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ing softly with fats

 

 

 

1

 

을 돼지로 만드는 일은 수월했다. 인간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은 의 게으름이 내 편이었고, 아닌 척하지만 뭘 좀 기름진 걸 차려 내놓지 않으면 눈에 띄게 표정이 안 좋아지는 그의 육욕(??)도 내 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세월, 의 나이가 내 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세월 앞에 체질 없다. 사람이란 원체 자기 변화는 알아채기 힘든 법인데 눈썰미를 국으로 말아먹고 다니는 은 오죽할까, 어 요즘 내가 살이 좀 찐 것 같은데- 싶은 순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도 한참 건넌 상황인 것이다. 정말이지 이 이렇게 돼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1.5

 

유년의 은 뼈말라깽이에다가 자세까지 늘상 구부정하여, 쟤는 말라도 말라도 꼭 저런 식으로 없어 보이게 말라야만 했나 싶은 그런 아이였다. 그 즈음 syo는 어디나 흔히 있는, 통통과 뚱뚱의 사이 어딘가, 대충 통뚱이나 뚱통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어느 지점에서 체중이 미세하게 등락하는 유년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세상 모든 게임을 섭렵하고 다니던 그 시절, 우리 패밀리의 돼지는 syo였다. 돼지는 돼진데 어떤 돼지였냐 하면 내가 돼지라는 사실보다 니들이 돼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더 빡치게 한다며 온 세상에 앙심을 품는 그런 돼지였다. 그때부터 나는 늘 내가 돼지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마른 자들을 돼지로 만드는 데 더 집중하는 홍익돼지로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다.

 

 

 

2

 

고시원 생활부터 시작해서 같은 지붕 아래 오래 살아서 그런가, 언젠가부터 syo는 우리 사이에 작용하는 기묘한 물리법칙을 인지할 수 있었다. 체중총량일정의 법칙이라는 것인데, 명칭 그대로 특정 기간 동안 두 사람의 체중 합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신묘한 법칙이다. 원리는 모르겠는데 진짜 그랬다. 작년 여름 엄마 간병과 장례로 이어지는 긴 터널 속에서 나는 살이 꽤나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의 와이셔츠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한두 달 대구에 머물며 이런저런 정리작업을 하는 동안, 맨날 뭘 시켜 먹고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더니 빠졌던 살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치킨 다리를 내려놓으며, , 근데 다시 살이 찌고 있다! 라고 비명을 지르는 syo를 보며 동생이 말했다. 오빠야, 오빠야가 뭘 할라 하지 말고, 이 오빠야 살을 찌워라. 그게 빠르다. ……천잰데?

 

 

 

2.5

 

그런 전차로, syo는 사악한 남편을 해치우기 위해 매일 저녁 식사에 조금씩 조금씩 독을 타는 여인의 마음으로 의 식사에 조금씩 조금씩 탄수화물을 탔다. 지방이라는 이름의 독으로 저놈의 턱과 허리를 죽여버려야지. 밥그릇에 밥을 담을 때도 내 밥은 사뿐사뿐 의 밥은 꾹꾹 눌러 담았으며, 식후 뒷산 산책은 예의상 한 번 작은 목소리로 권해보고 이 못 알아들었거나 망설인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 혼자 다녀왔다. 조금만 더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80까지 만들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회사에서 짐 나르다가 바짓가랑이가 터지는 바람에 이 자기의 돼지됨을 눈치채고 말았다. 까비. 사실 대리가 입사 때보다 좀 찌긴 했지- 라는 말도 들었다고.

 

이게 다 니 때문이다, 니가 너무 잘 먹여서! 라며 울분을 토하는 그를 보며 syo는 최대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야, 이게 니가 다 집에 쳐 들어오면 맥주부터 마시고 바로 드러누워서 웹툰이나 쳐 보다가 잠들었다가 깨서 게임하다가 다시 자고 이딴 식으로 사니까 그런 거다 새끼야- 라고 대꾸했지만, 뒤돌아 웃으며 다시 탄수화물 풍부하고 지방 가득한 사료를 준비했다.


 

 

 

3

 

그렇지만 마치 정도를 넘어서 늘어난 스프링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듯이, 의 체중이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 체중총량일정의 법칙 역시 무너져 버린 것인지 제대로 동작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만약 그게 동작했다면 지금 syo의 체중은 50kg 후반대까지 떨어지고 말았겠지.

 

그만큼 은 몰라보게 돼지가 되었다.

 

근데 막상 이걸 돼지로 만들고 나니까 원래 아름답지 못했던 몸뚱이가 더욱 아름답지 않아서 심기에 거슬린다. 덥다고 자꾸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 진짜 이건 아닌 것 같다. 아직 이 트렁크 팬티를 입던 시절, 슬랙스에 그런 팬티 입으면 태가 안 나니까 제발 좀 드로즈로 바꾸라고 윽박지르다시피 권했던 과거의 나를 후드러패고 싶다. 대체 왜 팬티 라인을 배꼽 위까지 끌어올려서 입는 건데! 따지니까 배 나와서 부끄러우니까! 라고 대답하는 그가 나는 너무나도 부끄럽다…….

 

 

 

4

 

, 에세는 샀습니다. 오늘 벌써 도착.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막상 도착하니까 손이 안 간다…….


 

 

 

--- 읽는 ---

에세 / 미셸 드 몽테뉴

How to read 데리다 / 페넬로페 도이처

관통당한 몸 / 크리스티나 램

쓸모 없는 수학 / 김동진

그러나 아름다운 / 제프 다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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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페이퍼 제목이 너무 지적이다...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리는 팝송이네요 ㅋㅋㅋㅋㅋ

syo 2022-06-30 15:35   좋아요 1 | URL
제목은 지적이지만 내용은 지방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오실 바깥냥반을 독살하기 위해 돼지뒷다리살이 듬뿍 든 된장찌개를 끓일 예정이구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3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시간 지켜지던 체중총량일정의 법칙이 왜 깨졌는지 그것부터 좀 연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된장찌개 맛있겠네요. 고기가 들어가네요. 아.... 맛있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2-07-07 17:36   좋아요 0 | URL
그는 요즘 살 빼겠다고 헬스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조만간 중간정산 한번 해야겠네요.

페넬로페 2022-06-30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syo님과 삼님의 관계는 환상적이예요~~
저는 살찔까봐 밥그릇에 밥을 조금만 담고
다른 가족은 많이 주는데도
저의 뱃살만 늘어나고 두 사람은 삐쩍 마르고~~
에세, 사고 싶지만 읽지 않을 것 같아 조금 기다리다가 도서관에서 일단 빌려 읽어야겠어요^^

syo 2022-07-07 17:37   좋아요 1 | URL
이렇게 글감이라도 되어 주지 않으면 의미없는 녀석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

젊은 시절 일종의 인생책처럼 여기던 몇 권의 책들 중 하나여서 저는 구매를 했지만,
제가 좋다고 구매를 권하긴 어렵겠더라구요. 월든으로 주변에 민폐를 많이 끼쳐서....
이 책 두껍기도 하고, 말씀대로 일단 한 번 빌려서 읽어 보시고, 곱씹을 만하다 싶을 때 구매하시길 ^-^

반유행열반인 2022-06-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님의 삼이 삼겹살의 삼 아니죠? 구박하면 글이 재밌어지는 것 같지만 괜히 부담 드린 것 같아 송구합니다…ㅋㅋㅋㅋ에세도 거 웃겼는데 제가 요즘 (스스로에게도 바깥 세상에도) 칭찬이 박한 시절이라…정신좀 차리면 다시 비행기 몰고 돌아오겠습니다 ㅋㅋㅋ

syo 2022-07-07 17:38   좋아요 1 | URL
열반항공이 운행 중단 된 이후로 하늘 구경을 못하고 있습니다.
재빨리 정신 차리고 돌아오소서....

수이 2022-06-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님 이야기 하시는데 왜 제 가슴이 막 저릿저릿거리면서 찔리는 걸까요. 와구와구와구.

syo 2022-07-07 17:3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이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잠자냥 2022-06-30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미치겠다. ㅋㅋㅋ 독 타는 여인 심정으로 탄수화물 타기 ㅋㅋㅋㅋ
근데 삼 님 드로즈..... 오마이갓... 안구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syo님에게 심심한 위로를...

syo 2022-07-07 17:39   좋아요 1 | URL
그래도 요즘 운동한답시고 퇴근 후에 러닝머신도 달리고 그러나 보더라구요.
막상 운동해서 살 뺀다고 그러니까 그게 또 그거대로 꼴보기 싫네요 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6-30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완전 공감!
막상 도착니까 손이 안간다.
어떻게요.
막 공감되요.
ㅎㅎㅎㅎ

syo 2022-07-07 17:3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잡은 물고기에 떡밥을 던지지 않는 것이 국룰인가봐요 ㅋㅋㅋ

stella.K 2022-06-3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탁월한 미문입니다!!ㅋㅋㅋ

syo 2022-07-07 17:40   좋아요 1 | URL
三을 묘사할 때는 아무래도 미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녀석이니까요....

stella.K 2022-07-08 10: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공쟝쟝 2022-07-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악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2-07-07 17: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뭐왜

공쟝쟝 2022-07-07 17:55   좋아요 0 | URL
최근에 제가 아는 동생이 이런 명언을 보내주더라고요. 카톡으로… “한 가정에서 작가가 태어났다면 그 가족은 끝난것이다 -체 슬라브 밀로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삼 벗어나!!! 삼은 끝났다 ㅋㅋㅋ

syo 2022-07-07 17: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안 되지! 내 반영구 글감인데 어딜 벗어나 ㅋㅋㅋㅋ
내가 그를 버리기 전에 그는 나를 벗어날 수 없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7-0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 삼님 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오셔서 큰 웃음 주시네요!! 제목부터 끝까지 너무 웃김요 ㅋㅋㅋ

syo 2022-07-07 17:41   좋아요 1 | URL
저거 요즘 운동다니는데, 살 빠지건 말건 그것 역시 저한테는 그저 하나의 글감에 불과합니다.
쟤는 알라딘에서 저한테 씹히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요?

독서괭 2022-07-07 17:57   좋아요 0 | URL
syo님이 삼님의 인생의 의미를 하나 더해주신 것이죠^^ 본인이 과연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ㅋㅋ

syo 2022-07-07 17:58   좋아요 0 | URL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단 이거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2-09-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요? ㅎㅎㅎㅎ
제목도 글도 너무나도 멋지네요.
제가 기억하는 syo 님은 전혀 뚱뚱도 통통도 어울리지 않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글 속에 야금야금 친구 분을 살찌는 모습을 보며,
요즘 제가 저한테 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좀 바쁘다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평소보다 좀 많이 먹고,
피곤하고 귀찮다며 운동을 게을리 하고 있네요.

이 글 읽고 반성하며 이제 다시 슬림한 몸매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