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싫어하는 과일 시리즈. (사실 그저께 밤에 한번 썼었는데 완성 직전에 날라가 버려서 의욕상실)
남들은 "과일은 다 좋아요. 매일 과일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든데 난 왜 이렇게 과일마저 싫은 게 많을까.
일단 수박이 싫다. 무더운 한여름을 쨍하게 차가운 수박도 없이 어떻게 버티느냐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수박을 보면 달고 빨간 과육보다는 그 밀려오는 풋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색깔도 시커먼 빛이 도는 초록색인 게 꼭 덩치 큰 호박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렸을 때는 수박을 야채 취급하기도 했고, 남들이 맛나게 수박 먹을 때 혼자 참외만 아작내고 있었다. (사실 참외도 가끔 오이 맛이 나는데 왜 좋아하나 몰라)
요새는 좀 먹지만 먹는 방법이 남들과 달라, 남들은 커다랗게 한 조각 잘라 우적우적 베어 먹을 때 나는 과육을 얇게 칼로 저며 종잇장같이 만들어서는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먹는다. 그러면 그 얇은 과육이 혀에 착 달라붙으면서 달콤한 즙이 목구멍으로 약간 넘어가고, 이빨로 슬쩍 베어물면 살캉 씹히는 게 먹을 만하다. 문제는 이렇게 먹는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더러운 짓' 한다면서 먹던 걸 뺏기기 십상이라는 거.
딸기도 싫다. 그 잘디잔 씨들이 씹히는 느낌이라니.. -_- 가끔 이빨 사이에 끼기도 하는 것 같아 더 싫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 근교 수원에는 광활한 딸기밭이 많았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가족이 딸기 먹으러 수원 가는 게 연례행사였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딸기 무늬 원피스 차려 입고 잘 익은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들고 새침 떠는 내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건 카메라를 위한 연출된 모습일 뿐, 렌즈가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딸기는 옆에 앉아 있던 동생 입으로 들어갔을 거다.
그나마 엄마가 가당연유와 딸기를 함께 주면 가당연유 먹는 맛에 딸기를 입에 대기도 했는데.. 진실은 딸기 하나를 가지고 연유를 듬뿍 묻혀 연유만 쪽쪽 빨아먹고, 다시 그 침 잔뜩 묻은;; 딸기를 연유에 담갔다가 또 빨아먹고.. 그런 식으로 딸기 하나 가지고 연유 한 접시를 해치운 거다. (지금 내 살의 1/18 정도는 그때의 연유에서 비롯된 듯하다)
복숭아는 지금도 거의 못 먹는다. 일단 그 털 있는 껍질에 약간 알레르기가 있는 데다가 과육의 설겅한 느낌도 싫다. 그럼 천도복숭아를 먹으라고들 하지만 천도복숭아는 너무 시잖아. -_- 복숭아 향은 참 좋아해서 복숭아맛 사탕도 잘 먹고 복숭아향 향수도 뿌리지만 과일 먹는 건 싫다. 단, 통조림 복숭아는 먹는다. 우리 나라에서 만든 통조림은 과육이 역시 너무 물컹거려 싫지만, 스페인산 통조림은 신기할 정도로 과육이 쫀득쫀득하다. (혹시 무슨 약품 처리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옛날에 그 통조림이 처음 수입될 때는 가격이 무쟈게 쌌는데 요새는 2~3배 이상 올라 엄마가 잘 안 사다놔서 슬프다.
하지만 다행히 모든 과일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니어서 좋아하는 과일도 있으니, 우선 포도는 목숨 걸고 좋아한다. 거봉도 좋고 씨없는 포도, 머루포도, 청포도 다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까아맣게 익은 캠벨 포도가 정석이다. 엄마도 나처럼 포도를 좋아해서 여름이면 둘이 마주앉아 책 읽으면서 포도를 몇 송이씩 해치우는데, 잠시 후에 고개를 들어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북이 쌓인 포도껍질 때문에 서로 얼굴이 안 보일 정도.
그리고 감도 무지 좋다. 연시, 홍시, 단감 다 좋지만 곶감이 최고! 나의 곶감 사랑은 온 동리에 소문이 자자해 곶감 철이 되면 내 친구들도 엄마 친구들도 동네 아줌마들도 나 주라고 곶감 선물만 해준다. 히히, 너무 좋다. 단, 여름에도 곶감이 가끔 먹고픈데 이 시기까지 제대로 보존된 곶감 구하기가 힘들다. 너무 비싸기도 하구.
음, 사과도 나름 좋다. 작년에 한살림에서 시켜먹은 사과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열광적으로 먹어치웠었는데.. 다시 그런 맛을 못 볼까봐 걱정이다.
그밖에 메론도 좋고, 애플망고도 좋고(비싸다고 엄마가 잘 안 사준다 ㅠㅠ), 리치도 좋다. 결론적으로 싫어하는 애들 뺴고 다 좋다. 하하~
빨리 포도철(제철이 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제철과일이 최고니까)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