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과 오늘 출근길, 이 책을 들었다. 듣고 있긴 한데, 다시 찬찬히 읽어야 될 것 같다. 아는 책도 나오고 모르는 책도 나오고 하는데 중간에 어떤 구절을 만나면 거기서 다른 생각으로 막 연결이 되어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아침 만난 구절은 두 개인데, 거기서 하나의 책이 떠올랐다. 


누구든 빌린 책에서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만난다면, 거기에 밑줄을 그은 사람과 그 감정에 대해 잠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건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에서 만난 구절이고, 


"책을 읽고 마음에 든 작가가 생겼는데, 그 작가가 쓴 책이 그 한 권만 있는게 아니라, 알고 보니 적어도 열 권은 넘게 있는 거예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이건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에 나온 구절을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두 구절에서 내가 떠올린 책은 <밑줄 긋는 남자> 이다.










이 책은 사실 남편의 (안 읽는) 책을 정리하려다가 읽게 되어 좋아하게 된 책인데, 책을 좋아하는 20대 (맞겠지?) 여성의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고 책 이야기이기도 하고 약간 미스터리물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콩스탕스, 로맹 가리의 책만 읽는 여성인데 다행히도 로맹 가리는 책을 많이 남겼지만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한다. (이런 걱정을 덜 해도 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일까? 그의 많은 책도 언젠가는 다 읽겠지만) 그러면서 다른 책도 접해보기로 하고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고 책을 빌린다.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려 읽은 콩스탕스는 그 안에서 밑줄을 발견하고, 책을 읽다가 더 많은 밑줄과 메모를 발견하며 그 밑줄들이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밑줄을 그은 사람은 다른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기까지 한다. 콩스탕스는 밑줄의 주인공에게 이끌리며 밑줄을 따라가 '밑줄 그은 남자' 가 누구인지 찾아보기로 하는데.. 



처음 도서관에서 밑줄을 발견하는 장면을 읽으며 

아니 이런 파렴치한 짓을!! 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파렴치한 문제는 살짝 저쪽으로 밀어두게 된다. 


아, 사실 나는 로맹 가리 / 에밀 아자르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다 (자랑은 아니다). 

<밑줄 긋는 남자>를 읽고 <그로칼랭>을 사 두었지만 안 읽.. 이것도 읽어봐야지.










아무래도 안읽은책 카테고리를 만드는 일이 시급한 것 같다.. 


+ 아, <젊은 베르터의 슬픔> 에 관한 챕터를 읽고 또 그 책을 같이 읽었던 남자가 기억났으나.. 

나는 그때 독일 문학 수업을 듣고 있었고 -ㅁ- 자꾸 지난 남자 생각해서 뭐하겠냐 싶다. 

그 남자도 아무 생각 없었을거라 믿으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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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09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공감에 아마도 밑줄 긋는 남자도 나올걸요? ㅎㅎ

건수하 2021-12-09 09:47   좋아요 0 | URL
와, 진짜요! 저 데이비드 실즈 책 보고도 엄청 반가워했었구요 ㅎㅎㅎ <밑줄 긋는 남자>도 엄청 기대됩니다 ㅎㅎㅎ

공쟝쟝 2021-12-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 저도 독서 목록 따라가려 아껴 읽는 책인데요, 최애 에세이 칸에 꽂혀있답니다.

건수하 2021-12-09 13:42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아껴 읽고 계시군요!
저는 한 번 쭉 듣고 다시 읽어보려고요 :)

독서괭 2021-12-09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 긋는 남자> 예전에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나요! 도서관 책에 밑줄 그으면 안 되지만 ㅋㅋ 그래도 낭만적이죠? 전 예전 도서관의 종이대출증 시스템 -영화 <러브레터>(오겡끼데스까~)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을 좋아했는데, 가끔 그리워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강추요~^^

건수하 2021-12-13 08:49   좋아요 0 | URL
종이대출증 시스템.. 아주 어릴 때 보고 못 봐서, 아련하네요.
독서카드 서랍들에 가득한 카드들 보고 막연했었는데 말이죠.

<자기 앞의 생> 기억해둘게요 독서괭님 ^^

새파랑 2021-12-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그은 책 보는거 너무 좋더라구요 ㅋ 그런데 책도 있군요 ^^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도 추천이요 ~!!

건수하 2021-12-13 08:50   좋아요 1 | URL
전 사실 도서관 책에 밑줄 그어져있으면 좀 화가 나는데요 ^^
저런 밑줄이라면...@_@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도 기억해둘게요 ^^

단발머리 2021-12-0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이런 말씀 어쩔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작가님의 마니아 2위라는 점.....
꼬옥 밝히고 싶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책이랑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건수하 2021-12-13 08:5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마니아 2위...!!
(마니아 순위는 어떻게 결정되는 건지 여쭤보고 싶지만....)

단발머리님이 추천하시는 좋은 책과 좋은 시간 보낼게요 :)

단발머리 2021-12-14 09:5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알라딘 이웃 쇼님이 알라딘 마니아 랭킹 매커니즘에 대해 알려줬거든요. 긴 페이퍼였는데, 완전 과학적이라 깜놀하실 거에요.

주소 나갑니다.
https://blog.aladin.co.kr/syo8kirins/10328346

이 글을 읽고 저의 결론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다 읽고 리뷰를 작성하면서 ‘읽었어요‘를 표시하자. 2) 리뷰에 별을 주자. 3) 페이퍼에 자주 좋아하는 책을 넣자(알라딘 상품) 입니다.
제가 이작가님 마니아 2위를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시기를 바라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건수하 2021-12-14 10:17   좋아요 0 | URL
오..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Syo님의 글 넘 재밌게 읽었어요.
이런 시스템이군요!
사실 저는 마니아 순위에는 욕심이 없었으나 ㅎㅎㅎ
언젠가 도전해볼지도 (...)

저 글이 2018년 글인데 두 분이 지금도 1,2위를 지키고 계신가봅니다 :)
 

요즘은 출퇴근 시간 외에는 통 책 읽을 시간도 없고 사두고 안 읽은 책도 너무너무(!!) 많아서 한동안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점들이 주는 쿠폰은 쌓여가고… 알라딘 서재를 구경하다보니 사고싶은 책도 너무 많고 나도 막 더 사도 될 것 같고.. 해서 참다가 참다가 아침부터 질렀다.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또 전자책으로 사두면 있는지도 까먹고 더 안 읽게 되기도 하지만, 전자책을 사야만 할 때가 있다.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도 있지만, 갖고 다니다보면 책이 상하기도 하고, 종이책을 많이 가져가기엔 짐이 너무 무겁다.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알라디너 다락방님 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게 잠을 잔다
일기 
다정소감
마침내 런던 











<마침내 런던>은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이런 건 종이 책으로 사야하는데... 

기대되는 한편 금방 읽어버리면 아까울 거 같아서 못 열어보고 있다. 









<마침내 런던>의 역자 심혜경님 인스타를 얼마 전부터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이런 책도 내셨더라. 

카페든 어디든, 공부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도) 멋지지.. 이 책도 궁금하다! (아직 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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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8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종이책 선호하지만 전자책도 잇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익숙하지 않을 뿐이죠. 계속 가까이하다 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더 친하게.
요즘은 음성도서도 애용하던데 집중력을 상당히 요하는 거라 듣다가 딴 데로 빠지기 쉽지요.
수하 님 전자책 읽기 응원합니다!

건수하 2021-12-08 13:50   좋아요 1 | URL
저는 많이 익숙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종이책 넘기는 맛이 좋아요. 전자책은 한 페이지 넘기는데 시간이 미묘하게 걸리고, 앞뒤 넘기며 보기도 불편하구요.. :)

그래도 멀리 갈 때는 전자책이 고맙더라구요 ㅎㅎ

프레이야 2021-12-08 14:16   좋아요 1 | URL
급 수하님 고양이 기욤요 ㅎㅎ
저도 종이책의 질감 때문에라도 종이책이 훨훨 좋아요.

건수하 2021-12-08 15:43   좋아요 0 | URL
제가 마음으로 낳은 저희 첫째입니다 ㅎㅎ 16살 영감님이세요.

프레이야님 책은 좀더 여유있는 때를 위해 남겨두고 있습니다.. 연말엔 꼭 읽을거예요 ^^

잠자냥 2021-12-08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막 더 사도 될 것 같고˝ 이것이 알라딘 서재의 매력입니다. ㅋㅋㅋ 맨 마지막에 구매하신 책 보고 알았어요. 아니, 다부장님 책 전자책도 있군요?!

건수하 2021-12-08 13:5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매일매일 산 책 인증이 올라오니 ㅋㅋㅋ

요즘 알라딘 보관함에 ‘전자책이 출간된 종이책‘ 이란 옵션이 있어서 보니깐 전자책이 있더라구요 ㅎㅎ 그런데 저 책 말고 다른 저서 한 권은 종이책만 있구요 ^^

독서괭 2021-12-08 23:47   좋아요 1 | URL
˝나도 막 더 사도 될 것 같고˝ 이거 진짜.. 알라딘서재/북플의 함정 ㅠㅠ

다락방 2021-12-08 1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구매하신 전자책들의 목록이 너무나 뛰어나네요.

그럼 이만.

건수하 2021-12-08 11:18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저 잘해쪄요? ㅎㅎㅎ

다락방 2021-12-08 11:22   좋아요 3 | URL
세상 최고입니다! (쓰다듬 쓰다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1-12-08 13:52   좋아요 0 | URL
부끄부끄... //ㅁ//

프레이야 2021-12-08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6살 영감님이시군요. 어쩐지 포스가 엿보이는 프로필이.ㅎㅎ 근데 냥옹 16살이면 사람으로는 몇 살에 해당되나요? 궁금.^^

건수하 2021-12-08 16:14   좋아요 1 | URL
계산법이 딱 정해져 있는건 아니지만 대략 70대 이상이랍니다 ^^
 









앞서 자본주의 체제하의 제1세계와 제3세계 모두에서 여성이 성차별주의와 남성 지배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그 노동이 은폐되고, 여성에 대한 노동과 자본의 요구 과정에서 수단으로서 폭력이 사용됨을 알아보았다. 6장에서는, 봉건주의 혹은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이끌어낸 제2세계, 즉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여성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제3세계 여성에게 여성해방의 이슈는 식민지와 신식민지 종속에서 벗어나는 민족해방의 문제와 사회주의 사회를 세우는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고, 서구 페미니스트들 역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을 하는 제3세계 국가의 여성운동에서 진짜 페미니스트적인 돌파구가 나올 것을 기대했다. 민족해방투쟁 이후 여성이 이전보다 정치 권력에 좀더 접근하게 되었는가,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성별노동분업이 폐지되었는가? 묻는다면,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사회주의 국가의 여성 역시 가부장적인 남녀관계에서 해방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민족해방투쟁과 전쟁의 기간 동안 혁명의 포스터는 아기를 업고 한 손에 총을 든 여성의 모습 등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의 결합을 선전했다. 그러나 민족해방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혁명의 포스터는 건국의 아버지 (맑스, 엥겔스, 레닌, 마오, 호치민, 카스트로, 무가베 등) 이미지로 대치되었다.

여성해방과 민족해방투쟁, 그리고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 건설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전제의 이론적 기초는 맑스, 그리고 좀더 특별하게는 엥겔스가 놓았다.



엥겔스는

여성이 가부장적 구속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재진입'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371쪽



엥겔스는 여성이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과 여성의 경제적, 그리고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지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유' 임금노동자를 역사의 주체로 보았듯, 여성이 임금노동 부대로 들어감으로서만 역사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일반이론의 주요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1. 여성문제는 사회문제의 일부로, 자본주의 전복 과정에서 해결될 것이다.

2. 모두가 재산이 없는 임금노동자가 되면 남녀차이도 사라지므로 여성 억압의 물질적 기초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계급 내에서 여성운동은 필요하지 않으며, 노동계급 여성은 계급의 적에 맞서는 모든 투쟁에 같은 계급의 남성 동지와 힘을 합쳐 참여해야 한다. 이로써 여성 해방의 전제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3. 여성으로서 특별히 당하는 억압에 대한 투쟁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합법적 행동, 교육, 선전, 경고, 설득 등 -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일어나야 한다.

4. 여성문제와 관련된 투쟁은 부차적이다. 계급투쟁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분리된 자율적인 조직을 구성해서는 안된다.

5. 기초적 생산관계가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여성이 사회적 생산 혹은 임금노동에 진출한 이후, 개인적 가사노동과 육아의 집단화가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여성은 임금노동 뿐 아니라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 남녀 사이의 진정한 평등 혹은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노력은 남녀관계 차원에서 혹은 가족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실제 해방전쟁에 많이 참여했던 여성이 가부장적 관계에서도 해방을 성취할 수 있었는가?


크롤은 혁명 투쟁 이후 생산관계의 변혁을 겪은 국가 소련, 중국, 쿠바, 탄자니아에서 농촌 여성의 '생산과 재생산' 경험을 연구했다.

네 국가 모두에서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진입' 하도록 동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맑스 이론에 따르면 여성은 가정주부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사적인 생산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국가의 상황은 약간 달랐다. 러시아와 탄자니아에서는 여성이 언제나 농업 생산에 대규모로 참여해왔고, 중국의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참여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쿠바에서는 1970년대에만 여성이 대거 농업 임금노동자로 동원되었다.



소련

여성이 자급적 생산 (개별 농민농장과 텃밭)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국영 집단 농장에서 41%의 노동력을 이루고 있으며, 가사노동도 책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련 남성은 가사노동을 분담하지 않으며 탁아소, 유치원 등의 가사노동의 사회화 형태도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다. 노동 부담이 크고 가정 내에서의 성별노동분업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일반적으로 낮으며 특히 농촌에서는 더욱 낮다. 비농업부문의 일자리는 주로 남성에게 돌아갔다. 여성은 일종의 '출산파업'으로 대응했다. 국가는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이 출산을 하기를 장려하며 재정적 지원을 하였으나, 여성은 이중적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중국

마오쩌뚱은 급속한 공업화보다 농촌의 발전을 우선시하였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력을 혁명을 통해 척결해야 할 4대 권력의 하나로 보았다. 초기에는 토지를 실제 토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분배하고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밭농사를 이 시기에는 주로 여성이 장악했다), 그리고 이혼하기 쉽도록 한 결혼법이 생기면서 이혼 사례가 늘어났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며 급진적이었던 개혁은 좀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개혁으로 바뀌었다.

여성은 사회적 생산에 복무하도록 장려를 받았으나, 육아를 비롯한 가사서비스가 집단화되지 못하였다. 1958년 대약진운동과 코뮌의 설립으로 가사 서비스가 사회화되어 보육원, 유치원, 공동식당, 방앗간 등이 세워졌으나 이런 가사 서비스의 집단화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성별노동분업을 따랐다. 남성은 자본집중도가 높은 산업 부분으로, 여성은 교육, 건강, 기초소비재를 생산하는 소규모의 산업(기술발전 수준과 임금이 낮다)에 배치되었다. 가사노동의 집단화 노력은 높은 비용을 이유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문을 닫았다. 문화혁명 동안 봉건적인 남성의 태도가 비판을 받았고, 가사노동을 부담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어디까지나 이데올로기적, 의식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1979년 이래 신인구정책 (한 자녀 가정 캠페인)을 추진하면서 여성의 임신능력을 규제하고 통제하였다. 한 자녀 가정에 사유지를 더 주는 등 특혜를 주는 한편, 다자녀 가정에는 '초과 자녀세'를 부과하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 농촌에서 한 자녀 가족은 더 많아진 사유지의 노동을 더 적은 노동력을 감당하기 위하여 더 많이, 오래 노동해야만 했으나 성별노동분업에 변화가 없었기에 여성이 사유지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림으로써만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다. 농촌 여성은 전통적인 부계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선호했기에 여아살해, 태아 감별, 낙태, 불임시술 등의 결과가 나타났다.

중국의 여성연합은 남성지도자가 기획한 당 정책을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여성을 가정주부나 번식자로 규정하여 여성이 무임금의 가족노동 혹은 저임금의 생산 노동을 통해 근대화과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3세계 국가에서와 유사했다.



베트남

맑스주의 지도자들은 반식민지와 계급투쟁에서 처음부터 여성을 동원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필요함을 알았다. 평등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생각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폄하하는 전략을 통해 여성의 투쟁을 민족해방과업에 복속시켰다. 베트남의 여성농민 대중은 가정 혹은 가사노동에 고립되어 있지 않았으며 논밭에서 일을 하고 장사를 했으나, 베트남 공산당은 여성이 공적인 사회적 생산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맑스-레닌주의적 서술을 통해 여성을 동원했다. 프랑스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여성은 농업, 공업, 행정, 교육 보건 활동, 게릴라 전투원 등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역할은 대부분의 남성이 전쟁을 하는 동안 경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방전쟁이 끝난 이후 여성이 갖고있던 지도적 지위는 대부분 남성이 차지했다. 여성의 기여가 정치조직에서의 참여에 반영되지 않는 것을 두고 대개 '봉건적 잔재'라 비판하나 이것은 이데올로기적이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소련과 중국의 사례와 유사한 양상을 띠었다.

중국-소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재건은 이중경제모델 (근대적이고 국영화된 공업, 집단농업 - 남성 영역 과 비공식적이고 보조적인 사유지, 수공업 등 - 여성 영역)으로 이루어졌다.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가족사유지체계를 강화하고 가족 단위로 협동조합의 일을 하청했다. 이 제도는 생산을 크게 향상시켰으나, 여성 농부의 '여가시간'이 생산적으로 이용되었으며, 이는 사회화된 근대 부문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윤이 높은 수공예품 생산 역시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가사노동, 가족의 생계유지, 국가를 위한 노동 모두가 여성의 노동이 되었다.




결국 세 사회주의 국가에서 여성의 상황은 유사했다. 해방투쟁과 이후 여성 지위에 변화가 있었지만, 국가가 채택한 경제정책이 다시 여성을 가족 그리고 무임노동과 연결시키며 성별노동분업에 있어서는 시장경제의 제1세계, 제3세계 국가와 유사한 문제를 가지게 되었다.

민족해방투쟁 동안 여성은 필요한 존재였다. 민족의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경제를 유지하는 존재로서 여성은 해방전쟁에 기여했다. 투쟁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성별노동분업에 변화가 있었고, 여성의 조직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 구질서는 곧 회복되었다. 경제의 재조직화 과정에서 이중경제모델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남성프롤레타리아는 여성보다 더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 특히 가정주부 여성이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주의 발전에서도 최상의 노동력이었다. 산업화된 국가들로부터 들여온 공업화된 사회의 성장모델은 자본의 축적을 전제하고 있었으며, 자본의 축적을 위해 착취당한 계층과 그룹은 여성과 농민이다.

제3세계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자기 국가의 역사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19세기 유럽 사회의 현실을석한) 이론을 비판적으로 적용하였고, 그 이론에는 여성문제와 식민지 문제가 배제되어 있다. 새로 해방된 국가의 정부가 똑같은 발전과 진보 모델을 적용하였고, 이는 같은 딜레마를 낳았다. 그들은 계급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인민 내에도 계층이 생겼고 특히 여성의 노동부담이 가중됨과 동시에 여성을 집단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무르게 하였다. 또한 여성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여성은 사회주의적 축적 과정에서도 '마지막 식민지'로 남았다. 이는 새로운 이론, 새로운 경제모델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제 7장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

기대된다 7장..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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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2-02 1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리아 미즈 선생님은 대안 제시해버리는 꽉 닫힌 결말의 믿고 읽는 페미니스트!

건수하 2021-12-02 16:47   좋아요 1 | URL
대안의 7장 봤는데요...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머엉...
 








5장에서는 제3세계, 특히 저자가 잘 아는 인도에서 여성의 노동, 생산관계의 공통된 특징, 


여성이 착취 혹은 극한의 착취를 당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혹은 직접적인 폭력과 강제가 사용되는 (308쪽)


사례가 많이 소개된다. 인도의 경우 가부장제 외에 카스트 제도가 복잡하여 더 극단적인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 지참금 살해



인도 시골의 근대화는 계급 갈등을 심화시켰고 1960년대 말부터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유례없이 증가하여 가난한 여성에 대한 강간과 학대가 많이 행해졌다. 중산층은 이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좌파 조직은 여성에 대한 강간을 봉건적 혹은 반봉건적 생산관계의 일부로 여겼다. 1970년대 말부터 대도시의 여성단체들이 결혼지참금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은 신부에 대한 살해와 강간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시골 외에 대도시에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가부장적 인도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있을 곳도, 사회적 지위도 없기 때문에 신부 가정은 지참금을 지불하고 딸을 ‘결혼시켜 치우기’에 열심이었다. 지참금은 신랑 가족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통보되며 신부의 가족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 후에는 지참금을 더 요구받고 학대받으며, 더 가져오지 않는 경우 시체로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체는 불에 태워 (자살시도로 불을 질렀다거나, 요리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식으로) 모든 증거를 없애기 때문에 경찰이나 법정의 수사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독극물, 화재, 가슴을 물어뜯기는 잔혹행위, 질식과 뇌출혈 등으로 사망하거나 큰 부상을 입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여성단체와 조직들은 범죄에 대한 법 집행을 더 엄격하게 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1961년 지참금 금지법이 제정되었으나 이 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1976년에 2670명, 1977년에 2917명의 여성이 화상으로 사망했다. 결혼지참금 살인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잔혹행위에 대한 반대운동이 커지고 있었음에도 1980년 이후 남편과 시댁친지에 의해 젊은 여성이 살해되는 숫자는 급속하게 증가했다.



# 양수천자와 여성 살해



인도에서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1911년 이후 인도에서 여성/남성의 비가 하락한 것, 결혼지참금에 대한 과도한 요구, 신부를 사오는 관행이 있던 가난한 지역 공동체에 결혼지참금 제도가 확산된 것, 결혼지참금 때문에 빈민의 부채가 증가한 점 등.


양수천자와 초음파진단이라는 기술은 태아의 성별 선택을 가능하게 하여, 인구통제정책과 가부장적 제도, 남성지배적인 태도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태아성감별을 통해 여성 태아를 낙태하는 것이 처음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여론은 반응이 없었다. 반여성적인 태도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여아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1978-1983년 사이 약 78000 명의 여아가 성감별 테스트 이후 낙태되었다. 여성들은 나중에 결혼시킬 때 수천 루피를 쓰는 것보다 지금 그 돈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Patel의 1984년 논문을 재인용). 양수천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것이 여성 전체를 위협하는 수단이어서가 아니라, 의사들의 홍보와 판매 전략이 범하는 잘못- 태아연구와 배아이식, 유전자공학 분야와 관련된 과학자의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 그리고 그를 부추기는 국제적 철학-에 관한 것이었다 (Balasubrahmanyan의 1982년 논문을 재인용).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여아 낙태를 보는 학자들도 있었으며, 그 중 쿠마르 Kumar는 1983년 논문에서 성감별에 의해 여성의 공급이 줄어들면 여성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적용하여 여아 낙태를 옹호했다. 양수천자와 여아낙태가 여아신생아의 살해보다는 훨씬 인도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여기서 미즈는 잠시 이성을 내려놓고(?)



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암울한 여성혐오적인 표현은

여성 스스로가 체화시켜 이를 다른 여성에게 적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스스로 절명하게 하는 것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우리에게 빈민을 섬멸함으로써 빈곤을 퇴치하는 것을 제안한 인구통제기구의 논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는 그보다 더 끔찍하다.

여성이 여성 살해를 최종 해결책으로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324쪽


이라고 말했다.



미즈가 앞에서도 그닥 아주 냉철하고 이성적이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는 잠시 이성의 끈을 놓는 것이 느껴졌다. 논리적으로 쓰려고 애썼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고나 할까. 5장을 읽으며 나의 감정도 내내 그랬다. 나는 여성 스스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거나, 상대 여성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적대적으로 대하고 뒷담화를 하는 것이 싫다. 남성에 대해서보다 여성에 대해서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여성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필리스 체슬러의 <여자의 적은 여자다> (원제: Woman's Inhumanity to Woman) 에 이런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었다. 









여자의 적이 꼭 여자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런 말이 사용되는 맥락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여성이 남성보다 여성을 더 쉽게 적대시할 때 화가 더 나기는 한다. 집단으로 묶어 뭉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경우는 예외다. 살아오면서 언제나 항상 그랬듯, 여전히 여성이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만 전체 인류의 반이나 되는데, 여성은 정말 약자인가? 예전에는 단순히 남성/여성의 구분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나 나는 약자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성 중에서도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여러 복잡한 특성이 조합되어 있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 강간




결혼지참금 살해와 마찬가지로 강간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로, 인도의 농촌 지역에서 만연한 ‘후진적이고 봉건적’인 관계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나며 1978년 이후에는 특히 경찰에게 당하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대부분의 사건은 경찰서 내부에서 일어났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집단 강간을 당했다. 범죄를 저지른 경찰관들은 대부분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읽기 괴로운 사례들이 여럿 소개되었다)



반강간 반결혼지참금 캠페인을 통해 인도에서 여성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 캠페인을 통해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수입된 이데올로기임과 동시에 인도 여성이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적인 남녀 관계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에도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해졌다. 중산층 여성 또한 폭력으로 위협받고 있음이 알려졌고, 강간이 모든 계급에서 발생하고 있음이 인정되었다.



라자라만 (Indira Rajaraman)은 신부대금 제도가 있었던 농촌까지 결혼지참금 제도가 확산된 것이 농업의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기계 등으로?) 여성 노동력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으로 보고, 결혼지참금이 ‘여성이 벌이를 못하거나, 벌어도 생계비용 이하로 버는 상황에서 여성을 평생 부양하는 비용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결혼지참금 제도가 신부대금 제도에 비해 특별히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정책적으로 여성이 소득유발 활동에 좀더 결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경제학자 바르단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적 경제’ 개념에 기초한 것으로, 여성이 수행하는 가사노동, 출산, 육아를 ‘생산적 노동’의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것에서 논리적 결함이 있다. 이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여성의 40% 이상이 집밖에서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서구와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은 증가하고 있었다.




여성 노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서 따로 분리되어 은폐되어 있다. 여성은 가정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 일을 그만둔 적이 없으며, 출산과 육아를 그만둔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노동을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으로 더 이상 여기지 않으며,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성이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것이 여성이 ‘부양자’ 남성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341쪽



이 문장들을 보고 누구의 일이 더 중요한가를 가지고, 항상 자본주의적인 잣대로 이야기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힘든'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어릴 때 내가 주입받은 생각이다. 가끔 아버지는 '내가 번 돈' 이라는 말을 해서 나에게 타박을 받으시는데, 어머니의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지만 갈등을 싫어하는 어머니는 명확한 답을 하신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아이를 낳기 전에는 너네 아빠보다 월급이 많았어' '내 퇴직금이 집을 장만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어' 라고 얘기하셨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물론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이 비슷한 연령과 조건의 남성 임금 수준만큼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돈 벌어오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히 자본주의적인 잣대에 기초한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의식주라고 치자. 돈만 있다고 의식주를 누릴 수는 없다. 의식주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돌봄 노동은? 인간의 아기가 동물처럼 부모로부터 자립하여 스스로 먹이를 찾고 살아가는 데에는, 글쎄 몇 년이 걸릴까?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에서는 최소한 20년 가까이 걸리는 것 같고, 야생에 던져놔도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이런 필수불가결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노동을 여성이 주로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여성은 자연과 친하니까?



# 공물로서의 결혼지참금



결혼지참금은 브라만 계층에서 가부장적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이론들을 갖고 합리화하면서 발전시킨 것이다. 브라만식 결혼 개념에 따르면, 딸은 아버지가 ‘건네주는’ 것이다. 그리고 ‘건네준 남자는 언제나 건네야 하는 입장이다.’ 신부를 주는 가족과 신부를 받는 가족 사이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신부를 받는 신랑 가족은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규정된다. 주는 쪽이 ‘받는’ 것은 이러이러한 남자, 이러이러한 가문에게 ‘주었다’는 명예이다.


(342쪽)



이들 남성은 교육비로 썼던 돈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많은 현금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그들은 결혼지참금을 사업을 시작하고, 변호사 사무실, 개인병원, 엔지니어 오피스 등을 여는데 사용했다. (345쪽)



결혼지참금 제도는 남성이 직접 한 노동을 통해서나 자기 자본을 투자해서 벌어들인 것이 아니라 갈취와 협박과 직접적인 폭력을 통해서 얻는 부의 한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지참금에 대한 권리를 통해 모든 남성은 자신이 벌지 않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살 수 없었던 현대적 소비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결혼지참금은, 생존을 위해서 부채를 지고 소비를 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물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창출했다. 결혼지참금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시장적 가치와 시장성 상품이 확산되는 길을 열었다. (346쪽)




한국의 경우와 크게 다른가? 결혼지참금을 혼수로 볼 때, 한국의 경우 집을 남자 쪽에서 마련하는 일이 많았으니 다르다고 볼 수도 있으나, 요즘에는 같이 모든 것을 마련하는 일도 많은 것 같다. 인도에서도 남자쪽 집에 가서 산다고 하니까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신부의 아버지가 딸을 ‘건네주는’ 양상은 모든 가부장적 사회에 흔한 모양이다. 또 결혼지참금 (혼수) 를 통해 직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 현대적 소비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일도 유사하다. 시장성 상품이 확산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중요하고.



브라만에게 이런 비상호적인 공물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중요했다. 이 승려 카스트는 몸으로 일하여 먹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만적 사고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이기도 하다. 여성은 남편에게 몸과 노동과 자녀를 주고 이에 더해 돈과 여타 상품까지 바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아내라는 명예를 '받는다.' (342-343쪽)




명예가 필요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갈 곳이 없고 살 수가 없으니 할 수 밖에 없는건데 명예를 던져주는 거지.



요즘 많은 젊은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하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있을 곳' 과 '사회적 지위' 를 잘 마련하고 있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남성은 타고난 강간자인가?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기본적으로 공격적이며 억제할 수 없는 것이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고 피학적이라는 주장 (346쪽)



이런 본능은 엄격한 법과 특정 범주의 여성 (어머니, 자매)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금기, 그리고 여성 스스로가 남성의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성 ‘본능’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하는 것을 통해서만 통제할 수 있다. (349쪽)



모든 도서관에는 남성의 성적 욕망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이며 통제할 수 없고, 여성은 고유의 섹슈얼리티를 갖고 있지 않으며, 남성의 공격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여성의 생물학적 운명이라는 점을 증명하려는 책들이 가득하다. 이들 학자와 학파 중 가장 유명한 예로 다윈을 들 수 있다. 다윈은 진화의 기초가 되는 것은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경쟁에서 남성들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로렌츠, 타이거, 팍스 등의 학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런 개념을 앞서 우리가 본 것처럼 ‘남성 사냥꾼 모델’로 축약하여 대중화시켜왔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공격성은 남성의 타고난 본능의 일부이며, 사회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서는 변화할 수 없다. 과학적 사고 뒤에 숨어 있는 편향에 대해 좀더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이른바 가치 중립적인 과학이 여성, 낮은 카스트, 낮은 계급과 민족과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는 일정한 신화에 기초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 즉 강한 남성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복자, 승리자가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강간 법과 강간 신화의 뒤에 자리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종류의 과학을 수용하는 이들은 파시즘이나 제국주의도 수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지 못하겠는가? (349-350)




앞에 나왔던 '남성 사냥꾼 모델' 이 다시 언급된다. 남성 사냥꾼 모델에는 이런 함의가 있었던 것인가. 찰스 다윈, 콘라드 로렌츠는 익숙한 학자들인데, 동물행동학이라는 것도 동물을 색안경을 쓰고 본다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여성과 관계있다고까지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이런 종류의 과학'을 적극적으로는 아니지만 소극적으로 수용해온 자로서 부끄럽다.



공격자들은 종속된 이들이 상황을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혹은 같은 의미지만, 신이 부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정복하고 종속시킨 이들에 대한 통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창안자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해 왔다. 이는 영원한 희생자의 이데올로기,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 (근대 서구적 버전으로는 여성 피학성의 이데올로기)이다. .... 이런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이득을 위해 발명되고 유지된다고 말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여성에 대한 수천 년 동안의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352-353)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율권을 갖지 못한 여성은 자신에게 강요된 것을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밖에는 심리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인간으로서 자기존엄을 모두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들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가장 깊은 이유이며,

강간당했을 때, 자신의 '명예'와 가족의 명예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을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353쪽



인간으로서 자기존엄을 모두 잃고 싶지 않은 것... 이것이 여성의 약점인가. 아니다, 인간의 약점인데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이 여성인 거겠지. '낭만적 사랑'도 이에 근거하여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강간이라는 것이 왜 두려운가, 왜 우리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모욕'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두렵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나, 김기덕의 <나쁜 남자> 같은 영화에 공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왜 '강간'을 두려워하는가.. 생각해볼 문제다. 강간이나 여성 폭력에 대한 책들을 읽기를 미뤄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겠다.












강간은 '여성을 치욕스럽게 하는 것', 여성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 '우리에게 강간은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행위이다. 이는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게 한다. 이는 남성 권력의 궁극적인 자기주장이다.' (354쪽)



우리가 인도에서 강간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때, 우리는 불가항력의 성적 충동을 만족시켜야 할 필요에 대한 것은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이런 장면에서 '어떤' 충동이 있다면, 이는 남성이 지배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욕을 가하고, 침해하고, 괴롭히려는 욕망이다. 강간은 한 계급의 남성이 다른 계급의 남성을 벌주거나 모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 여성은 이 투쟁에서 유력한 남성의 남성다움, 그들의 힘을 증명하기 위한 대상으로 사용된다. (358쪽)



여성에 대한 폭력은 착취적인 남녀관계, 계급관계, 국제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역사적으로 형성된 현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 여성은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자유' 시민 혹은 역사적 주체도 될 수 없다. 이는 부르주아 혁명의 시민적 자유가 여성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여성이 그렇게 늦게 투표권을 부여받게 된 깊은 이유이며, 결혼 관계 내에서의 강간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여성은 재산 소유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재산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 논리를 따르면, 여성은 자유로운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계약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노동이나 용역과 관련해 어떤 것을 여성으로부터 끌어내려한다면, 폭력과 강압을 쓰는 것이 필수적이다. (350-352)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는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363)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이 좀 아리송하다.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갈취하는 것' 인 것 같은데, 그 앞 문장이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쓰여 있어서. 그러면 결국 저자는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가 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모두가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모두가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 즉 자본주의의 일부분이 되기를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을 바꿀 수 있다니, 논리적으로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7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보고 싶지만 보는 것이 두렵다. 여기까지 계속 공감하면서 왔는데, 마지막에도 공감할 수 있을지, 또 30년 전에 제시된 대안이 지금도 유용할지. 그런 것이 다 두렵다. 뚜껑을 여는 시기를 늦추고 싶다.




+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이나 <아내 가뭄>을 읽으며 '여성이 돈을 버는데도, 어떨때는 남편보다 더 많이 버는데도 가사노동 분담 비율이 낮다, 특히 그것은 출산 이후 심해진다-'


라는 내용이 왜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되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전업주부의 사례는 굳이 언급되지 않았던 것도.











1980년대 초에는 여성도 자유 임금 노동자가 되면 자본축적을 위한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회에 진출해서 남성과 비슷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되었음에도 성별분업, 성차별은 달라지지 않더라- 가 전제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여성의 자유임금노동자화가 100% 진행되면 사회는 뿅! 바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현재 자유임금노동자가 ##% 라고 하면 ##% 만큼 여성에 대한 이윤 착복화가 감소할까? 그것도 아닐 거다. 여성의 자유임금노동자화는 진행이 되었는데, 30년이 지났는데 왜 현실은 이러한가- 라고 한다면? 백래시도 있었고... 의식의 변화는 더 느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 1980년대 인도의 사례 (특히 농촌에서) 가 상당히 암울했고, 인도는 '강간의 왕국' 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간 문제가 현재도 심각한 것 같다. 최근 인도에서 '농업개혁법'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계속 있었고, 결국 총리가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영상] 인도 농민들 대규모 시위…총리가 굴복한 이유는? (kbs.co.kr)


이 시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성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여성들은 후방 지원을 많이 했고 남성들은 수도에서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 같다. 6장에 나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민족해방의 사례와 유사하다. 농촌에서의 여성의 상황도 (현재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이번 시위 이후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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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고 있다. 이번 장은 경제 분야의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1970년 이후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유럽 국가로부터 독립한 이후) 제1세계 (서유럽, 미국) 여성은 일자리로부터 소외되고 가정주부가 되어 번식과 소비의 주체로서, 제3세계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여성은 가정주부이며 번식자이자 동시에 생산자로서 기능하기를 사회로부터 강요받게 된다. 1세계 여성이 번식을 권장받는데 비해 3세계 여성에게는 가족계획, 그러니까 덜 낳는 것이 권장되었는데 그 이유는 제3세계 여성의 값싼 노동력을 사용하여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3세계 여성이 자유로운 노동자로서 존중받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국제 자본이 제3세계 여성에게 끌리는 이유는 '가장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노동력' (256쪽) 이기 때문이다. 농업, 가내수공업, 공장에서의 공업, 성산업 등에 종사하게 되나 대부분 그들의 노동은 경제활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대다수는 젊은 여성 (14-24세)이며, 나머지는 대개 가정주부로서 '여가' 시간에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임금에 관한 권리가 남성 (남편)에게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요약이 아니라 기억에 남은 것을 적어봄)



1980년대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이 장에서 드디어 실감했다.



1990년까지 한 집 건너로 가정용 컴퓨터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 가정주부는 ... 컴퓨터를 통해 쇼핑을 하고, 텔렉스 등을 통해 편지를 보내게 될 것이다. (295쪽)


동남아시아 섹스관광의 중심에 있는 세 국가 중, 타일랜드, 필리핀, 한국 .... (298쪽) 


(여기가 동남아시아였나?)


1980년대까지 이러한 상황에 있었던 한국이 지금은 '서구산업화 국가의 초국가적 조직'인 OECD 가입국가라고 생각하면 놀라운데, 사실 1990년대 이후에 가입한 다른 국가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 어쨌든 한국이 좀 놀라운 사례인 것 같기는 하다. 예에 함께 속했던 인도, 태국, 필리핀 등을 생각하면, 또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와 비교해도 그렇다.




얼마 전 <몸이 선언이 될 때> 

운 좋게 태어난 백말띠 여성, 임신중지 여성, 성소수자가 말하는…‘내 몸’ - 경향신문 (khan.co.kr)


전시를 보고 왔다. 

1986년 이후 초음파로 태아를 진단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 여아 낙태가 많이 행해졌다고 했다.


이제는 출산율이 낮아 걱정하며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니.

30년 동안 한국은 국가 차원의 경제발전, 그리고 출산과 관련된 점에 있어서는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이동한 것인가.



논제는 아니고 궁금한 것.


4장 마지막에서


제3세계의 가난한 여성의 모습은 산업화된 국가의 여성에게도 '미래의 이미지' (306쪽)



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 미래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여성이 '보이지 않게 노동'하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팔면서 '발전 속으로 통합' 되었나?


국가 안에서도 분명 경제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여전히 1세계는 1세계이고 3세계는 3세계인 것 같은 느낌인데.. 

1980년대 이후 이것이 어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또 이 논의에서 빠져있는 제2세계 (공산주의 국가) 의 경우는 어떠했는지.


한 국가가 사회주의 발전의 길을 채택한 혁명 이후에도 결국은 노골적인 반여성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는 후에 좀더 깊이 분석해야 할 것이다. (272쪽)



라는 문장을 보면, 또 앞의 장에서의 논조를 보면 사회주의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주의를 채택한 국가의 예들이 6장에 나온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여성은 오늘날 노동자로서는 은폐되고 있고, 번식자와 소비자로, 그것도 탐탁하지 않은 번식자와 소비자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만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272쪽)



이렇게 중국의 예만 드는 것은 아시아라서 그렇다는 것인가? 러시아나 동부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인가?



섹스와 관련된 부분에서라도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뭔가 달랐는지,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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