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들
안 세르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존의 관념을 해체해버리는 전복적인 소설.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왜 안 돼?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성의 욕망, 모성애, 가정 안의 권력 관계, 관음증 등 볼수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현대는 관음의 시대라 그런지 관음증 부분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그나저나 34도의 날씨에 읽기 참 뜨겁군.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8-0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혼에 대한 잠자냥님의 마음이 이래도 되나에서 왜 안 돼? 로 바뀌길 기다리며....

잠자냥 2023-08-05 22:43   좋아요 2 | URL
파이어스톤 언니한테 이른다!

잠자냥 2023-08-05 22:46   좋아요 2 | URL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마니아 등극 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8-05 22:51   좋아요 1 | URL
좋아요도 댓글도 안늘었는데 갑자기 왜 마니아됐는지 의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06 01:04   좋아요 1 | URL
정희진의 공부 8월호에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느 정도 인기가 생기는 책만 마니아를 만드는 듯 ㅎㅎ

잠자냥 2023-08-06 06:12   좋아요 2 | URL
8월호 듣기로 하셨군요! 전 출근 때 듣기로… 그나저나 그래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마니아 1~3위가 ㅋㅋㅋㅋ

은오 2023-08-06 07:20   좋아요 1 | URL
4위 고라니님까지 이상한 사람들 모임 같고 좋네요..허허 ㅋㅋㅋㅋ 잠자냥님이 1위 자리를 뺏기시는 일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잠자냥 2023-08-06 08:34   좋아요 1 | URL
언젠가 1위 자리 물려드릴게요….

건수하 2023-08-06 11:58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듣진 않고 다운로드만 해뒀습니다 ㅋㅋ
 
어렴풋한 부티크 - 124개의 꿈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밤 나는 프로이트. 내담자는 페렉. 그의 어렴풋한 꿈의 기록 또는 은유로 적어내려간 현실의 재창조를 마주하노라면 그의 열망, 소망, 억압된 욕망, 두려움, 근심, 공포, 걱정 또는 기쁨에 다가서게 된다. 단 이 모든 것은 결코 붙잡히지 않는 어렴풋한 안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3-08-03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만큼 어지럽나요?

잠자냥 2023-08-03 08: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네

잠자냥 2023-08-03 08:43   좋아요 1 | URL
네 속엔 페렉이 너무 많아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8-03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자냥 별오라도.... 고민해야 마땅하겠지요? ㅜㅜ

잠자냥 2023-08-03 17: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아라공꼴 날지도요!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순전히 개인 팬심 별5입니다. 실제로는 4개쯤

잠자냥 2023-08-03 17:17   좋아요 1 | URL
문트님이 소주 댓병 마시고 낮잠 자다 꾸는 꿈 메모한 거라고 생각해보시면 될 듯합니다. ㅋㅋㅋㅋㅋ

은오 2023-08-0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두 문장 찢으셨습니다. 제마음을.. 심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님이 서재공개 페이퍼에선가 좋아한다고하셔서 더궁금해진 작가인데 전 인생사용법부터 읽어보려고요 ㅋㅋㅋ

잠자냥 2023-08-04 06:15   좋아요 1 | URL
그건 나도 아직 안 읽었는데 ㅋㅋㅋㅋㅋ 두꺼워서 ㅋㅋㅋㅋㅋ

은오 2023-08-04 17:49   좋아요 2 | URL
제가 먼저읽으면 결혼해주시나요?!

잠자냥 2023-08-04 21:15   좋아요 2 | URL
아니요.

은오 2023-08-04 22:13   좋아요 1 | URL
저도 에리히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읽었습니다. 전철에서는 아니고 집에서 ㅋㅋㅋㅋ

잠자냥 2023-08-04 22:54   좋아요 1 | URL
아아 순간 은오님인가 ㅋㅋㅋ 은오님 또래 여성이었거든요.

은오 2023-08-04 23:00   좋아요 2 | URL
이제 책읽는 제또래여성만보면 제가 생각나십니까?! 😳 저 보면서 조카 생각도 하시더니.... 결혼만안해주실뿐 잠자냥님은 절 사랑하시는거같아요!!
그나저나 앞으로 지하철탈때마다 꼭 책 무릎위에 얹어놔야겠습니다 ㅋㅋㅋ 언제 잠자냥님 마주칠지 모름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05 00:07   좋아요 1 | URL
에엥?
 

휴가 막바지에 읽은 앨리스 워커의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은 심정적으로 무척 힘든 작품이다. 읽는 동안 스트레스가 치솟는다. 인간에 대한 환멸, 세상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덮고 나서도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인간에게 과연 사랑이 가능한가. 아니, ‘Man’이라 이름 붙이고 스스로 인간이라 칭하는 그들- 그러니까 남자들에게 과연 제대로 된 사랑의 능력이 가능한가. 여자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순간의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마는, 그리고 제 자식들마저 시궁창으로 몰아넣는 여자에게 과연 사랑이란, 로맨스란 무엇인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출산보다도 훨씬 더 여성 억압의 주축”(<성의 변증법>, 183쪽)이라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말도 떠오른다. 그럼에도 세계는 이성애 로맨스를 만병통치약인 듯 권한다.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오, 로맨스 천국이여. 넘쳐나는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라. 그런데 정말 로맨스는 지상 최고의 것인가?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로맨스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에서 그려지는 사랑만큼은 만병의 근원이다.

때는 1920년대 미국 남부 조지아주- 노예제는 이미 60여 년 전에 폐지되었지만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전히 예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흑인 소작농 그레인지 코플랜드는 백인들의 목화밭을 일구며 나날을 노예나 마찬가지로 살아간다. 자신의 삶이 이토록 구질구질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저 모든 백인들 때문이라고 백인을 향한 증오와 자괴감에 빠져 아내와 아들을 방치하다시피 한 그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북부로 떠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이 ‘그레인지 코플랜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흑인 남자보다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브라운필드’로, 그레인지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브라운필드의 어린 시절은 어찌 보면 가엾다고도 할 수 있다. 무력감에 젖은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며 정서적으로 학대했고, 그레인지 부부는 가정의 불화를 서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소한다. 그레인지는 그레인지 대로 다른 여자들을 품고 다니고, 아내 또한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서 또 다른 남자의 품으로 옮겨 다닌다. 그러다 사생아까지 낳았으니, 어린 나이에 이 동생까지 챙겨야 했던 브라운필드의 삶도 가련하기는 하다. 그런데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엄마는 이 사생아와 목숨을 끊어버리고, 아버지는 북부로 떠난다. 이제 그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엄마와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백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까지 지닌 브라운필드- 그래도 외모는 괜찮았는지 자신이 점찍는 여자의 마음은 손쉽게 얻는다.

그런데 이 증오덩어리가 하필이면 ‘멤’이라는 흑인 소녀를 마음에 두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니 멤이 이 증오덩어리에게 마음을 주면서 자신의 삶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아버지 그레인지와 살을 섞고 살던 여자 ‘조쉬’와 또 살을 섞으며 살고 있던 브라운필드는 조쉬의 조카인 ‘멤’을 보고 그녀를 열망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낭만적인 로맨스를 그리는 작품들에서는 브라운필드의 이 열망을 ‘첫눈에 반했’다든가 ‘영혼의 동반자를 만났다’든가 뭐 그런 개똥같은 미사여구로 포장할 것이다.

그러나 글쎄. 브라운필드가 멤을 알게 될 무렵 그녀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 글을 알고 쓸 수 있으며, 조쉬를 비롯해 조쉬의 딸 등 브라운필드가 손쉽게 육체를 탐할 수 있던 여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런 육체적인 쾌락과 향락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듯이 정신적 삶에 몰두하고 홀로 산책을 다니는 특이한-브라운필드가 보기에 아무런 목적 없이 산책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녀이다. 브라운필드는 멤이 홀로 산책을 다닌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신비감과 호기심을 느끼고, 그녀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욕망에 끓어오른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 또한 그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멤은 급기야 브라운필드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고, 그런 멤 앞에서 브라운필드는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멤이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오, 여자여, 제발 도망쳐! 그놈은 언젠가 네가 읽고 쓸 줄 안다는 바로 그 이유로 널 때릴 거야! 나도 모르게 외치게 된다.

이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순진한 소녀 멤은 하필이면 이런 증오&열등감 덩어리에게 속아서 그와 결혼하게 되고, 이 열등감 덩어리는 자신이 매혹당한 그 지점, 그러니까 멤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점 때문에 그녀를 학대한다. 욕하고 상처 주는 것도 모자라 구타가 일상이 된다. 그는 그녀를 처절하게 짓밟으며 기뻐한다. 폭력을 즐긴다. 밖에서는 백인이고 흑인이고 어떤 남성에게도 자신의 남성성을 제대로 발현하지조차 못하는 이 찌질하기 짝이 없는 열등감 덩어리는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하면서 자신의 남성성에 도취된다. “누군가가 ‘여성’이 되어야만 흑인 남성이 ‘남성’이 될 수 있기 때문”(<성의 변증법>, 178쪽)이라는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집 안의 여성을 학대하면서 그때야 자신이 남자임을 확인하는 비열한 남성. 앨리스 워커도, 파이어스톤도 이 지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브라운필드가 얼마나 악랄하게 아내를 학대하는지 내 손에 총이 있다면 책 속으로 들어가 그의 머리통에 총알을 갈겨주고 싶을 정도이다.


그의 구겨진 자존심과 뭉그러진 자아는 멤이 선생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질질 끌어냈다. 그녀의 지식은 읽고 쓸 수 없는 남편에게 극도의 불명예일 뿐이었다. 그녀를 백인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위대한 투지였다. 그는 그녀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그녀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로 하여금 다른 남자, 즉 흰둥이들에게 꼬리 쳤다고 억지 부리며 아내를 두들겨 패게 한 것은 바로 그 자신과 그의 인생과 그의 세계에 대한 분노였다. 그의 분노와 그의 노여움과 그의 절망이 그를 지배했다. 분노는 그가 모든 것을 그녀 탓으로 돌리게 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녀는 자신의 짐과 더불어 그의 짐까지 모두 받아 들고는 더 넓은 마음과 더 높은 지식으로 그것들을 짊어졌다. 그는 그녀의 더 넓은 마음은 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더 높은 지식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를 힘에,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102쪽)


멤에게는 해결책이 없다. 달아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사이 아이들을 여럿이나 낳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하필이면 딸들이다. 저 혐오스러운 브라운필드는 아내를 학대하듯이 제 자식들도 학대한다. 사랑과 임신, 로맨스가 멤이라는 여성에게 가져다준 것은 대체 무엇인가? 자력으로 가난한 흑인들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멤은 추락한다. 추락은 끝이 없다. 그 잠깐의 로맨스 때문에, 달콤함 때문에 몇 번의 뜨거운 섹스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로맨스의 결과물인 딸들의 인생 또한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앨리스 워커는 이렇게 쓴다. “‘가난한 문화’를 거의 탈출할 뻔했던 멤과 같은 여자에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정말 명사나 동사나 복수나 단수가 기억나지 않아 옛날에 쓰던 사투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105쪽) 멤이 다시 어벙한 얼굴로 사투리를 쓰는 장면에서는 비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랑의 결과물이라는 아이들은 그녀를 더 옭아맨다. 멤은 지독하게 학대당하면서도 아이들을 생각해 묵묵히 일한다. 그녀가 지녔던 온화함은 무감각이 되고, 무감각은 다시 공포, 비참, 결국엔 증오가 된다. 이 비열한 인간 브라운필드는 멤의 비참함을 즐긴다. 비참함 속에는 어떤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바라볼 하늘도 전혀 없는 멤은 무기력 속에 빠져들고 브라운필드는 그녀의 몰락을 지켜보며 낄낄 거리며 웃는다. 이것이 과연 사랑인가? 브라운필드는 비참함보다 멤의 증오를 더 참을 수 없어 하는데, 멤이 혹시라도 용기를 내어 그에게 저항하면 더 심한 구타와 폭력이 뒤따른다. 그런 멤도 지독하게 마음을 먹고 브라운필드에게 총을 들고 반항해 권력이 역전되는 순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여자는 또 한 번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브라운필드에게 빼앗기고 만다. 브라운필드는 여성이 언제 약해지는지를 알고 그 기회를 철저히 노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임신! 아아, 사랑과 출산이 얼마나 여성에게 구렁텅이가 되는지 이 작품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더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아니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브라운필드는 멤과 딸들이 자신이 소유물이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고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면서 ‘진정한 상남자’라도 된 듯이 기뻐한다. 여기서도 파이어스톤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남성에게 소유와 지배를 의미한다. 사랑은 전에-그녀가 그의 질투심을 원했을 때- 절대 보이지 않았던 질투심을 의미한다. (그의 소유가 된 후에는 그의 소유물, 그의 연장된 자아가 위협당했기 때문에 그는 격렬한 정력가, 진정한 상남자가 된다.)”(<성의 변증법>, 210쪽)는 말…. “우리는 사랑이 불평등한 권력 상황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으로 상호 간의 상처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이상화, 신비화, 찬사를 통해서 여성의 계급적 열등감을 무화시키는 남성의 시각이 교체하는 과정일 뿐”(<성의 변증법>, 191쪽)이라던 파이어스톤의 신랄한 지적은 멤과 브라운필드의 관계에서 생생히 드러난다. 브라운필드가 과연 멤을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미리 가지고 있던 환상에 맞게 그녀가 연기를 너무 잘했기 때문에 그녀를 들여보낸 것”(<성의 변증법>, 205쪽)일 뿐이리라.

멤에게는 파멸이 기다릴 뿐이다. 그녀의 딸들에게도 밝은 미래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북부에서 오랜 시간 떠돌다 돌아온 그레인지 코플랜드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손녀이자 멤의 딸인 ‘루스’를 저 악귀 같은 브라운필드로부터 지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한들 어쩐지 때는 이미 늦어 보인다. 게다가 그레인지 코플랜드, 이제 와 선함을 행사하려는 당신, 그런데 당신이 이 모든 원죄의 시초는 아니었냐고 나는 되묻고 싶어진다. 손녀에게 제 아들을 일컬어 “네 아비도 그래. 백인들 때문에 그런 오두막에서 살아야 했어. 짐승처럼 마누라와 아이들을 두들겨 팬 것도 백인들 탓이지. 그래야 자기가 똥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있거든.”라고 신랄하게 말하는 그에게 당신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앨리스 워커는 이 못난 흑인 부자(父子), 그레인지와 브라운필드의 생을 통해 백인에게 억압받는 흑인 남성이 또 어떻게 흑인 여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지, 흑인 여성들의 이중고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러나 어디 흑인 여성만이 이렇게 이중으로 고통을 받을까. 대다수 여성들이 이런 이중의 고통을 로맨스라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여기 이 땅만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아래 오늘도 죽어가는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이다. 그것은 인물, 나무, 그림, 관념을 존중하고, 알며, 반응하고, 확인하고, 누리는 행위이다. 또한 생명을 주며, 상대의 생명력을 증대시키는 활동이다. 아울러 자신을 새롭게 하고 확장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러나 소유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상대방을 구속하고 감금하며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명을 주는 활동이 아니라 억누르고 약화시키고 숨 막히게 하고, 죽이는 행위이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숨기기 위해 둘러대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 <소유나 삶이냐/사랑한다는 것>, 55~56쪽)







댓글(38)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8-02 15: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이달의 페이퍼로 강력 추천합니다!! 소설과 <성의 변증법>을 아우른 멋진 글이네요. 근데 너무 쓰다.. ㅠㅠ 소설 속으로 들어가 패죽이고 싶은 필자의 마음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크흑.. 이 소설 안 읽고 싶어요 ㅠㅠ

잠자냥 2023-08-02 15:12   좋아요 2 | URL
그놈이 실제 눈앞에 있었다면... 제가 그냥 감옥살이해도 좋으니까 총으로 쏴 죽였을 거 같아요.

잠자냥 2023-08-02 15:16   좋아요 2 | URL
제가 어제 그알 지난편들을 좀 봤는데 여자가 살해당하고 미제사건으로 남은 사건들의 대다수가 증거는 남편이나 남성 애인이 살인자.... 라고 말하고 있는데 미제로 남아서 더 감정이 격해진 것도 같습니다...... 으으. -_-

책읽는나무 2023-08-02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성의 변증법>을 여기서 이렇게 조우하다니!!!!
이 책은 읽으시느라 힘드셨겠어요. 토닥토닥!
분노를 부르는 독서라니....저도 안 읽을랍니다.에궁~ㅜㅜ

잠자냥 2023-08-02 17:1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 페이퍼를 민음사가 싫어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8-02 17:24   좋아요 2 | URL
ㅋㅋㅋ
마음산책에선 이쁨 받았는데 민음사에선...에구에구..ㅋㅋ
하지만 괜찮아요!
여적 민음사에 쌓아 준 공덕이 얼만데...^^

은오 2023-08-02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할거면 나처럼 해라 이것들아!! 라고 하려다가.. 제가 man이었으면 잠자냥님이 겁나 징그러워했을거같아서 안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02 21:45   좋아요 1 | URL
헐…. 상상 1초만으로도 이미 차단각

은오 2023-08-02 23:43   좋아요 1 | URL
여자로 태어나서 좋은 점: 잠자냥님한테 결혼신청해도 차단안당함

잠자냥 2023-08-02 23:52   좋아요 1 | URL
지난번 홍삼할배 때 위험했음

은오 2023-08-02 23:56   좋아요 1 | URL
그건 원래 어필이었는데.. 연하의 반전매력....

잠자냥 2023-08-02 23:57   좋아요 2 | URL
어후 그 글씨가 아무래도…… 넷카마 의심스러….. ㅋㅋㅋㅋㅋㅋㅋ

2023-08-02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3-08-02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오...잠자냥님 이 소설 읽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파이어스톤의 책을 읽고 나니 사랑의 불가능성, 기만적인 사회의 압축인 로맨스가 더 확실하게 느껴져 당분간 그런 드라마도 소설도 피하고 싶더군요.

잠자냥 2023-08-02 21:50   좋아요 2 | URL
고통까지는 아니었으나 ㅋㅋㅋㅋ 열받아서 안 그래도 더운데 더 덥더라고요?! ㅎㅎ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하는 젊은 여성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그저 바랄 뿐입니다….

책식동물 2023-08-02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 떨어요 이거 너무 재밌어보여요

잠자냥 2023-08-02 21:51   좋아요 0 | URL
손까지 떨립니까? 열받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ㅎㅎ

책식동물 2023-08-02 21:54   좋아요 1 | URL
저 이런 내용 좋아해요...^^ 땡투하고 살게요...^^*

달자 2023-08-02 2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를 읽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스토리네요... 8월 되서 읽은 최고의 리뷰입니다

잠자냥 2023-08-02 22:18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8월 2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4-04 15:5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02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얘기가 아니지만…. 막연히 느끼고 있던 걸 확인사살당하는 느낌이 씁니다.. 분명 이런 텍스트들이 있는데도 어릴적 몰랐던 것은 알려고 하는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성애를 아름답게 그리는 텍스트가 훨씬 많아서…?

읽기 괴로웠지만 성의 변증법을 잠자냥님이 적절한(?)때에 읽으신 것 같아 좋습니다. 민음사는 원래 안 좋아하므로 역시 패스..

잠자냥 2023-08-02 22:20   좋아요 0 | URL
사랑을 아름답게만 그리는 텍스트들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ㅠㅠ 사랑에는 분명 고통도 쓰라림도 존재하는데 저런 건 애초에 사랑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의 변증법>을 어쩐지 앨리스 워커도 읽었을 것 같아요. ㅎㅎ

그나저나 이 페이퍼로 3명 마이너스 ㅋㅋㅋ

건수하 2023-08-02 22:54   좋아요 1 | URL
수는 중요하지 않지요 질이 중요한 것!

난티나무 2023-08-03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옛날 이 소설을 전자책으로 사놓고 아직도 안 읽고 있으므로 실눈 뜨고 내용을 건너뛰었습니다. 조만간 읽어야 겠어요!!!!!!

난티나무 2023-08-03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잠깐만 나 이거 읽었나???? ㅠㅠ 헷갈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03 08:36   좋아요 0 | URL
으음?! ㅋㅋㅋㅋㅋ 읽었을까요 안 안 읽었을까요. 도전! ㅋㅋㅋㅋ

다락방 2023-08-03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나 이 책 있어요? 🙄

다락방 2023-08-03 05:15   좋아요 0 | URL
있는 것으로 밝혀져.. 왜 이것고 있는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03 08:35   좋아요 0 | URL
네 전에 사셨삼. 제가 살 무렵에 샀음. 골드문트 님 페이퍼 보고 우리 둘 다 샀던 듯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마지막에 이런 책을 읽어내신 잠자냥님 진짜 대단해보입니다. 저는 읽는 내내 울화통 터져서 다 못 읽고 책을 집어던졌을 것 같아요!-_-; 앨리스 워커 책을 몇 달전에 샀는데 아직도 안 읽었지만 이 글 보니 당분간 읽기가 싫어질 듯 합니다. <성의 변증법>의 인용문 어쩜 이리 찰떡인지요!

잠자냥 2023-08-03 10:20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돌궐 유목민이 더 대단함... ㅋㅋㅋㅋㅋ
울화통 정말 치밀기는해요. 으으.
앨리스 워커 <컬러 퍼플> 사셨나요? 그건 이것만큼 울화통 대잔치는 아니었지만.... 속터지긴해요;; 날씨 선선해지면 읽으세요. ㅎㅎㅎ

구단씨 2023-08-03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봐도 이 소설이 눈앞에 펼쳐진 듯해요.
소설 속 배경과 지금 여기 현실이 얼마나 다른가 싶기도 하고요.

할 말은 많지만 해봤자 입만 아파서, 그저 이 남자들이 참 못났구나 싶네요. 에휴, 찌질이들.
멤과 그 딸들에게 그나마, 늦은 게 늦은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결말을 만났으면 해요.

잠자냥 2023-08-03 19:58   좋아요 0 | URL
소설 속 배경과 지금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갑갑했어요. 그나저나…. ㅎㅎ 결말은?! ㅎㅎㅎ

단발머리 2023-08-06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님이 <성의 변증법> 인용해주시는 대목마다 어쩜 주인공들의 삶과 딱딱 맞아떨어지는가요? 그래서 더 슬픈....
이 책 읽을까요 말까요? 리뷰만 읽어도 이렇게 울화가 처미는데 말이지요....

잠자냥 2023-08-06 10:49   좋아요 1 | URL
으으음 울화통 터지는 재미는 있어요. <여전히 미쳐 있는>에 앨리스 워커도 많이 나오는 편이라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워커의 작품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3-08-06 10:59   좋아요 0 | URL
앗 ㅋㅋㅋㅋ 예습 안내까지ㅋㅋㅋ잠자냥님 진짜 츤데레 매력! 😎😎😎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옮김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절망)에서 ‘살 만한 삶’(희망)을 가능케하는 버틀러식 제안. 팬데믹을 통해서도 이렇게 철학적 사유가 가능하구나 감탄. 팬데믹은 인간에게 윤리/정치적 자성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거늘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역시나 자본논리에 눌려 불평등만 더 심화되고 있구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8-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틀러 이 책은 읽을만한가요? 아니근데 중요한건 잠자냥님한텐 안어려워도 나한텐 어려울거같다 ㅋㅋㅌㅋ

잠자냥 2023-08-02 14:48   좋아요 1 | URL
은오 님 정도 독서력이라면 이 정도는 거뜬할 것 같습니다.

은오 2023-08-02 17:03   좋아요 0 | URL
과연 애정에 기반한 잠자냥님의 은오 과대평가일지 진짜 거뜬할지 도전! ㅋㅋㅋ

잠자냥 2023-08-02 17:16   좋아요 1 | URL
거기서 애정이 왜 나와요?!

은오 2023-08-02 17:39   좋아요 0 | URL
그냥 안넘어가주는 매정한 잠자냥님....😫

다락방 2023-08-02 18: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9
앨리스 워커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인 중심 사회에서 억압당한 남성성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해소하는 지지리도 못난 흑인 남성 대잔치에 책을 읽는 내내 쌍욕이 절로 나온다. 세상 탓하며 증오로 점철된 삶을 살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를 더 노예화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브라운필드. 이런 (흑인) 남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3-07-31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제강점기 우리 나라 남자들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잠자냥 2023-07-31 10:26   좋아요 2 | URL
네 맞는 말씀이네요. 집에서만 왕노릇 가부장…. -.-

은오 2023-07-3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많하않.... xy들은 대체 뭐가 문제냐

잠자냥 2023-07-31 16:48   좋아요 1 | URL
y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