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어디까지 이 불길이 번져나갈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자기 이름이 호명될까봐 전전긍긍할 남자들이 셀 수 없이 많으리라는 것. 이렇게 미투 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게 된 것은 여성들이 더 이상은 이런 불합리한 세상에 침묵할 수 없다고,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자각하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불길이 두렵고 탐탁지 않았기에 대개의 남성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그토록 비난하면서 억압하려 들었을 것이다. 물론 억압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갈수록 더 많은 여자들이 페미니즘에 가까이 가고 있다. 나는 페미니즘의 안경을 더 많은 사람들이 쓰기를 바란다. 이 땅에, 아니 이 지구에 살면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여자가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흔히 ‘차이가 차별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216쪽)


성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가진 권력의 크기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차이와 차별이 생긴다. 그 권력의 크기를 평등하게 하자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누가 더 많이 갖자는 게 아니다. 권력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기 때문에 성폭력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미투 운동을 통해 폭로된 자들을 보라, 연극, 문학, 방송, 연예, 영화, 학계, 종교계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권력자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권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권력에 기생하며 자신 또한 언젠가는 그런 힘을 가진 자가 되기를 꿈꾸던 이들은 방관자가 되거나 동조자가 되었다. 만일 그 권력의 크기가 남녀에게 똑같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성범죄자들의 이름이, 그 민낯이 까발려지고 있을까?

앞서 인용한 문장은 최근 읽은 <혼자서 본 영화>의 한 구절이다. 짧은 문장임에도 여러 가지를 일깨워준다. 정희진의 문장이 늘 그렇듯이 말이다. 신간을 살펴보는데 정희진의 이름과 ‘영화’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완전히 흥분해서는 나오자마자 사서, 보던 책도 모두 미뤄놓고 이 책부터 읽었다. 때마침 이다혜 기자의 <어른이 되어서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를 읽은 뒤였다. 두 책의 지은이는 모두 영화광이다. 그리고 둘 모두 페미니즘의 눈으로 영화를, 대중문화를 분석한다. 분석이라기보다는 ‘감상’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도 떠오른다. 세 책 모두 페미니즘 눈으로 바라본 영화와 문학, 또는 대중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롭고 즐거웠다. 물론 가장 좋았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혼자서 본 영화>이다. 순전히 정희진의 글과 사유의 과정을 내가 무척 좋아하고, 닮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도 나는 그의 문장과 생각에 미소 짓게 된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는 이제 알기 위해 영화를 본다. ‘지식을 습득한다’와 ‘안다’는 것은 다르다. 안다는 것은 깨닫고, 반성하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세상이 넓음을 알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과정을 뜻한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19쪽)

영화를 볼 때 내가 ‘마니아’를 넘어 시민으로서 윤리적, 정치적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는 정성일 평론가/감독에게 감사한다. (23쪽)


이 책 서문에 해당하는 글에서, 정성일 평론가에게 감사를 전하는 저 말에는 나도 모르게 밑줄을 그었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책에서 정희진이 언급한 영화들은 나도 거의 본 작품들인데, 그럼에도 그의 눈을 통해 다시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여러 번 감탄하다. 나는 아마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알고’ ‘깨닫고’ ‘반성하고’ ‘다른 세계로 이동’할 것이다. 정희진의 글은 그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해준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인간관계다. 사랑은 그중에서 가장 치열한 관계다. 사랑은 모호한 개념이고, 계산할 수 없는 노동이며, 돌변하는 퍼포먼스다. (35쪽)

‘필요’가 ‘사랑’이 되려면 윤리가 필요하다. [....] 사랑 이전에 윤리. 윤리는 정치학이고 사회 정의다. 윤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39쪽)

섹스나 외로움이 중산층만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계급 차별적 편견이다. (44쪽)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마조히즘이 있다고 강요하지만, 여성이 마조히즘을 선택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59쪽)

매 순간 변하지 않는 것, 움직이지 않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관계와 감정은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리고 퇴화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을 사랑한다.  (68쪽)

타인의 손을 잡는 것이 내 영혼에 사슬을 감는 행위여서는 안 된다. (71쪽)

사람은 사상, 사랑, 권력으로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110쪽)


영화를 보면서 이런 문장을 뽑아낼 수 있다니. 나와 똑같은 영화를 봤는데도 그런 영화를 통해 정희진이 느끼고, 깨닫고, 생각하는 과정은 한없이 깊고 날카롭다. ‘페미니즘적 시각’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그런 시선으로만 영화를 해석하는 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 본 영화>는 한 영화광의 꼼꼼한 영화읽기로 봐도 무방하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며, 다양하고 깊이 있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상처 또는 기억과 맞물려서 써내려간 솔직하고도 내밀한 감상이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즐거웠다. 여성주의적 사고의 확장은 덤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보면 틀림없이 여기 언급되는 영화들을 보고 싶어질 것이다. 나 또한 몇몇 작품은 다시 또는 새롭게 볼 생각으로 제목을 적어두었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여태껏 보지 않았던 작품인데, 이제는 정말 봐야겠다. ‘메릴 스트립’의 작품도 보고 싶어졌다. 때마침 요즘 극장가에서 그녀가 주연한 <더 포스트>가 개봉했는데 그것부터 볼까.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인 <타인의 삶>은 다시 봐도 또 울게 될 것이다. 영화와 관련한 가장 좋은 책은 이렇게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정희진의 <혼자서 본 영화>가 바로 그렇다. 그것도 왠지 늦은 밤, 홀로 극장을 찾아 최대한 사람과 멀리 떨어져서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든다.

<혼자서 본 영화>가 나를 지적으로 자극하고 깨우치게 했다면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내 또래가 쓴 대중문화 읽기라, 매우 공감하면서 때로는 이런저런 추억에 젖으면서 읽은 책이다. 물론 이 책 또한 내가 간과했거나 익숙하게 젖어있던 사고나 세계관을 깨뜨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다혜 기자가 여고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했던 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 이 세계에서 꼭 필요한, 마음에 새겨둬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여성 당신은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라고, 그걸 기억하라’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때,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불편한 딱지나 낙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하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비난으로 사용할 때, 그 자리에서 대응하는 게 어렵다면 그냥 침묵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고 싶다는, 비록 그것이 나의 존엄을 해치더라도 상대가 원하는 나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저는 그런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부당한 비난에 저항하고,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 비난을 무시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여성으로서 살아가게 될 수많은 나날에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 됩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아주 작은 것부터 천천히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그 사실을 어떤 순간에라도 기억하세요. (이다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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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18-02-2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기가 더 힘들지 않나?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 책 꼭 읽어봐야겠어요^^

잠자냥 2018-02-28 12:07   좋아요 0 | URL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따금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말하는 여자들이 있더라고요. ㅎㅎ 이 책 꼭 읽어보세요. 참 좋았습니다.

케이 2019-01-21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동안 ‘혼자서 본 영화‘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저는 못본 영화도 꽤 많았는데 언급한 영화를 안봤어도 읽고 사유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더군요. 정희진 선생님도 사실 잠자냥님 덕분에 알게 됐는데 너무 공감가는 구절이 많아서 (특히 ‘질투는 나의 힘‘ 에 나오는 모든 구절) 종종 찾아서 읽을 거 같아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9-01-21 13:31   좋아요 1 | URL
영화와 관련한(책도 그렇지만) 책 중에서 정말 좋은 책은 그 비평 대상이 되는 영화(책)를 잘 몰라도 그 영화를 마치 본 것처럼 생각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게 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또 그 영화(또는 책)를 찾아보고 싶게 하는 힘을 지녀야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정희진 선생님 글은 독자를 언제나 그렇게 이끌어주지요.

사실 정희진 선생님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 강연을 들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말씀을 얼마나 재미나게 하지는지(그러면서도 물론 또 얼마나 사유의 확장을 열어주시는지!) 정희진 선생님 강연은 무조건 강추합니다.

그리고 정희진 선생님 저작 중에 단연코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페미니즘의 도전>을 꼽겠습니다. 이 책은 틀림없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앎‘과 다른 진정한 ‘앎‘의 세계로 이끌어 줄 거예요. 제 조카가 이번에 대학생이 되는데, 이 책을 성인 시절 첫 책으로 선물하려고 해요. 케이 님도 꼬옥 읽어보세요! ㅎㅎ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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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정희진. 신간 소식 듣자마자 구매해서 읽는다. 영화 관련 글이라 더 재미나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날카롭게, 이렇게 다르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구나 감탄 또 감탄. 그녀가 본 영화 모두, 다시 또는 새롭게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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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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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본 문학, 영화, 대중문화 이야기. 어떤 점에서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비슷하기도 하다. 이다혜 기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이들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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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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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전형성, 예측 가능한 내용들이 진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학은 보통 이렇다. 전쟁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개인. 그 사람은 틀림없이 전쟁터로 끌려가기 전에 지고지순한, 또는 애절한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사랑이 한창 피어오를 즈음 전쟁이 터지고 그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두 연인은 헤어진다. 전쟁터로 끌려간 남자는 그곳에서 인간성을 말살해버리는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더없이 끔찍하면서도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바람이 되고, 애틋하게 연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희망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비롯된 온갖 오해로 인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거의 이렇지 않은가?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 가운데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처럼 참신한 작품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어렵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 나왔을 때, 책 소개를 통해 전쟁 소재 문학임을 알고는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외면했다. 예측 가능한 내용들이 펼쳐지겠지. 그런데 문학상은 보통 이런 어떤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에 수상하는 일이 잦으니까, 맨부커상도 그런 선택을 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상이 맨부커상이라는 점에서 아주 관심을 끊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은 바쇼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 영어판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고, 바쇼의 하이쿠가 이 책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자못 궁금해졌다.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역시 예측 가능한 내용들에 조금 김이 빠졌다.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 거의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뭇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외면하고 도리고 에번스 앞에 당차게 나타나는 에이미- 이토록 진부하고 클리셰에 충실할 수가. 물론 도리고가 에이미를 다시 만나고 둘 사이의 장벽을 알게 되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전개라서 갑자기 흥미가 솟구쳤다. 그런데 이 또한 도리고와 에이미의 애절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한층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인 셈이지 않은가. 게다가 도리고, 미남 도리고. ‘모든 여자가 남몰래 갈망하는 남자’(482쪽) 도리고라니. 이런 설정에는 조금 실소가 나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그의 고통과 번민이 더 잘 전달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 둘이 폭발적으로 서로에게 빠져들 즈음, 도리고는 전쟁터로 끌려가고 전쟁포로가 되어 숨이 붙은 것을 저주할 정도로 최악의 경험을 한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전쟁영웅이 된 도리고의 모습이 과거와 교차하면서 드러난다. 전쟁에서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참혹한 광경을 지켜봤기에 현재 그의 모습은 살아남았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그는 방탕하고 무의미한 삶을 그저 이어나갈 뿐이다. 이 또한 작품을 읽기 전에 예측 가능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바쇼의 하이쿠, 그 하이쿠들이 이 작품을 조금 색다르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니 바쇼를 비롯해 잇사, 부손 등 일본 하이쿠 대가들은 물론 그들의 작품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작품 속에서 나카무라와 고토 등 일본군들은 바쇼의 하이쿠가 일본 정신의 상징이라고 말하면서 포로들을 괴롭히거나, 그들 중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하이쿠를 읊기도 한다.


철도를 위하여. 고타 대령이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일본을 위하여. 나카무라가 자신의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천황 폐화를 위하여! 고타 대령이 말했다.
바쇼를 위하여! 나카무라가 말했다.
잇사!
부손! (162쪽)

서로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하이쿠를 읊어주었다. 시 자체보다는 시에 대한 서로의 감수성이, 시에 깃듯 천재성보다는 시를 이해하는 서로의 지혜가 두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자신이 시를 안다는 사실 보다는 시가 자신들과 일본 정신의 고귀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그 일본 정신은 이제 곧 철로를 따라 매일 버마까지 이동할 것이고, 버마에서부터 인도까지 나아갈 것이며, 거기에서 다시 세계를 정복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본 정신이 바로 철로고 철로가 바로 일본 정신인 거야. 나카무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쇼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더 넓은 세상에 알게 될, 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인 거지. (163쪽)

이 작품을 읽다 말고 바쇼의 하이쿠에 관심이 생겨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읽었다. 바쇼가 살았던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세웠던 에도 막부 초창기의 혼란스러움이 진정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인 계급 조닌(町人)들의 문화가 꽃피기 시작할 때였다. 철저하게 세속적인 조닌 문화의 쾌락주의는 무사 문화의 금욕적 윤리와 이중구조를 이룬다.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동시에 금욕적이기도 했던 시대에 바쇼는 세상 흐름의 어느 것과도 전혀 다른 삶을 지향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 때 오히려 그는 도시를 떠나 멀고 먼 변방으로 고된 여행을 떠난다. 일본 동북부 지역 ‘오쿠’까지 2,4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걸어서….

그런 바쇼의 하이쿠가 전쟁터에서, 그것도 포로들을 가차없이 학대하는 나카무라나 고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꽤나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나카무라와 고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범들이 재판 받고 처형당할 때도 운 좋게 살아남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자신들은 전범이 아니라, 천황의 선한 뜻을 실제로 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포로들을 학대한 것 또한 그 위업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치부한다. ‘구타는 더 나은 선(善)을 위해 필요한 일’(357쪽)이었던 것이다. 하이쿠를 그토록 사랑했던 나카무라에게 천황은 하나의 시(詩)였다.


그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이 바로 시(詩)인데, 천황 폐하는 그 자체로서 시였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는 우주를 모두 포함했으며, 모든 도덕과 고통을 초월했다. 위대한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천황 폐하라는 시 또한 선과 악 너머에 있었다. (478쪽)


나카무라는 선하기 그지없는 아내와 살면서 자신 안의 선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급기야 자신은 원래 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죽기 직전까지 바쇼의 하이쿠를 읽으며 ‘살아 있는 부처가 되려 했다’(444쪽)는 고타와 닮은꼴이다. 그렇게 반성도 참회도 속죄도 없이 자기 안의 선함을 발견했다고 기뻐하고, 살아 있는 부처가 되기를 바라면서 죽어간 전범들의 몰염치한 모습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한다. 전쟁포로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인 녹슨 기차가 그들에게는 위대한 업적으로 남아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해야 마땅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들이 본 것은 1944년 시암-버마 철로를 끝까지 다린 첫 번째 기관차가 껍데기만 남아 녹슬어 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기술자들은 그 기관차를 복구중이며, 그것을 일본으로 가져와 야스쿠니신사에 전시해서 자신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464쪽)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이렇게 전쟁포로가 된 이들의 삶과 전쟁에서 천황의 선한 의지를 행했다고 말하는 일본군관들의 삶을 겹쳐 보여주면서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그 어떤 인물도 이 삶에서 승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고는 말할 것도 없고, 그와 얽힌 여성들- 앨런, 에이미. 에이미의 남편 키스 멀베이니. 그들 모두 삶이라는 덫에 걸린 패배자들이다. 나카무라나 고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굴러갔는가? ‘사람이 온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승자는 언제나 세상’(352쪽)인 것이다.


인생은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운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대게 인생은 누가 미리 농간을 부려둔 카드와 같았다. 그러니 그저 다음 걸음을 제대로 내딛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283쪽)


도리고도 에이미도 ‘그 다음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는 못한 것 같다. 앨런이나 키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앨런과 키스의 그 기만적 행위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어쩌자고 그러는지 탄식하게 된다. 그들 모두 ‘사랑’이라는 덫에 걸린 가엾은 포로들인 셈이다. 키스나 앨런은 둘 다 자신들이 덫을 놓았지만 그 덫에 걸리고만 것은 결국 자기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전쟁 이야기면서도 전쟁과도 같은 삶의 이야기, 그 덫에 걸린 포로와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토록 개인들의 욕망이 부딪히고, 때로는 국가와 개인의 욕망이 부딪히는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바쇼의 하이쿠는 조용하고도 은은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빛난다. 속세의 이 모든 고뇌를 벗어난, 달관의 삶. 침략과 살생이 자행되는, 가장 저열한 인간의 욕망이 들끓는 전쟁터. 그 극명한 대비 속에서 바쇼의 하이쿠는 슬프게 빛난다. 시(詩)가 되기를 바라지만 결코 시가 되지 못하는 삶, ‘먼 북’이라는 멀고도 먼 구원의 길. 그 애잔하고도 쓸쓸한 풍경이 이 작품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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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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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소녀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자칭 진보(?) 여선생의 성장담인가 했는데, 읽을수록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게 되는 놀라운 작품. 진 브로디 이 독특한 캐릭터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짧은 분량이지만 매우 강렬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크림 중의 크림‘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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