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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Life 1
가와구치 가이지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일반 책처럼 오래도록 붙들고 읽는 습성 때문에 선뜻 손을 못 대고 있었다. 조그만 책 3권 읽는데, 며칠씩 걸릴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 화창했던 어느 날 읽기로 결심을 하고 들고 나갔다. 한손으로 들고 보기 쉬운 만화책인지라 의외로 진도가 빨랐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자연광을 받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버스 안에서도,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집념의 사나이의 행보를 쫓아가기 바빴다.
병에 걸린 아내와 감수성 예민한 딸은 뒷전으로 한 채, 대기업의 간부로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 흔해빠진 풍경이었다. 회사가 자신의 전부인 양 휴일도 없이 몸을 바치던 그는 결국 아내를 잃고, 설상가상 딸은 14년 전 실종됐고, 자기는 죽을 병에 걸렸다.
사카코가 갇혀 있던 자동차 트렁크 천장에 새겨놓은 세 가지 단서가 훌륭히 빛을 발해, 범인을 잡는 그 순간 나도 얼핏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단서 중 한가지가 주식상장 평균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집념이 승리하는 순간 그런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일어난 유괴사건에 관한 얘기를 봤다. 어린 여자아이가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동네에서 납치돼 1주일인가를 갇혀 있다가 탈출한 거였는데, 그 여자아이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방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공포와 추위에 떨다가 탈출했는데, 그 아이의 발은 동상에 걸려 자칫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심했던 것이다.
생존에 대한 집념.. 만화책 속에서의 사카코는 비록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원한을 풀어달라고 아버지한테 결정적인 단서를 남겼다. 현실 속에서 유괴됐던 여자아이는 추위와 공포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은 덕에 무사히 부모의 곁으로 돌아가고...
이런 만화 같은 이야기가 우리의 진짜 삶인 것 같은 무서움을 느꼈다. 가족은 어쨌든 가족이겠지. 있을 때 잘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