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소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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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던 권지예의 소설모음집이다.
그 생경했던 이국적 정취는 작가의 배경이었다. 권지예는 이화여대국문과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왔는데, 그 공부한 것을 강단에서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글쓰기라는 신들림에 걸려버린, 작가다.

처음 나는 이 책이 장편소설이라고 착각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묶음집의 첫 작품인 "누군가 베어먹은 사과 한 알"이 완성된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지리..한 이야기들, 그리고 많은 여자들의 등장, 별 것 없는 이야기, 상념을 쫒아가는 징그럽게 자주 접한 요즘 우리나라의 여류작가들의 공통점을 툭 만나는 순간, 이건 완성작이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맨 마지막에 실린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욱" (제목들이 좀 길다 싶군)은 2002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같이 수록되었던 작품이지만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가 있었고, 신선한 반전이 있었던 "스토커" 같은 것도 괜찮았지만, 이 소설에서 제일 맘에 든 것은 "행복한 재앙"이라는 좀 긴 단편, 어쩌면 좀 짧은 중편이다. 병원이라는 협소한 공간내에서 일어나는 인간군상들의 부조리극 한 판을 보고 난 것 같은, 재미있고 사실감 높은 이야기라 내 취향에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소설가도, 처음부터 다 잘 쓰는 것은 아니고, 그들도 모두 성장을 한다.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이 다르고, 첫 소설집과 두번째 소설집이 다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문체도 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권지예의 두번째 소설집은 그녀가 용트림을 하기 시작하는 변화를 확연하게 볼 수 있는, 도전적인 소설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총명한 작품이 부족한 현대문학계에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해봐줬으면 싶다.

쓸데없는 말 한 마디 붙이자면.. 뒤에 해설부분이 있는데.. 아무리 동문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칭찬일색으로 포장해서 문학평론을 해도 되는거구나 하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그게 옥의 티였다.


ps. 사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두 종류로 분류된다.
너따위는 소설에 접근할 수도 없으니 당장에 포기하라고 나를 좌절시키는 하일지같은 작가. 그리고 너도 쓸 수 있다고 말해주는 권지예나 김인숙같은 작가.

 

200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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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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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936년 헝가리출생. 이후 조국을 탈출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정착. 그리고 불어로 작품을 써내는 망명작가이다.
책 앞 날개에 붙어있는 작가소개를 적어보자면, 쉰 살의 나이로 첫 소설 "비밀노트"를 발표한 이후, "타인의 증거",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잇달아 발표했다고 한다. 작가의 특수한 삶의 체험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학작품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 "어제"에도 그녀가 하루 10시간 이상 시계공장에서 노동을 했던 체험이 배어나오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설이 필요했다.
간결한 문체, 그래서 도발적인, 그리고 깊이있지만 설명하지 않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었을 때 나의 치부를 건드릴만한, 번역이 되어도 충분히 충격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문체의 작가.

우리에게 소개되는 많은 유럽언어권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라고 할까.. 잉게보르그 바하만이라든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임레 케르케스, 주제 사라마구 같은 작가들의 공통점이 이런 문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체는 훨씬 더 간결하고 너무나 건조하고 치열하기 짝이 없다.

상해를 떠나는 친구가 나에게 남겨주고 간 이 소설을 통해 새로운 작가를 한 명 알게되었고, 그래서 그녀가 구사하는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고, 유럽문학에 대한 숨어있던 호기심이 증폭되었다고나 할까..

매우 짧은(150p 가량) 소설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짧은 소설의 거대한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읽히는 수작.

추천한다.

 

200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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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사 한길크세주 18
안느 에노 지음, 박인철 옮김 / 한길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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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크세주 문고는 프랑스에서 출판되고 있는 크세주 문고를 독점계약해 출판하는 것인데, 그 부제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다.
뭐 내가 뭘 알겠나. 개뿔도 모르지.
한 때 기호학에 관심있었을 때 사두었던 책인데, 방학도 했고 심심하고, 쌓여있는 기호학 책이 지겨워져서 이제 다 읽어 치울라고 읽었다.

재작년쯤 연수할 때 만난 프랑스애한테 크세주문고에 대해서 물었더니, 일종의 논문발표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면서 파리의 대학 강사나 교수들이 쓰는 책이기 때문에 정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이론들이 많이 소개되어 재미있는 편이라고 했었다.

그 때 내가 읽었던 게 크세주 문고중의 "술의 역사"다. 크핫.
여튼. 그런 이유로 이 크세주 문고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200페이지를 넘지 않는 가벼운 지식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일깨우는 역할들도 하고 있기 때문에 몇 권 정도 가볍게 읽어두어도 괜찮을 듯 하다.

대부분이 이론서이기 때문에 사실 가볍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딱 맘 잡고 앉아서 한 두시간만 투자하면 될 내용.

기호학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내용그대로 기호학의 역사이지만, 기호학의 역사중에서도 파리학파나 (나도 잘 모르는 것임) 프라하 학파의 의견등등... 뭐 그런 거 빼고 소쉬르에 충실한 언어학에서 분파된 기호학의 초기발전단계에 대한 간략한 입문이다.

저자는 이후 "기호학"이라는 별도의 크세주 문고를 출판할 것이라고 했고, 역자도 그렇게 적었으니, 나올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정도의 책은 논문 읽은 기분으로 읽어주면 되고, 기호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아래 적었던 서울대학교출판사에서 발행된 "현대기호학의 발전"이 조금 더 교재기능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200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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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포르노 에로티즘 - 쾌락의 악몽을 넘어서
김수기 외 / 현실문화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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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시대 ,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등의 책을 펴낸 현실문화연구에서 만든 문화연구 시리즈의 한 권이다.
직접 산 건 아니고, 책 사러 청계천 휘젓고 다닐 때 친구가 예전 대학시절에 도서관에서 주웠다고 준 책이다. ㅎ

현실문화연구 등등에서 펴내는 이러한 종류의 책들은 일단 문화평론이라는 일정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라,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던 공통된 단어들, 즉 문화적 담론, 성의 정치성, 등등.. 텍스트.. 뭐.. 기호학.. 등이 등장하는 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했던 "문화담론"이라는 한 갈래의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목이 긴 만큼, 제목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어서, 서동진, 성서경, 조윤정, 이지연, 김수기, 이성은, 김진송, 채규형, 엄혁등의 집필진이 각각 한 꼭지씩을 맡아서 서술한 섹스, 성정치학, 포르노, 성희롱과 남근주의에 대한 현대우리사회에서의 성적담론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들인데, 친구가 주워왔다는 이 책 여기저기엔 파란 볼펜으로 줄이 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학생들이 스터디를 한 것 같았다.

그 때는 또 뭐 한 참 그런 게 유행이었으니..
꼭 이 책이 아니다 하더라도 동일 출판사에서 나온 현대문화에 대한 해석작들이나, 비슷한 류의 책은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인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200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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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중국의 충격 - 심신수련인가, 신흥종교인가?
대니 셰처 지음, 김은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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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산 지 엄청 오래된 책.
처음 상해에 왔을 때, 아침 밥을 TV 뉴스보면서 먹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그 이유는 파륜궁으로 인해 자살한 사람이라며 시체를 여과없이 정지화면으로 1분씩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날 아침에 너댓구의 시체를 보면서 아침을 먹어야했다. 물론 이후로 밥 먹을 때 절대 뉴스는 틀어놓지 않는다.

그만큼 중국에선 그 때(2001년)만 해도, 파륜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사실 별 말이 없지만.

그래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책인데, 전혀 파륜궁에 대한 지식도 없이 읽을만 하다. 현재 이 곳에서 파륜궁에 대한 지식을 흡수할 경로도 없다. 중국은 온라인을 통제하고 있는 빅부라더~! 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한 때 CNN도 접속되지 않았고, 파륜궁이나 티벳운동에 대한 사이트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자인 대니세처라는 미국사람이 쓴 책인데, 1,2부로 나눠져 있으며 1부는 이 책에서 논하는 인권침해란 무엇인가, 그리고 중국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각도에서 왜 파륜궁이 탄압받고 있는가에 대한 그리 심도깊지 않은(일반독자들에게 딱 적당한) 분석을 내놓고 있고, 2부는 파륜궁에 관련된 자료들을 늘어놓고 있다. 리홍지의 글 중의 일부라든가, 중국공안에 잡혀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서구세계에 살면서 파륜궁의 빠져든 사람들의 게시물, 중국의 헌법 일부등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자료들은 인터넷 상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을만한 (block 당하지만 않는다면)것들이고, 분석이라고 해도 뭐 그다지 뛰어난 통찰력이 엿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유난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서점에서(서점에 있을 것 같지도 않음) 서서 읽다 오면 되겠다.

문제는 미국인들이 쓴 대부분의 중국관련 서적은 그들의 기준에서 해석을 한다는 것인데, 이 책은 그나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객관성을 갖추려고 노력했지만(저자가 좀 좋은 기자인 모양..) 타고난 문화적 토양을 배신할 수도 없는 것이니, 옳다 그르다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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