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에서 E.M. 포스터 붐(?)이 이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몇 자(?) 보태보고 싶어졌다. 나는 자칭 포스터 마니아라고 생각하는데(북플에서는 내가 포스터 두 번째 마니아라고 한다), 그만큼 포스터 작품을 좋아한다. 포스터의 작품을 읽노라면 고고하고 우아한 숲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고고하고 우아한 숲이라는 게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아주 잘 짜인 지적인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포스터의 작품은 지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진실한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이랄까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내게는 그렇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포스터 전집은 <기나긴 여행>,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모리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인도로 가는 길>, <콜로노스의 숲> 이렇게 7권이다. 나는 이 가운데 사람들이 종종 그의 대표작으로 생각(오해)하는 <인도로 가는 길>과 중단편 모음집인 <콜로노스의 숲>은 읽지 않았다. 아껴두는 마음보다는, 이 두 작품은 포스터 작품임에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다. <인도로 가는 길>은 폴스타프 님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포스터의 작가로서의 한계가 드러난(식민지 제국주의적 관점)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그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읽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솔직히 책 표지에 실린 이미지만 봐도 오리엔탈리즘 냄새가 물씬 난다. 그렇지 않은가. <콜로노스의 숲>은 몇 작품은 읽었지만 도통 포스터의 다른 장편에서 읽었던 감흥이 느껴지지 않아 살포시 내려놓고 아직 완독은 하지 않았다. 아마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서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 읽은 르 귄의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에서 포스터의 단편 중 ‘기계는 멈춘다’를 칭송한 구절이 있어 이 책은 곧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 두 권을 제외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모리스>,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기나긴 여행> 순이다. 나는 포스터를 <모리스>로 처음 만났다. 이 소설은 포스터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동성애자였던 그의 삶이 담겨 있다. 신사의 나라 영국. 엄연한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캠브리지의 평범한 대학생 모리스가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매혹당하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로, 모리스 및 그의 연인 ‘더럼’의 심리 묘사가 무척 섬세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감동적인 이유는 동성애자로서 포스터의 고뇌와 절망 등이 생생히 드러나 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생애를 훑어보면, 포스터가 사랑했던 남자, 혹은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들이 모두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귀착하는 데 반해, 포스터는 혼자 독신으로 늙어갔다. 그런 그의 생애가 소설과 겹쳐지면서 슬픔을 동반한 아이러니컬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포스터 작품을 영화화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동명 영화도 명불허전 클래식이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 알지만. 지금은 죽고 싶지 않고 네가 죽는 것도 싫어.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우리 둘 다 끝이야. 넌 그걸 깨끗하고 투명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모리스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더러워지는 쪽을 택하겠어.”(<모리스>, 139쪽)
<전망 좋은 방>도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어찌 보면 뻔한 결말의 소설인데도 흥미롭게 읽힌다. 아마도 포스터의 아이러니컬한 문장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비꼬는 듯, 비아냥대는 듯, 곳곳에서 키득키득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 또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포스터의 소설이 거의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진 이유는 아마도 생동감 있는 캐릭터, 마치 실제로 어떤 전경을 바라보는 듯한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묘사 때문은 아닐까. 무엇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전망 좋은 방’은 여러 가지로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루시와 샬롯이 묵게 된 펜션의 방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전망이 나쁘다. 창을 열고 이탈리아 풍경을 한껏 바라보기를 꿈꿨던 루시에게 ‘좋지 않은 전망’의 방은 얼마나 청천벽력인가! 낙담하던 그녀에게 펜션의 또 다른 손님인 애머슨 부자가 나타나 자신들은 남자이니 전망 따위는 필요 없다며 전망이 좋은 자신들의 방을 사용하라며 루시에게 방을 바꾸기를 권한다. 이때 루시는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조지 애머슨을 알게 된다. ‘전망 좋은 방’은 루시와 조지가 서로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는 한편 이 ‘전망 좋은 방’은 루시가 약혼자 세실을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루시와 세실이 나누는 ‘전망’에 관한 대화를 통해 ‘전망 좋은 방’의 두 번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을 생각하면 배경은 언제나 방 안이에요.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응접실입니까? 바깥 전망이 보이지 않는?” “네, 전망이 없는 방이에요. 그게 뭐 문제인가요?” “나는 당신이 나를 생각할 때 이런 넓은 야외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그가 질책하듯 말했다. “세실,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전망 좋은 방>, 156쪽)
루시는 세실을 생각하면 ‘전망 없는 방’을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약혼자인데도 답답하기만 한 방 안을 떠올린다. 아무튼 ‘전망이 없는 방’이다. 그러면서도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그런데 세실은 루실이 자기를 생각할 때 ‘넓은 야외’를 떠올리기 바란다. 그러나 세실은 그럴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남자로,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약혼녀를 방 안에 가둬두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는 루시에게 알맞은 상대는 세실이 아니라, 루시가 ‘좋은 전망’을 떠올릴 수 있게 돕는 조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린 공간, 다른 모든 것들을 꿈꿀 수 있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교양, 인습,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 즉 ‘좋은 전망’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전망 좋은 방’을 포기했던 남자 조지가 루시가 찾고 있는 그 사람임을 알게 된다. 방 안에, 집 안에 가두는 사랑이 아니라 좋은 전망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랑은 누구나 꿈꾸지 않을까.
<하워즈 엔드>는 포스터가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은 작품이다. 나 또한 읽는 동안 문장 하나하나, 이야기 짜임에 감탄했다. 포스터의 작품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고전 드라마를 보는 듯한데, 그저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되는 사회성까지도 갖추고 있다. <전망 좋은 방>에서 포스터는 고루한 인습이나 전통과 싸우는 자유로운 개성을 가진 인물(애머슨 부자)을 내세워 악습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데 힘썼다. <모리스>의 ‘모리스’ 또한 그런 인물이다. 상반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내세워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과연 전통과 인습을 지켜나가고, 그러느라 인간의 영혼과 삶이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감금당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질문을 던져 왔던 포스터. 그의 이런 질문은 <하워즈 엔드>에서도 이어진다.
독일인과 영국인의 피가 흐르는 헬렌과 마거릿 자매는 말 그대로 교양인이다. 지적이고 똑똑하며 음악과 문학, 예술 등 ‘정신적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상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적 기질도 농후하다. 마거릿의 동생인 헬렌이 좀 더 이상주의자며, 마거릿에 비하면 더 과격한 페미니스트다. 그런데 이 두 자매는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그들의 세계와는 정반대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 윌콕스 부부를 만나게 된다. 헨리 윌콕스는 전형적인 사업가로 여자는 남자의 등 뒤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식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부자와 빈자, 계급 차이는 사회가 유지되려면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 루스 윌콕스 또한 그런 남편의 등 뒤에서 가정을 지키며 사는 것이 여자의 삶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한 눈에 보기에도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사람들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 인연으로 헬렌과 마거릿은 윌콕스네 집 <하워즈 엔드>로 초대를 받게 된다. 작품은 <하워즈 엔드>를 둘러싸고 헬렌, 마거릿 슐레겔 자매와 윌콕스 가의 삶이 어떻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하워즈 엔드>는 최상류층은 아닌 중산층 계급 중에서도 좀 더 부자인 윌콕스가, 넉넉한 재산이 있지만 윌콕스 집안보다는 경제 수준은 낮은, 그러나 문화적 소양은 넘치는 슐레겔 자매, 경제적으로 최하 수준에 머물지만 문화적으로는 윌콕스가보다는 소양이 있는 레너드를 등장시켜 이 세 계급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그들의 삶이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그 안에서 계급차이, 남녀문제, 경제적 상황이 개인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 작품에서 포스터는 각 계급에 대해 어떤 계급의 삶이 더 낫고 옳은지 섣불리 개입하여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작품 속 그들은 상대의 삶에 매혹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과는 정반대되는 삶에 격렬하게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떻게 사는 삶이 좀 더 인간답게 사는 삶인지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애정에 달린 문제에요. 애정요. 모르겠어요? 아시겠죠. 저는 헬렌을 아주 좋아해요. 하지만 당신은 별로 그렇지 않죠. 맨스브리지 씨는 아예 헬렌을 모르고요. 그게 다예요. 애정은 서로 주고받을 때 권리가 생기는 법이에요. 맨스브리지 씨. 수첩에 적어 두세요. 유용한 말이니까요.” (<하워즈 엔드>, 377쪽)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은 예측 불가능한 빠른 전개와 인물 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관계와 영향 등등 재미로만 따지자면 포스터 작품 중 가장 흥미진진하다. 또한 그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아름답고,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면서 따뜻하다. 작품은 영국 중산층 가문의 젊은 미망인 릴리아가 캐럴라인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수적인 런던 교외 지역 사회의 위선과 억압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릴리아는 여행지에서 만난 이탈리아 청년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재미에서는 으뜸이지만 포스터의 초기작이니 만큼 후기작에 비해 깊이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그 반면 포스터 작품의 주요한 특징인 계급 문제, 인습과 전통에 얽힌 삶과 자유로운 삶의 대비 등등이 이미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나긴 여행>은 <모리스>보다 더 자전적인, 포스터 작품 중 가장 개인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작품 전반부의 배경인 케임브리지나 후반부의 소스턴 스쿨 묘사는 거의 포스터의 실제 경험이나 마찬가지인데, 특히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자전적인 작품으로 느껴진다. 주인공 리키 앨리엇은 작가를 꿈꾸는 케임브리지 대학생으로 포스터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인생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그는 이상의 여인을 찾아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 생활은 오히려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의 내면을 파괴한다. 자기도 모르게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 젖어든 그에게 놀라온 소식을 가진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작품은 반전을 띄게 된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재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작가로서 포스터의 젊은 날의 고뇌 등을 엿볼 수 있어 포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아무튼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순서는
<모리스>-<전망 좋은 방>-<하워즈 엔드>-<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기나긴 여행>-----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될 거 같은데)-<콜로노스의 숲>-<인도로 가는 길>
재미 순으로 추천한다면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하워즈 엔드>-<모리스>-<전망 좋은 방>--- (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될 거 같은데)-<인도로 가는 길>-<기나긴 여행>-<콜로노스의 숲>
전체적으로 포스터 작품 중 이것만은 꼭 읽으라고 한다면
<하워즈 엔드>, <전망 좋은 방>, <모리스>
열린책들에서 다른 건 절판시키고 이 세 작품만 계속 표지갈이 하고 나오는 이유가 있겠지요.
나의 포스터 전집. <전망 좋은 방>은 두 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