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자본주의가 식민지 강탈에 기초하여 세계체제로 발전하면서 착취 대상은 외부로 확장되었다. 식민지의 토지와 주민은 남성 문명인의 착취와 이용을 기다리는 ‘자연’으로 여겨졌다. 동시기에 발전한 근대 과학기술은 자연을 분석과 해체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여성, 식민지에 대한 시각과 유사하다. 교회, 국가, 신흥 자본가 계급, 근대 과학자는 협력하여 여성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종속시켰다.



12-17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던 마녀사냥은 여성을 통제하고 종속시키려는 메커니즘의 하나였다. 중상주의 관점에서 근대국가의 발전에 노동력의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이 관점은 지금까지도 대체로 고수되고 있다). 마녀사냥으로 산파가 통제하던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남성 의사에 의해 통제되었다. 마녀로 몰린 자들의 재산은 몰수되어 국고로 환수되었고 봉건계급과 부르주아의 자본으로도 축적되었다. 코르넬리어스 루스에 의하면 마녀 재판은 ‘인간의 피에서 금을 만들어낸 새로운 연금술’이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프란시스 베이컨은 마법의 비밀을 알아내는 수사 방법과 같은 방법- 귀납법으로 자연의 비밀을 캐낼 수 있다고 하였다. 베이컨에 따르면, 자연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노예’로 만들어져야 하며, ‘규제’되고, ‘해부’되어야 한다. ‘여성’의 자궁이 상징적으로 겸자에 굴복한 것처럼, 자연의 자궁이 품고있는 비밀 역시 인간의 삶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발굴되어야 하는 것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연약한 여성상은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조해낸 산물이다.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잠시 엿보았다. 그 시대 여성은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긴 치마를 입고 물에 빠진 고양이를 구한 여성은 누가 자신을 봤을까봐 정신없이 고양이를 안은 채로 ‘네트’를 통과해 미래로 가고 만다), 신경증이 있고 기절을 잘 하며 (자주 가장하기도 한다), 온통 결혼에만 관심이 있다. 그 시절 여성과의 대화에서 성적인 것과 관련된 주제는 금기시된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의 임신에 대해서도 언급할 수 없다).










16-17세기는 약탈, 해적질, 강제노동과 노예노동을 통해 식민지로부터 자본을 축적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의 여성과 본국의 여성에게 서로 다른 가치체계가 적용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이 소유한 여성은 한 사람과만 성관계를 갖는 후계자의 출산자로 길들였다. 집 밖에서 일하지 못하게 했고, 재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반면 노예 여성에게는 결혼이나 출산이 허용되지 않았다. 임신-출산-육아의 노동공백기를 고려하면 노예를 수입해 오는 것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1807년 노예 무역이 폐지되면서 식민지 정부는 노예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노예제 기간 동안 반모성적 태도를 내면화한 노예 여성은 19세기 중엽까지 출산 파업을 지속했다. 출산을 하면 자녀가 노예가 되어 평생 노예주의 부를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용납되기도 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떠오른다)










식민지 초기 서아프리카의 상류 여성들은 숙녀로 대접받았고 유럽인과 결혼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영국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여성을 창녀로 만들었다. 아프리카 여성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면서, 조국에 있는 백인 여성은 ‘숙녀’의 지위로 상승시켰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는 자메이카에서 귀족으로 살고 있던 여성이 영국에 가서 다락방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지역에 따라 여성에게 다른 기준이 적용된 이 두 과정은 역사적으로 단순히 평행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에서 필요에 의한 인과관계로 깊숙히 얽혀 있다.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두 집단의 여성이 다르게 살게 되었다는 것 외에 딱히 얽혀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내가 잘못 이해한건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부르주아 이상 계급 여성의 향신료, 화장품, 비단 등의 사치품에 대한 욕구는 자본주의의 발전(신항로의 개척 등) 에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가정을 새로운 기계와 물품의 소비 시장으로 삼아 가사노동과 소비의 주체로 가정주부를 부각시켰다.


부르주아는 가족을 사적 영역으로 선언하고 여성들을 공공 영역에서 철수시켰다. 그리고 여성의 성적 경제적 독립성의 증발에 대한 보상으로 ‘낭만적 사랑’ 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반면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는 재생산의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고 이 여성들은 결혼 제도에 매여있지 않았다. 국가는 입법과 경찰과 교회의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재생산에 개입했다. 결혼 전 혹은 결혼 외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했고, 낙태를 불법화했다.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에 호소했다.



엥겔스와 베벨의 동지이자 사회주의 여성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클라라 제트킨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처럼 남성에 맞서서 싸울 수 없으며, 남성과 함께 자본과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리아 미즈는 이러한 제트킨의 주장을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 보는 부르주아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사회적 생산으로 진입하는 것이 여성해방 혹은 독립의 전제조건이라면,

남성을 부양자이자 가장으로, 여성을 의존적인 가정주부이자 어머니로 여기고,

핵가족이 ‘진보적’이라는 생각을 고수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여성 운동을 부르주아 여성의 전유물로 보고,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여성 운동으로부터 유리시키는 주장이기도 하다. 여성 운동이 여러 상황에 있는 여성의 다양한 주장을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성 운동이 계급 운동 혹은 사회 운동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의 한 진보 인사가 진보진영 내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벌어진 논란에 대해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 고 했던 발언과 비슷한,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굳이 ‘조개’를 줍는다고 한 것도 기분 나쁘다. 의도된 표현일까?))



또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남성과 함께 자본가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면,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 차이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남성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가정화하면서


1) 쓸만한 임금노동에 대해 독점적 권한을 주장할 수 있고

2) 가정 내에서 모든 소득에 대해 통제권을 주장할 수 있다.



여성의 노동은 공기나 물처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처럼 여겨져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여성은 자본가 (부르주아 보다도 더 상위계급) 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가정주부화는 가정에 여성을 묶어둠으로써 여성의 단체협상력도 떨어지게 만들었다. 남성 ‘부양자’가 부양하는 핵가족과 여성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내부 식민지’인 것이다.



엥겔스는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을 모든 계급에게 확대’하는 것을 통해 계급의 양극화된 관계를 변화시키고 싶어하였으나,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는 자연이나 타인에 대한 착취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퇴보적 진보의 관계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착취, 남성의 자연에 대한 착취, 식민주의자의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를 완전히 폐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경제 체제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논제)


부르주아 남성 - 부르주아 여성 / 프롤레타리아 남성 - 프롤레타리아 여성 간의 위계는 분명하다고 치자.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상대적 지위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분명하지 않지만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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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1-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롤레타리아 남성이 부르주아 여성을 질투해서 조개로 폄하하는 상황? 부르주아 남성은 프롤레타리아 남성 표를 얻어야 해서 이대남 워째하며 부둥부둥 하고요. 그나저나 영원히 까이는 유시민 ㅋㅋㅋ 남자는 입조심 항상 해야죠 ㅋㅋ
수하님 넓고 깊게 읽으시네요. 저도 다시 읽는 마음으로 쭉 읽어보았습니다 💕

건수하 2021-11-25 11:5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사실 유시민 좋아하는데요 그 말은 맘에 안 들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남성이 부르주아 여성보다 하위에 있기 때문에 사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써놓은 글이 있어서 한 장 한 장 올리기는 하는데 (이 책까지만 올릴거예요), 고기 한 부위씩 올리는 거 같아 좀 그렇지만 전체를 통합해 짧게 줄이기가 힘들다능….

공쟝쟝님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독서괭 2021-11-2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의 임신에 대해서도 말하면 안 됐다고요?? 헐..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빌러비드>는 너무 참혹하죠 ㅜㅜ
조개 줍줍 ㅋㅋ 저 그 사람 꽤 좋아했었는데 정희진씨 책에서 그 내용 읽고 알게 된 후로 호감도가 떨어졌어요. 방송도 안 듣고 책도 안 사게 되네요ㅠ

건수하 2021-11-26 08:59   좋아요 1 | URL
빅토리아 시대에 대해 잘 모르고 시간여행을 가서 고생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고양이 얘기도 그 중 하나랍니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가 진짜 수다스러운데, 그만큼 또 재미있어요. 고양이 얘기 많이 나와서 독서괭님 좋아하실거예요~

유시민에 대해 저는 그래도 아직 좋은 감정이 남아있지만, 요즘 안보고 있긴 해요 ㅎㅎ
 

이 책의 저자 마리아 미즈의 관심사는 페미니즘, 환경과 세계 개발문제에 대해 방법론과 경제학 부분에서 대안적 접근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1998년에 쓴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낸 생산이

자본주의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23쪽


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 전에 읽은 <캘리번과 마녀>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다.


이번주에는 “2장, 성별노동분업의 사회적 기원”을 읽었다.



요약)


다양한 형태의 불균형하고 서열이 있는 노동분업은 오늘날 전 세계가 자본축적의 엄명 아래 불평등한 하나의 노동분업시스템으로 구조화된 단계까지 와 있다. 이 불평등한 노동분업은 약탈적인 사냥꾼/전사의 사회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다. 자신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무기를 이용해 다른 생산자의 생산력과 생산품을 전유하고 종속시키는 관계는 남성과 여성, 남성과 자연 사이에서 수립되었고, 자본주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가부장적 생산양식의 모델로 남았다. (171-172쪽)



맑스와 엥겔스가 '인류의 생산 혹은 출산'과 관련된 것을 '자연적'인 과정으로, 생산수단과 노동의 발전과 관련된 것을 '역사적' 과정으로 구분한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자연'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착취적 관계들을 타고난 것 혹은 사회적 변화의 영역을 벗어난 것, 즉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며,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여성에게 자궁과 가슴이 있다는 사실과 연결지어 생리활동의 연장선으로, 노동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 개념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생산적 노동,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남성의 일은 진실로 인간적인 것(생각하고, 합리적이며, 계획되고, 생산적인 것 등)으로 여겨지는 반면에, 여성의 일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 과정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자연적 물질을 전유 (exclusively possess)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자연을 전유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여성은 몸 전체를 통해 생산성을 경험한다. 아이를 생산하고, 아이의 첫 번째 음식도 생산한다. 어린 아이들과 자신의 생산물을 나눠야 하므로 여성의 생산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이다. 어머니-자녀 집단은 최초의 사회적 단위이고, 그래서 이것은 인간적인, 즉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다. 어머니는 자신과 자녀를 위해 채집을 하였고 나아가 농부가 되었다. 여성은 처음으로 자연과 진정한 생산적 관계를 발전시켰다.


이에 비해 남성은 몸을 통해 생산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외부적 수단, 즉 도구의 중재가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남성 생산성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첫번째 신체기관은 남근이다. 남근을 통한 남성의 생산에 여성은 물리적 조건으로 전제된다. 남성은 주로 자신을 위해 채집과 산발적인 사냥을 하였고, 사냥의 도구 즉 무기를 발전시켰다.



여성 생산성은 집단의 구성원(남성 포함)에게 양식을 제공하면서 생존을 보장했다. 사냥은 ‘위험도가 높은 경제 활동’ 이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사냥꾼’ 보다 ‘여성 채집자’ 덕분이다. 그러나 남성-사냥꾼 모델을 인류 진화의 패러다임으로 상정하는 것은 인간사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었고 매체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초기 호모 속의 출현을 도구의 사용과 관련하여 정의하는 것, 문명(계급이 있고 가부장적 사회가 전제되는)의 발달과 함께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이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발제자 의견).


남성이 사냥에 이용한 도구는 생산이 아닌 파괴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동료 인간을 강제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지배력을 갖게 된다. 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관계는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며 착취적이다. 이런 지배관계는 남성이 세운 모든 생산관계의 일부가 되어 왔고, 이것이 그들 생산성의 주된 패러다임이다. 첫 번째 형태의 사유재산은 가축이나 식량이 아니라 납치된 여성 노예로 추정된다.

목축민은 사육 과정에서 황소 한 마리가 여러 암소를 임신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경제적 논리는 여성에도 적용되었다. 여성은 움직이는 재산의 일부, 가축이 되었다. 사냥꾼과 달리, 목축유목민에게 여성은 식량의 채집자나 생산자로서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자녀 특히 아들을 출산하는 의미에서 필요했다. 여성의 생산성은 이제 '출산'으로 축소되었고, 이는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조정되었다.

농업 사회에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착취적 관계가 존재한다. 농사를 주로 짓는 이는 여성이었으며 전사-사냥꾼은 활과 화살을 통해 식량과 여성 등 모든 다른 생산물을 취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원정을 통해 다른 마을의 여성이나 어린이를 납치하여 개인 노예로 전유하거나 팔아넘겼다. 여성은 농업노동자이기도 했고, 더 많은 노예도 생산할 수 있었으므로 납치된 여성은 사유재산 축적의 직접적인 원천이 되었다.



무기 독점에 기초한 남성의 약탈적인 생산 양식은 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른 생산경제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공격할 수 있을 때에만 '생산적'이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은 무기를 독점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약탈적 생산양식 혹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전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유양식은 인간 사이의 모든 착취관계의 역사에서 패러다임이 되었다: 자율적인 인간 생산자를 타인을 위한 생산의 조건으로 변형시키는 것, 혹은 그들을 타인을 위한 '자연 자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가부장적이었던 사회 (유대인, 인도-유럽인, 아랍인, 중국인 - 이 지역들은 모두 초기 문명의 발상지이다) 에서 거대 종교들과 더불어 발전했다.

모든 가부장적 문명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계속 강압적이고 착취적이었다.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이 일단 폭력수단을 통해 수립되면,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국가와 같은 제도 그리고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 등을 통해 유지되었다. 특히 가부장적 종교, 법, 의학 등은 여성을 자연의 일부로 규정하여 남성이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 봉건제 시대는 새로운 토지에 대한 약탈적 취득과 무장한 봉건계급 (기사)에 의한 대대적인 노략질과 강탈에 기초했다. 토지와 함께 생산의 수단이자 조건인 농민 역시 봉건영주에게 특수한 생산관계 내에서 전유되고 구속되었다. 봉건제에서는 농민을 토지의 일부로 보았기에 남성 농민 역시 여성과 비슷한 위상에 있었다 (이것이 중세 시대 여성의 인권이 이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 않았던 이유이다).


자본주의 역시 경제적 강제의 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었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산물과 생산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취득이 초기 자본주의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었다. 자연은 원료의 매장지였고, 아프리카 여성은 인간 에너지의 결코 마르지 않는 공급처였다. 자본가가 노동자와 임금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노동 통제를 수립하고 경제적인 강제를 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양보가 필요했다. 유럽 중심부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인 양보는 주변부, 즉 동유럽과 식민지의 노동자 남성과 여성을 '자연'으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원을 약탈함으로써), 정치적인 양보는 가정에서 지배계급의 사회적 패러다임인 사냥꾼/전사 모델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함으로써 주어졌다. 노동자의 '식민지' 혹은 '자연'은 자기 계급의 여성이었다. 결혼과 가족법에 따라 규정된 범위 내에서 그는 강압수단과 직접적인 폭력을 독점했다.

식민지와 노동계급 여성 외에, 부르주아 여성 또한 자연으로, 자본가 계급의 후계자를 낳고 키우는 이로 규정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이 길들여지고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는 가정주부로 변모하는 것은 자본주의 아래 성별분업의 모델이 되었다. 이는 모든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이 재생산되는 영역인 가정과 가족은 '자연, 사적이고 길들여진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공장은 공적이고 사회적('인간적')인 생산의 공간이 되었다.




여성은 자신의 생산성, 섹슈얼리티, 생식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자발적으로 남편과 유력자(교회, 국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마녀사냥 이전의 유럽 여성은 자신들의 몸과 피임법에 대해 오늘날(책이 처음 쓰여진 1980년대)의 우리보다 훨씬 나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수세기에 걸쳐 수백만의 여성이 성적 생산적 자율성에 대한 잔혹한 공격(마녀 사냥)을 당한 끝에 유럽 여성은 의존적이고 길들여진 가정주부가 되었다. 마녀사냥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행위를 통제하는 직접적인 훈련 효과 외에, 여성의 생산성보다 남성의 생산성이 우월함을 수립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마녀사냥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적 자연의 사악함-성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르며, 언제나 정숙한 남성을 유혹하려고 함 - 을 끊임없이 강조하여, 딸과 아내의 정숙을 남성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한 가정주부이거나 자본가를 위한 임금노동자로, 혹은 둘 다로 훈련되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에게 사용된 실제적 폭력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내면화했다. 그들은 이를 자진해서 한 것으로, (낭만적) 사랑으로 규정했다.




Q. 여성 몸의 생산성을 동물의 번식과 동일시하는 관점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노동분업의 결과이다. 여성 몸의 생산성과 동물의 번식은 본질적으로 다른가? 생산물을 나누고 어머니-자녀의 관계를 맺는 것은 일부 동물에서도 나타나는 행동 양식이다. '자연'을 지배 대상 혹은 열등한 것 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인간의 경우와 구분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 다른 결과 (성별 분업 등)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다른건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건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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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기 시작했다.

서문과 1장만 읽었지만, 1986년에 처음 나온 책이라는 걸 믿기 어렵다.. 믿고싶지 않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또 내 생활에서 생긴 고민이 가지를 뻗어 만들어지던 생각이 과거 페미니즘의 첫번째와 두번째 wave에서 이미 시도하였고 오류를 발견한 생각들이라는 사실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면서, 내가 그동안 갖고있던 물음에 대한 답을 (무려 15년 전에 제시된 답을) 찾을 수 있겠구나, 어쨌든 길을 잘못 찾지는 않았구나 하고 안도한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1장은 그 동안 (1986년까지)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을 요약하고 있다.


여성해방운동은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직접 민중에게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민감한 이슈이다.


우리 사회들 속에 있는 남녀 관계의 진정한 본질을 스스로 인식해가는 것은,

돈벌이와 권력놀음과 욕망이 난무하는 냉정하고 잔혹한 세계에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지대로 남아있는 마지막 섬을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47쪽


그리고 이 이슈를 자신의 의식 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남성과 여성을 모두 속박하고 있는 착취와 억압의 체제에서 자신이 피해자일 뿐 아니라 공범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관계로 가고 싶다면 이제껏 해온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만 한다.



얼마전 지인을 방문했다가 책상에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물었다. 그 분이 쓰는 논문 주제에 페미니즘과 관계된 내용이 있는지. 그 분은 조금 조심스럽게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장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내가 요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가부장제 내부의 여성 (기혼자 여성) 은 페미니즘의 입장을 취하는데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본인의 의견을 말했다. 그 분은 나를 가부장제로부터 취하고 싶은 것 (남편이 벌어오는 돈 혹은 남편의 소유물)은 취하면서 뭔가를 더 원하는 욕심많은 여성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 분과 나의 인간관계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도 이 시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분은 혼인 관계에 있지 않지만 가부장제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며칠간 나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정의 일원이면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건가? 내부자는 조직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면 안되나 또는 그것을 논하는데 한계가 있나? (있겠지) 한계가 있는 채로 이야기하면 안되나?



마리아 미즈가 제시하는 답은 위에 굵은 글씨로 나와있네... 이제껏 해온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 한다고. 그동안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현 체제 안에서 뭔가를 조금씩 바꾸는 것 - 남성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임금 노동에 참여하거나 가사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는 것, 일자리와 관련하여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의회 등에 페미니스트 여성을 많이 진출시켜 정책 결정이나 법 입안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여성 혹은 육아와 관계된 복지를 늘리는 것, .... - 은 소용이 없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다 뒤엎어야 한다고.



여성이 억압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의 가사 노동 (남성 노동자를 서포트하는) 혹은 값싼 노동력을 전제하여 굴러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생식능력을 통제한다는, <캘리번과 마녀>에 나와서 약간 친숙해진 이야기가 나온다.



1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 (자유주의) 이나 임금 노동 (사회주의), 부르주아 남성이 독점하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 것 -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갖는 것 - 이 목표였고 그것을 국가에게 요구했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의 몸' 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적 영역으로 국가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해방에 있어 국가에게 요구하기를 멈추고 현 체제에 회의를 품게 된다. 대의정치가 아니라 직접적인 정치활동이나 캠페인을 통해 의견을 피력했다.



1세대 페미니즘 그리고 정통 좌파는 재생산 노동 / 공공의 생산노동 혹은 임금 노동 의 자본주의적 구분을 수용한다. 그리고 여성도 임금 노동에 참여해야 여성이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기에 사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가사노동을 재평가하고 재규정하기 시작했다.



1972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이탈리아 파도바), 셀마 제임스 (런던), 실비아 페데리치 (뉴욕), 브리지트 갈띠에 (파리)는 <국제 페미니스트 연합>을 결성하였고 이후 <가사노동 임금 조직 및 위원회>라는 캠페인을 만들었다. 달라 코스타는 가정주부의 노동이 남성 임금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기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라고 이야기한다. 핵가족은 '노동력' 이라는 상품이 생산되는 공장인 것이고, 가정주부의 노동은 자본축적 과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이들의 주장은 가사노동이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던 고전적 맑스주의, 여성이 해방을 원한다면 임금 노동자로서 '사회적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좌파의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후 폰 벨호프는 가사노동과 식민지 (엄밀한 의미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이외에도 저개발국가, 제3세계, 남부세계 등으로 표현되는 국가들을 포함한다) 에서의 자급적 노동이 '특권적인' 남성 임금노동관계의 전제 조건이라고 밝혔다. 로자 룩셈부르크 (1923)이 이야기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비자본주의적 환경과 조건'이 농민과 장인, 식민지였다면 '가정'이 더 추가된 것이다. 노동력과 자원을 확충할, 그리고 생산한 물건을 팔 시장으로서의 대상으로.



결국 세계적 자본주의-가부장제 체제하에서 과개발국가와 저개발국가의 여성 문제는 연결이 되어 있고, 한 국가 내에서 혹은 한 가정 안에서 약간의 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렵다, 결국은 전체의 큰 그림을 살피고,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페미니즘은 남녀 관계 이외에도 인간-자연의 관계, 중심부-식민지의 관계 등 모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관계들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고. 저자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렇게 정의한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남성) 권력 엘리트를 다른 (여성) 권력 엘리트로 대체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엘리트도 다른 이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며 살아가지 않는,

서열이 없고, 중앙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운동이다.


108쪽



(페미니스트 전반이 동의하는 생각은 아닐 것 같고 저자의 생각, 저자의 바램인 것 같지만...)




저런 사회가 실현 가능하기만 하다면 나름 바람직한 사회가 될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인간의 이기심,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각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모두가 문제의식을 크게 느껴야 그걸 포기할텐데, 가진 자들은 가진 걸 포기 못하고 안 가진 자들은 가지고 싶어하니...그래서 25년 지난 지금도 별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닌지.



결국 마리아 미즈가 어떻게 에코페미니즘으로 가게 되었는지 이해는 된다. 90년대말-2000년대 초에 운동권의 영향이 축소되면서 대학가에서 환경 운동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 환경 운동이 얼마나 반향을 일으켰나?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는, 아니 이미 심각한 지금 이 상황에도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각국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결국은 이런 생각이 실용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꾸준히 알려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더더 나빠지는 것은 막는게 좋겠지만. <에코페미니즘> 역시 비현실적일 것 같지만 읽어보고 싶다.



그래서 가부장제에 속해있는 나같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의 7장 - 새로운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전망에 대하여 를 얼른 읽고 싶다. 2장-3장은 <캘리번과 마녀>와 내용이 좀 중복될 것 같은데, <캘리번과 마녀>처럼 재미있지는 않겠지만 논리가 잘 정리되어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캘리번과 마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보고 일반론을 보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순서를 이렇게 정했는데, 읽어보면 나의 결정이 어땠는지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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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1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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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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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0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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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1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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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블랫의 <달, 해, 그리고 마녀들>과 파리네토의 <마녀와 권력>에 의하면



신세계 (아메리카)에서 마녀사냥은 공포를 풀어넣고 집단적인 저항을 파괴하며,

공동체 전체를 침묵시키고 구성원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들기 위해

행정당국이 사용했던 고의적인 전략


312쪽


이었다. 마녀사냥은 토지 혹은 신체, 사회적 관계를 박탈한 일종의 인클로저였다고 할 수 있다.

마녀사냥이 피식민자들의 저항을 말살시키지 못했고, 주로 여성의 투쟁 덕분에 땅, 지역종교,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유대는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후 5백여년 간 반식민 저항과 반자본주의 저항의 근원이 되었다고?



5백여년이라고 하면 1500년대에 시작해서 지금도? 지금도 그들의 땅과 지역종교,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유대가 남아있나?

그러고보면 남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그들의 지배층 그리고 지배층의 종교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남아메리카의 큰 나라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 의 대통령은 백인이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들의 땅과 종교, 유대를 지켜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식민지에 도착한 백인들은 나체상태, 동성애, 식인, 일부다처제 등의 풍습을 이유로 들어 이들을 인간이 아닌 야만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가한 각종 폭력을 정당화했다. 하다 못해 이들이 '별 가치 없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고 공유하는' 것 조차 야만성의 징표로 강조했다고 한다 (314쪽, Hulme, 1994 인용). 자신들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는 사실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식민화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되었는지는 확인하기가 힘들지만 애초에 관용을 보일 생각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금과 은, 그리고 땅을 빼앗는데 있어 '악마적인 존재'로 원주민들을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는 유용했다. 이미 남아메리카에 존재하던 제국주의 국가 아스텍과 잉카의 영향도 받았다.



1550년대 이후 은광이나 수은광의 채굴, 그리고 공작소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원주민의 노동력 착취는 더욱 강화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의 하나로 1560년대 원주민들의 천년왕국 운동인 타키 온코이 운동이 촉발되었다. 이 운동은 유럽인들과의 협력을 비판하고 식민화 종식을 위해 범안데스 지역의 지방신 (후아까스) 동맹을 형성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기독교와 스페인에서 들어온 이름, 식품, 의복을 거부할 것을 독려했다. 이 운동을 통해 안데스인들은 처음으로 '원주민'으로서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 운동이 널리 확산되어 남으로는 리마, 동으로는 쿠츠코, 안데스 고원지역을 넘어 오늘날의 볼리비아까지 번져갔다. (322쪽) 스페인 정부는 지역족장들이 공급해야 하는 노동력 할당량을 늘렸고 불응할 경우 체포와 처벌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농민들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정된 마을로 이동시키는 재정착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재정착 프로그램은 후아까스의 파괴와 선조들의 종교에 대한 박해를 통해 지역성지를 악마화 시킴으로써 힘을 얻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예전의 경작지로 돌아가고 원래의 신을 숭배하자 1619-1660년 사이에 지방신에 대한 공격이 절정에 달하였고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죽음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잠재적인 반란자들이 공포에 마비되어

공개적으로 구타당하고 모욕당한 사람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시련에 맞서려하기보다는

무엇이든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327쪽



남아메리카의 종교에 중요한 여성신들이 많이 있듯, 콜럼버스 이전 사회에서 여성들은 강력한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이 여성 혐오적 신념을 주입하여 남성들에게 우호적인 방식으로 경제 및 정치권력을 재조직하고 일부다처제를 불법화함으로써 여성들의 지위는 하락했다. 스페인인들은 여성들을 마녀로 박해함으로써 원주민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영역을 재규정하는 동시에 토속종교 수행자들과 반식민지 반란의 선동자들을 한꺼번에 노렸다. 그러나 안데스의 마녀들은 공동체에서 버림받지 않았고, 여사제들은 공동체와 문화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파리네토의 주장에 의하면 유럽의 마녀사냥이 16세기 후반 대중적으로 행해졌던 것은 아메리카의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식인풍습, 아이들을 악마에게 봉헌하는 것, 성수와 마약에 대한 언급, 동성애를 악마주의와 동일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신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럽과 신세계의 지배계급은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자본주의가 전지구적으로 발달하면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 역시 유사하게 진행되었을 수 있다. 

(아시아의 경우에도 서구에 문호를 개방하며 기독교가 전파되었는데, 이후 많은 지역종교와 관습들이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힘을 잃었을 것 같다. 이 경우에도 여성의 지위 하락이 동반되었는지 궁금하다)



마녀사냥은 아프리카에서도 위세를 떨쳤고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 특히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처럼 노예무역에 한때 연루되었던 나라에서 분열의 핵심수단으로 지속되고 있다 (341쪽)1980년대와 90년대 케냐, 나이지리아, 카메룬에서도 마녀사냥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세계 곳곳에서 마녀사냥이 재등장했던 것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난 새로운 '시초축적' 과정과 관계가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IMF가 관여한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 시기 많은 남성 외에도 많은 여성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후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와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이것이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밀러가 이미 세일럼의 재판에 대한 독해 속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마녀박해에서 형이상학적인 요소들만 벗겨내고 나면

이것이 우리에게 아주 근접한 현상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344쪽






1. 페데리치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의 공동체, 그를 통한 유대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현대 사회에서 회복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것은 그가 참여했던 북이탈리아에서 있었던 공동체 운동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과거 사회에 있었던 공동체의 상실, 성 역할의 분담, 분업을 통한 효율 지향적 사회.. 이런 것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까? 모든 공동체는 바람직한 연대로 이루어져있으며 공동체적 삶의 단점은 없을까? 공동체의 연대는 생계-경제 문제를 공유해야만 진정해질 수 있을까? 또 여성이 중심이 되어야만 가능할까?



2. 마지막 페데리치의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21세기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과 유사한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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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1-10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 책 사놓고 못 읽고 있는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인 것 같지만 호기심도 막 생기네요. 예전에 마녀사냥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는 이것이 여성혐오와 닿아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던 것 같아요. 하긴 그때는 여성혐오라는 언어 자체도 없었던 듯.. 현대에도 마녀사냥 유사한 것이 계속된다는 점, 또 그것이 여성연대를 약화시킨다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네요.
그나저나 수하님 서재에 처음 와서 옆에 태그를 봤는데, 코니 윌리스 시간여행시리즈가 딱 보여서 괜히 반가웠습니다. 저는 둠스데이북이랑 화재감시원 밖에 못 봤지만 너무 재밌어서 나머지 다 읽어야겠다고 결심..만.. 한 상태로 못 읽었어요..!

건수하 2021-11-10 12:09   좋아요 0 | URL
<캘리번과 마녀> 에 마르크스랑 푸코 얘기가 나와서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내가 이걸 다 이해하겠다 라고 생각 안하고 그런가보다- 하고 읽으면 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ㅎㅎ


코니 윌리스 시간여행 시리즈 좋아하신다니 저도 반가워요!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도 재밌구요 저는 <블랙아웃> <올클리어>가 진짜 재미있었어요. 이건 요즘 M사 (구독서비스 위주의) 에 다 있어요 ㅎㅎ 읽어보셔요~

독서괭 2021-11-10 16:36   좋아요 1 | URL
아니.. 은근히 이미 읽은 둠즈데이북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하시길 기대했는데(그럼 다른 작품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생길테니), 블랙아웃과 올클리어가 그렇게 재미있단 말입니까…😱
구독서비스는 y사만 하고 있는데, 흠… 코니윌리스 너무 재밌는데 책이 다 두꺼워서요.. 흠… 악 고민😭

건수하 2021-11-10 17:17   좋아요 0 | URL
저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도 <둠즈데이북> 보다 재밌었고요 블랙아웃-올클리어는 그것보다도 더..!

한달 무료 체험으로 보셔도 되고 아니면 종이책으로… ^^
 

그러고보니 캘리번과 마녀 3장까지만 올리고 그 다음에 까먹었다. 하하 ^^;;; 









유럽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대체로 여성농민들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주의운동 이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주의 운동이 등장한 후 여성주의자들 스스로 자신을 마녀와 동일시하면서 마녀가 여성 저항의 상징으로 채택되었고,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대량살상과 극악한 고문에 시달린 것은 권력구조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2세기에 걸쳐 진행된 마녀사냥은 유럽 여성사의 전환점이라는 것도.




이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진행된 사회적 쇠락의 과정에서 여성들이 감내한 '원죄'와도 같았고,

지금까지도 제도적 관습과 남녀관계를 특징짓는 여성혐오증을 이해하려면

계속 돌이켜볼 수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239쪽


그러고보면 여성혐오는 뿌리가 깊었구나.



마녀사냥은 신세계의 식민화 및 원주민 말살,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노예무역의 출현, 부랑자와 거지들에 대한 '피의 법률' 제정과 동시에 일어났고, 봉건제가 종식된 후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전 절정을 이루었다. (239쪽) 여성에 대한 엄청난 테러전은 상류층과 국가의 공습에 맞선 유럽 농민들의 저항을 약화시켰다. (240쪽)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잔 다르크의 예 때문에 약간 불신을 갖고 있기는 했다. 적군의 영웅을 마녀로 몰아서 죽이는 영국과 그걸 방관한 프랑스. 마녀사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예이기 때문이다. 잔다르크가 사망한 해가 1431년, 15세기 중엽이다. 당시 확립된 사술에 대한 원칙에서는 마법을 일종의 이단으로 선언하고 신과 자연, 그리고 국가에 대한 최대의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Monter의 말, 241쪽)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마녀재판을 받는 여성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마녀박해의 주도권이 종교재판에서 민간법정으로 넘어갔다. (Monter의 말, 242쪽) 마녀사냥은 1580-1630년 사이 절정에 달했는데, 이 시기는 봉건적 관계가 중상주의적 자본주의의 전형에 가까운 경제 및 정치 제도들로 이미 대체되기 시작한 때였다. 이 시기에는 거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서로 전쟁 중이던 국가들 내에서 화형대가 몇 배씩 늘어나고 국가가 마녀의 존재를 규탄하며 박해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242쪽). 홉스는 마법의 존재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사회적 통제수단으로서 박해를 인정했다 (245-246쪽).



가톨릭과 청교도 국가가 종교적으로는 대립했지만 마녀를 박해할 때만큼은 뜻을 같이 했다.



마녀사냥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분란 이후 유럽 통합의 첫 사례이자,

새로운 유럽 국민국가의 정치에서 최초의 통합의 장이었다.


247쪽


마녀들의 고백은 심문관들이 고문을 통해 얻어낸 것이고 (신뢰하기 힘들다), 마녀 사냥의 대상은 대부분 극빈층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재산이 목적이 되지는 않았다. 마녀사냥이 일어난 역사적 맥락, 피소자들의 젠더와 계급, 박해의 영향 등을 살폈을 때 유럽의 마녀사냥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여성들의 저항에 대한,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에 대한 통제력과 치유능력을 통해 여성들이 획득한 권력을 공격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어야만 한다. (248-249쪽)



이 지점의 진행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급작스러우나... 당시의 기록이 잘 남아있지 않을 것이므로 정황상의 증거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모든 과정이 설계된 채로 '의도적'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녀사냥 이후 여성의 몸과 노동, 이들의 성적인 능력과 재생산능력은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경제적 자원으로 변형되었다. (249-250쪽) 또 마녀사냥의 대상은 과거에는 용납되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공포와 범죄화를 통해 공동체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관행과 집단이 되었다. 마법은 공포를 극대화하기는 하지만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마법에 대한 비난은 오늘날의 '테러리즘'에 대한 비난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공포를 극대화하기는 하지만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는 점에서 요즘의 가짜뉴스가 생각났다)


이단은 특정 성별과 관계가 없었으나 사술은 여성의 범죄로 여겨졌다. 이 시기 가장 많은 여성이 처벌받은 분야는 영아살해와 마법이었다. 피임, 낙태, 마법이 같은 범주로 묶여 악마화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럽의 국가관료 및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재생산 및 인구규모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난 것과 관계가 있었다. 16-17세기는 중상주의의 전성기였고 이들은 노동력의 규모와 국가의 부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녀사냥은 출산통제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신체, 특히 자궁을 인구증가와 노동력의 생산 및 축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시도였다.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했다면,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마녀사냥은 특히 하층계급의 여성에게 행해졌고 이는 같은 계급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켜 지배체제에는 순종하는 한편 여성들간의 연대는 희미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가십이라는 단어는 여성친구라는 뜻이었으나 이 시기 험담, 소문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여성은 심신이 약하고 생물학적으로 사악해지기 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를 정당화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토지를 빼앗겨 빈곤해지고 범죄자로 몰린 하층계급의 남성에게 마녀사냥은 좌절을 분출할 수 있는 국지적인 배출구가 되었다. 결국 마녀사냥은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지배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남성을 유혹하고 취약한 존재로 만들며, 에로틱한 열정을 촉발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이 시기부터 만들어져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성적인 열정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데카르트 철학이 이성의 근원이라고 칭송했던 그 소중한 머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은 남성의 책임감과 노동 및 자기통제 능력을 뒤엎어 버리기 때문에 공공의 위험이자 사회적 질서에 대한 위협이었다. 16-17세기 성적 탄압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된다. 성에 대해 적극적이거나 문란한 여성은 ‘여성 변태’로 비난받았고 이는 에로틱한 얼굴을 가진 여성에서 노동하는 얼굴을 가진 여성으로 여성을 탈바꿈, 즉 여성이 가정 내에서의 노동과 출산, 재생산 노동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푸코는 가톨릭 목회와 고해성사에 의해 강제적으로 사람들이 성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모양인데 (<성의 역사>에서), 그보다는 마녀사냥 과정에서 고문 등에 의해 발화되었다고 한다. 고해성사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물론 그 때와 지금 종교에 대한 진지함은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종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또한 마녀사냥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우상숭배와 더불어 원주민들을 식민화하고 노예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근대과학의 발달과 과학적 세계관이 마녀사냥의 성쇠와 시기를 같이 하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녀사냥이 종식된 것은 지배계층이 목적을 달성하고 권력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과학수단과 합리주의가 마녀사냥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마녀박해를 지지했던 지적 형틀이 철학적 합리주의에서 직접적으로 추출되었다기보다 완수해야만 했던 과업의 압력을 받으며 진화했던 과도기적인 현상이 일종의 브리콜라주처럼 작용하여 마녀박해를 지지하는 지적 토대가 되었다. 결국 합리주의와 기계론은 도구였을 뿐, 중요한 것은 유럽 엘리트들 (부르주아들)의 필요였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시기의 지배층이 치밀한 계획하에 여성을 통제할 목적으로 마녀사냥을 계획했다고 상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런 의문에 잠깐이나마 아니라는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다. 그러나 과거의 일이 치밀한 계획하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런 일이 언제든 (물론 치밀한 계획하에 일어났어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쉽게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 같아 약간 다르게 괴롭다. 요즘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여성 혐오 발언, 얼마전 한 운동 선수와 관련하여 일어났던 논란 등은 가끔 나로 하여금 <시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시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쓴 것이라면 마녀사냥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까 말이다. 물론 그 둘이 무관하지 않고 상당히 유사하기도 하다.


결국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항상 주의깊게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남성'이 여성의 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조장하거나 그 결과에 기뻐하는 것은 현 체제 하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글 두개를 붙였는데 앞뒤의 형식이 달라 대대적으로 고쳐볼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한다. <캘리번과 마녀>를 읽은 기록을 모아두는 것에 의의를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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