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병 환자 창비세계문학 59
몰리에르 지음, 정연복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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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 조롱이 넘치는 몰리에르의 희극. 신명나는 마당놀이 한 판을 보고 나온 듯한 느낌이다. <스까뺑의 간계>의 ‘스까뺑‘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개성 넘치는 인물 ‘폴스타프‘에 견줄 만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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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에서>를 읽고 난 뒤, 조르조 바사니의 작품을 모두 사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조르조 바사니 선집은 <성벽 안에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금테 안경> 세 작품이 함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왠지 모르지만 그 세 권을 거의 동시에 구입했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를 믿는 까닭도 있었지만 그 깨끗한 책 표지와 ‘서정적 문체’라는 말에 이끌렸다. 어쩐지 첫인상이 무척 좋은, 선하고 단아한 사람을 보는 듯 했다고나 할까? 그 느낌은 어긋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은 <금테 안경>이다. 가장 분량이 짧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던 것 같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져왔다. 그 쓸쓸하고 먹먹한 기분은 뜻밖이었다. 그럼에도, 첫인상 좋은 사람과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예상대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했던 작업, <금테 안경>을 읽은 느낌이 바로 그랬다. 무엇보다도 조르조 바사니의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 그렇지만 결코 화려하지는 않은, 담담하고도 고독한 문체에 흠뻑 빠졌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세계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금테 안경>의 주인공은 페라라에 정착한 성공한 의사 ‘파디가티’다. 그는 직업에 어울리는 교양도 갖추었고 예술을 사랑한다. 페라라 시민들은 그런 그를 존경한다. 그 자신 또한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또 다른 주인공인 ‘나’는 파디가티의 삶을 관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이, 그리고 ‘나’의 삶이 조금씩 어그러져 감을 느낀다. ‘그’는 알고 보니 동성애자였으며, ‘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당이 득세하는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히틀러와 손을 맞잡은 상황에서 한 사람은 동성애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서로 마주하게 된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들은 비슷한 처지에 연민을 느끼고 친구가 되는데, ‘다름’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그 사회에서 그 둘이 나누는 우정은 쓸쓸하고도 서글프기 짝이 없다. 특히 ‘나’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파디가티의 삶은 애수 그 자체다. 물론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된 처음에는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곧 그를 이해하게 된다.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더는 궁금해 하지 않는 것. ‘내버려 두는 것’과 같았다. (<금테 안경>, 20쪽)


파디가티를 그 자체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더는 그 무엇도 궁금해 하지 않은 채.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파디카티의 사생활을 궁금해 하며, 뒤에서 수군거리기 바쁘다. 그런 그들 모두가 파시스트와 무엇이 다르랴. 존경받던 의사에서 한 순간 가십 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중년 남자, 이웃과 가족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 미래가 찬란했던 한 젊은이. 그런데 그 둘 모두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영원히 국외자가 되고 만다. 이 이방인들의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우정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풍경과 대비되는, 한없이 고독하고 서글픈 분위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문 뒤에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자신의 10대 시절, 꼭 10대 시절이 아니더라도 치기어린 젊은 날의 한때를 떠올리게 되리라. 그리고 그 기억은 행복이기보다는 그 행복이 산산이 부서지거나 때문에 고통으로 점철된 어떤 순간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며, <문 뒤에서>의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사연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첫 문장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인생에서 여러 번 불행했다, 아이였을 때, 소년이었을 때, 젊은이였을 때, 어른이 되어서도. 돌아보면 여러 번 이른바 절망의 바닥에 다다랐다. 하지만 나에게 유독 암울하던 시기는 1929년 10월에서 1930년 6월 사이, 고등학교 일학년이던 몇 달로 기억한다. 그 후 흐른 세월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남몰래 피 흘리던, 온전히 비밀한 상처로 남은 그 아픔을 세월이 치유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문 뒤에서>, 7쪽)


그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란 무엇일까?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서 그 비밀은 조금씩 드러난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몇몇 친구들과의 관계. ‘풀가’와 ‘카톨리카’- 한 사람은 가난하고 약삭빠르며 모두가 기피하는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언제나 1등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래서 모든 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나’ 또한 그 선망의 대상인 ‘카톨리카’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어쩐 일인지 ‘카톨리카’는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아이들이 기피하는 풀가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우정을, 애정을 퍼부어주지만 어쩐지 풀가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 틈바구니를 위태롭게 오가다 결국 ‘문 뒤에서’ 어떤 가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장면은 몹시 충격적이어서 주인공인 ‘나’가 느꼈을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나’는 그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뒤에도 그 가혹한 상처를 안겨준 대상에게 어떤 항변조차 하지 않는다. ‘문 뒤에서’ 나서지 못했던 것처럼 결국 영원히 ‘문 뒤에’ 숨어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 일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지만, 그것을 통해 어떤 의미로든 성장한다. 삶이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는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되지 않는가. 그 일을 겪은 뒤 ‘나’는 어린 시절의 친구 오텔로에게서 그 진솔한 냄새의 밑바닥에서 언제나 다른 냄새, 역겹고 옥죄는 악취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삶의 이면에는 악취를 내뿜는 존재가, 그런 어두운 일은 꼭 있게 마련임을, 그 서글프고도 씁쓸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오텔로는 수업이 많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처럼 내가 다시 오텔로와 자주 만나려고 노력한다 해도, 그의 착하고 진솔한 냄새의 밑바닥에서, 나는 언제나 다른 냄새, 머릿기름의 역겹고 옥죄는 악취를 찾고 있게 될 것이다. (<문 뒤에서>, 144쪽)


10대 소년들의 우정 또는 뒤틀린 애정, 동경 또는 경쟁심, 혹은 열등감과 질투, 또는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그 사건’과 그것이 불러오는 파장을 지켜보노라면, 가족을 떠난 최초의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는 친구 사이에서 느꼈을, 그리고 그 안에서 때로는 고통 받고 상처 받았을, 자기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순간에는 그 상처로 인해 모든 관계가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인생 자체가 어긋난 듯이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또 살아간다. 상처가 아물기도 하고 희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람은 어른이 되고, 늙어 간다.

조르조 바사니의 작품에는 그렇게 상처 받기 쉬운 예민하고 섬세한 성정을 지닌 인물들이, 하필이면 소외된 정체성(동성애자이거나 유대인이거나)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더 가혹한 형벌 아닌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처를 안고 묵묵히 살아간다. 아름다운 마을 ‘페라라’에서- 그 진실한, 그래서 눈부시도록 아픈 이야기가,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조르조 바사니 선집은 아껴서 여러 번 다시 읽어도 좋을 그런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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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6-21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르조 바사니의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드네요. <금테 안경>의 구절,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더는 궁금해 하지 않는 것. ‘내버려 두는 것’과 같았다.‘ 란 말 너무 확 와닿아요. 좋은 작가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늦더라도 꼭 만나보고 싶어요.

잠자냥 2018-06-21 11:28   좋아요 0 | URL
네, 그 구절에서 저도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늦더라도 꼭 만나보세요. 아마 마음에 드실 거예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8-06-21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님의 서재에만 들어오면 장바구니가 빵빵해져서 들어오기가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님의 이런 페이퍼를 읽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죠.
잘 봤습니다~^^

잠자냥 2018-06-21 17: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조금씩 사두고 천천히 읽으시면 되지 않을까요? 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외국 여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서상국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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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외국 여자>가 출간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다. 얼마 뒤 도서관에서는 이메일로 답신이 왔는데, 그 내용인즉 이러했다. ‘귀하께서 신청하신 도블라토프의 <외국 여자>는 2012년에 출간된 책으로 출판연도가 오래되어(5년 이상) 희망도서 신청대상에서 어긋납니다. 그러나 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판단하여 비치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나는 메일을 한참 들여다봤다. 내가 바란 대로 이 책을 구입한다고 하니 기뻤는데, ‘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부분에서 이 메일을 쓰거나 또는 그렇게 결정하기로 한 사서의 생각이 궁금해진 것이다.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판단했을까?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나는 그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010년인가 도블라토프의 <여행 가방>을 읽고 나서 그 뒤로 그의 책이 계속 번역되어 나오길 바랐다. 신간알림 신청을 해 둘 생각은 하지 못하고, 가끔 도블라토프 이름으로 검색해보곤 했는데, 딱히 신간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럴 것 같은 기미도 안 보였고. 그래서 더 이상 검색해 보기를 그만뒀던 것 같다. 그렇게 내 관심이 시들해졌을 즈음인 2012년에 <외국 여자>가 조용히 출간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만지’ 시리즈로 나왔던 터라 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이 책을 이 땅에 출간된 지 6년 만에 읽게 된 셈이다.

도블라토프의 유머를 좋아한다. 과장 없이 심드렁하게, 무미건조하게 힘을 쫙 뺀 그 유머러스함. <외국 여자>에서도 특유의 그 유머는 첫 장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의 첫 장인 ‘108번가’에는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 이민자들 여럿이 소개된다. 물론 그 가운데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루샤 타타로비치’도 있지만, 첫 장에서는 108번가의 이민자들을 스케치 하듯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그 면면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워서 낄낄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그 이민자들의 삶은 하나 같이 ‘추락’이다. 그들 대부분이 소련에서는 잘 나가던 학자이거나 화가, 사회평론가, 인권 운동가, 예술가 등이었지만 이제 그들이 미국에서 하는 일은 자기의 예전 직업과는 상관없는, 허드렛일이 전부이다. 그 가운데 사회주의국가에서 평생 살아온 이들이 자본주의 최정점의 사회인 미국에서 느끼는 당혹감 또는 이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의 판매는 시들했다. 조국 소련에서는 자유가 없었으나 대신 독자들이 있었다. 이곳 미국에서는 자유가 충분했으나 독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13쪽)

미국은 카라바예프를 실망시켰다. 이곳에서는 소련의 정권도 없고 마르크스주의도 없고 그를 처벌할 징벌 기관도 없었다. 카라바예프는 투쟁할 그 어떤 대상도 없었다. (19쪽)


108번가에 사는 사람들이 짧게 소개된 뒤에는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리야 타타로비치(마루샤)’가 소개된다. 마루샤는 소련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계 생산 콤비나트의 총지배인이며 어머니는 시내에서 가장 큰 드레스 제조 공장을 경영한다. 마루샤의 부모는 출세지향 주의자들이 아니었음에도 운이 따라서 줄곧 승승장구한다. 러시아인이며, 당원이고, 어느 정도 능력이 있어야 하며, 술에 취해 있지 않아야만 ‘노멘클라투라 상위층’에 오를 수 있는데, 마루샤의 부모는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덕분에 실제로 노멘클라투라의 상위층에 오르게 된다. 그 부와 지위의 수혜자는 물론 딸 마루샤이다. 마루샤는 이렇게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정의 한 일원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다. 그러나 계속해서 마루샤가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아간다면 이야깃거리라곤 없을 것이다.



누구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그 대가가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자주 생각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더 자주 자기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37쪽)


마루샤는 바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선택 때문이었다. 바로 사랑. 마루샤는 자신의 신분이나 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유태인 ‘체흐노비체르’가 그 대상이다. 그렇다면 그와 열렬한 사랑을 하게 되어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이민을 가게 되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딱히 아니다. 아무튼 이 사랑을 시작으로 해서 마루샤의 기구한 인생은 시작된다. 서른 살이 되기까지 마루샤의 인생은 만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나머지 모두는 불쾌함이었다. 그녀에게 만족이라는 것은 꽃이요, 레스토랑이요, 사랑이요, 수입할 물건이었으며, 음악이었다. 불쾌한 것은 돈이 없는 것, 비난하는 소리, 질병 그리고 죄책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불쾌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첫 번째 결혼이 실패로 끝나고 두 번째 결혼에서도 실패의 조짐이 보이자, 마루샤는 인기 가수인 바람둥이 남편 라주달로프에게 자살하겠다고 협박한다. 그 심각한 때 도블라토프의 유머는 또 한 번 터진다.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아내를 주제삼아 라주달로프는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다.



그대가 만일 강으로
빠져 죽으러 갈 것이면,
내게 안녕을 고하러 와 주오.
내가 그대와 함께 강으로 가서
가장 깊은 곳을 가르쳐 주리다.  (56쪽)


몇 번의 결혼 실패 끝에 소련에서의 삶이 지난해진 마루샤는 결국 다른 곳, 다른 삶을 꿈꾸며 그즈음 소련 사회에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이민’이라는 것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오스트리아를 거쳐 자본주의 최정점 세계인 미국에 안착하게 된다. 그런데 그 미국은 낯설기 짝이 없다. 때로는 넘치는 자유가 공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적 삶에 적응해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그녀가 바라는 진짜 인생은 더 멀어지기만 한다. 마루샤는 마치 ‘친척의 별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이르건 늦건 간에 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녀는 잘 먹었고 건강했다. 옷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것은 진짜 삶이 아니라 당원들을 위한 휴양지에서의 삶’과 같았다. 이런 삶 같지 않은 삶을 위해 그렇게 멀리 왔어야만 했는지 그녀에게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스스로 주위를 둘러봐. 나는 우리 이민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그들 모두는 비즈니스 출장 온 사람들 같아. 모두의 손에 2루블 40코페이카가 들려 있지.” (121쪽)

“미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이방인이에요. 우리의 신념이 무엇이든 간에 이방인이란 말입니다.” (161쪽)


아무리 손에 많은 돈을 쥐고 있어도 마치 2루블 40코페이카만 갖고 비즈니스 출장을 온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이민자들. 자유가 넘치는 미국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채 언제나 ‘이방인’으로 머무르고 마는 이민자들. 그들의 삶이 마루샤라는 한 여인을 통해 더없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루샤는 어쩐지 부모님이 있는 소련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 또한 쉽지 않다. 미국에서 그녀는 영원히 ‘이방인’이지만, 소련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자 소련 정부 관련자들은 그녀를 마찬가지로 ‘외국 여자’ 취급하면서 배신자 운운한다. 어떤 사람은 마루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당신은 전형적으로 서구화되어 버린 이민 여성이에요. 자기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루샤는 생각에 잠겼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볼셰비키에게 강간을 당한 러시아 그 자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서구화 되어 버린 이민 여성이라고 말한다. 사실 나는 누구일까? (95쪽)


마루샤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녀는 소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온갖 남자들의 구애를 받고 한바탕 소동을 치르는 마루샤. 어떤 의미로든 이 책의 마지막 장은 ‘해피엔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실제로 그리 암울한 결말은 아니다. 게다가 이 책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미국에 사는 외로운 러시아 여인들에게- 사랑, 슬픔 그리고 희망을 담아 바칩니다.’라고. 때문에 이 작품의 말미는 ‘희망’에 방점을 두고 있다. 도블라토프의 <여행 가방>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또한 이민자들의 영원히 이방인 같은 삶을 그리지만 그 끝이 결코 암울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이 든다. 마루샤를 비롯해 108번가에 사는 이민자들 모두가 앞으로도 얼마나 힘겹게 살아갈까 하는….

마루샤가 보석 디자인 수업을 받으려고 간 곳에서 그곳을 운영하는 ‘힉비’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10년 넘게 화가가 되려고 공부했어요. 그런데 불행한 보석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이것을 인생이라고 할 수 있나요?”(74쪽). 마루샤의 삶도, 다른 모든 이민자들의 삶도 생각해보면 모두 그러하다. 소련에서는 자기만의 직업과 꿈이 있었다. 그리고 인생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어떤 사태를 만나거나 또는 상황의 여의치 않아 미국으로 쫓기듯 달아나 이민자,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 버리고만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을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외국 여자>를 읽다 보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그 어떤 체제에서도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서글픈 삶이 그려진 듯해 웃다가도 슬퍼진다. 도블라토프 문학의 장점은 이렇게 소시민들의 삶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애잔하게 담아내지만 결코 암담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낄낄 웃다가도 어쩐지 쓸쓸해지는 그런 작품. 도블라토프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꼭 한 번은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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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18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사서가 대단한 결정을 하셨네요. 아마도 그 사서는 편견 없이 책의 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봤을 것입니다. ^^

잠자냥 2018-06-18 17:4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그래서 그 사서와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더라고요. 하하하하.

Falstaff 2018-06-1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호기심이 팍팍, 페널티킥을 앞에 둔 골키퍼처럼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나오네요. ㅋㅋㅋ
메모해놓았습니다. 세르게이 도브라토프!!

잠자냥 2018-06-19 17:32   좋아요 1 | URL
네! <여행 가방>도 함께 추천합니다. ㅎㅎ

케이 2018-06-1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잠자냥님! 잘 계시지요? 여전히 올려주시는 리뷰 잘 보고 있는 케이입니다. 이 책 리뷰 보니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지금 읽는거 다읽으면 꼭 읽어봐야겠어요.

잠자냥 2018-06-19 17:36   좋아요 0 | URL
네 케이 님도 잘 지내시지요? ㅎㅎ 이 책 읽어 보신 뒤에 마음에 드신다면... <여행 가방>도 추천해 드릴게요.ㅎㅎ
 
톨레도의 유대여인 - 5막의 역사 비극
프란츠 그릴파르처 지음, 이관우 옮김 / 써네스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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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비극을 읽는 느낌. 그런데 비극적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국왕의 태도가 막판에 너무 허무하다. 독일어권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기대보다는 싱거웠다. 국내 초역작을 읽은 것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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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서상국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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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 온 러시아 이민자들의 삶이 웃기면서도 쓸쓸하게, 애잔하게 그려진다. 마루샤는 미국에서도 ‘외국 여자‘이고 조국 소련에게도 ‘외국 여자‘가 된다. 마루샤의 운명처럼 어쩌면 인간은 사회주의에서도 자본주의에서도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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