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도 만화잡지 '윙크'를 꼬박꼬박 한 달에 두 번씩 사보고 있다. 거의 관성화되어 매달 1일과 15일 무렵이면 '아, 윙크 사야지' 하는 생각부터 든다.
가끔은 요새 이렇게 만화잡지를 직접 사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전국의 대여점에서 구입하는 수량이 전체 판매부수의 거의 95% 이상 아닐까? 게다가 잡지는 단행본처럼 소장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피가 커서 몇 달치만 모아도 방 구석에 수북히 쌓이니, 그냥 아저씨들이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 사 읽고 버리는 것처럼 만화잡지도 보고 나서는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계속 '윙크'를 사는 건 버릇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단행본이 나오기 전에 즐겨 보는 몇몇 만화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때로 단행본에 아예 실리지 못하고 사장되는, 그러나 느낌이 너무나 좋은 그런 단편들이 간혹 아주 간혹 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윙크에서 보는 만화는(사실 실린 만화를 다 보지 않고 몇 개만 골라 본다. 신문 전체 면 다 안 보고 몇몇 섹션만 골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김태연의 '반혼사'와 양아의 '천국의 고양이들' 그리고 서현주의 '그들의 일상생활'이다.
만화에, 특히 국산 순정만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세 명 다 윙크를 통해 데뷔한 걸로 아는데, 특히 김태연과 양아는 장편 연재가 저게 처음이다. 서현주는 'I Wish'가 있었고.
이 중에서도 서현주가 특히 좋다. 그림체가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스토리가 놀랍게 창의적이지도 않지만, 그녀의 만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감동'이 있다. 물론 빡빡머리 남자애들만 잔뜩 나오는 스포츠 만화에도 잘 찾아보면 나름의 감동이 있고, 야오이나 성인만화에도 웃음과 눈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서현주 만화가 주는 감동은 너무 뜨겁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그냥 싸~하게 마음을 울리는 그런 감동이다. 엄마와 아들 사이, 오빠와 여동생 사이, 아빠와 아들 사이 등등에서 일상적으로 흐르는 정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눈물콧물 쏟으며 보여준다.
현재 윙크에 연재중인 '그들의 일상생활'의 그들은 아이돌 가수다.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많이 본 듯한 캐릭터를 짜집기해 네 명의 주인공을 만들어놓고 그들의 얘기를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소재도 내가 좋아하는 유치뽕짝 소재고 좋아하는 서현주식 코믹함도 살아 있고 가끔 치고 나오는 대사도 있고 해서 보는 게 즐겁다.
근데 오늘은.. 보다가 울어버렸다. 빚에 몰려 아들을 고아원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빠, 그런 아빠를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기다리는 어린 아들, 그 아이를 돌봐주는 정에 굶주린 외로운 큰아빠, 돌아온 아빠가 겨우겨우 돈을 구해 마련한 좁디좁은 집이 너무 좁고 아무것도 없어 늘 아빠한테 닿을 수 있어 좋다는 아들.
크으.. 내가 좋아하는 감동적인 소재가 철철 넘쳐흐른다. 난 만화건 책이건 영화건 일단 나를 울려줘야 진짜 훌륭하다고 인정하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일상생활'도 훌륭해지고 있다. ^^
서현주, 계속 이런 삘로 많은 작품 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발 만화책 좀 사서 읽었음 좋겠다. 능력 있는 만화가들이 만화계를 지키도록, 그리고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 바닥으로 새로 들어오도록.
* 참고로 요새 윙크에 연재하는 만화가 중 싫어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1. 천계영 - '오디션'부터 너무 싫어졌다. 옛날 그녀의 첫 단편을 읽었을 때의 그 충격이 아직 기억나는데..
2. 강은영 - 처음 나왔을 때는 상당한 신인이 등장했다고 좋아라 했는데, 데뷔 후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벌써 맛이 가고 있다. 발전 없는 그림체에 퇴보하는 스토리. 요새는 아예 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