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6년 주목받는 중국작가 샨샤.

그러나 이 책도 역시 불어판이 번역되어 나온터라, 도서관에는 프랑스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샨샤는 1972년 베이징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에 천재적 소질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1990년에 프랑스 국비 장학생으로 파리에 유학, 1997년 프랑스어를 공부한 지 7년만에 프랑스어로 천안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 간혹 언어에 관해 이렇게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나라에 한 명정도 있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선 안정효씨가 그렇다고 생각함)

 이 책은 한 만주족 소녀와 일본장교와의 영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막판에 이르러 두 사람이 사랑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렇게 주인공들도 착각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 다른 환경이라면 사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텐데, 상황과 조건이 그렇게 되어서 어쩌다보니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고 결국 그 사랑을 믿게 되었다고, 최면에 걸린 듯한 그런 상황들 말이다. 간혹, 그런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2차대전이 진행되던 시기,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 그 일본군의 장교와 만주족 소녀가 서로 무명씨의 관계로 한 광장에서 만나 바둑을 둔다. 일요일마다.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상해에선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홍구공원 (현 루쉰공원)이 그러하다. 돌로 된 테이블들이 수십개 있고 그 테이블 위엔 장기판이나 바둑판들이 펼쳐져 있다. 우리의 검은 고무신 정도에 해당되는 검은 단화를 신은 노인들이 보온병을 들고 나와 하루종일 낯선 사람과 대국을 펼치다 이야기를 나누다 얼후를 연주하다 돌아간다. 그런 낯선 자들과의 교류가 낯설지 않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한 소녀는 전쟁을 겪으며 여자로 성장해가고 한 청년은 전쟁을 겪으며 자기 자신의 영혼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전쟁은 결국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배경과 대국이라고 표현되는 작은 전쟁의 상징, 바둑, 그리고 일본과 중국이라는 남녀의 상징, 작가의 명쾌하고 똑똑한 발상과 배치가 새삼 돋보이는 소설이긴 하나, 그리 공을 들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젊은 작가의 소설은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젊은 가수의 목소리도, 젊은 작가의 시도, 젊은 화가의 그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객기와 풋기가 어디선가 모르게 배어나와 결국 그 치부가 드러나고 독자로서 결국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기 때문인데, 샨사의 바둑두는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로 만들면,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해주면 재미난 영화가 될 것 같긴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이상해 선생이 번역했던 다른 중국의 불어판 소설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이 자꾸 떠올라 아쉽고 또 아쉽고 아쉬웠다. 

 대부분 중국현대문학은 가볍고 편안한 어조를 띤다. 중국문학의 특징이랄 수도 있다. 무겁고 지루한 것들은 중국문학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통속문학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대중에게 가까운 것이 善이 되는 짧지 않는 혁명의 풍습때문인지, 가오싱젠의 소설 따위는 절대 인기를 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현대문학에서는 얼마나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메타포를 잘 사용하느냐, 그러니까 바둑기사가 돌을 잘 쓰느냐 하는 것처럼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작품을 구성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에 따르면 이 소설은 중국 현대 문학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을 수 있겠으나, 나는 아쉬웠다.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냐고 하고 싶었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가오싱젠의 피가 뚝뚝 떨어지던 그 절절한 글들이 그리웠다. 뭔가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하겠다. 

 2006. 12. 9. 

 ※ 여기서 한 번쯤 이런 문제를 생각해봐야겠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 작가가 썼는데 불어로 되어 있다면, 그건 불문학인가 중문학인가. 문학에도 크로스오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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