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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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야. 사람들은 주말이니까, 평소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약간의 변주 같은. 나 또한 그래. 그래서 그 술집에 갔나봐. 다른 때였다면 문을 열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펍에 그날따라 왠지 들어가고 싶더라고. 내가 그 술집에 들어섰을 때, 이미 무대 위에는 당신이 있더군. 키가 작고 홀쭉하며, 안경을 쓴 남자. 멀리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할 것 같은 나이. 그래 당신은 적어도 쉰은 넘었을 거야. 안 그래?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그 빨간 멜빵과 찢어진 청바지에 카우보이 부츠는 뭐야? 나 원 참. 당신 이름은 도발레라고 하더군.

난 사람들을 비집고 어느 구석진 자리에 않자마자 아뿔싸, 잘못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어. 순전히 당신 때문이야. 도발레, 당신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잖아? 난 사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아. 거기서 하는 농담 가운데는 들어주기 힘든 것들이  많거든. 때로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지. 난 그런 걸 딱히 좋아하지 않거든.

도발레, 당신도 예외는 아니더군. 성적인 농담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좋다고 낄낄거리고 있더라고. 게다가 역시나 객석 사람들을 안주삼아서 조롱하고 희롱하고. 뭐, 그래 몇몇 농담 좀 웃기기도 하더라고. 당신은 말끝마다 '네타니아' '네타니아'하던데, 그거 조롱 맞지? 마치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 나오는, '그렇게 가는 거지', 그 구절처럼 말이야. 그래, 오늘밤 당신은 뭘 조롱하고 싶은 걸까? 살짝 호기심이 들더군.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시원한 맥주로 목이나 축이자 싶었지. 그러는 사이에도 당신의 속사포 같은 이야기는 멈추지 않더라고. 몇몇 이들은 낄낄거렸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다지 많지 않더라고. 사람들 반응을 좀 알아차렸는지 당신은 이렇게 말하더군. “당신들은 우리 얼굴에서 스트레스를 볼 수 있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야 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당신들에게 우리를 사랑해달라고 구걸한다는 것.” 그래, 도발레 당신 얼굴은 좀 불편해보였어. 쇼를 얼마나 했다고 벌써 이렇게 땀을 흘리는 거야?

당신 이야기는 점점 개그가 아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게 되어가고 있었어. 내 주변 사람들도 그걸 느꼈는지 작게 투덜대더라고. 나 또한 그랬지. 거참 저렇게 안 웃기기도 어렵겠다 싶더라고. 그때 마침 도발레 당신은 객석의 어떤 사람을 가리키면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더군. 대법원 판사 아비샤이 라자르가 이 자리에 왔다고. "라자르 판사는 오늘 저녁, 공적으로 우리의 한심한, 비참한 예술을 지원하러, 비공개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외쳤지만 솔직히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판사는 대체 왜 온 거야? 당신하고 무슨 관계지? 좀 궁금해지긴 하더라고.

그리고 또 한 사람, 어느 여인- 당신을 예전부터 알았다고 주장하는 그 여자도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지더군. 판사와 그 여자는 도발레 당신이 어린 시절에 알던 사이 같은데, 오늘밤 초대를 받았던가, 아니면 스스로 찾아왔던가, 둘 중 하나겠지? 분명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어. 그리고 당신, 당신은 개그를 포기한 건지 아니면 작정한 건지. 아예 비극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더군. 솔직히 몰랐어. 내가 오늘 이런 술집에서 유대인 학살과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난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어. 어라?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닌데, 그저 웃자고, 주말 저녁을 조금 즐기자고 나온 거야. 근데 당신은 내게 그 작은 무대 위에서 쇼아, 즉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고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나 같은 관객이 한둘은 아니었나봐. “개그나 한두 개 해주는 게 어때? 이 사람아?” “우리는 개그를 들으러 여기 온 거야!” “오늘은 저 사람 자체가 개그인 게 보이지 않아?” 이런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더라고. 몇몇 사람은 도무지 못 참겠는지, 자리를 뜨기 시작했어. 난 슬쩍 보았지. 당신을 아는 것 같은, 그 여자와 판사의 표정을. 그들은 당신 못지않게 심각하고 어둡더라고. 도발레 당신이 홀로코스트 이야기 속에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옛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할 때부터 그 여자는 울상이었고, 판사는 당혹감 또는 미안한 얼굴이더라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나 또한 불편한 마음, 투덜대던 마음 한구석에 뭔가 슬픈 감정이 솟구치더라고.

"엄마는 군수산업체에서 총알을 분류하는 일을 했지." 당신이 이 말을 하는 순간,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하던 이야기를 하는 순간, 군사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이야기를 하는 순간, 오늘 무대 위에서 당신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절대 개그가 아님을 깨달았어. 농담처럼 웃어넘기고 싶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이야기- 홀로코스트로 인해 망가진 한 가정의 역사. 그럼에도 계속 되는 그 여파. 엄마는 여전히 군수산업체에서 총알을 분류하고, 도발레 당신 또한 군사 캠프를 갔잖아? 그곳에선 몸집이 작은, 당신 같은 약한 아이는 먹잇감이 되기 싶겠지.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그것의 희생자는 언제나 약한 자..........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여러분, 우리는 여기 좀 웃자고 왔는데, 저 사람은 지금 홀로코스트 추모식을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홀로코스트를 웃음거리고 만들고 있어요.” “참을 만큼 참았소.” “사람들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여기 온 거요. 지금은 주말이고, 머리를 맑게 하고 싶어서 온 거지. 그런데 이자는 유대교의 속죄일 행사를 하고 있어.” 사람들은 또 떠나가기 시작했어. 이제 자리에는 몇 사람 남지 않았군. 나도 마음이 불편해서 저들과 함께 이 자리를 뜰까? 싶었는데, 그래, 인정할게 '유혹- 다른 사람의 지옥을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에 난 무릎을 꿇고 말았어. 당신에게 뭔가 더 큰 지옥이 있었을 것 같아서.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래, 그거였군. 당신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캠프에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이야기. 그건 정말 충격이야. 예상 밖이었어. 당신을 집까지 데려다주던 운전병과의 일화도 뜻밖이었어. 운전병이 웃었다고 했나? ‘너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반은 정신을 잃고 있더라고. 내 개그로 너를 아기처럼 재웠지.’라고 말하면서. 운전병의 여자 친구는 '저런 상태'의 아이한테 개그를 했다면서 운전병한테 심한 욕설을 퍼부었지만, 운전병은 그랬지. ‘저애가 자고 있을 때도 나는 개그를 했지. 단 일 초도 개그 없는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았어. 맨투맨 방어.’라고.

그래, 그렇구나. 그때서야 알았어. 도발레 당신이 들려준 운전병과의 일화에서 당신을, 당신의 그 고통스러웠을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어. 도발레 당신은 자신의 참혹한 삶, 그 쓰디쓴 인생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남을 웃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살아남기 위해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택하고 웃음을 직업으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웃어버리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니까. 당신이 이 쇼 초반에 말했듯이. “아무 일도 없잖아! 이게 유머의 위대한 점이라고. 가끔은 웃어넘길 수도 있는 거야!”- 바로 그 말처럼, 웃음으로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당신의 소망이, 지금 당신을 무대 위에 서게 한 것은 아닐까.

“때로는 그  오물이 지금까지도 내 피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될 수가 없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어? 그런 종류의 오물은…….” “그건 방사능이야. 그래, 나 자신의 개인적 체르노빌. 평생 지속되는 한순간. 지금도 내가 다가가는 모든 것을 오염시켜. 오늘날까지도. 나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마지막 절규에 가까운 도발레 당신의 이야기는 오늘 쇼에서 가장 슬픈 말이었어. 웃기지 않아?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나서 가장 웃긴 말이 아니라, 가장 슬픈 말을 기억하게 될 줄이야.

도발레, 두 시간의 쇼 동안 당신 개그는 솔직히 한 서너 개 빼고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어. 오히려 당신의 과거사로 마음을 불편하게 하다가 비극적인 감정에 빠지게 했지. 솔직히 오늘 쇼에서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야. 당혹, 불쾌, 분노, 그러다가 느낀 참혹한 슬픔. 이봐, 당신은 그 사건들이 당신의 개인적 체르노빌이라고 했지? 그래 그건 분명해. 지금도 당신을 괴롭히고 있지. 어떻게 보면 전 인류의 체르노빌이라고 말하는 게 옳겠지. 그런데 그건 당신 잘못은 아니잖아? 그러니 당신이 주변 모든 사람을 오염시킨다는 생각은 그만하길 바라. 당신은 그런 와중에도 웃음으로써 고통을 희석하면서 잘 버텨왔어. 대단해. 체구는 작지만 인내심은 엄청난 사람이군. 당신의 주름이 그 고통의 흔적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감동스럽더군.

도발레, 당신이 오늘밤 왜 그 판사를 불렀는지 난 알고 있어. 당신이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뭘 얻느냐는 거야. 나를 볼 때 뭘 알게 되지? 나에게서 오는 것을 볼 때?”라고 물었다는 것도. 판사로부터 그런 것을 '판결'을 기대했다니, 좀 우습긴 하지만. 오늘밤 당신의 두 시간 남짓한 쇼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걸 말해줄게. 당신은 고통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은 위대한 사람이야. 그것도 자기 아픔을 웃음으로 치유해보고자 했다니, 진심으로 숙연해졌어. 그러기 쉽지 않았을 거야.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두 시간 동안 한 인간의 위대한 생존기를 바라본 느낌이야. 난 무척 감동했어. 그래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지.

그래, 당신 말처럼 당신 개그는 “웃기지도 않고, 또한 품위도 없”어. 하지만 어때? 어차피 이건 코미디가 아니었잖아? 스탠드업 비극(tragedy)이었지. 쇼, 잘 봤네, 도발레. 쉰일곱 번째 생일 축하하네, 이제 그만 당신의 체르노빌, 그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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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21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서점 갔다가 이 책을 보고 살까말까 망설이다 왔거든요. 왜인지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생각이 나네요.

잠자냥 2022-02-21 09:14   좋아요 0 | URL
갑자기(?) 이 책이 왜 읽고 싶어지셨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다락방 2022-02-21 09:15   좋아요 1 | URL
아 서점 소설 코너에서 우연히 제목이 눈에 띄었어요 ㅋㅋㅋㅋ 이게 뭐지? 하고 나중에 살펴봐야겠다 읽고싶어요 북플에 체크했는데 아니 글쎄 잠자냥 님이 2018년에 읽고 리뷰를 쓰셨더라고요! 대박..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2-21 13:49   좋아요 0 | URL
홀로코스트를 좀 색다르게 다루고 있어요. 홀로코스트 다룬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읽고 나면 마음이 좀 무거워지고요.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7
자크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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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편한 언어로 쓰였지만 그 언어들이 조합해서 빚어내는 시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곳곳에 스며있는 풍자와 해학, 반항 정신도 빛난다. 무척 유명한 ‘이 사랑‘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두 작품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번역 시는 잘 안 읽지만 이 책은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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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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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읽었다기보다는 실제로 2시간짜리 스탠드업코미디를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기묘한 소설. 그런데 그 코미디는 알고 보니 코미디가 아니라, 더없이 잔혹한 비극이었다는, 더더욱 기묘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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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은 덕택에 <영국 왕을 모셨지>도 읽게 되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지 않았다면 보후밀 흐라발도 몰랐을 터이고 <영국 왕을 모셨지>를 읽을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참 고마운 작품이다. <영국 왕을 모셨지>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한동안, 아니, 이게 정말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이란 말이야?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꽤 다르기 때문이다.

고독 속에 침잠하여 35년 동안 폐지 압축 일을 하던 한탸와는 매우 다른 인물인 수다꾼 디테가 등장하는 <영국 왕을 모셨지>. 이 작품은 매 장이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 좀 잘 들어보세요!’하고 시작해서는 ‘괜찮았나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할게요’로 끝나는데, 그야말로 입담꾼이 펼쳐놓는 속사포와도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디테는 마치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들려준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물론 한탸의 이야기와도 매우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한탸는 철저히 혼자 일했으며, 유일한 친구라고는 책 또는 지하실의 쥐 정도인데 비해, 디테의 직업은 호텔 웨이터이다. 10대 때부터 견습 웨이터로 시작해, 자신의 호텔을 세울 때까지. 단 한 순간도 혼자 일해본 적이 없다. 아니, 진실로 혼자 있어 본 적이 있기라도 할까?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을 철책으로 삼아야 하는 호텔 웨이터이지만 디테는 언제나 동료 아니면 손님들로 둘러싸여 조용할 날 없는 호텔에서 오직 백만장자가 되기를 꿈꾸며 부지런히 일한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의 이야기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아닌 그야말로 ‘너무 시끄러운 혼란’ 그 자체이다. 때문에 <영국 왕을 모셨지>를 중반까지 읽는 동안은 보후밀 흐라발은 이런 작품도 잘 쓰는구나, 입담꾼 기질도 농후하네, 감탄하면서도 뭐랄까, 조금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낄낄낄 웃기면서 풍자와 해학이 넘치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면 조금 아쉬울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무엇보다 디테가 나치에 점령당한 조국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독일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오직 그 사랑 때문에 모든 체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면서도 그 여자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결혼하는 장면에서는 좀 위험한데 싶은 생각이 더욱 들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작고 어수룩하고 부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밖에는 관심 없어 보였던 이 보통 사람 디테마저도 자기 삶에서 뭔가 잘못 되었음을 서서히 깨달아간다. ‘독일 혈통의 아리안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힘 있게 찍어 결혼 허가서를 내주던 그 도장’이 바로 체코 애국자들을 사형에 처하게 한 그 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꿈꾸고 바라왔던 자기 인생의 모순을, 그 균열을 통렬하게 실감한다.



체코 애국자들이 처형당하고 있는 동안 나치 의사들에게 독일 여자 체육 교사와 성교할 능력이 있는지 검사를 받고 있었으며, 독일인들이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했을 때, 결혼식을 올리고, 군가 <대열을 바싹 좁혀라!>를 부르고 있었고, 고향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독일 호텔에서 독일 군인들과 에스에스 대원들의 시중을 들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쟁이 끝나면 프라하로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었다. (225쪽)

그때부터 이 작품은 조금은 묵직하게 나치 치하 체코와 공산화된 체코의 현실을 그려나간다. 물론 풍자와 해학은 잃지 않는다. 하지만 키 작은 디테는 이러한 현실을 깨달으면서 물리적인 키가 아닌, 마음의 키가 크게 자란다. 특히 그는 수용소 생활 뒤 산 속으로 돌아가 홀로 은둔하면서 진정한 인생의 행복을 찾게 된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침묵 속에 은둔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함을 나타내주는 것이 침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222쪽)

나는 내일 어디론가 멀리 떠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분명 그곳에도 사람은 있을 테지만 뭔가 다를 것이다. (299쪽)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한탸와 디테의 모습이 겹쳐진다. 디테는 산 속에서 만난 어느 교수로부터 문학과 철학, 예술, 그 모든 것들이 담긴 책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알게 된다. 자연 속에서 동물을 벗 삼아 책을 읽고 문학, 철학, 사상을 논하는 것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오롯이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삶. 그런 삶이 주는 행복을 만끽한다. 디테 또한 한탸처럼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행복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나 혼자로 충분했고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게 거추장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중에는 나 자신하고만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의 가장 좋고 가장 편안한 동반자, 나의 또 다른 자아, 나의 격려자이며 나의 선생이었다. 나는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게 점점 더 좋아졌다. (312쪽)

아마도 그 교수가 사람은 혼자 있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더 확인시켜준 것 같다. 밤마다 별을 보고 낮에 깊은 우물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313쪽)


그러니까 디테는 곧 한탸가 그렇게 고독해지기 전까지, 고독한 삶을 살게 되기까지 이전의 삶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발표 순서를 살펴봐도 <영국 왕을 모셨지>가 1971년으로 <너무 시끄러운 고독>(1976년)보다 앞선다. 꼬마 디테가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뒤 내적으로 성장해, 고독하지만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사는 한탸가 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영국 왕을 모셨지>를 읽으면서 처음에 느껴졌던 이질감이랄까, 낯설음이 그제야 모두 해소되었다. 보통, 인간은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바쁜 삶이 제대로 잘 굴러가는 인생인 줄 알다가, 뒤늦게야 그게 아님을 깨닫지 않은가.

디테와 한탸가 한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 <타인의 삶>의, 너무나 사랑하는 인물인 비즐러말이다. 비즐러는 동독의 비밀경찰로 유명한 극작가와 배우 부부를 몇 년 동안 감시하다가 그들의 삶과 사랑, 예술에 감화되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만다. 영화 끝 부분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우체부로 조용히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위해 출간된 ‘그 책’ 한 권을 사들고 담담히 거리를 걷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이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 순간, 비즐러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임을. 



진정한 세계인은 익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거짓 자아를 벗어버릴 수 있는 자라고 했다. (340쪽)


나는 왜 디테와 한탸, 그리고 비즐러가 한 사람처럼 느껴졌을까? 디테와 한탸, 그리고 비즐러는 모두 익명 속으로 조용히 침잠해, 거짓 자아를 벗어버린 인물들이다. 그리고 모두 시와 문학, 예술이 주는 기쁨을 깨달았으며, 거기에서 가장 큰 만족을 얻는 이들이다. 그럼으로써 진짜 행복을 찾은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극작가와 배우 부부를 감시하면서 점점 감화되는 비즐러 -<타인의 삶>의 한 장면




그리고, 우체부로 조용히 살아가게 되는 비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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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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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후밀 흐라발을 입담꾼으로 인정!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보는‘ 디테의 흥망성쇠 속에 나치 치하 체코, 공산화된 체코의 암울한 현실도 웃프게 그린다. 낄낄 웃다보면 애잔해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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