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돼지꿈>에서도 그랬든, 오정희는 <가을 여자>에서도 농익은 농담을 시작한다. 삶을 살아가며 갑자기 찾아오는 농담 같은 이야기, 환상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솔직 담백한 이야기다. 시간의 무늬를 더듬더듬 겪어온 이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같은 것. 하지만, 누군가의 아니 우리의 삶이 여기 담겨 있다.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착각을 하며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진실을 알아버리고 픽하고 헛웃음만 나올 때도 있다. 착각하고 살았던 순간이 행복했느니 하면서 말이다.
'첫눈 오던 날', '비 오는 날의 펜팔'은 누구나 한 번쯤 했던 착각과 이어지며 삶의 농담처럼 씁쓸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그나마 귀엽기까지 하다.

'멋 또는 존재증명'에서 느껴지는 허영의 쓸쓸함, 자신의 아이들은 내팽개친 채 열심히 봉사 다니는 엄마가 나오는 '어떤 자원 봉사', 죽은 아버지를 다른 방식으로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방생', 프로정신이 가득한 어린 음악가의 위트를 느낄 수 있는 '어느 음악가의 어린 시절', 부모의 행동을 깨우치는 농담 '요즘 아이들'. 여자들의 오지랖 넓은 상상 '독립선언', 진실을 모를 때가 행복한 '골동품', 병아리 소동으로 아이들의 인생의 짐을 알게 된 '병아리' 등 일상의 농담들이 가득하다.

묵은 시간들을 걸어온 인생이라면, 어디서 보았을까? 어디에서 들었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그녀만의 문체로 담백하고 간결하게 풀어낸다. 삶의 우화에서 눈물과 웃음, 사랑과 이별을 보게 되며 삶 속의 소품 하나가 인생의 중요한 의미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생각하지 못하고 지난 온 시간들에서 인생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가끔은 거짓말도 하고 누군가를 험담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외부로 열린 눈이 닫히고 내면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시기라는 '가을'. 어떤 이야기들로 내면의 문을 열게 한다. 내면이 뭐 그리 진중하고, 심각하며, 고귀한 것인가? 시시한 사건도 내면의 움직임을 일으키는데 말이다. 자식의 연애를 의심하며 소홀했던 부부가 연애할 때처럼 가까워진다면,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의 부피와 가늠하다가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눈치 없어 보이는 시어머니가 나의 미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느껴진다면, 알게 되는 그때 우리의 내면의 움직임은 결국, 인생과 삶의 움직임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삶 속의 농익은 농담. 돌아보면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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