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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확인해 봤을 때만 해도 비 소식 없었던 것 같은데 뜻밖의 빗소리가 무척 반갑다. 그제 비가 오고 어제 그리 덥지 않더니 오늘 또 쾌적하다. 대구에 살면 여름에 연이어 3일 덥지 않다는 데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소소한 성격이 된다. 청와대에서 문건이 백만 개가 나온들, 박과 자한당에 대한 지지를 절대로 거두지 않는 심지 굳은 어르신들이 앞집 뒷집 옆집 건넛집 중 반드시 두 군데 이상에서 살고 계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은 무덤덤한 성격이 된다. 과연 인격 도야의 도시 대구. 대한민국 교육수도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낯을 붉힐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인성교육의 한마당.
읽은 책들 170716-170731 : 40권
인문 일반 : 5권
1. 인문학 개념정원
: 편한 설명. 효과적인 예시. 간결한 서술. 개념어 사전으로서 더 갖춰야 할 요소가 있을까? 딱 맞는 시기에 만난 듯, 읽는 데 무리가 없는 좋은 시간이었다.
2.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 진짜 좋아하면 이런 일까지 벌이는 것이다. 세상에, 이 책을 만들면서 즐거워했을 진중권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3. 생각의 미술관
: 도서관에 입고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펼쳐보니 기대만큼의 읽을 거리는 없는 책. 얕고, 새로움도 없고.
4.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천문이 있고 인문이 있는데, 어찌 지문이 없을 것이냐는 말은, 자부심은 물론이거니와 건축 혹은 인간이 땅위에서 지어올리는 모든 물질과 사상이 하늘과 사람에 닿아있어야 한다는 지향을 느끼게 한다.
5. 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 얇은 책 속에서 종횡무진. 장보기부터 설거지까지가 요리이듯, 내가 드러나지 않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잠깐 드러났다가 그 자리를 비우며 사라지는 것, 중심을 녹여먹는 변두리를 만들고 이내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 거기부터 거기까지가 사라짐의 기술이다.
철학 : 5권
6. 의심의 철학
: 독자에 따라서는 유익하겠지만, 내게는 투입 대비 그다지 효율이 높은 책은 아닌 듯. 저자의 선택을 받은 철학자들에 대한 내 사전지식이 깊은 것도 아닌데, 좀 의외였다.
7. 자본론을 읽다
: 어렵지 않고, 시대에 뒤쳐져 있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읽어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매력이 있는 책. 전투적 독서의욕을 불러일으켰으나, 며칠 지속되지 않았다.....
8. 말할 수 없는 소녀
: 뭐야......뭔데..... 진짜 1도 모르겠다. 실컷 얻어터졌다. 진짜 이 양반 도대체 나한텐 언제쯤 읽히는 저자가 되어 줄 것인가.
9.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 맑스 맑스 하지만 엥겔스도 한 글빨 날린다. 가독성은 오히려 엥겔스가 낫다 싶을 때가 많다. 포이어바흐를 생각할때면 어쩐지 자꾸 일진 맑스-엥겔스의 발 아래 깔려서 눈물을 글썽이는 빵셔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확실히 맑스-엥겔스는 포이어바흐가 만든 빵을 먹긴 먹었다. 먹긴 먹었는데 먹어보니 그 빵 그거 알고 보면 몸에 별로다- 라는 취지로 쓴 책인 것 같다.
10. 화장실 철학자
: 위트 넘치는 사고 실험. 철학 지식에 대해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기. 하하, 웃음을 유발하는 시니컬함. 어어, 조금씩 과해지는 시니컬함. 아놔, 마침내 저자를 향한 나의 시니컬까지 유발하고 마는 그 문제적 시니컬함.
법 / 정치 / 경제 : 4권
11.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
: 100쪽 조금 넘는 작은 책이지만, 경제 공부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방향을 잡는데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
12. 자본론의 세계
: 명쾌한 이론 설명인데도 행여나 길어질라치면 저자 스스로 못 견디듯 곧바로 신문 기사를 제시하며 냉철한 현실 분석을 이어붙인다. 다만 오래된 책이라 2001년의 현실을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 함정. 근데 그 때나 지금이나 도찐개찐임을 알 수 있다는 점이 또 뼈아프다.
13. 캐릭터와 저작권
: 얇지만, 또 얇아서 한번 읽어보기에 괜찮은 책. 그러나 비싸다. 시리즈물인데, 작은 책이라 모으면 보통 책 한 권쯤 되겠구만은 6권 다 사면 6만원 돈이다. 그 돈이면 업계 사람들이 갖춰놓는 1200쪽짜리의 저작권법 책을 살 수도 있다.....
14. 폭정
: 빼박 선동문서다. 간결하고 강력하며 매력적이다. 목표는 명백하게 트럼프고, 저자는 한국에서 일어난 그 일을 워싱턴에서 재현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사회 / 문화 / 역사 : 3권
15.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 전기! 전기를 읽자! 아, 그러나 이 다섯 혁명가의 국내 번역된 전기만 해도 권수로 20권은 훌쩍 넘는다......
16.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서울의 곳곳을 직접 두 발로 누비는 시선이 선명한 풍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풍경 뒤에 숨겨져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비물질적인, 동시에 너무나도 물질적인 서울의 작동 원리. 우리의 삶을 땔감으로 써 가며 이 놈의 서울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조목조목 짚어내는 훌륭한 책.
17. 일상기술연구소
: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쓸모가 내 살갗에 직접 때려박히는 느낌의 책은 처음이다. 절대로 후속편이 나와줘야 한다.....
젠더 / 노동/ 환경 : 3권
18.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
: 《논어》는 읽다보면 "성공하는 군자의 7가지 습관"이랄지, "공 선생님과 함께한 일주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3000년 묵은 자기계발서랄까. 그러나 형식이 그렇다고《논어》가 위대한 책이 아닌 것은 또 아니다. 이런 식의 설명은 "위대한 책"을 "괜찮은 책"으로 바꿔 표현하면, 이 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19. 핵을 넘다
: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단단한 책이다. 원전이익공동체라는 것은 원전마피아보다 조금 더 거대한 개념인데, 우리가 주목하여 외부부터 녹여 없앨 필요가 있겠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형태가 삶의 형태를 바꾼다는 주장은 일리도 있고 매력적이다. 표지에 그려진 눈 하나 달린 고양이 얼굴이나 발 여섯개짜리 양, 두 머리의 문어 가은 그림들은 슬프지만 솔직히 좀 귀엽고 사랑스럽다. 디자이너의 센스가 돋보인다.
20. 그건 혐오예요
: 독자의 행동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책은 어쩌면 이런 책일지도 모른다. 이름에 abcdefg가 들어가는 서구의 학자가 쓴 무거운 학술서가 아니라. 물론 그런 책도 자기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하겠지만. 나는 이런 책이 한 때 서점가를 점령했던 수십만 종의 자기계발서들처럼 양으로 독자를 압도하여 마침내 누구의 책꽂이에도 한 권 정도는 꽂히게 되는 세상을 한 번 상상해 본다.
문학 / 독서 : 11권
21. 철과 오크
: 표제작을 포함해서 세 수 정도 말고는 내게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는 다소 실망스런 시집이었다. 특히 해설은 이 책의 비호감도를 키우는 것 말고는 역할이 없다. 제발 문학을 당신들만의 고등유희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말이 어려운 것은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나는 자꾸 의심합니다.
22. 물고기들의 기적
: 역시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줄기 몇 가닥 건져올릴 수 있었다. 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해설 또한 말이 되어서 읽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앞의 시집에서와 같은 해설자가 쓴 건데도!
23. 책, 고양이, 오후
: 마음에 아무것도 담아두고 싶지 않을 때,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 슬쩍 젖어들 때, 마음이 열릴 때, 그럴 때는 소소한 이야기를 소소하기 듣기가 좋다.
24. 추락
: 거장의 책은 읽고 나면 온몸이 쑤실 때 있다. 이건 도저히 내가 감당할 만한 수준의 어택이 아니다.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 선택들이 이어지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죄다 불편몽둥이로 나를 쿵쿵 때린다. 나는 이들 중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고, 어쩌면 그게 이 책의 주제인 것도 같다. 너는 불편함 없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포기하려면 포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저러나, 좋다. 역시 부커는 진리인 듯.
25. 취미는 독서
: 고양이라디오님이 이 책을 읽고 왜 나를 떠올리셨다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고만고만한 책인데, 일단 남의 나라 책 이야기라 흥이 덜하고,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이 분야의 전설적인 명작으로 칭송받는 이 모 작가님의《잘 지내나요?》의 아성에 도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26. 명예
: 명민하다. 이야기 위에서 찬찬히 노를 젓다가도, 때가 되면 서퍼처럼 이야기 위에 올라타는 밀도 조절. 이야기가 등장인물을 부당하게 대접할수록, 현실에 사는 독자에게는 그게 정당하게, 최소한 있을 법하게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27.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 무슨 말인지 모를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겪기 힘든 경험인데도, 나는 배수아의 이야기를 온통 사랑했다. 이래저래 10년을 묵혀두고 만나지 못했거나, 혹은 만남을 피해왔던 그 사랑이 더욱 단단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28. 선한 이웃
: 연극과 연극이 얽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몇 개의 역을 동시에 진행하는 중첩된 배우처럼 산다. 순간 순간 역할을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죽음과 삶이 겹쳐져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모든 순간에 우리는 엘렉트라인 동시에 클리타임네스트라인 채로 있다. 내가 맡은 배역이 다른 이의 배역을 만들기도 하면서. 모든 행동과 대사가 그대로 중첩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누구도 단일한 의미로 해석되는 단일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29.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아니 이게, 내 눈에는 "페미니즘적"과 "책 읽기"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고 봐도 좀 중량이 부족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으니 피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읽어보라는 식의 평들도 몇 보인다. 그 말이 난 더 슬퍼.
30. 읽는 삶, 만드는 삶
: 앞의 책보다는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 책의 <한국단편문학전집> 꼭지가 더 옹골차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다른 꼭지들 역시 하나같이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데, 멋부리지 않고 담담하며 시종일관 겸손한 문장들로부터 나오는 힘이 아닐까 싶다. 나처럼 까부는데 쾌락을 느끼는 녀석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인 것 같다.
31. 저스티스맨
: 개인이나 집단의 심리가 요동하는 양상을 가공없이 서술하는 데서 빼어난 역량을 보이는 작품. 그리고 재미가 있다. 과연 세계문학상의 지향에 딱 들어맞는구먼. 근데 의외로 문장은 허술한 데가 있고, 많이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과한 나머지 너무 부린다는 느낌이다. 당최 내가 뭐건대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더 좋은 문장을 짓는 작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분류 / 주마간산식 읽기 : 9권
32.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
33. 논어를 읽다
34. 디스 이즈 마티스
35. 처음 읽는 베르그송
: 번역 똥이다. 요즘은 구글도 이정도는 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다.
36. 시사iN 513
37. 시사iN 514
38. 경박한 시사 경제 톡
39. 열정속으로 하버드 로스쿨
40. 네이티브가 생각하는 영문법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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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보름 전에 마음 먹었던《호모 데우스》도, 카프카 전집도, 《기사단장 죽이기》도 뭣도, 역시 이번에도 읽지 못했다. 그 다짐 때문인지 독서 에세이를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인과관계 참 개똥 같다.....
7월이 끝났다. 얇고 가벼운 책 위주로 읽었더니 70권을 넘길 수가 있었는데, 내가 만약 이웃님들처럼 어려운 책 읽고 리뷰까지 쓰고 하면 한 달에 아마 3권 정도가 고작이겠지. 내 인생의 멘토 유 선생님이 알쓸신잡에서 책 권수에 집착하지 말거라 하셨지만, 정말 슬픈 것은, 한 달에 3권을 읽나, 아니면 75권을 읽나, 어차피 다시 한 달을 더 지나면 얄밉게도 그 모든 책들이 기억에서 깔끔하게 퇴거하고 만다는 경험적 진실이다.
8월에는 인공지능 관련 책들을 좀 읽어봐야지- 하고 이 자리에서 다짐했으니 아마 보름 뒤에 쓸 독서 목록에는 중동 역사에 관련된 책들이 주르륵 올라오겠지. 계획은 왜 세우고 다짐은 왜 하는 걸까? 어차피 모든 것이 랜덤 게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