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양장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
뭐라고 해야할까.

이 책은 정말 제일 큰 폰트로 "제발 절대 꼭 꼭 사서 읽어보세요" 라고 하고 딱 끝마치고 싶은 책이다.

오래되기도 했고, 워낙에 유명한 책이기도 한데, 나는 그 진중함이 부담스러워 미루고 미루고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강의"는 예전에 신문에 게재 될 때 틈틈히 읽다가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 이후에 구입을 해 놓고는 가부좌가 준비되지 않아서 아직도 책장에 꽂아놓고 있는바. 

 도서관에서 신영복 선생의 저서 여러권이 나란히 대출되지 않고 꽂혀있었다.

나무야 나무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엽서, 더불어 숲. 이렇게.

엽서도 같이 빌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책이 너무 무게가 나가길래 이건 다른 때 적게 빌리는 날 빌려야겠다 하고 미뤘고 신영복 선생의 저서중, 고전으로 꼽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가지고 나왔다.

가져와서 읽다보니 이 책은 증보판으로 예전에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엽서"를 함께 묶어 내놓은 책이라 한다. 엽서는 이 책을 반납하면서 빌려올까 한다. 

 신영복 선생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숙대 강사를 거쳐 육사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것이 1968년.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사람들이 1968년생인데, 신영복 선생은 그 때부터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20년 20일을 복역하였다. 이 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중에서 써서 칠척담장 밖으로 내보낸 그의 저서이다.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시작하여 1970년부터 안양교도소 1971년 대전교도소, 이후 1986년 전주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 보낸 순서가 아니라 날짜 별로 묶어서 책이 만들어졌다. 

 읽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신영복선생이 쓴 엽서는 단순한 안부의 인사가 아니라, 담장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그의 사색과 사유, 단상과 철학들이 모두 총망라되어 있다. 그의 소중한 생각들이라도 글에서 "빠진이빨을 담장밖으로 던져버려서 일부 신체의 출소를 추구했던" 것처럼. 

 간간히 멋진 서예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신영복 선생의 엽서속에, 가족에 없던 계수씨가 생기고, 이제 막 태어난 조카가 출소 가까워져서는 중학입학을 축하합니다. 라는 글귀로 변한다. 어머니는 칠순을 넘기고, 거동이 불편하며, 공부하시던 아버님이 책을 두 권 쓰셨다.

간간히 느껴지는 세월의 풍파. 그러나 저자의 마음가짐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는 복역이나 구속에 대한 원망도 자조섞인 한도, 미련도 없었다.

그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제 이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공부하는 자세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면서 사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이 그에게 살아 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감옥 밖으로 나가는 엽서는 검열을 거치기 때문에 정말 깊은 속내는 털어놓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의 엽서를 받는 그의 가족들이 그랬겠지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 생각의 편린 한 조각 한 조각이 모두, 가슴에 쿵쿵 와서 박히는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조용히 조아리게 되는, 그렇게 사람을 겸손하게 낮추는 신통력을 가진 문장이라고 할까. 

 늦게 읽게 되었지만,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거침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자신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신영복선생은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하였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여 강준만 교수 외 몇 명이 모여 신영복 함께 읽기 라는 책도 출간이 되었다.  영혼이 고고한 선생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고 남편이 빌려온 이 책을 보면서 했던 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도서관에 있다니 나라가 참 좋아졌구나"처럼, 이 책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2006. 11. 4. 

 <출처 : 네이버 지식in>

통일혁명당 사건은 1968년 8월 24일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조직사건이었다. 통혁당은 전위정당으로서의 지도이념을 명확히 내걸었으며,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를 당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이후 79년까지 통혁당 재건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사건 적발지역도 서울경기에서 호남과 부산 경북지역까지 확대되는 특징을 갖는다.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에서는 통혁당을 조선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이남간첩조직으로 몰아갔으나, 오늘날은 이남의 독자적인 전위정당 건설로 보고 있으며, 군부 치하에 피라미드 세포로 구성된 지하당으로 존재했다는 것과 통일을 주장하면서 친북성향을 띄었던 탓에 이북연계설의 의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슬퍼런 박정희 군부정권 하에서도 민주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던 4.19세대와 진보인사들도 이 사건을 빌미로 많은 탄압을 받았다.
대표적인 인사로는 조동일, 임중빈, 박성준 박사(한명숙 초대 여성부 장관 남편) 등이 있으며, 지금은 중고등학생 권장도서이기도 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교수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중에 집필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