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년 가까이 책 신세를 지고 있는 도서관은 아이들이 보는 책을 뺀 모든 책들이 하나의 자료실에 들어가는 작은 규모의 시립도서관이지만, 서가에만 서면 나는 여전히 막막하다. 이제 책 이름만 들어도 대충 어디쯤 꽂혀 있을 거라고 짐작할만큼 눈에 익고 발에 익은 이 책 방 한 칸이, 나는 아직도 넓다. 읽을 수 없는 모든 책은 읽을 수 없고, 읽을 수 있는 책의 대부분은 읽을 수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머리가 했지 마음이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늘 욕심내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작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미미한가, 나는 얼마나 사소한 인간인가, 하다보면 또 늘 헛헛해진다.

 

아름다운 것들이 책 속에 무수히 숨어 우리와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탐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책으로 뒤덮인 그 두 개의 벽 앞에서 나는 속으로 그렇게 경탄하고 있었다. 이 모든 책 하나하나를 만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나는 평생 나 자신이 얼마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스치고 지나가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_양자오,《자본론을 읽다》 27~28쪽

 

하버드 대학의 수백만 장서를 마주하고도 의연한 자세로 탐구욕을 불태우는 저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 권 단위의 책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요런 인간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만 권을 읽기 어렵듯이, 저 사람도 백만 권을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됐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죽는 날까지도 아놔, 그 책 사 놓고 결국 읽지도 못하고 죽네, 아놔, 그 작가 신간 다음 주에 배송되는데, 굿즈도 같이 오는데, 그거 받을라고 억지로 금액 맞췄건만 보지도 못하고 가네, 하는 식의 생각에서 말끔하게 해방되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독서를 운명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끝은 하나 같이 똥이다. 독서는 똥으로 향하는 험난한 길인 셈이다! 빅 똥! 물론 백만 권을 읽고 싼 똥이 만 권을 읽고 싼 똥보다 백 배 진하고 무거울 수는 있겠지만. 

 

 

 

2

 

아무 것도 아닌 글이라도 매일 뭔가를 쓰는 일은 칭찬할 만하고, 의외로 누구나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매일 쓴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글이 아무 것인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제발 아무 거라도 되어 달라는 식으로 써내는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날부터 정말 어마어마한 글을 만들 수 있게 되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기왕 써 놓은 글들이 뿅 하고 아무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글 쓰는 사람도 똥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꽃을 쌀 수도 있지만, 그 순간까지는 그저 평범하게 똥을 쌀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먹을 갈고 붓을 들던 시절이나 원고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글을 쓰던 시절이면 모를까,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과거에 싸놓은 똥들을 소거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철 모르던 시절 싸 놓은 똥 때문에, 그 똥의 진짜 의미는 그 똥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싼 똥은 냄새가 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벌써 언급했지만 그 똥은 픽션이었습니다, 같은 똥을 지금도 싸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내 상태는 불행은 아니다. 하지만 행복도 아니다. 내 상태는 무관심도 아니고, 나약함도 아니며, 지친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관심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 상태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이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마 글을 쓸 능력이 없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무능함을, 이 무능함의 이유는 알지 못하면서, 난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

그리고 이런 질문이 아직은 내가 말을 하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매일 적어도 한 줄은, 마치 사람들이 이제 혜성을 향해 망원경을 겨냥하듯이, 나를 겨냥해야만 할 것이다.    

_ 프란츠 카프카,《카프카의 일기》 

 

카프카는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싸놓은 똥을 치우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매일 한 줄, 힘겹게 자신을 겨냥하며 써냈던 모든 글들이 그에게는 그래봐야 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똥에서 향기를 맡은 친구란 작자가 카프카의 똥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마침내 그 똥은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어쨌든 카프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똥이었고, 그 덕에 똥 판별기의 기준이 치솟아, 세상에 존재하는 글의 대부분은 똥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글 쓰는 자들의 대부분은 똥머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차피 사람이란 먹으면 결국 쌀 수 밖에 없는 동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똥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똥칠하지 않도록 내 똥을 잘 관리하는 일이 되겠다. 좋은 것 먹고, 바르게 싸고, 뒷처리 잘 하고.

 

 

 

3

 

도서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추태 중 하나는 열람실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나가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좌석이 열람실 입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열람실 입구에서 3~5걸음 떨어진 지점에서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이다. 그 지점이라면, 보통은 "여보세요? 예, 예예." 까지를 열람실 안에서 해결하는 셈이다. 세 걸음만 더 걸으면 밖인데, 왜들 저러는 걸까?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저러는 사람들은 내 통계상 90%이상의 빈도로 외모 나이 50대 이상의 남성이다.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 여기가 대구인 것과는 관련이 없을까?

 

어릴 적, 예절을 숭상하는 우리 집에서 예절 위에 있는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가장. 예절 위에 가장. 가정 안에서 예절 위에 군림하는 사람은 가정 밖에서도 자기가 에티켓 위에 존재하는 줄 안다. 계속 까똑까똑 소리가 나는데도 끝까지 진동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아저씨에게 내가 제발 좀 진동으로 바꾸라고 지적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들은 에티켓 같은 사소한 것보다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뭔가를 지적하는 비윤리도덕적 패륜에 과도하게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디서 어린놈이, 하는 말을 들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나라고 다른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내 옆자리에 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타인이 앉지 못하게 하는 못된 놈이다. 이 도서관에서 좌석이 부족할 만큼 사람이 붐비는 꼴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꼭 내 옆에 앉고 싶을수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을 원천봉쇄 하는 셈이다. 감히 두 자리를 맡다니!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탐욕의 증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가 여기 앉을건데 짐을 치워달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묵묵히 나는 책을 읽는다. 이게 뭐 큰일이라고,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래저래 결국 타자와 사는 것은 똥이다, 그야말로 비이이익똥이다! 우리는 결코 서로의 에티켓을 교환하고 납득하여 아름다운 대동사회를 만들 수 없다. 그건 다 저놈의 돼먹다 만 자식이 지는 도저히 용서가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면서 누구라도 기꺼이 용서할만큼 사소한 나의 잘못을 침소봉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내가 맞고 쟤는 틀리는 식으로 다르다. 혹은 내가 맞고, 우리 편은 조금 덜 맞고, 쟤는 틀렸고, 쟤 옆의 놈은 조금 덜 틀리는 식으로 다르다. 그래서 이놈의 세상이 똥인 것이다. 아 저것들을 언제 한 번 싹 다 치워야 되는데,    

 

 

4

그림자 속으로 그림자가

파고들며 킥킥거렸다

서로의 품속에서 따스해지는 곳

덩굴들이 뒤얽히고

물고기들 함께 뛰노는 곳

가자 그곳으로

까만 밤과 하얀 별

새카맣게 빛나는 곳-

 

첫째날 밤

별들이 서로 다른 피의 정액이 되어 밤하늘이 태어났다

 

둘째날 밤의 꿈

세계는 별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엮은 꽃다발이었고,

 

셋째날 꿈속에선

차가운 바람이 은하수 위로 불자

성좌의 동물들이 첨벙첨벙 뒤섞였다

곰, 전갈, 날갯짓 치는 백조들

 

천하루날 밤, 꿈들의 막이 터져

밤하늘들이 뒤섞였다

소란스레 폭죽 터지고

물살이 별들을 쓸어갔다

어둠과 빛이 뒤섞인

그늘진 아이

쪽으로, 양도 고양이도 아닌 동물 하나 걸어와

조용히 살을 섞었다

 

혀와 혀가 만나는 곳

 

5

두송이 꽃이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곳

 

_박희수,「밤하늘」부분

 

나는 누군가는 선하게, 누군가는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랜덤설을 주창하지만, 인간의 본성과는 별개로 시인이 그리는 저런 아름다운 나라가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한다는 말은, 사람들마다 "차이"에 포함시키는 것들이 다른 상황에서는 공염불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벌써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한다. 다만 누군가에게 동성애는 차이가 아니라 치료해야 할 정신병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피부색은 차이가 아니라 내재된 인간성이며, 다른 아무개는 성차는 차이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특성이라 생각할 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가 똥일 수 있고, 나와의 관계가 똥일 수 있고, 나 때문에 사는게 똥일 수 있는 이런 똥밭 같은 위험한 이승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굴러야 하는 걸까? 저 사람 정말 똥 같군,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웃으며, 선생님 죄송하오나 전화는 나가서 받아 주시면 어떨까요, 하고 부탁하며, 상대방 또한 이 자식은 정말 똥 같군, 하지 않고 웃으며, 아이쿠, 제가 그만 정신이 없었군요. 추후에는 주의하겠습니다, 대답하는 꽃 같은 세상이 정말로 올 수 있을까? 어쨌든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고 섞이는 밤이 하루 이틀을 세다 결국 천 하나의 밤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두 송이 꽃이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어려운 길이다.   

 

 

 

4

 

이렇게 시종일관 드러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되게 센치한 상태여서 난 오늘 내가 시라도 한 편 쓰려나 보다 했는데, 세상에, 똥이라니. 

 

그렇지만 뭐 크게 더러운 일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는다. 이런 책도 버젓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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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7-20 06:06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저는 변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갰습니다.....ㅠ

다락방 2017-07-2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이 글은 똥 파티네요.
인생도 똥 글도 똥 너도 똥 나도 똥 우리 모두 똥똥똥똥똥....
이 글을 어제 자기 전에 읽었다면 똥 꿈꾸고 좋은 하루가 되었을텐데, 어제 뻗어 자버리는 바람에 이 글을 놓치고 오늘 아침에야 읽네요...똥꿈 꾸면 좋다는데....돈 들어오는 꿈이라는데...
똥...

똥에 의한 의식의 흐름...



그럼 이만 안녕히...

syo 2017-07-20 08:18   좋아요 0 | URL
으윽 오늘 아침은 새 마음 새 뜻으로 으쌰으쌰 시작했었는데, 왜 제가 어제 싼 똥을 오늘 제게 던지셔요 다락방님......ㅠ

cyrus 2017-07-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 파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본 책들 중에서 가장 더러운 내용입니다. 책에 코를 파는 방법이 그림으로 나와 있습니다. ^^

syo 2017-07-20 13:25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cyrus님, 코파기는 많은 경우 실제로 즐겁습니다.....

단발머리 2017-07-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책을 산처럼 쌓아 타인이 앉지 못하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너무 마음에 와닿네요. 제가 그런 사람이라서요 ㅠㅠ
누군가는 꼭 내 옆에 앉고 싶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ㅎㅎㅎㅎㅎ

syo 2017-07-20 13:26   좋아요 0 | URL
빈자리가 많지만 굳이 내 옆에 앉고 싶었을 분들께(그런 분들이 분명히 있을거라 믿고)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집시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