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쯤 전, 직장에 다닐 때 어느 거래처 사람에게 떳떳하지 못한 돈을 받았다. 그런 제의를 받은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버벅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당연한 듯이 말을 했다.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은 것 아니냐고... 번듯한 외모의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니,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금액을 협상했다. 막상 협상을 해보니 이왕이면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통장에 돈을 넣었다고 전화가 왔다. 금액을 확인했는데, 약속했던 것보다 적다. 하지만, 떳떳하지 못한 돈이라 그 사람에게는 뭐라 찍소리도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1년 정도를 그냥 통장에 모셔두기만 했던 것 같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심 불안한 마음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욕구가 솟구쳐 혼자서 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가지고 왔다. 여전히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그 물건들이 새삼 고맙다.

그 땐 내게 물욕이 너무 강했나 보다. 지금 누가 그런 제의를 해온다면, 무슨 소리 하는 거냐며 큰 소리 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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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를 만났다. 2달쯤 전에 만났을 땐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만나니 그게 아니었다. 월급이 깎이고, 대학원에 가는 날엔 관장님 눈치를 봐야 하고, 대학원에 가서는 많은 과제량에 정신 못 차리는 삶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지금 나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당시 편입할 때는 그게 꽤 뜨고 있는 직업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다. 사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건 졸업 후 1년이 되기 전이었으니, 너무나도 미래가 빤해서 그 때부터 슬펐다. 8-9년 전 뜨고 있던 직업의 유효기간이 겨우 5-6년이라니... 전문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무색하다.

어떤 분의 페이퍼에 '다이나믹한 삶을 사시는 것 같다'는 코멘트를 남겼었는데, 이건 나를 간과한 것이기에 가능했다. 새천년의 마지막날, 내게 각별한 마음을 갖고 계신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 분과 블루스를 추면서 이런 얘길 나눴다.

교수님 : 그래, 직장은 다닐만 하고?

나 : 네, 주5일 근무라서 그냥... 다녀요.

교수님 : 카드 잘 받아봤다.

나 : .....

내 앞에 얼마나 다이나믹한 삶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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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1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떤분은 누굴까요? ^^;
제목부터 가슴을 치네요. 돈벌이는 힘들지요. 에구에구.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다이나믹한 삶을 사는것처럼 보여졌다면, 일이 널널해서 일겁니다. 휴가도 꽤 많은 편이고. 사실 회사와 집과 그 사이사이 책장을 오가는 저만큼 단조로운 삶도 없을꺼거든요. 그런 단조로운 삶들이 모여서 가끔 찾아오는 스페셜 이벤트들을 더욱 더 다이나믹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오늘 읽고 있는 책(함정임 유럽예술묘지기행) 에서 보들레르의 '벌거벗은 영혼' 이 나왔어요. 빨리 집에가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

하루(春) 2005-04-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댓글이 참 다이나믹하군요. 보들레르의 책을 읽고 싶다는 말로 끝맺는 댓글이라니... 하하~ 오늘 처음으로 웃게 되는데요?

플레져 2005-04-1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벌이, 돈벌이... 벌지 않으면 못 사는 세상...

moonnight 2005-04-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흑ㅠㅠ 정말 맘아픈 제목이에요. -_-;;

하루(春) 2005-04-1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 그러게요. 좀 답답해서 이런 글을 썼어요. ^^;
moonnight님 -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이 있죠. 그 제목을 제가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은연중에... 그러니 독창적인 건 아니죠. ㅎㅎ~

로드무비 2005-04-14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는 교수님과 블루스?
그래도 돼요오오오?
먹고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저도 얼마전 페이퍼 썼잖습니까!^^

하루(春) 2005-04-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 교수님 뵙고 싶어요. ^^;
맞아요. 저도 느끼고 있는 중이에요. 언제까지 느끼기만 할 건지가 문제지만요.
 
생존 Life 1
가와구치 가이지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일반 책처럼 오래도록 붙들고 읽는 습성 때문에 선뜻 손을 못 대고 있었다. 조그만 책 3권 읽는데, 며칠씩 걸릴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 화창했던 어느 날 읽기로 결심을 하고 들고 나갔다. 한손으로 들고 보기 쉬운 만화책인지라 의외로 진도가 빨랐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자연광을 받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버스 안에서도,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집념의 사나이의 행보를 쫓아가기 바빴다.

병에 걸린 아내와 감수성 예민한 딸은 뒷전으로 한 채, 대기업의 간부로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 흔해빠진 풍경이었다. 회사가 자신의 전부인 양 휴일도 없이 몸을 바치던 그는 결국 아내를 잃고, 설상가상 딸은 14년 전 실종됐고, 자기는 죽을 병에 걸렸다.

사카코가 갇혀 있던 자동차 트렁크 천장에 새겨놓은 세 가지 단서가 훌륭히 빛을 발해, 범인을 잡는 그 순간 나도 얼핏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단서 중 한가지가 주식상장 평균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집념이 승리하는 순간 그런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일어난 유괴사건에 관한 얘기를 봤다. 어린 여자아이가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동네에서 납치돼 1주일인가를 갇혀 있다가 탈출한 거였는데, 그 여자아이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방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공포와 추위에 떨다가 탈출했는데, 그 아이의 발은 동상에 걸려 자칫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심했던 것이다.

생존에 대한 집념.. 만화책 속에서의 사카코는 비록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원한을 풀어달라고 아버지한테 결정적인 단서를 남겼다. 현실 속에서 유괴됐던 여자아이는 추위와 공포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은 덕에 무사히 부모의 곁으로 돌아가고...

이런 만화 같은 이야기가 우리의 진짜 삶인 것 같은 무서움을 느꼈다. 가족은 어쨌든 가족이겠지. 있을 때 잘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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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1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저런 착한 제목 말고 뭐 없수?
그래도 재밌게 읽었으니 추천!^^

로드무비 2005-04-1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언제 저 책 좀 빌려주우.
사보려 했더니 품절이네요.

날개 2005-04-1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만 했죠? ^^ 리뷰 잘 쓰셨네요..
모든걸 다 잃고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 남자가 참으로 불쌍할 뿐이죠..

하루(春) 2005-04-1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안 그래도 제목 바꿀까 고민 중이었어요. "있을 때 잘하자" 어때요?
저두.. 그게 안타까워요. 이왕이면 판매중일 때 쓸 것을... ^^;;
원하시면 주소 등등 적어주세요. 토요일에 등기나 빠른 우편으로 부쳐드릴게요.


날개님 - 다 날개님 덕입니다. 재밌었어요. 아주~

2005-04-1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5-04-1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어요. +_+ 그리고 좀 무섭기도 할 거 같구요. -_-;;

하루(春) 2005-04-1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그런가요? 어쨌든 보내 드릴게요.
moonnight님 - 무섭다기보다는 긴장감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 재미있어요. 보고 싶으시면 로드무비님께... ^^

2005-04-14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곳에서 난 박노자 자리에 앉았다. 박노자 자리(실제로 박노자가 앉았었는지는 모르겠다)에 앉은 기념으로 박노자의 책을 한 권 읽어야 겠다.

 이제와서 2001년에 나온 이 책을 읽어도 되려나?

 

 

 

또 다른 얘기 하나 더

영화 시작하기 2분 전, 직원이 들어와서 조용한 좌중을 뒤흔들었다.

직원 : 이벤트 하는 거 아시죠?

나 : (속으로) 알긴 뭘 알아... 뭔데 저리 시끄럽게 하는 거야?

직원 : 좌석번호를 부를 테니, 해당하는 사람은 나와서 선물을 받아가세요.

대여섯개의 번호를 부르는데, 그 중 내 자리가 포함돼있다. 얼떨결에 가방을 뒤져서 티켓을 들고 나가서 직원이 들고 있던 순서대로 선물을 나눠주는데, 내게 걸린 건 우디앨런의 '애니씽 엘스(Anything Else)' 사운드 트랙이다.

좀 전의 영화리뷰 이 음반 들으면서 썼다. 일본영화의 리뷰를 쓰면서, 미국영화의 음반을 듣다니... 우습지만, 이건 사실이다. ㅎㅎ~

그 극장 이제 내가 접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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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10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축하드립니다..^^* 극장 접수하시면, 저는 공짜로 어떻게 한번 보여주실라나요? 흐흐~

줄리 2005-04-11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으나 그곳에 박노자님 자리도 있다구요! 꼭 가서 앉아보고 싶네요~

하루(春) 2005-04-1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 축하해주셔서 고맙구요(접수했다는 걸 축하한다는 건 아니시죠?). 그 극장에 딸린 카페에는 가봤는데, 극장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거든요. 거기가 맘에 들어서 아마도 자주 가게 될 것 같다는 뜻이었는데(다 아시겠지만요) 언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시겠어요?
줄리님 - 괜찮더군요. 스크린을 보고 앉았을 때 오른쪽의 통창으로 도시스럽지 않은 바깥이 보이는데, 영화 시작하니까 자동으로 커튼이 닫히는 것 같더군요.

마태우스 2005-04-1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어도 되지요 그 글들은 지금도 충분히 유효하니깐요....

날개 2005-04-1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물론 음반 받으신거 축하드린거 맞구요.. 접수의 뜻도 알고 있습니다..ㅎㅎ
같이 가요, 같이...! 근데, 거기가 어딘지...^^;;;

하루(春) 2005-04-11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 고맙습니다. 꼭 읽을게요. 그런데, 애석하게도 님의 리뷰가 없더군요.
날개님 - ㅎㅎ~ 제가 쓸데없이 말이 많았죠. 거기.. 서울이에요. 대학로 ^^;;
 


보려고 벼르던 영화를 보지 못할 때는 나만의 원칙에 따라 볼 영화를 엄선한다. '말아톤' 이후 극장나들이를 못해서 좀이 쑤실대로 쑤셨고, 마냐님 말씀대로 '알라딘국'에서 히트치고 있는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다. 대한민국의 2%가 되고 싶은 욕심도 한 몫 했다. 게다가 어제는 간만에 날씨가 튀지 않았던가!

강남의 어떤 극장에서 'Ray'를 보고 싶기도 했는데, 그 마음을 단번에 접어버리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알라디너들이 앞다퉈 올리는 리뷰를 다 읽긴 했으나, 영화감상을 방해할만한 내용은 다 건너뛰고 건성으로 읽은지라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딱 2가지였다.

1) 아이들이 4명 나온다 2) 야기라 유야가 최연소로 칸느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다

엽기적으로 보이는 5명의 이사놀이(놀이로 보일만큼 일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를 보면서 이 영화가 행복한 내용은 아닐 것 같다는 걸 감지했을 때, 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대체 어떤 얘길 하고 싶은 거지???

엄마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아키라와 교코의 표정을 보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 야기라 유야가 그런 큰 상을 거머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예쁘장한 여학생과 함께 모노레일을 바라보는 장면 전에는 음악도 거의 안 나온 것 같다. 음악을 넣지 않는 감독의 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디테일(이거 우리나라 말로 뭐라 해야 하지?)을 이렇게 잘 살려내다니...  

내가 본 대부분의 엄마들에게 '나'는 없다. '내'가 아닌 사람은 다 '남'인 걸 모른다. 남편도, 자식도 '나'의 일부인 그들. 무식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가족들 뒤치다꺼리 틈틈이 앎의 욕구를 채워가는 엄마는 드물다.

그래, 좋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에 내 자신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없음을 벌써부터 짐작하는데, 젠장.. '나' 중심 사고로 점철된 그 엄마라는 사람은 언제까지 그런 예쁜 목소리로 아이들을 유혹할 건지. 바깥세상 구경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꼴난 베낭 사다 주느니, 돈이나 넉넉하게 챙겨줘라. 당신이 진정 그들의 엄마이고, 그렇게 그 집까지 끌고 왔다면 말이다.

한겨울 크리스마스 때는 '꼭' 돌아오겠다는 엄마를 배웅하는 아키라의 차림새란... 7부 바지 누가 공짜로 줘도 안 입을 거다.

아이들-대부분은 아키라-의 시선으로만 그려낸 시점이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 네 아이들의 뒷모습을 끝으로 BGM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그 때부터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딱 꼬집어서 뭐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가고 싶어할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어놓긴 해도, 부산스럽지 않은 탓도 있었겠다. 스크린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극장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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