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이야기 아니고 말하는 이야긴데요
대뜸 정상위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진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뭐고 뭐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알면서 ‘정상위’라는 단어의 정체는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래도 정상正常일까? 혹은 정상正像?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상定相이면 예쁘겠지. 하지만 정상正上이라든지 정상頂上이라면 그야말로 최악인데…….
정답. 정상위(正常位). 최악은 면한 것으로.
그렇지만 어째서 정상위가 정상正常인 것일까? 스무 살 꼬꼬마 시절에 읽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데뷔작 『일식』에 후배위 하는 거인의 그림자(거인 자체였나? 사실 가물가물…)가 하늘에 전개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짐승처럼’ 섹스하는 동작 자체가 ‘거인’만큼 전복적이라는 듯이 서술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소설 속에는 정상위 이외의 자세는 점잖지 못하거나 심지어 흉하고 저열한 자세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핵꼰대들이 등장하곤 한다. 좀 더 매섭게 눈을 뜨고 보자면, 성관계 시 남성이 동작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세를 ‘정상적’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관점은 권력적이기도 하다. 섹스를 둘러싼 이미지들, 섹스-속의-여성을 대상화하는 많은 단어들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면 지배-피지배, 정복-피정복의 이분법적 관계를 형상화하는 권력 작용과 ‘정상위’라는 단어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섹스를 권력 표현의 장으로 보는 이런 관점은 설득력도 있고 이미 전통도 있다. ‘정상위’라는 단어는 자체로 착취적인 것.
게다가 21세기에 이르러 이 정상이라는 말이 굉장히 위험한 어휘로 자리매김해 버렸다. 외연 바깥에 자리한 모든 존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정상의 자리를 부여하고 마는, 마치 배제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의 혓바닥 같은 단어. 일단 기분이 나쁘다. 카마수트라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세들이 죄 들고 일어나 우리는 뭐 비정상위냐고 득달같이 따질 것 같은 느낌이다. 정상위로 진행 중에 자세를 바꾸려고 하자 파트너가, 너 지금부터 비정상위를 시도하려고 하는구나- 라고 말하는 장면은 섹시하지 않군요. normal position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보통위’랄지 ‘보편위’랄지 하는 식으로 불러봤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같은 문제가 있다. ‘무난위’는 어떨까 생각해보았는데 세상에는 그 자세가 길어지면 무릎이 무난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역시…….
그렇다면 영어의 man-on-top처럼 ‘남성상위자세’라고 부르면 괜찮을 듯도 한데, 사실 ‘남성상위’라는 표현은 보통명사라기보다는 집합명사에 가깝다는 게 문제다. 저 단어를 한가지 자세에 부여해버리면 다종다양한 자세 중 남성이 위에 위치하는 자세를 통칭하여 말하고자 할 때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남성상위자세’ 말고 남자가 위에 있는 다른 자세들 말인데”라는 길고 지루한 표현을 반복해야 하거나.
결국은 그 자세에 맞는 고유명사를 부여해야 한다. 영어권에서는 missionary position이라고 부르던데 그 문화권 밖에 있는 이들에게 저 단어는 ‘a182-k7 position’(막 만듦)처럼 그냥 새로 외워야 하는(하지만 연상작용을 통해 a뭐시기 그것보다는 다소 외우기 쉬운) 단어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언어라는 게 이렇다. 권력작용에 복무하거나, 문화에 염색되었거나, 자체로 배제를 수행하거나, 한 어휘가 다른 어휘의 자리를 빼앗거나, 한없이 길어지거나, 그냥 외워야 하는 낱말들의 집합체로 환원되거나. 소실 없는 전달은 물론 불가능하고, 내가 다소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크게 불편하게 만드는 불균형한 시소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 밖에서 사고할 수 없다.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지평을 긋고 사고의 지평이 다시 인간의 한계선을 긋는 것이라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더 나은 사고를 하고 더 나은 사고를 위해 더 나은 언어를 주조하는 작은 일이, 그저 작은 일이기만 할까.
좋은 말을 고안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도안하는 일이다.
--- 읽은 ---
5.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20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귀여운 도형 책이다. 도형 공부와 인생 공부를 버무려서 한 숟갈로 떠먹여 주는 저자 선생님의 마음이 따뜻하다. 이런 식이다.
이렇게 다각형들은 삼각형 덕분에 자신의 내각의 크기의 합을 쉽게 알게 되었어. 다각형들은 내각의 크기의 합이라는 문제를 삼각형으로 분해하는 방법을 통해 해결한 거지.
인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야. 자신을 보다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분해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다각형도 자신을 삼각형으로 분해하고 그 내각의 크기의 합을 이용해 자신의 내각의 크기의 합을 구했잖아. 도형뿐만 아니라 수의 정수도 소수의 도움으로 자신을 소인수분해함으로써 자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수뿐만 아니라 문장도 주어, 서술어, 목적어 등의 문장 구성 성분들을 분석하고 분해할 때 의미를 더 깊게 파악할 수 있잖아. 전체의 성질이 부분들의 성질에 담겨 있기 때문에 전체를 부분으로 분해할 때 보다 더 자세하게, 분명하게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 같아.
_ 최영기,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6.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지음 /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
생존을 위해 북클럽인 척 해보았는데 그 북클럽 때문에 생존하는 귀엽고 다정한 사람들의 웃었다가 울었다가 인생 이야기. 수전, 당신은 한낱 조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당신이 웃겼어요.
그때도 놀라웠고 지금도 여전히 놀라운 점은, 서점에 들어와 어슬렁대는 숱한 사람 중에 자기가 진정 뭘 찾는지 아는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냥 슬렁슬렁 둘러보다가 취향에 딱 맞는 책이 눈에 들어오길 바라는 거죠. 어쩌다 그런 책을 찾으면, 출판사의 선전 문구를 믿지 않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라면 점원에게 가서 세 가지를 묻겠죠. 무엇에 관한 책인가, 당신은 읽어봤는가, 읽으니까 괜찮던가?
_ 매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7. 을의 철학
송수진 지음 / 한빛비즈 / 2019
모든 독해는 어느 정도는 오독이고 대부분의 이해는 얼마만큼 오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읽은 칸트와 너가 읽은 칸트가 다를 수 있고, 우리 두 사람이 읽은 칸트 중 어느 칸트가 칸트 자신이 쓴(그러므로 읽은) 칸트에 더 가까운 칸트인지는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그건 사람에 따라 크게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고 작게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확실히 더 중요한 문제는, 그래서 두 사람 중 누가 칸트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더 멀리 끌고 갔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철학 입문서나 개론서는 아니고 철학을 삶에 비비고 버무리는 방법의 입문서나 개론서다. 같은 장르의 다른 책들보다 특출나지는 않은 것 같다. ‘2019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설령 세상이 원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면 자신만의 철학이 될 수 있다.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죽이라는 임제 스님의 말은 그런 뜻이다.
자기 삶을 해석해보자. 해석을 시작하는 순간 누구든 니체가 말하는 ‘철학자’가 된다.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완충지대에 모른 척 있다가는 세상의 탁류에 쓸려갈 수밖에 없다.
_ 송수진, 『을의 철학』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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