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전당포 주인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다. 미심쩍은 게 많지만, 살인자를 밝혀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많은 심증, 하지만 관계된 이들마저 하나 둘 죽어 버리고 만다. 왜일까? 안갯속에 갇힌 살인은 개운치 않은 뒤끝을 남긴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죽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주머니 속에 있었던 백만엔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의문투성이인 사건은 흐지부지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시간을 건넌다.
눈설(雪) 이삭수(穗) 유키호, 그녀는 가난 속에서 살다, 엄마를 가스 중독사로 잃고 친척집에 입양된다. 어둠이 가득할 것 같은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우아하다. 공부도 잘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그녀는 그것을 즐기며,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살해된 후 어둠에 휩싸인 료. 차갑고 냉정하며 잔인하고 섬뜩하다. 돈을 버는 수완이 좋지만, 정직하게 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에 집착한다. 그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그의 사업 아이템들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둘은 이상한 끈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며 알 수 없다. 그들의 뒤를 끈질기게 쫓는 것은 사사가키 형사뿐. 하지만, 형사도 수년간 그들의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19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진실,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의문이 들고 오해를 살만한 사건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다. 차례도 없고 뒤엉킨 것 같은 조각들이지만, 결국 하나의 진실에 맞물리게 된다. 퍼즐 같은 것이다. 결국,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언제나 료와 유키호지만, 그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마주치는 장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료는 료대로 살아가고 유키호는 유키호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유키호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곤란한 상황이면 꼭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뒤에는 료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 수 있다.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하지만, 세상에 나서서 화려하게 사는 건 유키호, 그늘에 숨어 어둠을 짊어지는 것은 료다. 그 이유는 료의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실마리를 찾기까지는 독자도 긴 시간의 터널을 건너야 한다. 그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애타게 하기 작전이다. 금방이라도 살인자는 누구다라고 알려주면 좋으련만 사실, 그의 이야기에서 살인자는 중요하지 않다. 사건이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또 다른 그들의 삶이 초점이다.

모든 일은 철저한 계획이다. 빈틈없다. 유키호는 밝고 따뜻한 곳에서 계획을 따라 움직인다. 그녀는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고, 필요 없어지면 버릴 수 있다. 자기편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녀의 방법은 하나다. 료. 바로 료가 방법이다.
그녀는 돈에 집착한다. 그녀의 불행은 돈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국, 그녀는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서도 돈에 대한 욕심을 거두지 않는다. 료도 돈에 집착한다. 하지만, 료의 집착은 유키호의 집착과는 다르다. 그의 행복이 아니라,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돈에 집착한다.

백야행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이 말한다. 유키호가 아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불행해지는 것 같다고. 유키호는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들의 행복의 기운을 빨아먹고, 그들을 내팽개친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불행을 겪고 있었기에 더이상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행복해질 수 있다면, 누가 다치든 죽든 사라지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웃는 낯이다. 섬뜩하게 잔인하다.
료의 인생은 언제나 어둠이다. 그가 웃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림자에 가린 잿빛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불행하게 하지만, 그건 자신의 행복을 바라서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일일 뿐. 그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면 할수록 자신이 불행해져 가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상관없다. 유키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녀에게 밝은 날들을 주어야 하기에 그는 언제나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녀의 백야행이 계속될 때까지.
극단적인 그들의 방식은 사랑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다. 항상 밝은 빛을 보고 사는 유키호, 한 번쯤 밝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료. 자기들만의 유리상자를 만든 채 섞이진 않으나, 함께한다. 이상한 일이다. 끝까지 말이다.

사사가키는 그들의 행적을 끝까지 추적한다. 사사가키의 추적은 독자의 추적이다. 사사가키의 추적이 끝나야 독자의 의문도 풀리는 것이다. 의문이 풀려도 그들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추적의 마지막, 냉정한 유키호의 눈빛이 눈에 보인다.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도 계속 선물을 받아야 한다는 것처럼 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이용해 끝까지 이기적이다. 어쩌면, 상처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지 모른다. 그녀가 상처받고 있을 때 아무도 자신 따위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은 타인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료에게까지라니. 게이노는 인간 본성의 어디쯤을 건드리려고 했던 것일까?

어둠과 밝음은 적절히 섞여야한다. 극단적일 때는 무엇이든 문제가 생긴다. 그들의 극단은 많은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만큼 강력했다.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꿨으니 말이다.

손예진과 고수가 출여한 백야행은 어떨까? 그들은 유키호와 료의 극단적인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삶을 잘 표현해 냈을까? 책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질까? 어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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