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빗물같아요누룽지는쌀로별보러가지않을래
1
보호자 침대와 안방 침대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동안 신경을 좀 못 써줬더니, 요즘 북플이가 어쩐지 좀 달라 뵌다. 내가 알던 그 북플이가 아닌 것 같다. 헤어스타일도 조금 바뀐 것 같고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좀 걸으라는 잔소리까지 해대며(엄청 걷고 엄청 읽는 물심양면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닉네임을 들이밀며) 내 라이프 스타일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변화는 얘가 요즘 인용문으로 시작해 인용문으로 끝나는 말을 빈번하게 걸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syo란 놈은 아무 맥락 없이 밑줄만 투척당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모난 성격이라, 평소보다 두세 배 더 많이 손가락질을 해야 평소만큼의 이야기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겠어, 니가 적응해야지.
2
엄마가 숭늉 없으면 약을 못 넘긴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엄마가 아닐 수 없다. 동생은 숭늉 만드는 법 링크를 던져주며 반강압적으로 숭늉 제조를 의뢰해왔다. syo는 엄마 닭과 애기 병아리가 그 위로 총총총 걸어가는 앞치마를 두르고, 냉동실에서 냉동된 밥을 꺼내어 해동시키고, 프라이팬 위에 올려 누룽지를 만든다. 창밖으로 비는 내리고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에서 자꾸 나하고 별 보러 가자고 달콤한 목소리로 꼬시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누룽지는 누룽누룽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아이 고소해 아이 고소해 아이 고소해, 그렇게 3회 정도의 고소가 이루어질 때쯤 누룽지 위로 물을 한바가지 끼얹는다. 프라이팬에서는 치이이이익- 하며 길게 불트림 소리가 나고, 달콤하지만 목적이 분명한 남자의 목소리는 그 사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둘이 같이 별을 보러 가긴 간 것인지,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이제 랄랄라 랄랄라만 부르짖는 중이다. 별 뜬 밤하늘 아래에서 차마 말로는 다하지 못할 꽁냥꽁냥한 무슨 일이 벌어졌기를 기원하면서 syo는 숟가락으로 국물 한번 떠먹어 본다. 되었다. 비는 끝없이 내리고, 애끓는 마음들이 어떤 모양으로 뒤엉키는 동안, 숭늉은 누릇누릇 잘도 끓었다. 알라딘에서 내 적립금을 줬다 뺏으며 대신 뱉어놓은 보노보노 유리병에 잘 익은 숭늉을 가득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내일은 병원 가는 날이다.
--- 읽은 ---
+ 인문학 개념정원 / 서영채 : 139 ~ 274
+ 쇼코의 미소 / 최은영 : 181 ~ 294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이제니 : 83 ~ 226
--- 읽는 ---
=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상 / 오노 후유미 : ~ 187
= 알레프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 90
= 세상을 바꾼 물리 / 원정현 : ~ 115
=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제학 수업 / 박홍순 : 158 ~ 283
= 소로의 일기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88 ~ 152
=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 움베르토 에코,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 ~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