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양장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
뭐라고 해야할까.

이 책은 정말 제일 큰 폰트로 "제발 절대 꼭 꼭 사서 읽어보세요" 라고 하고 딱 끝마치고 싶은 책이다.

오래되기도 했고, 워낙에 유명한 책이기도 한데, 나는 그 진중함이 부담스러워 미루고 미루고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강의"는 예전에 신문에 게재 될 때 틈틈히 읽다가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 이후에 구입을 해 놓고는 가부좌가 준비되지 않아서 아직도 책장에 꽂아놓고 있는바. 

 도서관에서 신영복 선생의 저서 여러권이 나란히 대출되지 않고 꽂혀있었다.

나무야 나무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엽서, 더불어 숲. 이렇게.

엽서도 같이 빌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책이 너무 무게가 나가길래 이건 다른 때 적게 빌리는 날 빌려야겠다 하고 미뤘고 신영복 선생의 저서중, 고전으로 꼽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가지고 나왔다.

가져와서 읽다보니 이 책은 증보판으로 예전에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엽서"를 함께 묶어 내놓은 책이라 한다. 엽서는 이 책을 반납하면서 빌려올까 한다. 

 신영복 선생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숙대 강사를 거쳐 육사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것이 1968년.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사람들이 1968년생인데, 신영복 선생은 그 때부터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20년 20일을 복역하였다. 이 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중에서 써서 칠척담장 밖으로 내보낸 그의 저서이다.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시작하여 1970년부터 안양교도소 1971년 대전교도소, 이후 1986년 전주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 보낸 순서가 아니라 날짜 별로 묶어서 책이 만들어졌다. 

 읽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신영복선생이 쓴 엽서는 단순한 안부의 인사가 아니라, 담장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그의 사색과 사유, 단상과 철학들이 모두 총망라되어 있다. 그의 소중한 생각들이라도 글에서 "빠진이빨을 담장밖으로 던져버려서 일부 신체의 출소를 추구했던" 것처럼. 

 간간히 멋진 서예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신영복 선생의 엽서속에, 가족에 없던 계수씨가 생기고, 이제 막 태어난 조카가 출소 가까워져서는 중학입학을 축하합니다. 라는 글귀로 변한다. 어머니는 칠순을 넘기고, 거동이 불편하며, 공부하시던 아버님이 책을 두 권 쓰셨다.

간간히 느껴지는 세월의 풍파. 그러나 저자의 마음가짐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는 복역이나 구속에 대한 원망도 자조섞인 한도, 미련도 없었다.

그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제 이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공부하는 자세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면서 사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이 그에게 살아 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감옥 밖으로 나가는 엽서는 검열을 거치기 때문에 정말 깊은 속내는 털어놓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의 엽서를 받는 그의 가족들이 그랬겠지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 생각의 편린 한 조각 한 조각이 모두, 가슴에 쿵쿵 와서 박히는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조용히 조아리게 되는, 그렇게 사람을 겸손하게 낮추는 신통력을 가진 문장이라고 할까. 

 늦게 읽게 되었지만,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거침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자신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신영복선생은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하였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여 강준만 교수 외 몇 명이 모여 신영복 함께 읽기 라는 책도 출간이 되었다.  영혼이 고고한 선생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고 남편이 빌려온 이 책을 보면서 했던 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도서관에 있다니 나라가 참 좋아졌구나"처럼, 이 책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2006. 11. 4. 

 <출처 : 네이버 지식in>

통일혁명당 사건은 1968년 8월 24일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조직사건이었다. 통혁당은 전위정당으로서의 지도이념을 명확히 내걸었으며,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를 당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이후 79년까지 통혁당 재건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사건 적발지역도 서울경기에서 호남과 부산 경북지역까지 확대되는 특징을 갖는다.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에서는 통혁당을 조선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이남간첩조직으로 몰아갔으나, 오늘날은 이남의 독자적인 전위정당 건설로 보고 있으며, 군부 치하에 피라미드 세포로 구성된 지하당으로 존재했다는 것과 통일을 주장하면서 친북성향을 띄었던 탓에 이북연계설의 의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슬퍼런 박정희 군부정권 하에서도 민주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던 4.19세대와 진보인사들도 이 사건을 빌미로 많은 탄압을 받았다.
대표적인 인사로는 조동일, 임중빈, 박성준 박사(한명숙 초대 여성부 장관 남편) 등이 있으며, 지금은 중고등학생 권장도서이기도 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교수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중에 집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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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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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이 한 때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그 때 그의 책을 모두 읽었었고, 향수의 강렬한 기억이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 외 비둘기, 콘트라 베이스, 좀머 씨 이야기, 이 책 깊이에의 강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_-

어쩌면 이 책에 끝에 적혀있는 저자의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었으나 알 수 없고 기억하지 못한다.

이 페이퍼를 쓰기 이전에 어린 아기가 얼마나 유연한가..에 대한 문구가 생각났는데, 어제 읽은 칼 포퍼의 책과 지금 읽고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아이가 노는 사이에 잠깐 꺼내서 읽어버린 깊이에의 강요 어디서 읽은 문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약 6-7년전에 읽었는데 어찌된 경로로 우리집에 꽂혀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유학전에 읽은 책들 중 내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하겠는 책 몇 권만 빼고는 거의 다 친정집에 놓아두었고 거기서도 정리당해 대부분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갔을텐데, 아마 동생의 남자친구가 깊이에의 강요 때문에 동생에게 선물한 책이 아닌가 하는 추측뿐.

아무튼 아이 방 동화책 사이에 꽂혀있길래 아이 혼자 집중하여 노는 사이에 잠시 꺼낸다는 것이 약 100페이지 정도되는 짧은 책이라 금새 읽어버렸던 것.  

이 책은 쥐스킨트의 세 권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한 젊은 여류화가가 깊이에의 강요로 인해 나락에 떨어지는 과정을 그린 아주 짧은 단편 깊이에의 강요 / 체스 게임으로 인한 승부와 집중과 사람의 이야기 승부 / 모든 것은 석화(조개화)되고 있다는 장인(匠人)뮈사르의 유언 / 그리고 너무나 공감이 가서 읽으면서 낄낄 댔던 문학적 건망증. 

 "아 그렇다. 세 권으로 된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 언젠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었었다. 지금 나는 알렉산더 대왕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아무것도 모른다. .... 모조리 익었다.. 그러나 ..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알고 있는가? 모른다. 전혀 모른다."

- 문학적 건망증 中

쥐스킨트의 책이 이런 느낌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언제고 한 번 시간을 내서 도서관에 가서 때마침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든다면 그 자리에 서서 비둘기와 콘스라 베이스를 읽어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칠맛 나는 글과 짧지만 여운이 긴 것은, 아마 번역자의 공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번역에 대한 이러저러한 일들이 터지고 난 뒤 (그 전에 읽은 박상익씨의 번역은 반역인가? 이후로 받은 충격이라 시너지 효과가 난 듯 ㅎㅎ) 좋은 글과 좋은 책을 만드는 숨은 번역의 공로를 자꾸 새겨보게 된다. 

 2006.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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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지음, 허형은 옮김 / 부글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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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 Karl Raimund Popper ]
 

1902~1994

영국 철학자.

190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포퍼는 빈대학에서 철학·수학·물리학·심리학 등을 공부하였으며,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퍼는 1937년 나치즘을 피해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망명했고, 그 곳에서 전체주의와 전쟁을 하는 태도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도움으로 영국에 정착해 런던 경제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94년 사망하였다.

주요 저서 『탐구의 논리』『역사주의의 빈곤』등이 있다.

 

이 책은 칼 포퍼의 강연과 소고 모음집이다.

어떤 한 철학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평전이나, 그의 이론을 해석해놓은 책이 오히려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친구가 한 적이 있다. 정작 한 철학자나 학자를 이해하는데에 가장 쉬운 책은 그가 직접 쓴 저작이라는 것이고 그 중에서 더 쉬운 것은 그가 수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했던 강연집이 아닐런지.

그러나  이 책은 선물 받은 책이라 내가 고른 것은 아니지만 ^^; 제목의 강렬함에 이끌려 급하게 집어 들게 되었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삶은 문제 발생의 연속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칼 포퍼는 "나는 낙관주의자입니다"라고 말을 하며 당신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발생만을 생각하지 말고 해결방법을 생각하도록 합시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검버섯 가득하게 주름진 얼굴, 그리고 손까지 나온 책 표지는 원숙한 노 학자의 평생의  가치관이 이 책에 다 담겨 있음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의 철학적 견해들과 자연과학에 대한 견해를 두 장으로 나누어 편집을 하였는데, 읽다가 보면 오오오- 이는 역시 나와 다른 차원에 속해있는 천재이로곤..하는 생각이 드는 학자이다. 어쩌다보니, 문제를 붙잡고 있다보니 철학자가 되었다는 그는, 철학과 수학, 물리학과 심리학등을 아주 깊게 공부했으며 결국 런던 경제대 교수를 역임했다고 하지 않는가. 

 칼 포퍼의 주된 사상을 아주 잘 엿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그는 "나는 낙관주의자"이며, 마르크시즘을 믿지 않으며, "나는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지식인이 "나는 틀릴 수도 있다"라고 전제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비겁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황의 일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중용을 중시했던 그가, 자네말도 맞고, 자네말도 맞네. 라고 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칼 포퍼가 "나는 틀릴 수도 있다"라고 하는 그 전제는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겸손함에서, 그리고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서 우러나온다. 

 이론은 항상 변모하며,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모든 이론과 상식에 대한 반론이지, 한 사람의 이론, 한 사람의 견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지식인의 옳지 않은 태도라는 것, 그러니 그의 말은 내 의견에 반론을 하고 싶다면 서슴치 않고 전개하고 끊임없이 기존 상식에 의구심을 갖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우리는 조금씩 세계에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상식과 행동들, 그로 인해 우리가 만들어내는 미래가 모두 우리 개개인의 책임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그의 다른 저작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탐구의 논리", "추측과 논박"등을 모두 읽어보고 싶지만, 그전에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가끔 이렇게 지조있는 철학자의 생각에 매료될 수 있다는 것은 책이 주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200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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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최영옥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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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래식 음악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얽힌 이야기들도 많고 사연들도 많지만, 사실 우리가 그 모든 상식들을 알고 들을 수는 없다. 음반에 들어있는 북클릿으로 쌓아가는 지식들도 그리 많지는 않고 또 수입반을 듣는 경우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마구 적혀있다는 것도 그러한 이유.

 

해서 클래식에 대한 책들은 매우 유용하고 실용적으로 읽게 되는데, 박종호의 클래식 이야기나, 이덕희씨가 쓴 불멸의 명연주가들, 금난새씨의 클래식 이야기 같은 경우 꼼꼼히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음악서적 코너에서 고를 수 있는 책중에 클래식 초보들의 경우 이렇게 옴니버스 식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한 꼭지씩 들어있는 것이 좋다.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를 빌려올까 하다가 아직 클래식의 전반적인 지식도 모자라는데 한 분야로 들어가는 것은 좀 무리인 것 같아서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는데 예상대로 매우 쉽고 유익하며 잘 넘어가는 책이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선화예중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나 동덕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음악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최영옥씨. 각 기업체등에서 클래식 음악강연을 하고 음악방송 진행도 하는데, 누구나 들으면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영화들과 그 영화속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풀어놓았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작곡가의 이야기와 작곡당시의 에피소드와 그 곡을 특별히 잘 소화한다는 명연주자들의 이야기 정도가 이어지는데 저자는 이 곡이 영화에 삽입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꼼꼼히 연구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해놓았다. 물론, 감독에게 직접 물어봤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삽입이 되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는 의견들인데 그 이야기들이 사뭇 솔깃하다.

 

책은 사랑을 그린 수채화의 선율 (멜로 영화에 사용된 클래식 음악) / 영화의 메세지를 강렬하게 전하는 음악들 (사연이 있는 영화와 음악의 조화)/ 이런 영화에도 클래식이? (클래식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영화들) / 클래식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들 (음악영화) 등으로 장을 나누고 아이즈 와이드 셧, 붉은 시월, 아마데우스부터 스캔들과 폰까지 소개했다.

 

검색을 해보니 영화속 클래식 100 이라는 더블음반이 있던데 그 음반에 여기 소개된 곡들이 거의 다 들어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듣거나 음반을 구매해서 들으면서 읽어도 매우 좋을 것 같다. 클래식 입문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

 

2006.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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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먹은 대로 살아요 - 思うとおりに步めばいいのよ (2002)
타샤 튜터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천양희 옮김 / 종이나라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서관 관외대출이라는 걸 해봤다.
음.. 아니, 상하이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엔 대출이라는 걸 해봤다.
그 때는 도서관도 종종 다녔었다. 뭐 학생이었으니까.
그러나 평소의 나는 모국어로 된 책을 단 한번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없다. 아니, 친구들이 굳이 빌려주겠다고 해도 마다한 적도 있었다. 후에는 빌려 읽을 때 아예 돌려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친구의 책을 빌려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읽고 내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을 영 못 미더워하는 사람인지라 꿋꿋하게 물질로 소유하려 했다. 나중의 나의 부재중에 집안식구들에 의해서 처리되는 책들이 발생하였을 때도 매우 불쾌해했고 상하이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논문 프린트 하나 버리지 않고 그 많은 종이들을 다 실어날랐다.
이런 나의 도서구매욕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살다보니 나도 한 발 양보하고 그도 한 발 양보하는 것으로, 그래서 일단 다독으로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꼭 가지고 싶은 장서는 그 중 엄선하여 구매를 하도록 하자는 합의하에, 그것도 그 약속을 몇 번이나 어겨 몇 번을 싸운 끝에 결국 코앞에 있음에도 한 번도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들어가지 않았던 석수 도서관에 갔다. 
 
대출증을 만들면 안양시내 5개 도서관에서 연동사용이 가능하고 대출기간은 2주일, 그리고 한 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은 6권이다. 그래서 욕심이 철철 넘치는 나는 아이가 자고 싶다고 잠투정을 하면서 끙끙 대는대도 관외대출실에서 꿋꿋하게 6권을 채워야겠다고 바둥바둥 거리고 있었다. 물론 집에서 읽다가 만 칼 포퍼의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라는 책과 윤중호의 고향길이 펼쳐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자, 도서관에 첫 발을 디뎠으니, 일단 가벼운 책을 고르자. 집에 안 읽고 남아있어서 읽어치워야 한다고 제목들이 각을 잡고 나를 노려보는 책들은 너무 무거운 것들이라 머리를 식힐만한 단편소설들이나 독특한 에세이를 찾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내 예상으로는 좀 큰 판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집만한 크기로 매우 작았다.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던 이유는 가격이 일단 12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에 분명히 글자가 몇 개 없는 거 같았고, 사진이 주를 이루는 데다가 분명히 빤한 아름다운 에세이가 펼쳐질 것이라는 편견에서였다. 개인적으로 처세술 책이나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어요 운운하는 빤한 이야기들에 매우 거부감을 갖는 편이다.

욕심만 많은 게 아니라 건방이 하늘을 찔러 약간 시니컬하고 튀는 사상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지 보편적인 진리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뭐 언제나 그렇듯. 책들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는 가끔 책을 통해 구원을 얻곤 한다.

물론 재택근무의 형태로 남편의 사업일을 살짝 보조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일은 결코 내 사생활에 부담을 주는 정도가 아니고 오히려 내가 멍청해지지 않도록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아무튼 일을 하고 있고 명함도 있긴 하지만 나는 전업주부이다. 이 전업주부의 인생이 이다지도 지리멸렬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신혼 때는 뭐가 달라 혼자 살 때도 다 이랬지. 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살다보니 그게 아닌거라. 내 입맛에 맞춰서 먹을 수도 없는 것은 남편의 입맛도 고려해야하고, 되도록이면 버리는 음식물이 없도록 식단을 잘 짜야하고 식재료를 지루하지 않게 잘 활용하면서 신선도는 유지해야 하고 내가 먹는 음식물이 바로 아기의 밥이 되기 때문에 그 역시 고려해야하며 가족들의 건강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혼자 살 때처럼 김이랑 스팸에 계란후라이 김치 한 쪽 놓고 밥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화분을 좋아해서 화분을 사 들였으면 골고루 잘 배치해 잘 자라게 해야하며 철마다 옷정리를 하고 세탁소에 보내고 청소를 해야하고 손빨래도 해야하는 육아와 가사노동. 지치기도 하지만 꼭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들다기 보다는, 별로 행복하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대부분 결혼한 지 5년이 되지 않은 여자들이 많이 느끼는
"나는 식모인가?" 하는 심각한 화두를 안고 오 밤중에 싸이질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책의 주인공은 아무리 봐도 선천적으로 시골생활을 즐기는 성격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스스로 말하기를 주부라는 게 너무 좋고 시골생활이 너무 좋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주인공이 정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인세가 장난이 아닌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주인공은 주로 맨발로 생활을 하며 정원을 가꾸고 그저 삽화를 그리는 일로 돈을 벌고 시골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헤어져 아이 넷을 혼자 키웠으며 양젖을 짜고 개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 녹색을 그리는 게 어려운 할머니, 상상의 세계에서 사는 자신이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는 그녀, 그녀는 사는 게 다 그런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을 받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서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노라고. 그저 인생을 방학처럼 살아왔다고. 

 "나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좋아해요.
다리미질, 빨래, 요리,
설겆이까지도 즐겨 하지요.

누가 내게 직업을 물으면 서슴지 않고
'주부'라고 대답해요.
주부라는 직업은 정말 훌륭한 거예요.
주부라고 해서 학문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딸기잼을 만들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내게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남편이 있었다면,
나는 정원 가꾸기와 요리, 그리고 바느질만 했을 거예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다리미질

이 부분은 솔직히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요즘 세태에 비추어보아. 주부라는 직업이 비애 가득한 직업으로 추락한 이유는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큰 부가가치가 없는 직업이라고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능력있는 엄마를 원하지 집안에서 살림잘하는 엄마를 원하지 않는다. 모든 엄마들은 슈퍼우먼이 되어서 살림도 잘하고 뭔가 하나정도의 특기도 있어서 그 걸로 돈도 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주부라는 직업은 뒤로 쑥 빠지고 남편이 있더라도 절대적으로 정원 가꾸기나 요리, 바느질은 되도록 기계에게 맡기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현재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허드렛일이 어려운 이유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인데, 이 할머니, 혼자서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고 그래서 행복해 하는 법을 아는 분이다. 책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다.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하지만 이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답니다. 라고 하는 약간 보수적인 듯한 분위기의 귀엽고 아름다운 할머니의 자기 독백을 햇빛이 따뜻한 사진과 더불어 읽다보면, 아 - 삶에 지친 대한의 남녀노소, 또 한 명의 미국 할머니에게 구원을 받는구나. 

 욕심많고 거만하여 겸손할 줄 모르는 자가 가장 겸허하게 스스로를 낮추어 행복하게 사는 한 노인네를 오늘 처음 만났으니, 나 역시 이 책으로 인해 구원의 길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독서습관이 나를 구원으로 이끈 것인가? 과연 전업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인가?

 2006. 10. 26. 

 + 타샤의 책은 이 외에도 월북에서 나오고 공경희씨가 옮긴 <타샤의 정원>과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가 있다. 이 역시 구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  

시골생활, 무소유적 삶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스콧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책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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