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12월 마지막 날까지 책을 읽었으므로 언제나 새해 시작과 함께 정리하는 2022년 하반기에 좋았던 책(상반기에 좋았던 책은 여기에 따로 정리 ->클릭)- 2022년 돌아보니 2월에는 큰수술(?)을 하느라 병원 입원. 한 여름에 이사와 무시무시한 책장 정리. 고양이 포획 작전(내가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여 두 녀석이 새 식구로 집에 들어오고.... 이래저래 다사다난했던 한해라 2021년보다는 읽은 책 권수가 50권 가까이 줄어들어서 110권에서 마침. 2023년에는 좀 진득하니, 벽돌 책도, 4~5권짜리 장편도 도전하고 싶다.
소설
1. 이사벨 아옌데, <세피아빛 초상>
지난여름에 이 책을 2022년 원픽 소설이 될 것 같다고 장담했는데, 정말 그렇다. 무지 좋았던 책. 일단 무지무지 재미있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구나 여러 번 감탄. 다락방님 공감하죠? 이 책으로 나는 이사벨 아옌데 작품은 다 읽어보기로 결정. 앞으로 읽을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2.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정말 아름답다. 문학이 정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끝판 왕.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품은 다 사서 모으고 있는 중. 그런데 자목련님도 말씀하셨듯이 보뱅의 에세이도 좋지만 에세이보다 나는 이 소설이 훨씬 좋다. 작품 속 주인공 ‘뤼시’ 그녀처럼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의 마음가짐은 정말 닮아보고 싶다... 닮기도 어려울 듯. 평생 여러 번은 되풀이해서 읽고 싶은 책.
3. 케렌 헤스, <황사를 벗어나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사고 싶다. 사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니 기왕이면 원서로 살까 이런 생각이 든다. 운문체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에 금세 빠져들고, 동화인가 싶은데, 어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어 감탄했다. 극심한 가뭄과 황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4. 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과학 알못인데도 읽는 내내 짜릿짜릿했다. 양자역학 공부해볼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고, 여기 실린 과학자들의 삶을 찾아보기도. 그만큼 흥미로웠던 책. 세계를 알려고(know) 애쓸수록 세상을 이해(understand)하는 것에서는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놀랍도록 매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단히 멋진 작품-
5. 잭 런던, <마틴에덴>
잭 런던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좋은 작품은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법인데, 이 책이 그랬다. 어릴 때 읽은 <야성의 부름>, <하얀 엄니>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 사랑과 계급에 관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
6.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SF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도 렘의 명성은 익히 들었고, 궁금했다.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그렇고. 읽고 나서 바로 리뷰를 썼어야 하는데 100자평만 남겨두고 시간이 흘러버렸다.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내내 기억에 남는 작품. 타인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알기조차 영원히 어려울 것이라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문제를 조용히 탐구하고 있다.
7. 안드레이 마킨, <어느 삶의 음악>
프랑스 문학도 러시아 문학도 좋아하는 내게 딱 어울리는 작품이랄까. 프랑스어로 쓰인 러시아인의 삶- 그 자체로 독특하다. 전도유망했던 피아니스트에서 몰락해버린 한 노인의 인생을 통해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의 숭고함을 질문한다.
8. 뱅자맹 콩스탕, <아돌프의 사랑>
흔한 사랑 이야기인줄 알았으나, 다 읽고 나면 결국 무기력한 한 인간의 병적인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질 때도, 그 사랑을 이끌어나갈 때도 인간은 어쩌면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9. 메리 윌킨스 프리먼, <뉴잉글랜드 수녀>
프리먼은 <뉴잉글랜드 수녀> 한 작품만으로도 더 널리 알려져야 할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단편집에는 그 작품 못지않게 빼어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인데, 어린 소녀부터 중년 노년 여성에 이르기까지 그 나이대도 다양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갈등도 다양하다. 몇 작품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결말 부분에서 좀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녀들의 선택은 통쾌하다.
10. 옌렌커 <캄캄한 낮 환한 밤>
강간을 다루는 방식이 좀 찜찜하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결국 열 권만 탈 수 있는 기차에(응?) 막차를 태워주었다. 재미만큼은 진짜 보장.
비소설
1.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2022년의 발견. 비비언 고닉. 에세이를 안 좋아하고, 엄마와 딸 이야기는 더더욱 안 좋아하는데도 완전 반했다. 이 책 읽는 내내 우리 언니가 내 옆에서 엄마 이야기하는 줄. 사연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과 함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도 추천.
2. 최윤필, <가만한 당신 세 번째>
가만한 당신 두 번째를 건너 뛴 것이 미안할 정도로 좋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수자인 사람들을 다룬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더 좋았다. 이런 글을 쓴 최윤필도, 이 책 안에 담긴 개개인도 그 나름대로 모두 존경스럽다. 새해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이들에게 추천.
3. 레이먼드 카버, <우리 모두>
외국 번역 시는 잘 읽지 않는데도, 카버라서 읽었고, 카버라서 좋았다. 아마도 그가 소설을 쓰듯이 시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소박하게 써내려갔기 때문은 아닐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결국 구매.
4. 장 아메리, <자유죽음>
2022년의 또 다른 발견 장 아메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좀 이상한 것인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사표를 서랍에 넣고 직장 생활을 하는 직장인의 마음이 홀가분하고 자유롭듯이, 언제든 내 스스로 이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그것이 오히려 삶을 더 열렬히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5.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이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정희진 쌤의 책. 쌤... 우리 9일에 만나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_<
2022년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그렇다. 2022년 원픽이라고 생각했던 <세피아빛 초상>을 결국 눌렀다. 나도 골드문트 님처럼 필사에 회의적인 사람인데 이 책만큼은 필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번역 책인데도?! 아직 안 읽어보신 분, 한번 잠자냥 믿고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