, 여성이 오르가즘을 더 크게 느끼면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미 결혼을 하여 아이를 출산했거나 혹은 여러 명의 섹스파트너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현실에 적용하여 이해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대의 변화로 조금 더 환영받는 분위기에서 재판된 정자전쟁.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해야하는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 대해서 조금 더 고찰해보기 위한 책으로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비도덕적이며 발칙하고 불경스럽다는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인간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를 계속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07.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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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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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 제목과 딱 맞아떨어지는 책표지 그림이다. 책 표지의 그림은 책의 내용에도 나와있는 카유보트의 “유럽의 다리”이다. 이 그림은 왠지 어딘가 짤린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개의 발부분이 잘려있고 개가 혼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왠지 저 개가 관객을 이끌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그저 지나가는 풍경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강하게 책의 서두부문에서 그림을 읽는 것에 대해서 역설한다. 그림을 보는 것도 무방하지만, 그림은 읽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내내 저자가 그림을 읽어내고 있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기호학적 접근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림의 감상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그림속에 반영된 근대화의 모습들과 그 근대를 상징하는 메타포들을 숨은그림찾기 처럼 찾아내는 작업이다. 독자들은 짧디 짧은 지식을 가지고 저자와 함께 숨은 그림을 찾아야 한다. 카메라의 발명과 증기기관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시작된 그 상징들을 찾고 그 상징들이 시작된 사상을 읽어낸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그리하여 close up 이라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서 인상주의, 파리 코뮌, 라파엘전파등 근대의 인문지식부터, 칼 마르크스, 존 러스킨,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등 화가나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도 별도로 하고 있다. 책은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시작한다. 얼마전 방영된 KBS의 다큐멘터리에서도 마네의 올랭피아를 시작으로 근대미술의 출발에 대해서 논한 적 있다. 그만큼 마네의 올랭피아는 두고 두고 할 말이 많은 그림인가보다. 그만큼 그의 그림엔 상징이 많다는 뜻도 되고 그 자체로 상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 몇 번씩 천지개벽을 하는 일들이 있다. 구석기, 신석기를 지나 청동의 발견이 시작된 청동기가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증기기관차와 전기, 카메라가 발명되고 탈 것이 생긴 근대사회가 바로 그러할 것이다. 그 천지개벽을 가로지르는 그 시대의 그림들에 대해서 이 책은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근대 미술을 역사적 관점으로 풀어낸다는 것과 기호학적 접근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대중서로 만들어졌고 책의 사이즈나 글자의 크기 역시 그러하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적잖은 농을 섞고 썰렁한 문장들까지 나열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나, 조금 더 깊이있는 내용을 원했던 독자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바라자면, 이 저자는 이런 책을 쓸 때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와 조금 더 깊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서적 두 권을 만들면 어떨까 한다. 문장의 연결이 가끔 껄끄러운 것으로 봐서 써 놓고 너무 어려운 내용이 있어 편집에서 빼버렸거나 혹은 쓰다가 방향을 확 틀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들이 있다.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편하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전문서적으로는 많이 아쉬운 책.

다시 한 번 저자가 더 진한 근대미술의 깊이를 파헤쳐주길 바란다. 
 

200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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